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20

[치앙라이] 2월 넷째 주일 예배

정안군 2020. 2. 23. 17:22

 

 

 

 

 

브릭스 목사, 치앙라이의 엄청난 공헌자(Dr. Briggs, A gracious benefactor of Chiang Rai)

 

설교자 : 씨리랏 푸쑤린캄(Sirirat Pusurinkham) 목사

 

마태복음 22 : 37 -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요한1서 3 :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오늘 읽은 두 성경 귀절은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쉽지만 행동으로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두 성경 귀절은 브릭스 목사의 생애에 이루어졌습니다.

교회가 브릭스 목사가 치앙라이에 끼친 공헌을 기념하면서 적어도 그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그는 행동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

브릭스 목사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행복한 삶을 뒤에 두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시암(Siam)과 같이 멀고 병에 찌든 나라로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867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그는 1919년 52세의 나이로 소천하였습니다.

 

1890년부터 1900년까지 10년 동안 람빵(Lampang)에서 일한 다음 , 1900년부터 1918년까지 18년 동안 주를 섬길 치앙라이로 옮겨 왔습니다.

동료 선교사는 브릭스 목사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치앙라이 선교 센터는 세상에서 가장 멀고 외진 곳이었다. 방콕에서 그곳에 가려면 배와 코끼리 등에서 두 달을 보내야 했다. 뉴욕에서 시암까지 여정보다도 더 길었다. 그 시절에는 아무도 그를 찾아 오지 않았고 브릭스 목사가 직접 했던 의료 활동 말고는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방을 단지 몇 가지 도구가 있는 진료소로 이용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오버브룩 교회의 재정 지원은 오버브룩 병원의 설립으로 이어졌는데, 이 병원은 뒤에 수 많은 환자를 책임지게 된다’

 

열심을 다해 치앙라이 제일교회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1911 - 1912년에 걸쳐 855라이의 땅을 샀고, 교회 구성원들이 건축을 위해 2,375밧의 헌금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초가 놓인 뒤에 재정 부족으로 멈춰지게 됩니다.

브릭스 목사는 건축을 위해 4,000달러의 기부금을 얻는데 성공을 합니다.

예배당 건축은 삼 년이 걸렸고 1917년 12월 31일 헌당을 하게 됩니다.

 

브릭스 목사 가정은 건축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습니다.

브릭스 목사는 아내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기부금에 내 아내 애너벨 브릭스(Annabel Briggs)도 많은 헌금을 보탰다. 새 성전 건축에 대단히 기여한 한 사람이기도 했으나 모퉁잇돌을 놓는 행사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그 때 아내는 다섯 자녀의 양육을 위해 캐나다 밴쿠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의 허락이나 동의없이 여기에서 언급을 한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아내의 희생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치앙라이 제일교회 예배당 건축은 가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브릭스 목사는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1914년 11월 5일 날짜인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편지에 최근 예배당 건축 사진을 보냅니다. 담 위의 짚이 있는 지붕은 비와 햇빛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모든 문과 창의 벽돌 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술이 없는 현지 노동자와 경험 없는 선교사에게 너무 나쁜 것 아닐까요? 마치게 되면 어머니께서 이것을 좋아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 도와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새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브릭스 목사는 도시의 보 트리(Bo Tree) 문에 서서 건축물을 바라 보았습니다.

작품이 매우 자랑스러워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도시의 정문으로 들어 서면 멀리서 이 예배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 안으로 들어 가면 길잡이 건물과 게스트 홈, 거주지 그리고 신자 사무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또한 치앙라이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능한 의사로 현대 의학과 의술을 도입하였습니다.

건축과 공학 그리고 벽돌 제조와 집 건축에 전문가이기도 하였습니다.

