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2007 여행

7. 묵티나트 찍고 턴

정안군 2007. 2. 12. 10:35

안나푸르나 개략도 - 소유권이 저에게 없으니 퍼가지 마세요 ^^

 

 

1월 16일 화요일

 

옛 영화는 간데 없는 자르코트 옛 성 

 

정말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길고 긴 밤이었다.

 

오리털 파커로 무장을 하긴 했지만 침낭과 침낭 위에  얹어 놓은 정사각형 이불의 부조화에다가....

 

계속되는 두통 그리고 안통(눈알이 빠져 나오는 것 같은...TT)

 

세상이나 세상이나 고산증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겨우 겨우 한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부엌의 따뜻한 기운이 더해지는 식당에 가서 앉으니 모든 것이 새삼스럽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행 한선생님은 밤새 배탈로 고생했다고.

 

 

그러니까 나는 두통과 안통, 한선생님은 복통이 고산증으로 온 것...

 

그런데 올 때 그렇게나 힘들어 하던 집사람은 추운 것 말고는 별 고통이 없었단다.

 

 

우리 가이드 타빠는 말할 것도 없고.

 

 

 

타빠는 면으로 된 옷을 잔뜩 껴입어 어제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갈아 입을 옷도 변변한 것이 없어 그냥 젖은 옷채로 있으니 오죽 추으랴마는 수건하나를 몸에 두르고는 No Problem만 외쳐댔었다.

 

 

타빠에게 어제 한 숨도 못잤다고 하니 좀 걱정스런 얼굴이다.

 

 

여장부 스타일의 여자 주인인 다들 그런단다.   어떤 사람은 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묵티나트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더 심하다고.

 

 

이만 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되나?

 

 

잠을 못이뤄 제대로 입맛이 없을 우리를 위해 집사람은 해물탕 라면을 끓였는데 나는 입맛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 한 그릇 먹어대지만 속이 불편한 한 선생님은 젓가락도 대지 않는다.

 

잘 먹어야 된다는데 하며 내 코가 석자인 사람이 남 걱정을 해본다.

 

시간은 충분하니 9시 넘어서 묵티나트로 가도 충분하단다.   식당에 걸린 지도를 보니 자르코트에 옛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성이라!!!

 

잠시 호텔을 나와 호텔 옆으로 난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옛성으로 보이는 건물의 폐허가 있었다.

 

 

어제 호텔 주인의 말로는 어제 점심 식사를 이곳에서 한 한국인 트레커 무리들이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어제 묵티나트에서 잔 듯한데 그 사람들의 일부인 듯 몇 몇 한국인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자르코트 길가에 세워진 마니차

 

옛날의 영화는 간데 없는 왕성의 잔재

 

 왕성 너머는 거대한 협곡 - 그 일부를 밭으로 가꾼 사람들의 손길이 경외롭다

 

Park Elson님의 여행기에서 퍼옴.. 계절이 달라 완전 느낌이 다르네요.

 

 묵티나트 방면

 

 염소 우리

 

호텔로 돌아와 간단한 영어 단어 배열로 대화가 가능한 주인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언제 왕이 있었는지 언제 폐허가 되었는지는 주인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듯 했고 의사 전달도 확실히 안 되었다.

 

아무래도 네팔 산 전설의 고향의 소재로만 남을 듯...

 

 

아마도 무스탕 왕국이 그러하듯 종교적 색채를 띤 왕국이 있었을 듯하고 이 곳 지형을 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왕국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지막 고지 묵티나트

 

집사람은 호텔에 남는다고 해서 그러마 하고 두사람과 가이드 타빠만 묵티나트로 향한다.

 

9시가 넘었는데도 워낙 산들이 높아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그러니 상당히 썰렁하고.....

 

 

묵티나트로 다가 설수록 초롱라의 양 옆 산인 야카와캉(Yakawakang ; 6482 m)과 칸퉁 캉(Khantung kang ; 6484 m)이 그 위엄을 더한다.

 

 

묵티나트 가는 길에서 자르코트 방면을 향해

 

 드디어 도착한 묵티나트

 

 멀리 보이는 자르코트

 

묵트나트까지는 완만한 경사와 급경사가 섞인 길이다.   머리가 지근지근 자꾸 아파와 천천히 천천히 오르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오르는 고도는 300 여 m 이고 바로 내려 오면 되므로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았는데...

 

몸 컨디션이 좋질 않으니 힘이 무척 든다.

 

 

뒤로 펼쳐지는 자르코트는 그림같이 아름다우나 몸이 불편하니 확실히 감동이 덜하다.

 

서부 영화 배경같은 묵티나트 마을은 별 특이한 것이 없는 듯 하다.

 

어설픈 영어로 쓴 식당과 롯지의 간판이 이곳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지 않음을 말해주고.

 

묵티나트는 이곳 도시보다는 도시 위쪽에 있는 힌두 사원과 불교 사원인 곰파가 유명한 곳이다.

 

힌두사원은 KTM에 있는 파슈파티나트와 묵티나트가 가장 명성이 높고 불교 사원도 그러한데 힌두 사원 쪽이 유명세가 더한 듯 싶다.

 

 

묵티나트는 시바를 모신 사원인데 봄이면 인도에서까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곳에 이어진다고.

 

하지만 트레커들에게는 반대쪽에서 초롱라를 넘어 처음 만나는 도시의 개념이 더욱 강하다.

 

묵티나트 시내에서 한 한국인 트레커를 만나는데 한 분은 초로의 여자분이고 한분은 중년 남자였다.

