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일기 15

4월 13일 수요일

전날까지 내가 치앙라이에 사나 싶을 정도로 날이 덥고 후덥지근하더니 밤새 비가 오고는 본래 요즘 날씨로 돌아갔어요. 둥이 중 동생 격인 우가 열이 있어 어린이집에 못 간다 하여 일찍 집을 나섭니다. 다행히 비가 내리진 않아 큰 불편은 없었지만 좀 이른 시간이라 시간은 10여분 좀 더 걸렸습니다. 휘발유 가격이 조금 내렸네요. 1959년이었는데 1909년으로. 가격표를 보면 이렇게 연도 생각이 나요. 도착해서 아이들과 잠시 놀았는데 엄마가 나간다고 하니 둘 다 난리가 났습니다. 밖에 나가자고. 그래서 언니 격인 호를 데리고 내가 먼저 나섰어요. 날이 쌀쌀하고 미끄럼틀이 젖어 있어 놀이터는 못 가겠고 어디를 가나 싶었는데 근처 동사무소 2층에 도서관이 보였어요. 얼시구나 잘 됐다 싶어 함께 가봅니다. 직원 ..

돌봄 일기 2022.04.14

4월 6일 수요일

봄날입니다. 화려한 그 봄날. 무채색이던 세상이 유채색으로 변하는 봄. 그 주인공은 역시 꽃들이네요. 벚꽃. 화려함의 최고봉. 소메이 요시노. 제주도 왕벚나무라고 애써 우겨 보아도 전국 각지에 피어 있는 벚나무는 일본산 소메이 요시노. 잎과 꽃이 거의 동시에 피는 산벚나무와는 좀 다르죠. 소메이 요시노가 예쁘기는 한데 전국 산천이 이걸로 물들어 꽃동네가 되는 건 좀 씁쓸한 감이 있어요.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왜색 잔재를 보면 더 그렇습니다. 개나리는 우리나라 꽃. 노란 개나리는 또 다른 봄의 전령인데 느낌은 벚꽃과는 많이 다릅니다. 벚꽃과 개나리의 공통점. 둘 다 나무는 쓸모가 없다는 것. 지난주는 코로나로 인해 귀한 휴식이 있어서 10일 만에 다시 서울로 갔습니다. 우리 둥이들은 그동안 다니던 어린이집..

돌봄 일기 2022.04.07

2월 18일 금요일

지난 월요일. 늘 하던 대로 오전은 청소에 힘 쓰고 돌아 와서 오후에 창룡사에 산책 겸 물 떠오기 미션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아내의 급한 부름. 둥이 아빠가 컨디션 난조로 입원할 수도 있어 아이들 케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급히 서울로 향합니다. 가 보니 상황이 좀 심각합니다. 이런 저런 의논 끝에 언니(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호’를 우리가 데리고 오는 걸로 합니다. 이런 기회에 ‘호’에게 치어 기를 못 피는 ‘우’가 활력을 찾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있었어요. 둥이는 태어나서 상태가 좋지 않았던 우가 병원에서 잠시 더 오래 머물 때 말고는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는데. 그런데 의외로 잘 떨어지고 오는 도중도 칭얼대지도 않더군요. 칭얼대기는 켜녕 바깥 세상 구경에 신이 난 듯..

돌봄 일기 2022.02.18

2월 10일 수요일

지난 월요일 저녁. 아내에게서 비상경보가 울렸어요. 우리 둥이들이 아파서 내일 어린이집에 못 가는데 아빠 엄마는 모두 바빠서 우리가 봐주어야 한다고. 그럼 수요일은? 수요일도 봐줘야 되죠. 잉? 그럼 거기서 하루를 자던지 왔다 갔다 해야 된다는 뜻? 둘 다 무리데스요. 난 그렇게 못하네. 당신이 내일 혼자 가고 난 수요일 버스로 가겠소. 화요일 새벽. 아내가 서울 가려고 준비하는 걸 보니 함께 가야겠다 싶었는데 내가 뜸을 들이는 새에 혼자 가버렸네요. 그려. 조금만 비겁하면 하루가 즐거우니. 그렇게 하루가 갔습니다. 수요일. 집에서 터미널까지 걸어서 25분 정도 걸렸던 것을 기억하고 집에서 8시 25분에 나왔는데 터미널에 도착하니 9시. 9시 5분 차인데 걸리는 시간에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25분..

돌봄 일기 2022.02.10

1월 26일 수요일

오늘도 둥이 '호'와 '우'를 돌보러 힘찬 출발. 간밤에는 비가 조금 내렸는데 그 이유인지 짙은 안개가 있는 곳이 가끔씩 있었지만 날도 푹하고 길 상태도 좋았어요. 가면서 문뜩 드는 생각. 이렇게 매주 한 번씩 왕복 다섯 시간이 넘게 돌봐 준 것을 우리 둥이들은 나중에 기억이라도 할까? 물론 나중에 덕이나 보자고 하거나 기억해 '달라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달라고’라는 표현이 나오니 드는 생각. 어느 동네에서는 ‘달라고’라는 장면에서 ‘주라고’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해 달라고’를 ‘해 주라고’ 아무튼 그러면서 드는 또 다른 생각. 나는 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외할아버지는 육이오 때 큰 아들이 호주기 오폭에 의해 사망하자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서울에 사셨고 ..

