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섬서 2014 여행

거친 땅, 거친 역사 섬서성을 찾아서 - 오기 吳起 140522(상)

정안군 2014. 6. 22. 21:15


어제 지단에 도착해서 터미널 표 파는 아가씨에게 오기(吳起)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 놓았는데,


그 다음 날 시간에 맞춰 가서 표를 달라고 하니 버스가 없다네요.

그 유명한 ‘메이요우’

처음 중국에 여행 왔을 때 이 메이요우 소리가 나오면 많이 ‘당항’했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눈치가 많이 늘었거든요.

아무튼 아가씨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며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재주가 있나?

눈치를 보니 그냥 버스를 타고 돈을 내라는 이야기 같아 밖에 나가 오기 행 버스를 찾아보는데 없습니다.

다른 방면 운전기사에게 오기 가는 버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여기는 없고 밖에 있답니다.

“밖에?”

터미널 밖 큰 길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런데 뭐라 길게 설명을 하는 것을 보니 연안에서 오기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타고 가라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이제 눈치가 삼단이여.

터미널에서 밖에 나가니 길 가에 사람들이 많이 서있었어요.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오기 가냐고 물어보니 그렇답니다.

오기 가는 버스를 여기 길가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오~~

그냥 여기서 버스가 오는 것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참, 쉽죠잉~~~

그런데 한 친구가 자기가 오기에 간다며 자기 승용차에 타랍니다.

어, 이건 한족(漢族)이 살지 않는 동네 이야기인데.

그런데 이 순간 내가 너무 오버를 했습디다.

그냥 승용차로 영업하는 아저씨로 이른바 ‘나라시’ 택시였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공짜로 태워 준다는 줄 알고 괜히 좋아하다가, 돈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괜히 좋다만 나는 승용차 안에서 맥없이 기다리다가 언제 출발할지도 모르는데 이걸로 가느니 그냥 버스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버스를 다시 기다리기 시작하는데.

승용차 운전기사가 사람이 다 찼다고 같이 가자고 하네요.

그렇담 좋지.

일제 토요타 승용차에 5명이 나눠 타고 오기를 향해 떠납니다.

어쨌든 중형 승용차라서 승차감도 좋고 괜찮더군요.

승용차에 탄 사람들 모두 오기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변(靖邊) 갈림길에서 모두 내리고 거기부터는 나 혼자 타고 가는데.

그런데 오기 다 와서 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갑자기 내리랍니다.

기사가 화장실 용무가 있던 것도 아니고.

거기서 왜 내리라고 했는지 지금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하필 그때는 미리 중간에 돈을 달라고 해서 주었었는데, 중간에 이 친구가 나를 내려놓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 가 싶었어요.

그래서 차에서 안 내리려고 했더니 막 소리를 지르면서 내리라더군요.

웬일이랴?

아무튼 한참을 차 밖에서 서 있다가 다시 타고 오기를 향합니다.

왜 그랬을까?

차가 고물이던 시절이라면 엔진을 식히려고 그랬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중국도 그런 시절은 아닌데.

아무튼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달려, 오기에 도착을 합니다.

오기는 적어도 지단보다는 크더군요.



터미널도 제법 형식을 갖추었고요.

승용차라서 아마도 터미널 부근에 내려 주었을 텐데, 내가 자꾸 터미널이 어디냐고 승용차 기사에게 물으니 이번에도 소리를 냅다 지릅니다.

그래서 한 마디 해줍니다.

“이 친구야, 나 한국 사람이여. 중국말 잘 못하고, 그러니까 그만 좀 혼내”

이 친구 멋쩍게 웃네요.


아무튼 나라시 택시 덕에 쉽게 오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터미널 안에 들어가서 이동 방향을 생각해서 이곳저곳 시간표를 알아보려 하는데,



버스 편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표 파는 아가씨에게 정변(定邊)가는 것을 물어보니 그 쪽은 아주 많답니다.

아침 9시부터 30분 간격으로 계속 간다더군요.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갈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화지(華池)쪽으로 해서 서안(西安)으로 갈까, 아님 정변으로 나가서 영하 회족 자치구 은천(銀川)으로 갈까.

일단 두 방향 버스 시간을 알아보는데, 모두 버스 편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호텔은 터미널 근처에 많이 있었어요.

괜찮아 보이는 상무 빈관에 들어가서 가격을 알아보니 158원이라더군요.

방을 보여 달라고 하니 열쇠를 집어 던집니다.

그거야 중국 사람들이 대부분 쉽게 하는 것이니 이해를 했지만, 방을 가보니 무슨 너구리를 잡았는지 담배 냄새에 이건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돈 값을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내려와서 다른 곳을 보여 달라고 하니 없다더군요.

이런 썩을 *, 벌건 대낮에 방이 없다니.

관둬라.

싫으면 말라는 얼굴 표정으로 손님이 오는 것을 귀찮아하는 저런 종업원을 둔 여기 주인이 불쌍하더군요.

저러면 누가 이곳에 들어오겠어?



그 바로 앞 목욕탕을 같이하는 빈관에 가봅니다.

냄새도 그 바로 목욕탕 냄새이고 청결도도 별로이고 해서 다른 곳에 가려다가 가격이라도 물어보자며 알아보니 100원이라네요.

어렵쇼?

엄청나게 싸네.

방을 보여 달라고 하니 그러라고 하며 무지 친절하게 대합니다.

이게 주인과 종업원의 차이이지요.

방을 가보니 좀 허름하기는 한데, 하룻밤 유하기는 괜찮아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보증금을 받지 않는다는 거.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여권을 가지고 컴퓨터에 뭔가 등록을 열심히 해보는데 잘 안 되나 보더군요.

