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해 2011 여행

6. 동티벳, 자전거 그리고 공화(共和)까지

정안군 2011. 8. 19. 07:53

 

7월 24일 일요일

 

 

 

잠자리는 형편없었고 상당한 고지대였지만 잠은 그런대로 잘 잤습니다.

 

남 동네에 와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모든 것이 좋은거니까 일단은 잘 적응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오늘 아침은 어제 저녁 먹은 식당에서 우육면으로 합니다.

 

우육면하니 욱하고 토가 나오려고 합니다.

 

내가 워낙 면을 안 좋아하는 터라.

 

 

어제도 많이 올라왔지만 오늘도 아침부터 꾸준한 경사로 이어지네요.

 

그래도 심한 경사가 아니라서 별 무리는 없었어요.

 

처음에 고지대이고 산악지대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심한 경사는 없고 또 고지대에서 자전거 타는 것도 생각보다는 힘든 일이 아니라서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조금씩 초원의 빛이 진해집니다.

 

 

 

 

한참을 가니 유채꽃이 아름다운 곳이 나오네요.

 

고지대라서 유채꽃이 많이 남아 있나봅니다.

 

예쁜 것은 우리만 아는 것이 아니라 승용차를 타고 오는 중국인들도 사진을 많이 찍는데 차를 세우는 모습이 가관이네요.

 

그냥 자기가 세우고 싶은 자리에 세웁니다.

 

뒷차가 못 가던 방해가 되던 그런 것은 신경을 쓰지 않나 봅니다.

 

 

 

좀 더 가니 일월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시작되는군요.

 

야크를 가져다 놓고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보채는 티벳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우리를 보고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중국인들도 있고요.

 

사실 이 길은 당번고도(唐蕃古道)라 해서 현재 중국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길입니다.

 

옛날 당나라 때 수세에 몰린 당태종이 티벳의 옛이름 토번(吐藩)의 왕 송첸감뽀의 배필로 문성공주를 시집보낼 때 공주가 갔던 길을 당번고도라 하는데, 현 티벳을 점령하고 있는 중국이 역사에서 뭔가 관계를 만들어 내려고 강조하는 뭔가 좀 정치적으로 수상한 냄새가 나는 길이지요.

 

마치 정성공(鄭成功)을 내세워 대만과의 관계를 억지로 엮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휴가철이고 서녕 근처에서는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갈림길부터는 길도 경사가 좀 심해지네요.

 

멀리 정상의 일월각인가요 두 정자가 보입니다.

 

거리가 가까워 보이지 않네요.

 

쉬엄쉬엄 올라갑니다.

 

 

낮은 언덕에 올라가 지나온 길을 바라다보기도 하구요.

 

많은 고산식물이 꽃을 피웠습니다.

 

 

 

 

에델바이스는 지천이군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오르니 일월산경구 입구입니다.

 

 

 

멀리에서 문성공주가 우리를 부르지만 입장료는 20원이고 억지 춘향격인 문성공주를 그렇게 보고 싶지도 않고 해서 우리는 그냥 패스합니다.

 

 

이 주변에 살던 티벳 사람에게는 그냥 초원이고 생활터전이겠지요.

 

 

 

 

정상에 오릅니다.

 

차량이 뒤엉켜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네요.

 

정상 정자에 올라가려면 입장료가 20원인데 자전거 보관도 그렇고 올라가봐야 별 것도 없을 것 같아 그냥 사진만 몇 장 찍고 사람 구경이나 합니다.

 

몇 사람들은 우리와 사진 찍기를 청하네요.

 

아마도 이곳을 자전거로 오른 미친놈들과 기념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은 가봅니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 물음에는 청도에서 왔다고 대답해주기로 했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 듣는 사람 턱이 빠지더군요.

 

사실 청도에서 온 것은 맞지요.

 

뭘로 왔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으니.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은 줄 알았더니 얼마간은 내리막 오르막이 반복되는데 그렇게 한참을 간 다음에야 비로소 도창하(倒淌河)까지 내리막으로 이어지네요.

 

도창하는 문성공주가 자기 고향과는 영 딴판인 풍경을 보고 슬퍼 울어 물이 거꾸로 흘렀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동네로 황원에서 이어지던 고속도로가 일단 끝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전설이 남아있는 도창하는 돈을 받느냐고 안을 못 보게 만들어 놓았네요.

 

 

도창하는 옥수가는 길과 청해호가는 길이 갈라지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한 사천 식당에서 유채볶음, 감자와 두부볶음으로 식사를 합니다.

 

한 티벳인이 식당으로 버섯을 팔러 왔다가 주인에게 무안을 당하고 나가던데 이 근처에는 버섯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지요?

 

 

한참을 쉰 다음 문성공주의 배웅을 받으며 오늘의 목적지 공화(共和)로 출발을 합니다.

 

 

평지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시작부터 비포장에 경사가 꽤 되는 오르막이네요.

 

한참을 오르면서 저 모퉁이만 돌면 끝이겠지 했는데 그 모퉁이가 끝이 없었어요.

 

결국 희망을 버린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그냥 끌고 올랐답니다.

 

희망을 포기한 사람은 죽은 목숨이라던데.  흑.

 

 

정말 오르고 또 올라도 못 오를 것만 같았던 그런 긴 오르막이었네요.

 

가끔씩 끌바를 하는 내가 한심스러워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이것을 보러 여기 오지 않았냐고 자문을 하면서 나를 달랬습니다.

