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일기

12월 22일 수요일

정안군 2021. 12. 23. 09:08

벌써 일주일이 지나 다시 수요일입니다.
청소 열심히 하고 걷고 책 읽고 하다 보니 한 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려.
지난주는 비가 조금씩 뿌리는 구진 날씨였는데 오늘은 마치 봄날처럼 뽀송뽀송하니 참 좋은 날이었어요.
지난주와 비슷한 시간에 출발해서 비슷한 곳에서 막히고 비슷한 시간에 도착을 합니다.
오늘은 아들이 어렸을 때 불던 플루트를 가지고 갑니다.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던 내가 한심해서 아들들은 나중에 인생이 풍요해지라고 악기 배우는 것을 적극 권장했어요.
그래서 큰 아들은 플루트를 배우고 작은 아들은 드럼에 타악기를 다뤄 사물놀이를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둘다 지금은 음악 생활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작은 아들은 남 나라 사람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고(아들 서운해?) 근처에 있는 아들은 지금부터라도 음악 생활을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집에서 푹 쉬고 있던 악기를 가지고 간 것이지요.
두 딸에게 플루트 불어주는 아빠.
듣기만 해도 정겨운 말 아닌가요?
그렇게 될지 아닌지는 본인에게 달렸으니 내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어린이집에 있는 두 아이들을 데리러 갑니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할미가 안에 들어가 데리고 나오는데 오늘은 웬일로 우가 나를 보고 달려오네요.
일단 이 세상에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한 셈인가요?
센터는 늘 주차하기가 만만하지 않아 오늘은 어떨까 걱정이 되는데 간신히 자리를 확보합니다.
아이들을 3층 센터로 데려다주고 나는 늘 하던 대로 근처 홍제천으로 갔습니다.
늘 그런대로 불광천보다는 사람도 적지만 오늘도 여전히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그 많던 잉어와 붕어들은 한 마리도 안 보이네요.
날이 더 추워져 깊은 곳으로 이사했나 봅니다.

 

하천 옆 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만나 본지가 퍽 오래되었네요.
놀고먹는 게 직업인 나야 괜찮지만 친구는 아직 현역이고 코로나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해서 한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백신 이야기도 하고 요즘 힘든 젊은이들 얘기도 하고 또 요즘 화폐 가치가 폭락했다는 터키 이야기도 하고.
대통령이 누가 되든 청년 문제가 바로 풀리진 않을 것이란 의견에 일치가.
어 터키?
터키라.
언젠가 가려다 하필 팔이 부러져 못 갔던 나라 터키.
지금 현지 사정을 나중에 찾아보니 그 나라 리라가 폭락해서 외국인들이 살판났다더군요.
이런 때 터키를 여행해야 하는 것인데.
그래 나름 조사를 해 보니 관광지 입장료는 돈 가치 폭락에 따라 오르고 호텔은 유로나 달러로 받으니 혜택 보는 건 현지에서 사는 외국인 정도겠더라고요.
스벅 가격이 싸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득이나 그거야 그렇고.
불난 터키 시민들 마음을 모른 체하고 여행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뻐 보이진 않으니 그냥 이 시국에는 집에서 조용히 있는 걸로 하고 마음을 접습니다.
그나저나 대통령 잘 못 뽑으면 나라 꼬락서니가 어떻게 되는지 터키가 잘 보여 주네요.
우리도 그 꼴 안 당하려면 이번에 잘 찍읍시다요.
이번에는 출마 예상자 품질이 너무 차이나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글쎄요.
그런데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고 이 품질 떨어지는 아저씨도 올바른 소리를 할 때도 있더이다.

가난하고 배운 게 없으면 자유 모른다는 말.
어쩔 수 없이 사회에는 계급이 존재합니다.
가난할수록 교육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 자유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는 게 대다수죠.
그리고 가방 끈이 길어도 머리가 빈 사람들도 자유가 먼지를 모르고요.
자유는 개인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신봉하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안전까지도 자기들이 지킨다고 총기를 소유하고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한국 강남의 사람들은 돈과 특권이 넘쳐나니 국가가 세금 거두어 가는 거 싫어하지요.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은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머리와 손은 국가 권력의 개입을 싫어하는 강남 사람들 논리를 따라갑니다.
 
그러니 이번엔 그 아저씨가 옳은 이야기를 한 셈이지요.
이번에 가난한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정책을 가진 정당과 큰 정부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저씨가 태평하게 자기 발등을 찍는 소리를 감히 할 수가 없지요.
뭐 어떡하겠습니까?
깨달음이 없으면 그렇게 무시당하며 살아야지.

 

앞에 가시는 할아버지.

영 걸음걸이가 시원찮습니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 요가를 배우는 게 좋을 듯.

자세도 잡아주고 몸도 유연하게 해 주니.

불현듯 요가 배우던 태국 생각이 나네요.

요가 배울 때 에피소드.

요가를 시작할 때 힌두교 방식인지 뭔가 기도문을 외우고 시작합니다.

오오움 뭐 이렇게 하는데요.

우리랑 요가를 배우던 한국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네 가지가 없는지 그 흔한 인사도 없어 그냥 얼굴만 아는 처지였는데.

어느 날 선생님과 태국 사람들이 기도문을 외우고 있는데 그 한국 사람들은 큰 소리로 주기도문을 외우더이다.

분위기는 굉장히 썰렁해지고

이런 것에 대해 할 말은 많으니 여기서는 그만 생략하지요.

 

어쨌든 요가를 가르치던 싹 선생님과 노리 선생님.

보고 싶네요.

이번 겨울에 태국에 가 볼까 하는 생각은 태국과 우리나라 입국 조건이 강화되면서 그냥 접었습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있어 건강한 한국이 유지됩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다시 센터로 돌아와 아이들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시간에 사람이 좀 있어 괜히 걱정이 되더이다.
사람이 많으면 무서운 세상이 되었으니 이거야 원.
예정대로 제시간에 끝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오니 아이들은 당연한 것처럼 유모차로.
오늘도 유모차 산책에 나섭니다.
날이 아주 포근하지는 않아 그냥 아이스크림집에서 살짝 보내는 걸로.
추워서 그런지 요즘은 집에 안 들어간다고 떼를 쓰지는 않네요.

 

집에서 잠시 노는데 크리스마스 기념 새 옷을 사 온 아내가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더니 다시 밖에 나가자고.
그래서 다시 밖에 나가니 당연히 스카이 보드를 탑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우는 전에 어쭙잖게 타던 모습은 완전히 없어졌고 전문가 수준이 되었습니다.
많이 컸네요.
그 사이 나는 더 늙었을 테지요?
호는 며칠 전 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이를 부러뜨린 일이 있어서인지 많이 무서워합니다.
내 손으로 잡아 주지 않으면 잘 타려고 하지 않더군요.
무섭겠지요.
그래서 호는 일찍 끝냈는데 우는 일찍 끝낼 분위기가 아니라서 한참을 더 탑니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후 아이들은 꿈나라로 가고 나는 웹 상으로 터키 여행에 나섭니다.
결론은 전에 말한 대로.


아이들 부모가 돌아오고 아이들은 일으켜 목욕시키고 우리들은 다시 충주로.
조금 일찍 나선 탓에 좀 막혔지만 그 정도는 예상한 대로.
감곡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신나게 달리다 보니 지난주는 안개 때문에 제대로 달리지 못했던 생각이 문뜩.
그게 일주일 전인데 벌써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으니.
다음 주는 아내 일정이 있어 서울은 못 가게 되었으니 올해 돌봄 활동은 이게 마지막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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