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17 여행

황혼기 그리고 가을

정안군 2017. 11. 8. 10:14

 

 

 

 

거의 일 년만에 엄마를 보러 갔다 왔습니다.

요양원에 가신지 이제 두 해가 다 되어 가네요.

그 동안 치매 후유증으로 오전이나 간신히 목소리가 나와 전화 통화도 오전이나 간신히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만 동생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정신은 갈수록 총명해지신다고 했었죠.

 

간다고 연락을 하지 않고 간지라 아들을 만난 엄마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습니다.

다리 힘이 없어 걷지는 못하나 휠체어를 타고 이리 저리 다니실 수는 있어서 넓은 홀에 나와 계셨습니다.

점심 시간에 맞춰 간지라 따로 준비된 식탁에서 엄마가 식사하는 걸 지켜 보았어요.

우리 엄마는 나 닮아 생선을 많이 좋아 하셔서 갈치를 튀겨 가서 함께 드렸죠.

그런데 기껏 대 첨 드셨나요?

갈치 한 토막을 다 못 드시네요.

 

고등학교 때 배운 박인로 대감의 시조가 생각납니다.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柚子(유자)이 안이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난

품어 가 반기리 업슬새 글노 설워 하나이다.

 

물론 살아 계시기는 하지만 그 좋아하던 생선을 거의 드시지 못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몹시 서글펐습니다.

 

전에 틀이가 맞지 않아 새로 해야 되겠다는 말씀을 전화 중 하셨는데, 제부가 친구인 치과의사에게 모시고 가서 틀이를 조정해 드렸다네요.

다행히 조금 나아졌다고 하시네요.

식사를 마치고 틀이 청소를 한다고 위 아래 틀이를 다 빼니 엄마 모습이 영락없는 외할머니 모습입니다.

 

목소리가 잘 안 나오니 혼자라도 소리를 내어 말을 해 보시라 했더니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거의 모두가 치매 노인이라서 말이 안 통하고 몇 정신이 멀쩡하신 분은 귀가 어두워져 소리를 알아 듣지 못한다고.

게다가 요양사에게 말을 걸어도 필요한 말만 하고 바로 가버리니 말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하십니다.

 

내가 나이들어 요양원에 들어 올 때가 되면 일본에서 한참 개발 중인 간호 로봇을 하나 장만해서 들어 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듣더군요.

시중도 해 주고 말벗도 해 주는.

사람 같기야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요?

 

엄마 침대 옆의 벽에는 젊었을 때 곱게 차린 엄마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참 예쁘셨군요.

그런데 딸은 하필 아버지를 닮았을까나.

 

아직 화장품은 프랑스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레 눈꽃물을 쓰시네요.

마음은 옛날인데 현실은 파파 할머니.

눈꽃물로 화장을 한들 누구 봐 주겠습니까만은.

어기장 놓지 않고 비싸다는 그 화장품을 사다 주는 동생의 마음이 퍽 고맙습니다.

 

늘 비슷한 것 묻고 답하기.

그리고 그리움이 담긴 말들.

 

아직 애기 소식은 없어?

그런가 봐요.

둘은 요즘도 그렇게 바쁘대?

그렇대요.

논문 때문에 정신이 없나 봐요.

 

오지 않는 손자가 그립기도 하고 자손이 기대 되는 모양이신데, 별로 해 드릴 말은 없네요.

 

같이 계신 분들 연세를 보니 대개 80대.

그렇다면 이제 나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팔다리 힘이 있을 때 남은시간 더 소중이 써야겠다고.

 

요즘 지는 낙엽을 보면 그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

겨울이 멀지 않았으니 가는 가을을 더 절실하게 느껴지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겨울의 밤이 길어도 더 이상 엄마와 옛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습니다.

 

이래저래 가을이 깊어가면서 아쉬움이 커집니다.

아, 세월이여...

 

다시 충주에 돌아 와서 교인 어머니 상 당하셨다 하여 장례식장에 갑니다.

고인은 우리 집 근처에 사셔서 교회 갈 때마다 골목 모퉁이에서 교회 차를 기다리곤 하셨는데 이젠 돌아 오지 않는 천국 행 차를 타셨네요.

영정 사진을 뵈니 참 곱게 늙으셨다 생각이.

한번도 말을 나누어 본 적이 없는 분이지만 사진 속 고인에게 평안하시라 인사를 드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평안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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