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일기

1월 26일 수요일

정안군 2022. 1. 27. 12:51

오늘도 둥이 '호'와 '우'를 돌보러 힘찬 출발.
간밤에는 비가 조금 내렸는데 그 이유인지 짙은 안개가 있는 곳이 가끔씩 있었지만 날도 푹하고 길 상태도 좋았어요.
가면서 문뜩 드는 생각.
이렇게 매주 한 번씩 왕복 다섯 시간이 넘게 돌봐 준 것을 우리 둥이들은 나중에 기억이라도 할까?
물론 나중에 덕이나 보자고 하거나 기억해 '달라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달라고’라는 표현이 나오니 드는 생각.
어느 동네에서는 ‘달라고’라는 장면에서 ‘주라고’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해 달라고’를 ‘해 주라고’


아무튼 그러면서 드는 또 다른 생각.

나는 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외할아버지는 육이오 때 큰 아들이 호주기 오폭에 의해 사망하자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서울에 사셨고 나랑은 한두 번 정도 만난 듯 하지만 아기 시절이어서 만난 흔적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정도.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셔서 장사 치르러 서울에 부모님이 가신 것은 기억합니다.
기억에는 있든 없든 두 할아버지에 의해 이어 온 우리 가계,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나나 본향은 온양 아무개 씨.
그런데 할머니는 광산 김 씨, 어머니는 함열 남궁 씨, 증조할머니는 김해 김 씨.
모계는 외할머니는 밀양 박 씨.
우리 아들은 김해 김 씨에 강릉 김 씨가 더해지고 둥이들은 전주 이 씨가 여기에 더해집니다.
둥이 모계로 하면 더 복잡해지겠지요?
그렇게 따져 삼국 시대까지 올라 가보면 대한민국 성씨 거의가 우리 둥이들에게 섞여 있을 겁니다.
결론은 우리나라의 온 성씨의 자손이 맞다는 것.
괜한 성이 무엇이고 집안이 무엇이고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뭔 소리여?


구리 IC를 벗어나니 꽉 막힌 도로.
월곡을 벗어나서야 길이 뚫리네요.
날이 풀리니 나오는 사람이 더 많아졌나요?
2시간 45분 걸렸습니다.

오늘은 주차 문제도 있고 날도 따뜻해 버스로 가기로.
일단 승용차로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우가 그냥 집에 들어가는 줄 알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려.
오늘은 버스 타고 갈 거란다.
버스를 타니 아이들도 좋아하고 주차 걱정도 없으니 좋네요.
버스에서 내려 센터까지 걸어갑니다.
모처럼 밖에 나와 걸으니 둥이들이 많이 좋아하네요.
아내가 센터를 그냥 지나가 보라고 합니다.
둥이들 반응을 보려고.
그러자 우가 잡았던 손을 팽개치고는 센터 쪽으로 내달립니다.
그러니까 센터가 어디에 있고 거기를 가는 것인지 다 인지를 하고 있는 셈이네요.
미안해 우야.

센터 앞은 주차된 차량으로 난리.

인도고 구분이 없습니다.

버스로 오기 잘했네.

 

들어가자마자 우가 가지고 오는 책은 ‘이제 아프지 않아요’
이 책에 무슨 매력이 있는고 우야?

 

둥이들이 교육을 받으러 들어가고 나는 가까운 곳에 있는 홍제천으로.
지난주는 눈이 내렸었는데 그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죠.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지요.
당연히 하천변은 노인 천국입니다.
앞으로 꼬부라진 노인, 옆으로 기운 노인.
발을 질질 끄는 노인, 멀쩡한 노인.
유행가를 크게 틀고 걷는 노인.
과연 노인들의 나라입니다.


보통은 다리 사이를 두 번 돌지만 오늘은 세 번.
딱 한 시간 걸리네요.
이렇게라도 좀 걸으면 밤에 잘 자는데 안 걸은 날은 깊은 밤에 눈이 떠집니다.
이러니 매일 걸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다시 센터로 가서 좀 기다리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라고 하니 그 습관이 조금씩 느네요.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우리 할아버지들은 손자가 나중에 이렇게 버스를 타고 둥이들을 데리고 다닐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하셨을까요?
또 먼 서울에 사셔서 자주 보지도 못 한 손주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손자가 할배가 되어 매주 승용차를 운전해 와서 손주들을 만난다는 것은?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떼를 부리려나 했는데 버스로 나들이를 해서인지 바로 집에 들어가네요.

 

나는 바로 마트에 가서 딸기를 한 팩 사 옵니다.
그리고는 둥이에게 주니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없어집니다.
딸기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둥이들.
할배도 좋아하는데.
지금은 겨울이 한창이지만 우리 어렸을 때는 현충일쯤 되어야 딸기가 나왔지요.
딸기 때가 되면 교회 학생회가 단체로 왕릉 옆 딸기밭에 가곤 했네요.
학생회 회장이던 친구가 그 딸기밭 딸내미를 좋아해서 더 자주 갔는가?

 

우는 혼자 딩굴딩굴하다가 잠들었는데 호는 에너자이저.
혼자 그림도 그리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하네요.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명랑 쾌활한 호.

 

호는 계속 혼자 놀고 그러다 우가 깨어났어요.
이제는 신나는 물놀이 시간.

아내가 화장실에서 물소리만 내면 둥이는 입던 옷을 다 벗어던지고는 목욕하러 들어갑니다.

좁은 통 안에서 좁다고 싸울 때도 있지만 오늘은 다정한 사이.

너무 신났어요.

 

돌아오는 시간.

동부간선도로가 갈라지는 곳 까지는 거북이.

그곳을 벗어나면 신나게 달릴 수 있습니다.

돌아올 때 화제는 라흐마니노프.

언젠가 보았던 '호르비츠를 위하여'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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