 

 

그들은 초롱라를 넘어 왔다 한다.   대단한 일이기에 축하해 주고는 싶지만 아이고 죽겠다 소리 밖에는 나오질 않았다.

 

힌두 사원은 묵티나트에서 더 위쪽 언덕에 있었다. 

  

 썰렁한 묵티나트

 

 초롱라 왼쪽의 야카와캉이 멀리 보인다

 

경사가 꽤 심한 힌두 사원에 오르니 원래는 곰파였다가 힌두 사원으로 변해가는 중이라는 설명답게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토속 신앙이 혼재된 듯한 분위기가 입구부터 나온다.

 

 멀리 초롱라쪽으로 보이는 힌두사원

 건너편의 불교 사원 곰파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도 꽤 역사가 있어 보이나 정확한 내용을 모르니 그게 그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고찰처럼 고목들이 있고 오래된 건물들이 섞여 있으니 대충 역사를 짐작할 수 밖에.

 

확실히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명언이다.

 

 

아는 것이 없으니 보이는 것도 없고..

 

 

나중에 책자에서 보니 묵티나트에서 묵티란 해탈을 뜻하고 나트란 아버지를 의미한단다.

 

 

핀조씨에게 물어보니 어버지는 육적인 의미의 아버지가 아니고 존경을 담은 의미란다.

 

그러니 묵티나트는 위대한 해탈이나 해탈님과 같은 의미가 된다고...

 

 

 

 

그늘이라서 꽤 춥고 뭔가 으시시한 기분이 자꾸 든다.   음기의 세력이 무척이나 강한 곳인듯...

 

 

일본 교토의 야사카 신사라는 곳에 들어 갔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는데.

 

 

퇴마사나 고스트 버스터라도 불러야 할 곳인가?

 

 

한 건물에 가니 타빠는 넓은 공터 입구부터 신발을 벗는다.    너무 추웠는데 신발 벗는 것은 너무 싫어서 그냥 내려 오는데 한선생님은 벌써 건물을 빠져 나가 있었다.

 

 

뭔가 정이 안가는 곳이다.

 

 

나중 소개 책자를 통해서 알았는데 아마 타빠가 들어갔던 그 건물 안에 꺼지지 않는다는 불꽃이 있었나 보다.

 

 

 

 

 

 

 

 

 

다시 까크베니로

 

내 계획은 호텔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고 했는데 속이 안 좋은 한선생님이 그냥 바로 내려 가잖다.

 

별 밥 생각도 없고(호텔 음식이 맛 있으면 먹고 가자고 했겠지만) 여러 가지로 내려 가는 것이 좋을 듯하여 까크베니로 바로 내려 가기로 한다.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니 확실히 감동이 덜하다.

 

그리고 고산증으로 머리가 몹시 아파 힘이 무척이나 들었다.

 

 

집사람은 살만한지 어제 올라 올 때 보이지 않던 경치가 눈에 들어 온다나...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점점 강해지고 우리는 내려서기를 서두른다.

 

그러나 뭔가 아쉽다.

 

 

뒤돌아 보며는 아득하게 보이는 초롱라, 묵티나트 그리고 자르코트

 

 

아마 다시 볼 기회가 없을 그곳의 경치를 머리 속에 담아 두려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힘들게 도착한 까크베니 안나푸르나 롯지.

 

 

어제 점심을 먹었던 곳이다.

 

 

숙소는 꽤 좋았다.   따뜻한 물도 잘 나와 집사람이 머리도 감고 하더니 나보고도 샤워래도 하란다.

 

몸 컨디션을 보아 샤워는 생략하고 머리만 감았는데 아마 이것이 생병의 시작이었나 보다.

 

 

갑자기 몸이 사정없이 떨려와 오리털 파커를 입고 침대속에 누웠는데 영 떨림이 그치질 않는다.

 

다행히 인천 선생님 팀을 인솔해 온 셀파 출신 가이드 아저씨의 덕분으로 핫팩을 구해 이불안에 넣으니 좀 나아진다.

 

 

인천팀은 5명인데 가이드 한명과 포터가 2명인데 포터가 지고 있는 짐이 엄청나단다.

 

 

일당이 얼마 안되는 포터를 한 명만 더 쓰면 보기가 좀 나을텐데 오지랍 넓게 걱정을 해보지만 넉두리 수준이다.

 

 

 

내 방에 들른 타빠는 걱정스러운듯 내 이마를 집어가며 열은 없으니 괜찮아질 걸거라고 위안을 해준다.

 

인천팀이 가져온 아스피린을 얻어 먹고 핫팩으로 몸을 지지니 좀 나아져 간단한 저녁을 먹는다.

 

 

집사람이 다시 볶은밥을 시켰는데 엄청난 양과 냄새에 질려 한숫갈도 손에 대질 못하고 대신 타빠에게 주었다.

 

가이드와 포토는 우리가 묶는 숙소에서 무료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우리가 먹는 것과 잠자리와는 너무 차이가 난다.

 

물론 곳에 따라 다르겠지만 식사로 나오는 것은 달밧으로 밥 조금하고 콩 반죽 조금이라서 그것가지고는 부족할 듯 싶다.

 

 

아무래도 떨어져서 자는 것보다는 같이 자는 것이 나을 듯하여 한선생님을 우리방으로 오라 하여 3명이 한방에서 자기로 한다.

 

핫팩 그리고 좀 따뜻한 실내 공기덕에 잘 잘 수가 있었다.

 

 다시 돌아온 까크베니

 

 

Park Elson님의 여행기에서 퍼옴(까끄베니가 다른 모습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