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아니 은대봉을 하루에 두번씩이나 오르다니??

정안군 2006. 12. 11. 21:29

올해는 도래기재까지 연결하지 못했던 구간이나 마무리하며 끝내려고 했었다.


생각대로 다 이었고.


허나 도래기재 앞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중간만 채워 넣는 것에 아쉬움이.



해서 그 동안 가고 싶었던 함백산이 있는 구간인 화방재, 피재 구간을 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태백산은 가본 적이 있으니까 그 태백산보다 더 높고 이름에서 풍기는 눈의 이미지를 올 겨울에 느껴보기 위해.



그러나 지난 주간 일기 예보를 계속 관찰해보니 주말에는 궂긴 소식만.




망설이다 태백은 지대가 높으니 비는 아닐 것이고 눈이면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아 가보기로 한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기차로 태백에 도착하니 눈이 흩날리고 있었는데 날이 푹해 차도는 젖어있고 인도에만 쌓여 있는 상태.




내일이 좀 걱정이 되어서 버스 터미널에 가서 상태를 알아보니 기사들 말로는 어지간해서는 버스가 다닌단다.



역시 눈의 나라 태백답다.


내일 아침의 여러 가지 상태를 고려해서 그냥 하정 사우나라는 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기로 한다.


시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




목욕 시설은 우리 동네 목욕탕보다도 못한데 요금은 배인 6,000원. 물론 찜질방 옷을 포함한 것이라 조금 비싸겠지만 한숨 만...



그래도 다행히 수면실이 있어서 다행.



열 대명 정원인 공간에 처음에는 3명 정도 있었는데 점점 많아지더니 결국 다 채워졌다.



집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찜질방에서 잘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왜 사람은 어린 아이였을 때 자는 모습을 보면 천사 같은데 이들이 크고 나이가 들면 다양해져가는가이다.




여기도 여전히 잠꼬대에 이 가는 사람, 코고는 사람 그야말로 다양한 개인기들 ^^

 


자는 등 마는 둥 하다가 5시 40분 경 나와 보니 아직도 눈이 날리고 있다.


터미널로 슬슬 걸어가는데 내리는 눈은 물기를 잔뜩 머문 습설이다.


습설은 비와 별 다름이 없는데...




걱정이 앞서지만 이왕 시작한 것 미련을 끊는다.


맛없는 해장국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버스 터미널에 가니 어평재 행 시내버스는 만원이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혹시나 해서 앞에 있던 중무장 청년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이 버스에 탄 사람들 다 태백산 가는 것 아닙니까? 하고 되묻는다.


나는 태백산이 아니고 함백산이라고 했더니 대간을 뛰냐고.


그렇다고 하니 어평재에서 피재까지 가려면 한 10시간 정도 걸릴 거란다.



길이 다 눈에 파묻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고.


유일사 입구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내리고 어평재에는 나와 한 아주머니 둘.

 

당근 아주머니는 이곳의 주민

 

나만 이 눈속의 홀로 등산객이다

 

 


 

어둠이 짙은 어평재는 그야말로 심난했다.




눈은 잔뜩 쌓여 있는데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계속 내리고 있었으니.



잘 구별이 가질 않았지만 그동안 인터넷 자료에서 보았던 대로 주유소 맞은편 폐가 쪽으로 가니 역시 표지기들이 잔뜩 달려 있는 길 입구가 나온다.


그래 출발이다.


눈이 발목 정도 깊이이지만 원래 대간길은 파여서 옆쪽보다 낮았을 테고 다행히 어제 역방향으로 진행한 사람이 있었던 듯 발자국이 남겨져있다.


아까 그 청년이 그 주인공인가?



7시가 다 된 시간이지만 어두워 랜턴을 꺼내 머리에 달고 오늘의 목적지 피재를 향해 나아간다.


조금씩 가면서 밝아지기는 하는데 흐린데다 가스까지 잔뜩 끼어있어 시계는 10여 미터를 넘지 못한다.


그저 몇 미터 앞만 보며 나아가는데.


한참을 오르니 봉우리인 듯싶은데 어딘지 확인할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리고 경사가 완만한 길을 한참 가니 선답자들이 국가시설물이라던 낡은 건물이 나온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건물을 끼고 돌아가는데 눈이 제법 쌓여 있어서 정강이 깊이까지 된다.  



그저 어제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을 찾아 나간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나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평소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가 눈길을 가니 그 도움의 크기가 상당함을 느낀다.



드디어 만항재이다.   제설이 안 되어 있고 눈 밑은 얼음이 얼어있어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아무런 정보가 없이 왔더라면 정말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할 상황이다.


정보대로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가니 희미하게 함백산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여기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왔지만 쉴 만한 곳도 없는데 길 옆 쪽으로 이동 화장실이 있다.   푹푹 빠지며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 안경도 닦고 옷도 털며 일단 한숨을 돌린다.



만항재에는 제설차가 작업을 하는 듯 소리가 요란하다.


최악의 경우 요리로 다시 내려오면 조난당할 염려는 없겠다는 생각이 ^^


대간의 자랑인 표지기를 따라 함백산 정상으로 향한다.


