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여행기/미얀마 태국 2012 여행

러브 인 미얀마 7 - 양곤에서 한인 교회가기

정안군 2012. 2. 1. 10:12

 

1 월 8일 일요일

 

 

 

어김없이 오늘도 새 날이 밝았다.

 

 

도시도 잠에서 깨어나고.

 

동생네는 딸이 셋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또딸이네’인 셈인데, 큰 애는 복합 장애가 있어서 집에서만 지낸다.

 

둘째와 셋째는 이곳 미얀마 양곤에 와서 아직 일 년도 못 되었으니 적응하기도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둘째는 학교에 친구가 많은 모양인데, 셋째는 학교에 제 또래가 한 명도 없어서 몹시 허전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엊그제 한 집이 이사를 왔는데 딸 둘이 있는 집이란다.

 

어쩜 그렇게 동생네 애들과 궁합이 맞는지 학년이 둘째와 셋째와 딱딱 맞는단다.

 

너무 기분이 좋은 셋째는 그만 주말을 그 애 집에서 이틀을 잤다가 제 아빠에게 엄청나게 혼났다.

 

우리나라야 흔한 것이 제 또래인데 남 나라에 오니 그것도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괜히 내가 안쓰러웠다.

 

어쨌든 그 집은 과테말라에서 이곳으로 이주를 했다는데 봉제업을 한다고.

 

이곳이 미국제재가 풀릴 것을 예측하고 많이들 몰려오는 모양이다.

 

양곤 시내의 건물이나 땅 값이 엄청나게 올랐다고 한다.

 

베트남처럼 한동안 한국 사람들의 투자 대상으로 한참 들뜨다가 한 방에 훅 갔는데 여기 미얀마도 그렇게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게 10년 정도 간다고 하면 땅 값이 오르기 시작한지 2년 정도 되어서 아직도 많이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있기는 하다.

 

아는 선교사도 이곳에 건물을 사놓으면 좋을 거라는데, 나는 솔직히 남 나라에 돈을 투자해서 그 나라 물가를 올리는데 기여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가 싫다.

 

하긴 그럴 돈도 없지만.

 

그건 그렇고.

 

오늘은 일요일, 교회 다니는 사람의 표현으로 하면 주일이다.

 

이곳 양곤에는 한인교회가 3곳이 있다고 한다.

 

미얀마 한인교회와 양곤 한인교회 그리고 하나는 잘 모르겠다.

 

이 중에서 동생네 아이들이 다니는 교회는 미얀마 한인교회인데, 그 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웠다가 담임목사가 새로 부임을 해서 안정이 되고 또 선교사들이 협력해서 목회를 해 운영 방법도 모범적인 곳이란다.

 

역시 협력해서 일을 하면 보기도 좋을뿐더러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거.

 

그런데 그 놈의 협력이 잘 안 된다.

 

서로 도와주고 사랑하라는 교회에서조차.

 

그런데 이 미얀마 한인교회는 그것이 잘 된다니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기도 하다.

 

여기도 한국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었다.

 

10시 20분 정도에 온다고 했는데 10분경쯤에 미니버스가 왔다.

 

여기는 이렇게 미리들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통인 것 같다.

 

이 동네 저 동네 걸쳐가면서 교회까지 이동하는데 결국 더 태운 사람은 고작 1명.

 

그 바람에 우리는 양곤 골목 투어를 할 수 있었는데 역시 부자님들이 사는 골목은 뭔가 달랐다.

 

자가용이 2대씩 주차가 되어 있고 깔끔한 정원 관리까지.

 

이런 곳에 한국인들도 사는 모양이다.

 

 

 

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지도에서 'E'라고 표시된 곳.

 

인야 호수와 시내 중심가의 중간 쯤에 자리잡고 있는데, 교회가 위치한 상가 복합 건물에서 상가는 완전히 망해가고 있는 분위기였다.

 

 

교회로 올라가려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야 하는데 그 입구이다.

 

전구 파는 가게 이름이 'OTL'.

 

 

상가 3층에 마련된 예배실로 가니 아직 시작 전이라서 찬양대와 중고등부 특송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간이 되어 예배를 시작하는데 낯익은 얼굴이.

 

 

박성화 감독이다.

 

이번에 미얀마 축구 대표 팀 감독으로 선임된.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이 외국에 있을 때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런 외국 아니면 어떻게 박성화 감독을 코앞에서 보겠어?

