충주시 경계돌기

충주시 경계 돌기(11) - 공전역에서 마미산 넘어 장전고개까지

정안군 2007. 5. 15. 18:15

  붉은선 - 진행 구간

노란선 - 오늘의 발길

 

 

지도 옮김 :  http://blog.daum.net/san001/5581069

 

 

 

원래 시 경계는 진소 마을에서 주포천을 건너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연결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찍 포기했다.

 

어짜피 선을 정확히 밟기는 어려운 법...

 

그냥 크게 도는 것으로 마음을 먹으면 좀 느긋해진다.

 

해서, 갈 때 교통편은 공전역까지 기차로 가고 거기서는 인터넷 마미산 자료로 올라있는 산행 코스로 해서 마미산을 오른 다음 달랑고개로 내려서고 다시 면위산(부산) 가는 길로 산을 올라 장전고개로 해서 이어가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한다....

 

댜행히 제천시계를 목표로 먼저 산행한 홀로산행님의 산행기(http://blog.daum.net/soloclimbing)가 부분이나마 길잡이가 되어주기는 하는데 무척이나 고생한 듯 하여 나도 덩달아 걱정이 된다.

 

길은 제대로 있으며 이미 녹음이 짙어져 길 찾기는 어떨는지...

 

 

마마산 정상까지의 소개는 월간 산에 올라 있는 기사로 대신한다.  ^^;;

 

 

마미산은 주능선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동쪽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곡리와 청풍면 장선리, 서쪽은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로 나뉜다. 이 산은 멀리 치악산으로부터 이어져온 제천시내 남동쪽의 갑산(776.7m)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끝머리에 해당된다. 갑산에서 서진하는 능선은 호명산(475.3m)∼성산(426.1m)∼국사봉(632.3m)으로 이어진다.

 

국사봉에서 능선은 약 3km 더 나아가 마미산을 빚은 다음, 남쪽으로 꺾여 약 4km 거리에다 부산(婦山·780m)을 들어올린 다음, 여맥들을 충주호에 가라앉힌다. 마미산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은 약 1.5km 거리에다 대덕산(大德山·580m)을 들어올린 다음 여맥들이 주포천으로 스며든다.

 

공전역사를 나와 동쪽 주포천을 거슬러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약 500m 나오면 굴탄교에 닿는다. 굴탄교를 경계로 공전역과 자양영당 방면은 공전리, 굴탄교 건너는 구곡리로 구분된다. 굴탄교가 건너는 주포천은 멀리 치악산 남대봉으로부터 흘러오는 용암천, 감악봉과 석기암봉에서 발원한 팔송천, 제천시내 방면 고암천 등이 봉양에서 합수되어 흘러내리는 물줄기다. 이 주포천은 공전역 앞을 지나 물줄기가 S자로 굽돌아나가는 애련리 진소를 지난 합천 마을 앞에서 백운산에서 발원한 원서천과 합수, 삼탄 방면 충주호로 흘러든다.

 

수량이 적지 않은 물살 가운데로 수백 평의 너럭바위들과 기암괴석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아름다운 주포천 풍광을 즐기며 굴탄교를 건너가면 길 오른쪽으로 강촌슈퍼와 굴탄슈퍼가 차례로 나온다. 굴탄슈퍼를 지나 약 40m 가면 오른쪽으로 농로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농로로 들어서면 곧 이어 수로를 건너기 직전 삼거리에 닿는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 수로를 거슬러 이어지는 농로를 따르다가 오른쪽으로 수로를 건너가면 담배밭 옆으로 길이 이어진다.

 

담배밭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3∼4분 올라가면 담배밭 왼쪽으로 지능선 길이 시작된다. 뚜렷한 지능선길로 4∼5분 올라가면 무덤 2기가 나오고, 곧이어 뱀막을 넘어간다. 뱀막을 뒤로하고 가파른 산길로 들어서면 지난 3월 폭설 때 부러진 나무들이 갈 길을 막는다. 부러진 나무들을 여러 개 넘어 약 30분 올라가면 지형도 상의 대덕산(大德山·580m) 북릉에 닿는다. 대덕산 북릉 길은 의외로 뚜렷하다. 7∼8분 올라가면 435.7m봉 오른쪽 사면길로 이어진다. 이어 안부를 지나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철쭉 능선길을 따라 약 20분 올라가면 대덕산 정상 서쪽 100m 지점의 전망장소에 닿는다. 남서쪽 계곡 건너로 부산(婦山·780.4m), 남쪽으로 마미산 정상이 마주보인다. 서쪽 삼탄 방면으로는 지등산, 인등산, 천등산이 조망된다. 마미산 방면 주능선은 제천시와 충주시 경계다. 전망장소에서 약 15분 내려서면 사거리 안부에 닿는다. 동쪽 굴탄 용암계곡 방면 길이 뚜렷하다. 안부에서 능선길로 약 30분 올라가면 삼거리에 닿고, 서쪽 능선길로 발길을 옮겨 10분 오르면 마미산 정상에 닿는다.