그저 표지기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참을 진행하니 정상 거의 다 와서 나온다는 급경사 구간.



길옆으로 밧줄이 매여져 있어서 그것을 잡고 간신히 오른다.   길은 언데다 눈이 덮여 있어서 한 발 오르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냥 오르는데 에는 한계가 있어서 아이젠을 꺼내 신고는 한참을 쉬다가 다시 오른다.



정말 악전고투였다.


그래도 오르고 오르니 정상부.

정상부에 올랐지만 여전히 시계는 10여 미터.


정상석에 올라가려니 바위 사이에 눈이 덮여 있어서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막막했다.



푹푹 무릎까지 빠져가며 나아가보지만 이내 포기.


언젠가 다음에 정상석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러 다시 와야겠다.




한데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그야말로 막막하다.


뭐가 보여야 찾아보지.   해서 지도와 나침판으로 방향을 잡아 보고는 언뜻 생각나는 것이 통신탑 쪽은 아니라고 했으니 정상부를 오른쪽으로 끼고 도는 방향으로 가본다.   그 쪽에희미하지만 눈 사이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듯 했다.


아니면 다시 올라올 생각으로 내려가 보니 주목 군락 사이로 표지기가 보이며 길임이 확실해진다.


날만 좋으면 주목 군락이 잘 보이겠지만 오늘은 가까이 있는 놈들만 겨우 보이는 정도.



한참을 내려가다 다시 오르막.   중함백인 듯.



그 오르막은 다시 힘을 뺀다.


오늘은 싸리재에서 그만 끊자.



제 2 쉼터에서 초코렛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나서니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참을 가서 겨우 은대봉에 다다른다.





서있는 아담한 정상석이 나는 백두대간 은대봉이요 하고 전한다.



이제 내려서기만 하면 싸리재이니 다 온 셈이다.



다시 내려섰는데 이상하게도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어 이상하다.   지도에는 오르막이 없었는데.



그래도 그동안의 경험으로 백두대간은 마지막까지 작은 봉우리가 힘을 뺀 것을 생각하며 계속 진행을 하긴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렇게 높게 올라가다니.



그야말로 낑낑거리며 올랐다.   드디어 정상.   넓은 공터가 나오는 것을 보니 헬기장인 듯.

여기도 정상석이 있어서 확인 작업.



오 마이 갓.    정상석에는 나 은대봉이요 라고 적혀 있었으니.


순간적으로 정상석이 나 은대봉이라니까 왜 자꾸 보는겨 하는 것만 같았고 머리 속이 텅비어가는 느낌


아니 은대봉은 분명히 지났는데.


아!! 이것이 바로 거시기구만.


 

나침판과 지도를 꺼내 확인을 해보니 맞다.   다시 돌아온 것.



아니 은대봉을 하루에 두 번이나 오르다니.


황당하면서 힘이 쫙 빠진다.   그래 오늘은 정말 싸리재까지 만이다.   언젠가부터 반대 방향으로 난 발자국이 있어서 힘이 났었는데 그 발자국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으니 ^^



어디서부터 다시 돌아왔을까 다시 내려오면서 발자국을 확인하니 거의 싸리재에 다 와서 작은 원을 그리며 돌더니 은대봉 방향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거기서 싸리재까지는 그야말로 지척.



날이 좋았더라면 절대 없었을 일이 생겼다.



싸리재에 내려와 시간을 확인하니 12시 20분.   여기까지 5시간 반 정도 걸렸지만 50년은 된 것 같은 생각이.

 

 

마침 길 건너 산불 감시 초소에 노인 두 분이 계셨다.


태백에 사는데 싸리재 터널 있는데에다 차를 두고 슬슬 올라오셨단다.   나는 어평재부터 왔는데 이제 여기서 끊고 내려가려고 한다 하니 자신들도 좀 더 나아갔다가 뒤 돌아간단다.



허니 우리와 같이 가자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노인들을 따라 금대봉쪽으로 슬슬 가는데 눈길이 발자국으로 어지럽다.   한 20여명이 금대봉 쪽으로 갔단다.   금대봉 들어서는 입구까지 갔는데 러셀이 된 길을 보니 다시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두 분께 그냥 피재까지 가보련다 하고 헤어져 금대봉 쪽으로 가다 생각하니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책 제목이 생각난다.


맞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산을 넘어간들 뭐 그리 대단한 것이며 진행한다면 산을 즐기러 온 것이 아니고 극기 훈련이 시작되는 셈.


포기한다.   다시 돌아가 그 두 분과 합세한다.


 

잘 했단다.


다시 싸리재 정상으로 돌아와 긴 고갯길을 내려간다.   가끔 SUV 차량이 그야말로 눈을 뭉치듯 달린다 선전을 하듯 고갯길을 올라오는데 차바퀴 자국으로 들어나는 눈밑은 완전 얼음이다.


저러고 싶을까?



고한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가니 두 분이 타고 온 차가 대기하고 있다.


긴 하루의 고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아이젠을 풀고 온통 물투성이가 된 겉옷을 벗어 가방에 넣는다.



이제 올해 백두대간 일정은 이것으로 확실히 마무리한다.

 

 


내년 꽃피고 새 우는 새 봄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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