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일기

1월 12일 수요일

정안군 2022. 1. 13. 10:31

오늘도 몹시 추운 날이지만 서울 가는 어제도 많이 추웠어요.
올 때나 갈 때 차만 타면 되니 추운 건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센터에서 교육을 마친 다음 우리 둥이들이 나들이를 가자고 하면 어쩔지 하는 조금의 우려가 있긴 했어요.
뭐 그건 그때 알아서 하기로 합니다.
서울 가는 길은 ‘여성시대’와 함께 합니다.
양희은 언니의 목소리는 여전하고 서경석 씨의 목소리도 탄력이 있어 좋지만 중간 전하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다양해 듣기가 괜찮습니다.
어떤 사연은 좀 억지스러운 것도 있지만 어떤 건 감동이 뚝뚝 흐르기도 하지요.
모두의 삶이 퍽이나 다양하지만 정답은 없으니 어느 게 바르고 어느 게 틀린 지 남이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제는 특별히 하모니카 연주자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와 하모니카도 대단한 악기였군요.
그냥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정도로 알았었는데 대단합니다.
저번에 들었던 연주 속의 리코더도 그렇고 하모니카도 그렇고 그냥 아이들 놀잇감 정도라는 생각은 정말 바보 같은 것이었네요.

하모니카 하면 슬픈 기억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음악 수업이 있었습니다.
매 수업 시간은 그저 노래만 불렀습니다.
매기의 추억, 꼬꼬댁 먼 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어쩌고 하던 보리밥 노래도 불렀고.
그때는 모두 가난한 시절이라는 사정이 있어 그랬겠지만 악기는 배운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제대로 다루는 악기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음악 시간에 실기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그 실기 시험이 잘 못 된 것이라 생각하는데 시험이라 하면 특히 예능 부분은 더욱 그렇죠, 뭔가를 가르쳐 주고 그것에 대해 평가를 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배운 적이 없는 하모니카로 실기 시험이라니.
집 사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지라 하모니카가 집에 있을 리도 없었죠.
시험 보기 전 쉬는 시간에 잠깐 같은 반이었던 승행이라는 친구에게 하모니카 레슨을 받습니다.
들숨 날숨 어쩌고.
그리고는 시험에 임했는데.
내 하모니카 연주를 듣던 음악 선생님은 정말 목젖이 다 보이도록 크게 웃었습니다.
깔깔깔.
연주라고 해 봐야 도레미파를 불던 나는 거기서 스톱.
황망하게 얼굴이 빨개져 내 자리로 돌아왔죠.
권광자.
그때 음악 선생님.
하필 2학년 때 담임까지 되어 슬픈 기억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전부 음악을 잘 못 하는 남자 선생님만 만났고 중학교 때는 이런 폭탄을 맞아 고등학교 입시에서 음악 때문에 죽을 쑤게 됩니다.
아이고야.

예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을 해서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아이들 케어를 위해 나가게 됩니다.
어린이집에서 둥이들을 데리고 센터에 갔는데 그만 주차 공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갈수록 공간이 없어졌지만 지난주까지는 어찌어찌해서 주차를 했는데 이번 주는 사정이 없네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고는 홍제천이 아니라 불광천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홍제천보다 불광천 쪽이 좀 넓고 사람도 더 많습니다.
날이 무척 추워 걷기 힘들 정도인데도 걷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멀리 북악산 능선이 보이고 김정희가 진흥왕 순수비라고 판독했다는 그 비가 서 있던 비봉이 멀리 보입니다.
그 시절이 아주 옛날 같지만 불과 150년 전입니다.

독일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가 촬영한 영상을 너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불과 100년 전.
그 영상을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 또는 우리 생활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앞으로 백 년 뒤에는 지금보다 과학의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른데 또 알마나 많이 달라질까.
또는 그때까지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날이 추우니 공기는 꽤 맑네요.
불광천은 서울 둘레길이 이어집니다.
얼마를 걸으면 봉산 쪽으로 길이 이어지지요.
봉산은 봉화터가 있어서 봉산이라 하는데 그 터답게 높진 않아도 전망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센터 근처 뒷골목으로 이동해서 둥이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데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날이 추워서 그냥 집에 들어가자고 했더니 난리가 납니다.
호는 그냥 들어가려고 했는데 우가 안 된다고 난리를 치니 같이 동참.
둥이의 힘이 발휘됩니다.
둥이의 힘.
유모차에 태우고 단단히 무장을 한 다음 아이스크림 가게로.
늘 사람이 많았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사람이 없더이다.
우리 둥이는 그런 것은 상관이 없으니 아이스크림을 시켜 앞에다 놓아줍니다.
역시 아이스크림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나 매력 덩어리네요.
몸에 좋든 어쩠든 모두들 이렇게 좋아하니 매력 덩어리라 아니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매력이 넘치는 까닭인지 많이 비싸죠.
10밧이면 아이스크림 한 덩이를 주던 태국이 그립네요.
아이스크림으로 진한 행복을 맛 본 둥이들도 추운지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집으로 쉽게 들어옵니다.

이제부터는 집에서 활동할 시간.
확실히 어렸을 때보다 스스로 더 잘 놉니다.
호는 혼자 이것저것 하면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우는 가끔씩 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고는 하지만 전처럼 정신없던 매들리는 아닙니다.
또 추피 시리즈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것을 가지고 옵니다.
우는 전에 본 것도 다시 가져다 보곤 하는데 호는 그 책이 본 것이라 생각이 되면 잠시 살짝 보고는 제 일에 바쁩니다.

어제저녁부터 머릿속에 별스런 생각이 자리 잡고는 영 떠나질 않았습니다.
신경 쓸 일이 없으니 잡생각이 자리를 잡았나 봅니다.
이런 때는 그저 여행이 최고입니다.
실제 여행이 아니고 상상 속의 여행이죠.
구글 맵을 보면서 여기도 가 보고 저기도 가 보고 합니다.
여기서는 렌터카 여행을 해 보자.
그러면 렌터카는 어떻게 빌릴까?
이것저것 찾아보니 허*가 좋을 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입하면 무조건 골드 회원으로 해 준다니 가입을 해 두지 뭐.
그래서 허* 골드 회원이 됩니다.
잔차로 미국 횡단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건 어려울 것 같으니 렌터카로 횡단을 해 볼까?
돈이 많이 들겠지.
그러나 상상 속의 여행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상상으로 잡생각은 떠나보냈고 여행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웁니다.
좋네요.

둥이 엄마가 조금 일찍 돌아와 우리도 조금 일찍 집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면 기다리는 것은 교통 체증.
중부고속도로까지만 나가면 뻥 뚫리니 그저 참으면 됩니다.
이렇게 하루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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