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2

[치앙라이] 반 빠꾸이 라후 마을

정안군 2016. 8. 23. 23:47

 

 

 

 

 

태국 북부 주인 매홍손, 치앙마이 그리고 치앙라이는 미얀마와 국경을 같이 나누고 있는데, 그 국경 부근은 거의 험한 산입니다.

그 산 여기 저기에는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는데, 높은 산에 살고 있어 흔히 고산족이나 산족으로 부르지만 한 민족은 아닙니다.

이 고산족이 이 지역에 살게 된지는 불과 백여년 전이라 하는데, 이들은 중국의 압박으로부터 또는 미얀마의 내전을 피해 여러 경로로 이주하여 모여 들었다 하네요.

태국인들은 태국북부의 고산족들을 새로운 주민이라는 뜻으로 '차오카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들은 태국 정부의 관심 밖으로 놓여 있어 교육은 물론 주민증 발급도 거의 어려운 열악한 상황에서 헐벗고 힘든 생활을 이어 왔습니다.

하기는 반기는 사람도 없는 태국 땅으로 숨어 든 이들이 환영 받을리도 없었기에 한동안 무관심의 대상이었다가, 이제 그들의 전통생활 방식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이방인들에게 관광 상품으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치앙마이나 치앙라이에서 민속 의상을 입은 관광 상품이 되어 나이트바자라는 야시장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게 그들입니다.

가난에 시달린 고산족 처녀들은 도시의 노동자나 환락가로 팔려 나가기도 총각들도 화려한 도시 생활을 그리워 해 도시 속 하층민으로 흡수되어 가니 그들의 인구는 계속 줄어 들고 있습니다.

태국은 아열대 기후이지만 고산족이 살고 있는 산지는 일교차가 크고 심지어 겨울에는 추위로 죽는 고산족까지 많이 발생하지요.

이들은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곤 하지만 태국인 평균 생활에 비하면 모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며, 태국 정부로부터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 소수민족들이 태국 국적을 취득하기는 아직도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어린이들은 학교에 진학하는 비율도 높아져서 태국 국적을 전보다는 쉽게 얻을 수 있게 되긴 했습니다.

국적을 취득하려면 1년에 2번 심사하는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미취득상태가 많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국에 살면서도 태국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바로 태국에 사는 고산족입니다.

 

그 고산족 가운데 라후라는 소수 민족이 있습니다.

이들도 다른 고산족처럼 산에 사는데 다른 민족에 비해 더 높은 산 그것도 정상부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수도 확보하기 어렵고 생활 환경도 다른 민족에 비해 훨씬 열악하지요.

이 라후도 민족 의상의 색상 구별대로 여러 종족으로 나뉘는데, 검은 라후 푸른 라후 그리고 붉은 라후가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 간 마을은 그 가운데 붉은 라후 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은 빠꾸이.

강 마을 타떤에서 뒷쪽으로 보이는 높은 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타떤 마을 외곽에서 시작하는 군사도로 1314번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오른쪽에 철망으로 위압적인 모습을 한 건물이 나타나는데, 그러면 빠꾸이 마을에 다 온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빠꾸이 라후 마을.

 

참 사연이 많은 마을입니다.

불과 몇 십년 전, 태국 북부 미얀마 국경 부근이 태국 정부의 힘보다는 마약왕 쿤사의 힘이 더 강하던 시절.

빠꾸이 마을도 태국 정부의 통제보다는 마을 족장의 권위가, 사실은 족장보다는 쿤사의 똘만이들의 힘이 더 크던 시절이 바로 그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약 통제를 위해 미국이 개입하고 태국 정부의 힘이 확장되면서 빠꾸이 마을도 어지러운 시절을 맞게 됩니다.

마을 어귀에 군인 초소가 세워지고 태국 군인이 주둔하면서 마을에는 군정이 실시가 되고 가끔씩은 쿤사 측과 총격전도 벌어져 마을 주민의 피해도 있었다더군요.

그러면서 마을은 군인들의 철저한 통제 아래에 있어 외부인들도 접근이 안 되고 마을 주민들도 외부로 나갈 수도 없게 철저한 격리 속에 놓이게 됩니다.

군인 세상이 이루어지면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어린이와 여성입니다.

빠꾸이 마을의 밤은 이 동네 처녀들에게 악몽의 시간이었다더군요.

태국에 살지만 태국 사람도 아니고 민족이 다르니 엄청난 피해에도 어디에다 하소연도 못하고 사는 세월이 무지하게 길었던 빠꾸이 라후 사람들.

 

사연이 조금씩 외부로 알려져 군인 초소가 다른 곳으로 이전되면서 숨통이 조금은 틔였다 합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와 저주의 대상이었던 그 초소는 학교로 바뀌어 한참을 그 역할을 했다고.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 담장에는 해맑은 어린이들의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이 학교를 끼고 들면 빠꾸이 마을이 시작됩니다.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안스럽더군요.

왕실 프로젝트로 양귀비 대신으로 소득 작물로 주었다는 리치 나무가 유난히 많습니다.

하지만 리치 나무로는 가난을 벗어나기는 힘들었나요?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가면 닭, 돼지, 개들이 주민들보다 더 많이 보입니다.

이 동물들은 다 자기 먹을거리를 스스로 해결하는 게 이 동네의 법칙입니다.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무슨 동물들에게 먹을거리를 주겠습니까?

생활이 나아진 지금도 이 법칙은 변함이 없다 하네요.

 

가장 안쪽에는 예배당이 있습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

전도사는 출타하고 전도사 아버지가 우리를 맞습니다.

경남의 한 지방 교회가 지원을 하여 지은 예배당 건물은 이 동네에서 가장 좋은 건물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잠시 머뭅니다.

이제는 쿤사도 없고 태국 군인들의 횡포도 그쳤고 어린이들은 태국 국적을 얻어 아래 타떤의 학교에 다닌다고 하는데 이 마을은 무엇이 좀 나아졌을까요?

 

대낮이라서 그런지 마을에는 사람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빠꾸이 마을을 나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든 모든 것은 세월 속에 묻히겠죠.

다시는 불행한 시절이 오지 않고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빌어 봅니다.

 

빠꾸이 라후 마을.

알지 못하던 마을에서 아는 마을로 바뀌었지만 그게 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