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여행기/미얀마 태국 2012 여행

러브 인 미얀마 4 - 선교 센터 방문

정안군 2012. 1. 25. 14:18

 

1월 5일 목요일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다시 동창 아니 동녘이 밝아온다.

 

호~~

 

어제보다 예쁘군.

 

얼른 사진기를 가져와서 사진을 일단 지른다.

 

 

 

 

 

 

 

 

그림같다.

 

좋구만.

 

일단 오늘 오전 임무는 환전이다.

 

이 동네 환율은 공항이 가장 좋은 곳으로 바뀌었는데, 옛날에 내가 올 때만 해도 공항에서 바꾸는 놈은 미친놈밖에는 없었다.

 

그전에는 FEC라고 강제로 20달러를 바꾸게 하는 제도가 있었던 모양인데 내가 처음 방문한 때에는 그런 제도는 없어졌다.

 

그렇지만 공식 환율과 비공식 환율의 차가 엄청나서 은행에서 바꾸는 공식 환율은 그야말로 코미디였던 거.

 

그래서 적당히 택시 기사와 시내가지 달러로 흥정을 한 뒤 보족 시장에서 환전을 하는 것이 이 동네 여행의 공식이었다.

 

그러나 시절이 많이 좋아져서 은행도 정식 환율로 환전을 시작해 환전상에게 환전할 필요가 없어진 거.

 

그렇지만 은행은 오후 4시만 되면 칼같이 문을 닫는다, 그러니 그 시간 넘어서 오는 외국인들은 달러로 계산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바가지 쓰는 것은 당연한 일.

 

이렇게 늦게 도착한 여행객을 공식적으로 자국민에게 바가지를 쓰라고 내주는 꼴이니 미얀마 정부의 국민들을 위한 정말 주옥같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뭐 여행객이야 원래 동네 호구 아니겠어? 

 

 

국제 공항 도착장이다.

 

미얀마답지 않게 깨끗한(?) 모습.

 

 

동생과 내가 타고 온 택시.

 

 

차 안의 모습.

 

이게 현역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택시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더러워서 타기가 꺼려지지만 걱정마시라.

 

곧 적응이 된다는 거.

 

ㅋㅋㅋ

 

 

은행에 가서 확인을 해 보니 1달러 802짯(KYAT)이란다.

 

옛날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1 짯이 1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 짯이 1.5원 정도 된다네.

 

참 그 동안 주옥같은 가카의 정책에 의해 우리나라 돈 가치만 추락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런 미얀마도 우리나라 돈 가치에 비해 자기 돈 가치가 올랐으니.

 

지금은 우리나라하고 인도네시아만 환율이 내가 처음 여행하던 시절과 같다.

 

아~~~

 

옛날이여~~

 

이 동네에서 돈 바꿀 때 주의사항이 있다.

 

달러는 무조건 고액권으로 그러니까 100달러짜리가 환율이 가장 좋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절대로 구겨지거나 흠이 있는 것은 아니 되며 또 최대한 신권으로 할 것이다.

 

이것이 아니면 돈이 있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느낄 수가 있다.

 

이 동네는 카드는 완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할 것.

 

달러 환전은 인도네시아 그리고 캄보디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인도네시아는 카드 사용도 되고 ATM도 가능하니 캄보디아나 미얀마보다는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겠네.

 

다만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신권이 아니어도 또 돈이 좀 구겨진 것도 괜찮다.

 

사실 이 나라 시스템은 우리와 크게 차이도 없다는.

 

내가 이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는 1,000짯 지폐가 최고였는데, 지금은 5,000짯 지폐가 등장을 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심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 때는 정말 1,000짯 지폐의 위력이 대단했었다.

 

돈을 물 쓰듯 써도 통 안 줄어들 정도로 물가가 쌌는데. 

 

 

이렇게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야 한다.

 

공항 입국장에서 나와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면 값이 비싸다.

 

몇 걸음만 걸으면 공항 앞으로 큰 길이 지나가는데 이곳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면 값이 싸다.

 

이곳에서 시내 중심가까지는 3,500짯이면 훌륭하고 4,000짯이면 괜찮게 교섭을 한 것이다.

 

왜냐고~~

 

우리는 관광객이니까.

 

집으로 돌아 와 우리가 아는 선교사집 방문을 방문하고자 시간 약속을 해둔다.