 

(위 기사는 월간 산의 자료이니 퍼 옮기지 마세요)

  

 공전역에서 굴탄교가는 길

 

 굴탄교 위에서 본 주포천

 

 강촌 슈퍼와 굴탄 슈퍼

 

원래는 위 기사에서 소개된 코스로 오르려 했지만 길을 잘못 들어 길없는 길을 올랐다.   경사가 무척이나 심해 유격 훈련이 생각나는 정도...

 

그래도 일단 능선상에 오르니 길도 잘 나있고 표지기도 심심찮게 붙어 있어 마미산 정상까지는 별 문제 없음...

 

말 그대로 No Problem.

 

지도에 삼각점이 있는 곳이라 표시된 곳 - 삼각점 없음

 

 삿갓 나물 군락지

 

대덕산 갈림길 - 여기서부터가 사실상 시 경계다.

 

마미산 정상 갈림길

 

마미산 정상

 

 

마미산 정상에 섰다.   그러나 가스 때문에 시계도 좋질 않고 나무가 둘러 서 있어 정상 감각은 30점 정도...

 

마미산이 왜 명산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줄 알겠더라고...ㅋㅋ

 

 

그건 그렇고 시계가 이어지는 달랑고개쪽으로 길이 보이질 않는다. 

 

해서 그냥 감각으로 정상으로 오르던 길 쪽으로 조금 돌아가 남쪽으로 우회하니 능선상에 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도 지도로 확인해 가면서 진행했는데 그만 내려가야할 지능선을 놓쳤다.

 

해서 다른 지능선을 타면서 달랑고개쪽으로 최대한 내려가는데 덩굴이 무척이나 힘들게 한다.

 

한참 계곡을 뚫고 나가니 산 길이 나타나고 전원 주택 자리같은 넓은 공지...

 

그리고 새로 포장된 듯한 아스팔트 길..

 

달랑고개는 조금 위쪽이다.

 

달랑고개 정상

 

길은 새로 포장하면서 정상부 양쪽을 심하게 깎아 놓아 산에 오르려면 아무래도 조금 우회해야 할 듯...

 

제천 쪽으로 내려가니 농로가 나온다.

 

위쪽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산으로 가는 길이냐고 하니 그렇다고...

 

농로늘 따라 오른다.

 

염소 우리, 인삼밭...

 

낮은 능선에 오르니 밭을 갈다 그늘에서 쉬고 있는 청년이 있다.

 

그 청년에게 부산 가는 길을 물으니 위쪽으로 길이 있기는 한데 자기도 가본 적은 없다고...

 

 

 

초반부는 급경사이다.   게다가 나무를 잘라 놓고는 치워 놓질 않아 오르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그래도 일단 능선부에 올라서니 경사가 조금은 완만해지고 산길도 분명하다.

 

급경사, 완경사가 적당히 연결된 오름길은 가끔식 자취를 감추지만 그냥 치고 오르다보면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산길 옆은 아무래도 뱀을 잡으려고 설치해 놓은듯한 두꺼운 비닐막...

 

눈에 거슬린다.

 

드디어 삼거리 갈림길...

 

 

오름길에서 본 마미산

 

부산 갈림길

 

힘들게 부산가는 삼거리 갈림길에 서니 허기가 진다.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50분...

 

조금 더 내쳐 가기로 한다.

 

부산은 원래 면위산인데 일제 시대 때 토지 조사를 하던 왜놈 아저씨가 산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면위산을 며느리산으로 알아듣고 며느리 부(婦)산이라고 했다나?

 

하여튼 이곳 저곳에 어거지로 한자로 옮기며 잘못 표기된 지명이 무지기수다.

 

그나마 부산보다는 그 정상 아래쪽에 있는 옥녀봉이 더 유명해서 옥녀봉으로 알려져 있기도... 

 

무명봉

 

일단 내리막 그후 오르막이다.  

 

이름도 없는 무명봉...

 

조금 더 가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 삼각점이 있고...

 

나무를 처놓은 덕에 처음으로 전망이 좋은 곳이 된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

 

멀리 보이는 면위산(부산) 봉우리

 

앞으로 가야 할 능선

 

 

지도를 잘 확인하며 가니 큰 실수는 없는데 가끔씩 주의해야 할 곳도 나온다.

 

건너편 봉우리쪽으로 빠지면 완전 왕십리 방면

 

이쯤해서 준비해 온 점심 식사를...

 

밥 한그릇에 김 그리고 장조림 통조림이 전부이지만 너무 꿀 맛이다.

 

혼자 다니면 아무래도 진도가 빠르고 쉬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피로도가 심한데 그나마 밥 먹는 시간이 충분히 쉬는 시간이다.