돌봄 일기 2022.01.27

1월 19일 수요일

집에서 나올 때는 평소와 다른 게 없었습니다. 인간극장이 끝나는 걸 보고 비슷한 시간에 출발을 했으니. 날이 좀 많이 차기는 했지만 해도 잘 보이고 전혀 문제가 없는 날이었죠. 그런데 여주쯤 오니 아내가 10시부터 서울 광주 이천 쪽에 대설 경보가 내려진다네요. 하늘이 저렇게 멀쩡한데. 이천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다시 출발하여 얼마를 달리니 가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다가 아들에게 전화가 옵니다. 서울은 함박눈이 내리니 조심해서 오시라. 뭐 그럽시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는 눈 오는 것이 심상치가 않으니 오지 마시라고. 복된 소식에 눈이 확 밝아집니다. ㅎ 어디서 돌아가야 하나. 나는 그걸 궁리하는데 아내는 아들에게 며느리의 의견을 물어보라 하네요. 역시 여자는 남자와 다릅니다. 얼마 뒤 며느리..

돌봄 일기 2022.01.20

1월 12일 수요일

오늘도 몹시 추운 날이지만 서울 가는 어제도 많이 추웠어요. 올 때나 갈 때 차만 타면 되니 추운 건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센터에서 교육을 마친 다음 우리 둥이들이 나들이를 가자고 하면 어쩔지 하는 조금의 우려가 있긴 했어요. 뭐 그건 그때 알아서 하기로 합니다. 서울 가는 길은 ‘여성시대’와 함께 합니다. 양희은 언니의 목소리는 여전하고 서경석 씨의 목소리도 탄력이 있어 좋지만 중간 전하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다양해 듣기가 괜찮습니다. 어떤 사연은 좀 억지스러운 것도 있지만 어떤 건 감동이 뚝뚝 흐르기도 하지요. 모두의 삶이 퍽이나 다양하지만 정답은 없으니 어느 게 바르고 어느 게 틀린 지 남이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제는 특별히 하모니카 연주자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와 하모..

돌봄 일기 2022.01.13

1월 5일 수요일

새해가 된 지 5일이 되었는데 벌써 서울행이 두 번째입니다. 벌써 지난 주일 새벽 호출을 받고 꼭두새벽에 서울로 갔다가 아이들 케어의 미션을 클리어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생각이 많습니다만 여기서 풀어놓기는 쫌. 미국 어디선가 한인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담임목사가 부목사 부부에게 새벽기도회를 반드시 참석하라는 엄명을 내렸다죠? 엄명을 받은 부목사 부부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그 새벽에 어디다 맡길 곳도 없으니 아이를 그냥 집에 두고 교회에 갔고. 그런데 그만 새벽에 아이가 잠에서 깨었고 부모가 없는 것을 알고 울어대어 이웃집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답니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와 보니 부모는 없고, 아이만 혼자 울고 있는 황당한 장면이 눈앞에 벌어졌지요. 어쨌든 아이를 홀로 집에 두고 새..

돌봄 일기 2022.01.06

12월 22일 수요일

벌써 일주일이 지나 다시 수요일입니다. 청소 열심히 하고 걷고 책 읽고 하다 보니 한 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려. 지난주는 비가 조금씩 뿌리는 구진 날씨였는데 오늘은 마치 봄날처럼 뽀송뽀송하니 참 좋은 날이었어요. 지난주와 비슷한 시간에 출발해서 비슷한 곳에서 막히고 비슷한 시간에 도착을 합니다. 오늘은 아들이 어렸을 때 불던 플루트를 가지고 갑니다.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던 내가 한심해서 아들들은 나중에 인생이 풍요해지라고 악기 배우는 것을 적극 권장했어요. 그래서 큰 아들은 플루트를 배우고 작은 아들은 드럼에 타악기를 다뤄 사물놀이를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둘다 지금은 음악 생활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작은 아들은 남 나라 사람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고(아들 서운해?) 근처..

돌봄 일기 2021.12.23

12월 15일 수요일

3주 만에 서울 나들이가 되겠습니다. 보름 이상 나와 같이 살자고 죽기 살기로 안 떨어지던 감기는 이제 고만고만하네요. 참 징합니다. 저도 살아 보겠다고 그러겠지요? 비가 살살 뿌리는 길을 달려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도착을 합니다. 점심을 먹고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갑니다. 호가 무슨 불만이 있었던지 우를 물었다더군요. 나를 본 호는 성격대로 싱글벙글한데 우는 물려서 그런지 좀 우울해 보입니다. 호는 듣거나 말거나 좀 혼내고 우는 달래며 센터로. 들어가자마자 늘 하던 대로 윗옷은 벗고 양말도 벗고 서가에 가서 책을 한 권 가지고 오는군요. 책은 늘 하던대로 '이제 아프지 않아요' 멍멍이 둥이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 어디가 그렇게 끌리는지. 바로 둘 다 교육에 들어가고 나는 산책에 나서 근처에 있..

돌봄 일기 2021.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