 

담임목사가 사회를, 협력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이렇게 설교를 담임목사가 하지 않고 협력 목사에게 넘겨서 하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예배 구성원을 보니 이곳은 그래도 나이가 들은 분들이 많아 나름 안정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한인교회는 거의다가 젊은 유학생들이라서 별 수입원이 되지 못하니 몇 안 되는 장년들이 교회를 운영하느냐 힘에 겨워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예배 후 소예배실에서 점심을 먹는데 담임목사가 우리를 일일이 챙겨주었다.

 

 

 

사실 오늘 하루만 나오는 뜨내기손님에게 이렇게 정성을 쏟기란 쉽지 않다.

 

담임목사의 태도에서 어떻게 이 교회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안정된 모습을 찾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관심과 사랑이다.

 

담임목사와의 대화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성화 감독은 우리나라 대사가 신임장을 미얀마 대통령에게 제출할 때 대통령이 특별히 부탁을 했다한다.

 

한국에서 축구 대표 팀 감독을 보내달라고.

 

그런데 돈이 없어 급여는 줄 수가 없다고 했다나?

 

지네들 주머니 채우기 바빠 국가 재정이 바닥이 난 것이 미안하지도 않았나 보다.

 

그래서 미얀마에 진출한 우리나라 회사 대우 인터내셔널에서 대표 팀 감독 급여를 주기로 했다 한다.

 

뭐 그 대신 반대급부가 주어지겠지만.

 

참 재미있는 나라이다.

 

그러니 축구 대표 팀 선수 관리는 제대로 되겠어?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 대표 팀이 여간해서 이기지 못한 팀이 버마 그러니까 지금의 미얀마 축구팀이었는데, 지금은 경기력이 우리나라 고등학교 축구팀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단다.

 

박성화 감독이 취임을 해서 선수들을 보니 체격과 체력에서 한참 미달이었다고.

 

내년까지 계약인데, 이것도 웃긴다.

 

돈도 안 주면서 무슨 계약이야..

 

아무튼 내년 동남아시아 축구 대회가 있는데, 이 경기에서 우승을 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그래서 지금의 축구 대표 팀이 어느 정도냐고 하니 동남아시아에서도 중간 이하의 실력이란다.

 

베트남보다도 낮은 실력이라고.

 

아마도 라오스나 캄보디아 정도가 아래로 깔고 있는 나라겠다.

 

쉽지 않은 미션이겠지만 박성화 감독이 꼭 그 꿈을 이루어 미얀마 사람들의 영웅으로 등장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대 축구팀 운영이라는 것이 감독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히딩크가 잘 보여 주었다.

 

그런데 감독에게 줄 돈도 없으니 스태프는 어떻게 구성을 해..

 

참 어렵고 어려운 일인 듯하다.

 

지네들이 착복한 돈이라도 조금 내놓으면 충분하겠더만.

 

식사 후 한쪽에서는 박성화 감독과 비슷한 또래의 분들이 한참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모두들 외국에 나와 살면서 대화에 굶주려서 그럴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힘을 써야 하는 박성화 감독이 안 돼 보였다.

 

나중에 안 것인데 이 대회를 SEA GAME라고 한다고.

 

SEA GAME은 동남아 11개국이 2년 마다 돌아 가며 개최하는 대회로 금년(2011년)은 52년째를 맞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스마트라 섬 팔램방에서 열리고.있습니다.

 

27회 대회는 2013년 미얀마에서 열립니다.

 

(다음 자료에서) 

 

2013년 개최지가 미얀마이니, 아무래도 홈이고 국민들에게 보여줄 것도 있어야 해서 대비를 많이 하는가 보다.

 

교회에서 집까지 셔틀버스가 운행이 되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우리는 택시로 돌아 왔다.

 

그리고 오후 내내 빈둥거리는데 엄마의 건강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간다.

 

아무래도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 그런 듯하고, 게다가 감기까지 들어서 더욱 고전중인데.

 

아무래도 모든 바깥 일정은 생략하고 그냥 집에서 지내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오후에 선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5시 30분에 차를 보내겠다고.

 

그렇잖아도 어떻게 찾아가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미리 손을 써 준 거.

 

20분쯤에 나가니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미리 와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타고 간 지프는 마데 인 미얀마인데 엔진은 일제로 하고 외관은 여러 가지 차체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초기의 시발택시인가 그런 모습인 셈.