 

오후 2시에 센터로 우리가 가기로 했다.

 

그 사이 우리 어머니와 장모님에게 뭔가를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 동생네 1층과 지하에 있는 상가에 가서 구경을 시켜드리는데.

 

 

 

 

워낙 시설이나 물건이 형편없어 별 구경거리가 못 되어 바로 올라온다.

 

그래도 여기가 양곤에서 제일 좋은 매장이라는데. 

 

 

그 이후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한참 외곽으로 달려 선교 선터로 향한다.

 

한 주택지 안으로 접어드니 그곳이 선교센터였는데,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시내 안내를 해주던 노퐁이라는 친구가 맞아 주었다.

 

이 친구는 대단한 카사노바 기질을 지닌 친구라고.

 

어쨌든 몇 년 만에 다시 만나니 반갑기는 했는데, 그 친구는 얼굴만 반가운 표정이고 몸 전체로는 아닌 모양.

 

하긴 나도 그랬고.

 

이 센터에는 미얀마 각 지역에서 온 청소년 80명 정도가 지내고 있단다.

 


이들이 지내는 숙소.

 


가스 값이 비싸서 식사는 화목으로 해결한단다.


웃기는 것은 미얀마 앞 바다에는 천연가스가 엄청나게 나온다.

 

 

순회에 나선 우리 집사람과 선교사.


 

 


선교 선터 본부.


이런 건물은 참 잘 지어진 것이랃.

 


예배당 입구

 


예배당이다.


여기서 지내는 청소년들은 대개 기독교화된 민족에서 온 아이들이라는.

 

 


미얀마 산 지프 샨스타.


겉 모습은 그럴 듯 한데, 타보면 여기가 미얀마라는 것이 잘 느껴진다는 거.


ㅎㅎ

 

 


애네들도 축구는 참 좋아한다.


참 좋아하는 데.


그것 뿐이다.


축구에 관해서는.

 

 

골목에서 나오는 샨스타 지프.


위용이 느껴진다.


그러나 알고 보면 허우대만 멀쩡하다는..


ㅋㅋㅋ


여기 센터를 한 바퀴 돌고 선교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이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있으면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 애들처럼 폭력적이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다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후를 보내다 돌아온다.

 

나눈 대화에 이곳에 옮길 수 없는 것들인데, 그 중 귀가 번쩍 뜨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뎅기열이라는 놈이다.

 

이 선교 센터의 주인 선교사는 뎅기열을 2번이나 걸려 많은 고생을 했단다.

 

모기로 전염되는 이 바이러스성 질환은 감기 몸살과 비슷한데, 그러다가 병세가 누그러지면 더 위험한 시기란다.

 

하여튼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전문병원에 얼른 가서 수액을 맞으며 혈액속의 바이러스 독성을 중화시키는 것이 최대의 치료라고.

 

자칫 병세가 누그러졌다고 퇴원하거나 우리나라로 돌아가서 치료한다고 하면 돌아가는 도중에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다니 조심하여야 되겠다.

 

낮에는 요즘이 가장 온도가 낮은 때라고 하는데 사실 뜨거워서 나가 돌아다닐 수가 없다.

 

전반적으로 이 동네도 3한 4온이 있어서 좀 서늘해졌다 더워졌다를 반복하는데 요즘이 더운 시기란다.

 

그러니 어떻해?

 

다시 늘어지기 모드로 갈 수 밖에.

 

저녁을 먹고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산책에 나선다.

 

옛날 호텔이었다는데 영업이 안 되어 병원으로 용도를 바꿨단다.

 

하지만 의사도 별로 없고 해서 영업이 잘 되지는 않는 모양인데, 그래도 정원은 참 잘 가꾸어 놓았다.

 

컴컴해졌는데 퇴근하는 직원도 있고 출근하는 직원도 있지만 환자의 모습은 정말 보이지 않는다.

 

뭔가 불가사의한 나라이기는 하다. 

 

 

이것이 타나까 나무.

 

이것을 돌판 위에 물을 뿌린 다음 갈아서 나온 가루를 얼굴에 곱게 바른다는.

 

우리나라 모 화장품 회사에서 이 나무를 가지고 제품화 했다는 말이.

 

보습 그리고 썬크림 대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