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천 2001 여행

베이징에서 집으로

정안군 2005. 5. 20. 16:44


         <중국 비자 - 요 놈을 볼 때마다 그 때의 감격(?)이>

 

사실 여권을 분실하면 상당히 어려운 일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베이징의 한국 영사관에 가서 임시여행증명서를 발급받고 바로 중국 베이징 공안국에 가서 비자를 받으면 한국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편도 비행기표 값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좀 서두르면 베이징에서 일을 다 마치고 충칭으로 비행기로 이동한 다음 미리 예약된 아시아나편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 라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아무튼 성도역에 가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特快(터콰이) 지정석을 보니 자리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90도로 선 의자는 아니고 좀 쿠션이 있고 약간 뒤로 각도도 있는 생각보다는 좋은 의자였다.   이 정도면 충분 하겠다 생각하면서 베이징으로 출발하였다.  


(중간 생략)


그로부터 예정보다 3-4시간 연착된 30시간 후 다음날 오후 2시 베이징 서역에 도착한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택시를 타고 미리 인터넷으로 알아놓은 僑園飯店에 가서 체크인. 너무 힘들어 다인방에서 침대 하나를 잡아 쉬기로 한다.


다음 날 택시를 잡아타고 산리툰에 있는 한국영사관을 향한다.   좀 헤맨 끝에 찾은 영사관.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왠 줄이 이렇게 기냐 하며 맨 뒤에 서니 앞에 있던 사람이 묻기를 한국 사람이냐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그냥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란다.   알고 보니 그 줄은 중국동포들이 한국비자를 얻기 위해 서있는 줄이었고 한국 사람이 이용하는 곳은 텅텅 비어 있었다.   서류 수속을 마치니 3일 후에 오란다.   일단은 되었다.   그 동안 무엇을 하나.  


그동안 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여권 분실한 아이의 부모가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 지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든지 대사권의 직원이라든지 하여튼 인맥을 총 동원해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여유가 생겨 전화를 해보니 통 신호가 가질 않는다.   호텔 로비에 물어보니 국내용과 국제용 전화 카드가 다르다나.   해서 국내용 카드를 사서 해도 통 전화 연결이 안 된다.   왜 전화 연결이 안 될까 ?  


천안문 광장도 가고 외환은행 베이징 지점을 헤맨 끝에 찾아가 한국에서 보낸 돈도 찾고 박물관구경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 중 하나의 기쁨은 호텔 식당의 靑椒肉絲 요리가 내 입맛에 꼭 맞아 저녁 때 이 요리와 함께 밥 먹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먹고 싶네.


여전히 전화 연결을 못하고 있는데 베이징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나 호텔방으로 전화가 왔다.   이사장이라는 분인데 여권 분실한 아이의 외삼촌의 친구로 중국 唐山이라는 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한국의 집사람과 전화 연락할 때마다 말을 들었는데 전화 연결이 안  되어 그 동안 못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베이징에서 곤경에 처해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를 돕기 위해 엄청나게 찾았단다.   왜 전화를 안했냐고 묻길래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안 되더라 하니 몇 번을 눌렀느냐고 묻는다.   말해주니 앞에 0자를 빼먹었단다.   중국국내에서 휴대폰으로 걸려면 0을 넣고 해야 된단다.   그렇군.   어쨌든 영사관에서 임시여행증명서를 찾으면 天津으로 오랜다.   그곳은 아는 공안이 있어서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임시여행증명서를 찾으면 북경 공안국에 가서 비자를 받고 비행기로 충칭에 가서 아시아나로 한국에 돌아가려한다 라고 하니 절대로 그렇게 안 될거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비자 받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고.   그러면 알아보고 다시 전화 한다고 그랬다.   그 때까지만 해도 뭘 몰라서리... ^^;;


한국 영사관에 전화를 하니 이 사장 말이 맞단다.   여행증명서를 받으면 분실지인 성도로 돌아가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얼마가 걸릴지는 자기들도 알 수가 없단다.   이런 황당한 일이.


이사장에게 전화를 다시 하니 걱정하지 말고 天津으로 오라한다.   오면 된다고.   그래 믿자.


증명서를 찾으러 오라한 날.   느긋하게 버스를 타고 한국 영사관에 간 다음 북경역에 와서 天津행 기차표를 산다.   2시간 걸려 도착하고 역 앞 호텔에 체크인.   일단 쉬기로 한다.


다음 날 아침 전화 연락을 서로 한 끝에 만난 이사장과 비서인 재중동포.   우선 공안국에 데려가더니 바로 비자를 받아준다.   참 허무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사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베이징에서 다시 성도로 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시간을 허비했을 뻔했다.   그 다음은 여기저기 우리를 중국문화 체험 시켜준다고 시간을 보내주고 다음 날 공항까지 바래준 이사장님.   지금도 그 호의를 잊을 수 없다.


색다른 체험 끝에 만난 귀인.   그러니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나 보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날은 사실 내 생일이었다.   생일을 가족과 함께 하려고 했으나 그렇게는 되질 못했고 이사장이 베푼 호의로 정말 잊을 수 없는 생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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