 

벌써 날파리들이 귀찮게 하는 계절이 된나 보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성가시고 밥 먹을 때도 성가신데 특히 진행할 때 눈 앞에서 앵앵거리면 보통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점심 먹은 장소

 

 

다시 이름없는 봉우리를 올라섰다.

 

정상 부근은 나무를 베어놓아 어지럽기 그지 없는데 여기도 나갈 길이 분명치가 않다.

 

다시 조금 돌아와 적당히 방향을 잡고 내려선다...

 

다시 오르막..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무명봉의 베어진 나무들

 

이제 충주호가 가까워지니 나무들 틈으로 충주호가 언뜻 언뜻 보이기 시작한다. 

 

마무리할 시간과 장소가 가까워 지고 있는 듯...

 

나무 사이로 보이는 충주호

 

다행히 마지막 부분은 거의 평지이다.

 

경계 부근이 명확하질 않지만 적당히 내려선다.

 

이 정도만 마루금을 찾아 왔어도 사실 대성공이다. 

 

내려서니 제천쪽으로 조금 진행한 곳이다.

 

내려선 곳

 

비포장 길이 이어진다

 

내려 오긴 했는데 돌아갈 일이 아득하다.

 

여기서 시내 버스가 다니는 동량면 하천까지는 12 Km 정도되는데 2시간은 족히 걸어야 갈 수 있다.

 

내려온 시간은 2시 45분...

 

8시 20분 부터 걷기 시작했으니 6시간 반 정도 걸렸고...

 

앞으로 얼마를 걸어야 하나...

 

하천에서 버스 시간이 4시 25분이니 정상적으로 걸어가서는 그 시간에 대기 힘들다.

 

해서 걸어가다가 히치를 하기로...

 

 

히치가 되면 버스로 돌아가고 그게 안 되면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데리러 오랄 수 밖에...

 

허느적 허느적 걷긴 걷는데 완만한 오르막이라서 꽤 힘들다.

 

고개를 올라서니 여기가 바로 충주시와 제천시의 경계인 장전고개이다.

 

 

한참을 쉬긴 하는데 그 흔한 차 한대로 보이질 않고...

 

다시 걷는다.

 

거의 한 시간을 걸었어도 뒤에서 오는 차는 없었다.

 

앞에서 오는 차만 먼지를 잔뜩 내고 3대가 지나갔나?

 

거의 4시가 다 된 시각...

 

이제 버스는 포기하고 전화 통화 가능한 지역이 나오면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차 한대가 빵빵거리며 타랜다.

 

좀 전 차 한 대한테 바람 맞아서 차가 와도 손 들 생각도 안했는데.

 

승용차를 타고 한10여분을 달리니 버스 종점이다.

 

 

기사에게 간신히 시간을 맞추었다고 하니 한 5분이나 남았는데 뭐가 간신히냐고...

 

 

 

그 남은 시간에 보물 정토사지 법경대사 탑비를 찍는다.

 

 

하여간 오늘도 거의 8시간을 걸었으니 원 없이 걸은 셈...

 

그런데 일요일 오후에 한 4시간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를 심한 것에 비하면 힘이 훨씬 덜드니 아무래도 산 다니는 것이 궁합이 잘 맞나보다.

 

아님 농사지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닌지도...

 

다음 구간은 참 애매하다.  

 

낮은 봉우리로 해서 일단 호수로 내려왔다가 다시 봉우리를 오른 다음 호수로 풍덩인데...

 

이것을 어떻게 하나...

 

일단은 이곳은 나머지 공부로 남겨 놓아야겠다...

 

한 나절은 과하고 반 나절이면 될 구간이니...

 

충주와 제천시의 경계 장전고개

 

 

뽀나쓰로 버스 종점에서 건진 문화재 하나 소개...

 

정토사 법경대사 자등탑비 (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종목 : 보물 제17호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 : 1기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1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충주시

정토사터에 전하고 있는 비로,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의 승려 법경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토사는 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법경대사가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태조 24년(941)에 입적하였고, 그의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비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비받침에 새겨진 거북조각이나, 머리돌의 용조각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 앞면의 중앙에는 ‘법경대사’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비의 몸돌에는 대사의 행적이 자세히 새겨져 있다.

법경대사는 헌강왕 5년(879)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교의 법을 배워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924년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하여 정토사의 주지로 임명하였고, 고려 태조 24년(941)에 63세로 입적하자 태조는 시호를 ‘법경’, 탑이름을 ‘자등’이라 내리었다.

태조 26년(943)에 그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고,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 최언위가 지었으며, 유명한 서예가였던 구족달이 글씨를 썼다.

함께 서 있었을 사리탑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이 곳에 남아 있지 않다.

 

(위 글은 네이버에서 퍼왔으니 옮기지 마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