 

겉에서 보면 그럴 듯 한데 일단 안에 타면 역시 미얀마라는 생각이 드는 차이다.

 

우리 부부와 장모님이 함께 센터에 가니 선교사 부부가 우리를 맞아 준다.

 

그들의 모습과 센터의 외관을 둘러 본 장모님은 기쁨이 넘친다.

 

 

 

교회 식구들에게 자랑을 하라고 사진 한 장 찍어드리고 바로 저녁 식사를.

 

아직 선교에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라서 선교사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하지만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알 건 다 안다고.

 

하지만 왠만한 건 모르는 척하고 넘어갈 뿐이란다.

 

저녁 식사는 한식이 기본 바탕인데 이 나라에서만 난다는 인삼 비슷한 것과 총각무 같은 뿌리채소가 특이했다.

 

 

 

식사 후 한참 동안 정다운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아무래도 선교사 부부의 아들이 고 3이라서 입시에 대한 고민이.

 

하지만 내가 학교 교사라고 하나 전문계에 근무하다보니 이런 쪽에는 거의 문외한이라서 별 도움이.

 

이런~~~

 

 

그리고 이 센터 아이들과 함께 저녁 예배를 드렸다.

 

아는 노래도 있고 모르는 노래도 있고.

 

 

각 학년별로 특송도 하고.

 

우리 찬송가 노래와 같은 것도 있고 처음 듣는 곡조도 있고.

 

 

그리고는 외부 강사로 초청된 선교사의 설교와 이를 미얀마어로 통역하는 선교 센터 선교사.

 

오랜만에 듣는 미얀마어가 낯설지만은 않다.

 

거의 끝말이 ‘바래’로 끝나던데 나중에 이 바래가 무슨 뜻이냐고 하니 그랬어요 라는 뜻이라나?

 

그런데 예배 후 반가운 얼굴이.

 

처음 미얀마에 왔을 때 선교사가 우리에게 소개를 해준 두 여자 아이들이 있었다.

 

‘심마’와 ‘쌩뜨웨’인데 그 중 심마가 우리 집사람 곁에 앉아 있었던 것.

 

벌써 7년 전이니 이제 어엿한 처자가 되었다.

 

그 사이 심마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의 스태프로 일하고 있단다.

 

이 아가씨 아버지는 인레 호수가 마을의 이장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인레 호수 마을을 방문할 때 자기 집에 우리를 초대해서 거하게 대접을 했었다.

 

비록 입에 맞지 않아 다들 많이 먹을 수는 없었지만.

 

단지 붕어를 푹 고았다는 물이 몸에 좋다고 해서 억지로 한 사발씩 먹었던 기억과 돼지고기 한 첨 없는 비계에 질렸었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나중에 따로 만나 나이가 몇이냐고 하니 24살이란다.

 

이 동네에서는 올드미스에 해당하는 나이.

 

쌩뜨웨는 어디 있냐고 하니 우리나라에 있단다.

 

뭔 소리인가 했더니 작년 우리나라 한동대학교로 유학을 갔다고.

 

그런데 마침 내일 대전의 한 교회 선교 팀과 함께 온다고 한다.

 

그 아버지는 우리 옆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년 남자였다.

 

이분은 소수민족으로 목사님인데 딸을 만나기 위해 멀리서 왔다고.

 

아마도 쌩뜨웨가 일행과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아버지가 혼자 그 아이를 만나러 시골에서 여기까지 왔나 보다.

 

쌩뜨웨는 교회 선교 팀과 함께 와서 봉사에 참여한다고 하니 우리가 다시 와서 만나 보기로 한다.

 

역시 그 아이를 처음 볼 때도 똑똑하게 생겼다고 느꼈는데 틀리지 않았다.

 

예배 후 다시 센터 차로 집에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축구 경기를 TV로 보고 있는 군중이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타잔 프로그램이 방영이 되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을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보곤 하던 그런 모습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 느끼는 궁금증이다.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데 왜 국가대표 팀들은 왜 그리 축구를 못하는 겨?

 

월드컵 최종예선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안컵 2차 리그에도 올라오는 팀이 거의 없으니.

 

그러니 지들만의 리그인 동남아시아 축구대회에 목숨을 거나보다.

 

이거 다 어디 갔어..

 

심심하면 우리나라 축구팀 발목을 잡던 말레이시아나 버마 축구팀들.

 

이거 다 어디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