브릭스 목사가 우리에게 전한 작품은 오버브룩 병원, 치앙라이 위타야콤 학교, 치앙라이 제일교회 옛 건물, 주지사 공관, 시청, 교도소, 감독 숙소, 선교관, 싸트리 위차캄(현 제이 교회 사무실), 우체국과 치앙라이 시가지 도시 계획이었는데, 이는 미국 워싱톤 DC의 계획에 사용했던 것이 모델이었습니다.

 

1918년, 유럽 전선에 있던 맏아들 알버트가 전사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일은 그를 매우 우울하게 하였고 이로 인해 궤양과 빈번한 허리 통증과 배탈을 겪게 됩니다.

환자와 함께 자기를 치료하여야 하게 되었습니다.

안식년이 되었을 때, 캐나다로 돌아가 밴쿠버 제너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는 캐나다 밴쿠버 마운틴 뷰 묘지의 장남 알버트와 두 번째 부인이었던 애너벨 옆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 갔습니다.

묘지명은 디모데후서 1 : 12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2. 그가 시작한 것은 계속된다.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 해, 브릭스 목사 소천 100주년에 시청에서 열린 ‘브릭스 목사를 존경하는 모임’이 주최한 이벤트에 여러 모임이 모였습니다.

여기에는 모임 회장과 치앙라이 주지사 쁘라짯 쁘라찻싸쿤(Prajaj Prachatsakul)도 함께 하였습니다.

현지 불교 신자,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 지도자도 인사를 했습니다.

오버브룩 병원장 윌 쉬릭(Will Schlick)은 기념 책을 제공하였고 여러 단계의 에세이 콘테스트도 있었습니다.

치앙라이 미술가들은 브릭스 목사와 그의 업적을 그렸습니다.

현지 미술작가 쑤윗 짜이폼(Suwit Jaipom)의 초상화 작품은 이 예배당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오늘 2020년 2월 24일은 브릭스 목사님 소천 101 주년입니다.

치앙라이 제일교회와 필라델피아 오버브룩 교회는 오늘 그를 기념한 예배를 드립니다.

내일, 치앙라이 위타야콤 학교는 브릭스 목사를 기념하고 오버브룩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는 예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도를 계속 합시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더욱 더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브릭스 목사는 치앙라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14년 7월 23일에 그는 태국으로의 마지막 귀환 때 치앙라이 시민들이 그를 어떻게 환영하였는지 그 인상을 겸손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여기로 돌아 오는 중에 시간을 거슬러 호놀룰루, 고베, 마닐라와 홍콩 항에 도착할 때를 회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가기를 원하시고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었다. 지금 나는 옳바른 일을 하고 있음을 안다. 여기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귀하게 쓰이는 것 같다. 그리고 매우 정중한 태도로 대접 받아 온 것이 부끄럽다. 시민들은 나를 맞기 위해 시 남쪽 길을 따라 수 킬로를 열지어 있었고 선교관까지 나를 따라 왔다. 남녀 학생들, 씨암인과 라오스인, 학교의 교사들, 교회 장로들, 내가 거의 잊은 환자들, 노동자들과 남성, 여성과 청소년 단체의 구성원들이 있었다. 미국기, 영국기와 씨암기가 길을 따라 펄럭이고 있었다. 놀랄만한 폭죽 행사도 있었다. 그리고 교회가 위치한 곳을 향하여 성문을 지나며 걸었던 과정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과연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히 미스터 짜런(Jaroen)과 미세스 케씨니 분야짠트라논(Kesinee Bunyajanthranon)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 분들은 브릭스 목사의 업적을 상기시켰고 소천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를 계획하였으며, 스티븐 킹(Steven D King)이 직접 저술한 브릭스 목사의 업적의 일화가 담긴 12권 분량의 책을 기증하였습니다.

그들을 도운 수 많은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치앙라이 시민들은 고향이 번영하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치앙라이 거주자들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온 민족에게 선포하도록 협력을 다 할 것입니다.

 

아멘.

 

뱀발)

바이러스가 한국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태국은 조용하다.

교회 예배에서도 마스크를 한 사람은 극소수.

한국도 곧 안정을 찾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