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일기

2월 10일 수요일

정안군 2022. 2. 10. 16:12

지난 월요일 저녁.

아내에게서 비상경보가 울렸어요.

우리 둥이들이 아파서 내일 어린이집에 못 가는데 아빠 엄마는 모두 바빠서 우리가 봐주어야 한다고.

그럼 수요일은?

수요일도 봐줘야 되죠.

잉?

그럼 거기서 하루를 자던지 왔다 갔다 해야 된다는 뜻?

둘 다 무리데스요.

난 그렇게 못하네.

당신이 내일 혼자 가고 난 수요일 버스로 가겠소.

 

화요일 새벽.

아내가 서울 가려고 준비하는 걸 보니 함께 가야겠다 싶었는데 내가 뜸을 들이는 새에 혼자 가버렸네요.

그려.

조금만 비겁하면 하루가 즐거우니.

그렇게 하루가 갔습니다.

 

수요일.

집에서 터미널까지 걸어서 25분 정도 걸렸던 것을 기억하고 집에서 8시 25분에 나왔는데 터미널에 도착하니 9시.

9시 5분 차인데 걸리는 시간에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25분이 아니라 35분이었던가?

아무튼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서 좋긴 했네요.

버스는 거의 만원이었어요.

그런데 내 옆자리만 빈자리.

어제 꿈자리가 좋았나?

앞자리에 술냄새를 풍기던 노인네가 혹시 내 자리로 오지 않을까 걱정도 잠시 했지만 오지 않았고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코 골기 시작.

옆자리 아줌마 어젯밤 꿈 잘못 꿨네.

 

차는 그다지 새 차가 아닌데 USB 충전기가 달려 있네요.

이렇게 조금씩 좋아집니다.

역시 남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니 좋아요.

 

센트럴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홍제역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합니다.

남이 운전해 주는 차라서 편하긴 한데 좀 번거롭긴 하네요.

시내버스 구조가 많이 선진화되었네요.

장애인 휠체어나 유모차를 놓을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휠체어를 실제 차에 올리려고 하니 쉽지는 않더군요.

보도와 차도 공간에 가로수도 있고 해서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해 봐서 압니다.

버스에서 내리려니 꽃을 든 남자가 있더이다.

졸업식이었어요 하고 물으니 자기 졸업식이 아니고 여학생 졸업식이었다는군요.

졸업식 시즌인 듯.

 

버스에서 내리니 아내가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은 둥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어요.

호는 거의 회복 단계이고 우는 이제 막 시작 단계라는군요.

바이러스성 장염인데 요즘 어린이 사이에서 유행하는 전염병이라네요.

세균성 장염만 있나 했더니 바이러스성 장염이 있네요.

하여간 요즘은 바이러스 세상입니다.

 

둘 다 좀 시원찮지만 일단 센터에 데리고 갔습니다.

버스 타고 가는 걸 둘 다 많이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공부하고 나는 홍제천으로.

날은 포근한가 했더니 홍제천은 그늘이라서 온도가 다르네요.

장갑을 안 꼈더니 손이 시린 정도.

 

고양이를 찾는답니다.

찿습니다가 아니고 찾습니다.

오월이라는 총각이군요.

러시안블루라.

그런데 강아지는 몰라도 고양이는 노지에서 사는 능력자라서 찾기 쉽지 않을 듯하네요.

그냥 길고양이 하나 추가하는 걸로.

 

그러고 보니 입춘이 지났습니다.

입춘대길.

이런 거 오랜만에 봅니다.

모두들 대길하시길.

 

센터에서 교육이 끝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 들어가려고 하니 아이들이 펄펄 뜁니다.

그냥 들어가는 건 택도 없는 소리라는 거죠.

아이스크림이나 유제품은 절대 안 된다고 해서 근처 별다방에 갔는데 코로나 환자가 방문하셔서 문을 닫는다고.

요즘도 추적 조사를 하는가?

다른 곳으로 이동.

우리 둥이들은 이런 자리를 좋아합니다.

밖이 잘 보이는 자리.

 

 

사람 구경에 바깥세상 구경에 신이 났습니다.

일정을 끝내고 다시 돌아오니 몸이 시원찮은 우는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호는 안 된답니다.

아마도 아이스크림 코스를 생략해서 그런 듯.

그래서 호만 데리고 근처 편의점에 가서 사만코를 하나 사서 안겼습니다.

우리 호는 사만코 팬이죠.

사만코 하나에 모든 걸 이룬 호.

쉽게 집에 들어가고 나는 토마토와 바나나를 사려고 근처 마트에 갔는데 전화가 옵니다.

사만코도 아이스크림이 안에 들어 있으니 아내가 겉만 조금 떼어 주었다네요.

그랬더니 난리가 났답니다.

원래대로 해 놓으라고.

그러니 다시 사만코 하나를 사 가지고 오라는.

다시 사만코 하나를 사서 들어가 호를 달랩니다.

멀쩡한 사만코가 떼를 쓰던 호를 무장해제시켰습니다.

사만코 만세.

 

 

충주 집에 돌아와 테마 기행을 보고 있으려니 카톡 소리.

그 밤에 다시 호가 떼를 써 사만코를 사서 주었다네요.

먹는 모습을 보니 머리를 뜯고 꼬리를 뜯고 윗 지느러미를 뜯고.

그런 재미가 있나 보네요.

할애비가 좋은 세상에 입문을 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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