내가 여권으로 항목을 찍고 여권 번호에 있는 영어는 빼고 넣어주었더니 뭐 그걸로 되었다더군요.

어찌하다가 한국 돈을 보여 달라고 해서 1,000원 권을 보여 주었더니 한참을 들여다보고는 자기 딸에게도 보여주고 참 신기 해 합니다.

원래는 1,000원 짜리를 환치기로 해서 외화 수입하는 도구를 삼았는데, 오늘은 주인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냥 서비스를 했답니다.

그냥 선물로 준다고 하고는 쿨하게 주었습니다.

‘쿨’하게.

이렇게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자 할 때 우리나라 1,000권을 가져가면 선물로도 좋고 더 좋은 것은 환치기가 가능합니다.

중국 사람들 대개 천원 권을 보면 모두 신기해하고 좋아하는데, 이것이 중국 돈 얼마 정도하냐고 물을 때 6원정도 된다고 하면 대개 중국 돈 10원과 바꾸자고 하거든요.

사실 좀 더 불러도 되지만 뭐 그 정도만 해도 많이 이득이니.

이건 고급 정보인데, 여기서 풀어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슬슬 점심시간이 되어 터미널 근처 식당을 탐색하다가 돼지 간 감자볶음 덮밥으로.

맛있었을까요?

돼지간이 퍽퍽한 것처럼 이 덮밥도 퍽퍽해서 먹기가 좀 그랬어요.

그래도 별 걸 다 먹어보네요.

이 정도는 그냥 먹을 수 있는 음식 등급입니다.


오기는 모택동이 이끄는 홍군의 사연이 시작되는 섬서성 첫 동네입니다.


장정에 나선 홍군은 호남성, 귀주성, 운남성, 사천성을 지나고 감숙성을 건너 섬서성 경계를 이루는 육반산(六盤山)을 만나지요.

육반산은 옛적 칭기스칸이 죽은 곳입니다.

이 육반산을 넘어 섬서성 북부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곳에서 싸울 의사도 없는 장개석 쪽 군대를 물리치고 오기에 들어오게 됩니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곳은 이미 류지단이 이끄는 홍군이 자리를 잡은 곳이라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죠.

그래서 그 오기에서 모택동은 당당하게 장정은 끝났다고 선언을 하게 됩니다.

‘장정’은 승리로 장식이 되었다면서.

장정이 승리라?

재미있지요?

물론 중간 중간 많은 장애물을 건너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홍군들이 희생되었잖아요.

장개석만 홍군을 토벌하려고 열불이 났지 그쪽에 붙은 군벌 세력은 이미 장개석이 자기 군대는 희생을 줄이면서 군벌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이른바 ‘이이제이’ 정책 쓰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자기 군사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했고요.

그러니 장개석이 명령을 내리지만 군벌 군사들은 그냥 흉내만 내는 정도.

‘가보니 벌써 도망갔네요?’

그러니 여기저기 맨 구멍이었어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홍군은 그 구멍 사이를 잘 헤집고 섬서성까지 안착을 하게 된 것이랍니다.

사실 홍군이 장개석 군대와 벌린 전투는 호남성에서 빠져 나올 때 상강에서 붙어 개 박살 났던 때를 빼고는 큰 전투도 없었습니다.

굶주림과 사고사 그리고 소수민족들의 저항이 큰 피해를 입혔지요.

특히 티벳 족들은 홍군들에게 많은 피해를 준 듯합니다.

이들은 홍군이든 백군이든 한족이라면 모두 미워했으니.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작은 전투에 수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쳐서 전력에서 이탈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발할 때 병력 중 불과 얼마 안 되는 병사들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는데도 승리했다고라.

물론 나중 결과적으로 보면 승리라고해도 누가 토를 달 이유는 없으니 우리도 그냥 승리라고 인정을 일단 해 두지요.

그런데 대단한 것은 다치거나 해서 뒤에 남겨졌던 홍군은 국공 합작까지 살아남아, 나중에 ‘신사군’으로 편성이 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기도 했답니다.

중국 땅덩어리가 워낙 크니 이들이 숨어들 여지가 여기저기 많았던 모양이지요?

딴 이야기이지만, 홍군이 중국을 통일하고 잔불을 정리할 때 저항했던 소수민족들은 이른바 ‘토비’로 취급을 받아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학살을 당한 것 아시나요?

역사는 승자편이라서 그들이 얼마나 희생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가계 같은 곳에 가보면 ‘토비’들을 많이 소탕했다는 이른바 ‘전승비’에 남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 ‘토비’들이 대개 그 땅에 살던 소수 민족들이지요.

장자계 쪽의 희생자는 대개 묘족인데, 묘족은 자신들을 치우천황의 후손으로 부르며 옛날부터 한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죠.

내전 중에야 그들을 자극할 이유가 없어 그냥 그대로 지나갔지만, 장개석을 대만으로 몰아낸 다음 홍군이 아닌 중국 공산당 정부는 이제 그들을 회유하거나 어루만져줄 이유가 없어졌어요.

이제는 강력한 힘으로 이들을 복속시키기 시작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홍군 쪽에 귀순(?)한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민족성과 자주 어쩌고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모두 ‘토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정은 티벳도 마찬가지였지요.

아무튼 오기는 장정을 끝냈다고 선언한 ‘장정 승리 기념관’이 유일한 구경거리입니다.

도시는 지단보다 좀 더 크지만 구경거리는 지단보다도 적은, 딱 한 곳입니다.


이제 밥을 먹었으니 그곳을 구경가봐야 되겠지요?



여기도 시내버스가 다닙니다.

이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장기에 열중인 사람들 모습이 재미있더군요.

훈수꾼들이 훈수 두는 것은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똑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