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21 살이

다시 크리스마스

정안군 2021. 12. 27. 15:09

울 둥이들은 올해 어린이집에서 처음 만난 산타를 보고 너무 놀라 소리 지르며 울어 당황한 할배가 선물도 못 주고 사라졌다 하고 캐나다에 사는 둘째 아들은 올해도 수 십 년째 산타가 오지 않았다고 툴툴거리더구먼, 아들 씨 이제는 산타를 기다릴 나이가 아니가 직접 산타가 될 나이라고요.

아드님,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이기 있기 없기?


산타가 있다고 믿는 나이.
산타가 없다고 믿는 나이.
직접 자기가 산타가 되는 나이.
거기에 산타든 뭐든 관심이 없는 나이.
나는 뭘까요?
보나 마나 뻔한 네 번째.

그런데 올해는 산타가 나에게 귀하신 두 분과 만남을 선물로 주고 가셨어요.


첫 분은 크리스마스인 토요일.
성탄 축하예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원로 장로님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시다가 나를 부르시더이다.
소개를 받는데 그분은 우리 교회 출신이신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분은 언젠가 독일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우리 교회에 들렸었는데 그때 잠깐 인사를 나눈 것이 벌써 이십여 년 전.
또 더 오래전.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 부부가 결혼을 하고는  신혼여행 차 모 도시에 들렸어요.

그때가 마침 부활절인지라 같은  그 지역에 있는 우리 교단의 모 교회를 찾아갔는데 그분이 그 교회에서 전도사로 있어서 잠깐 만났던 적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직접 만난 것은 세 번째이긴 한데.
하지만 그건 나에게나 기억되는 일이지 이분에게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겠지요.
어쨌든 그냥 가시겠다는 것을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점심을 대접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독일 쾰른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계셔서 야곱같이 험난한 젊은 시절 인생 여정을 담담히 뒤돌아 돌 수 있는 여유가 생기셨더군요.
워낙 전도가 망망했던 분이라 당시에는 그분의 거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는데, 우여곡절 속에 독일에 가서 신학을 공부했답니다.
열심히라고 단순히 말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그야말로 극상의 노력을 하여 박사 학위를 받고 거기서 E대를 졸업한 한국 여성을 만나 가정을 이루어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사신다 합니다.
은퇴를 하고 그동안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하고 그냥 마음만 아프게 해 드렸던 어머니 마지막을 돌봐 드린다고 혼자 한국에 왔고 그렇게 보살펴 드렸다네요.
얼마 전 어머니는 소천을 하셨고 이제 세상에서 최고로 귀한 사람인 아내를 위해 남은 생을 사시겠다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 전 어쩜 마지막일 수도 있는 고향 모교회를 찾아오셨다는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이 그분을 기억하는 분들은 우리 교회에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그나마 친구들과 가까운 후배는 한 명도 못 만난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부부라도 그분의 추억을 함께 할 수 있어 퍽 다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위해 우리 부부를 준비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분은 사십 여전 전에 독일에 가셨고 이제 독일 시민이 되었지만 우리나라가 이토록 멋진 나라가 되어서 독일 사람 사이에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시네요.
혹 언젠가 독일에 가게 되면 찾아가겠노라고 하며 인사를 끝냈습니다.
베를린에 있는 은인 때문이라도 독일은 한 번은 가 봐야 되는데 언제 그 기회가 올지.

크리스마스가 토요일이라서 그다음 날도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뭔가 머릿속에 혼선이 옵니다.
어제가 주일이었던가 오늘이 주일인가.
주보를 보니 마침 오늘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있는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시네요.
이 선교사는 아버지가 우리 교회 장로님이셨고 한 때 중등부 교사를 같이 하기도 했었습니다.
점심 식사는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준비할 것이니 저녁이나 대접을 하나 어쩌나 했더니 지금 시국이 코로나 난리 중이라서 점심 식사 대접의 복이 우리 부부에게 떨어졌습니다.
좀 황당한 시추에이션이긴 했지만 어쨌든 오랜만의 만남이니 기쁩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교사는 얼굴에 이제 세월의 무게가 많이 느껴지네요.
벌써 오십 중반이라 합니다.
그러네요.
두 부부가 올해 여름 한국에 왔다고 했는데 아마도 후원 교회를 돌아보려는 목적 외에 사모님 건강을 돌보려는 목적도 있는 듯했습니다.
선교사 생활이라는 것이 참 힘듭니다.
남 나라에서 산다는 그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멕시코에서는 청소년 사이에 한국은 최고의 선망 대상 국가라서 선교 조건이 훨씬 좋아졌다 합니다.
BTS가 자기 신랑이라고 핸드폰에 사진을 붙인 사람은 널렸다고.
코로나 상황이 벌어지면서 한국의 위상은 BTS 인기만큼 하늘을 찌른다 합니다.
멕시코 가고 싶다고 하니 언제든 오시라고.
그럽시다.
점심을 잘 대접하고 언젠가 멕시코에서 만나지요 하고 헤어졌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옛날의 추억이 그립고 다녔던 교회도 그리워지는 모양입니다.
우리 아내는 이 교회 출신이라서 나가 있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왔을 때 맞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많이 안타까운 모양입니다.
멕시코에서 온 선교사만 해도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어머니는 딸네 집으로 가셔서 우리 교회에 남은 가족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니 선교사를 잘 아는 사람도 자꾸 없어져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네요.
장강의 윗물이 아랫물을 밀어내듯이 아랫세대가 윗세대를 밀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도 밀려가는 신세가 되다 보니 참 옛날이 아련합니다.
코로나 역경 속에 나라가 망해 가는 것처럼 난리 치는 우물 안 개구리들과는 달리 외국에 살면서 위상이 나날이 올라가는 모국이 자랑스러운 외국에 체류하는 분의 소감을 들으니 나도 언제 우물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다시 나가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올해는 그렇고 내년에는 독일도 가 보고 멕시코도 가 보고 캐나다도 가 보고 또 태국도 가 보고 그럽시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것은 고등부 시절 친구네 집에서 고등부 인원 전체가 몽땅 철야하며 놀던 기억 그리고 캐빈이 어른을 골려 먹는 장면이 신나고 재미있어 보고 또 보던 아들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매년 크리스마스는 올 것이고 그때마다 누군가와의 만남은 계속되리라 기대하며 올 크리스마스를 접습니다.
이제는 ’메리 크리스마스’는 갔고 ‘해피 뉴 이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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