 

옆은 옥수까지 도로를 새로 만드는 중이라서 좀 그런 경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야크에 초원에 푸른 하늘에 내가 생각하던 그런 티벳의 경치였거든요.

 

 

 

오르고 올라 정상에 오릅니다.

 

유초구垭구(柳梢沟垭口)

 

垭는 우리나라 소리값이 없네요.

 

아마도 그냥 대충 '아'로 읽어야 할 듯.

 

해발 3,578m

 

꽤 높은 곳인데 그냥 덤덤합니다.

 

정상에 오르니 왠 소녀가 물 컵을 들고 나에게 옵니다.

 

순간 방금 전 차 한 대가 지나갔는데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 중에 이 개고생하는 나를 보고 불쌍히 여겨 차를 세우고 물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물은 무슨 개뿔.

 

티벳 아가씨이더군요.

 

버터차를 가지고 왔어요.

 

한 잔에 4원이랍니다.

 

그 때는 연양갱을 먹고 나서 물을 먹고 있을 때였고, 또 그런 망상까지 한 뒤니 돈 주고 사먹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지요.

 

그냥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이 고개는 현지 티벳말로는 하마허어긍이라하고 중국말로는 류샤오커우야커라 한다는군요.

 

탱이님은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아 동네 사람들만 만나면 어김없이 물어보는데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티벳의 중국화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지요.

 

 

 

안내판에는 공화 대신 이제까지 전혀 나오지 않던 티벳 이름 찹차(恰卜恰)가 있군요.

 

이게 중국이랍니다.

 

한참 내리막입니다.

 

 

저 산을 넘어 왔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사막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초원을 달리는데 약간 거친 듯한 느낌이 드네요.

 

한 매점이 있어 잠시 쉬어 갑니다.

 

매점 안에는 티벳 젊은이들이 낮부터 맥주 타령입니다.

 

보다 못한 탱이님이 젊은 놈들이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 낮부터 술타령이냐고 하니 도로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라서 잠시 쉬는 중이랍니다.

 

오 그래..

 

그런데 한 중국 놈은 길가에 차를 세워 놓는 것 까지는 좋은데 차문을 활짝 열어두고 매점에 오더군요.

 

당연히 지나가는 차들은 방해를 받으니까 경적을 크게 울려대고.

 

그렇게 울려대도 이 중국 놈은 상관을 안 합니다.

 

알아서 가라는 거겠지요.

 

정말 개념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까요.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다행히 도로 공사하던 곳이라서 만드는 다리 밑에서 한참을 쉽니다.

 

비가 많이 내리네요.

 

지나가던 티벳 사람들도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같이 한참을 쉬었습니다.

 

비가 그치자 바로 출발하자고 합니다.

 

나는 10분만 더 있다가 출발하면 길이 마르고 좋겠다고 하지만 우리 일행은 그냥 가버립니다.

 

여유가 아쉽네요.

 

 

 

 

할 수 없이 따라 나서는데 바로 심한 경사로가 시작됩니다.

 

아스팔트가 젖어 있어 살살 내려가는데 내려가면서 경치를 보니 앞 동네가 너무 아름답네요.

 

 

 

 

 

막 비가 내려 물기를 머금은 나무와 풀들이 너무나 보기 좋은 동네였습니다.

 

길은 곧 마릅니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한참을 비포장도로로 달리다가 공화로 들어가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공화는 중국명이고 티벳사람들은 찹차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찹차는 우리 소리 값으로 흡복흡(恰卜恰)이라하는데 역시 남의 말은 표시하기가 쉽지 않네요.

 

 

공화는 도시가 꽤 큽니다.

 

우선 안내판이 있어 해남(海南)빈관이라는 곳에 가보는데 가격이 좀 비싸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2인실이 176원인데 일인실이 없어 2인실을 두 개 써야하는 상황입니다.

 

마침 비도 오고해서 나는 그냥 있자고 하지만 palette님이 망설이셔서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좀 더 시내 쪽으로 이동을 하는데 비가 많이 내립니다.

 

 

이 와중에 우리의 탱이님이 여기저기 다녀 한 호텔을 결정합니다.

 

역시 대장 만세입니다.

 

이 호텔은 일인실이 있다는군요.

 

여기도 우리가 외국인임을 알고 좀 난처한 듯 주인이 심사숙고를 하더니 그냥 있으라고 합니다.

 

아마 야매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이 주인도 회족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회족이 식당과 숙박업에 많이 나서는 모양입니다.

 

하긴 몇 집만 보고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네요.

 

 

저녁은 탱이님 제안대로 티벳 음식점으로 합니다.

 

티벳 음식이 뭐 맛있는 게 있겠냐만은 탱이님 티벳 사랑에 한 번은 가보기로.

 

그런데 이즈음 고산증 증세가 나타납니다.

 

입맛이 뚝 떨어지고 콧물에 감기 증상까지.

 

계란 볶음밥만 간신히 먹습니다.

 

시킨 다른 음식은 손도 대보질 못하고.

 

이 동네가 해남장족자치주 주도라서 터미널 사진을 찍으려고 나섰는데 오한이 나서 그것도 생략을 합니다.

 

그리고는 호텔로 돌아가 아스피린과 홍경천을 같이 먹고는 씻지도 못하고 그냥 잠자리에 드네요..

 

몸이 회복되었으면 좋으련만.

 

오늘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숙소 비를 합쳐 128원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잔 호텔은 2인실이 120원이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