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 2022

[이즈미르] 교회 메들리(상)

정안군 2022. 6. 16. 00:53

이제 이즈미르 생활을 접을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5월 20일 안탈리아에서 비행기로 이곳에 와서 이제 4주가 되었고 이번 주 토요일인 모레에는 이즈미르를 떠나 새 나라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날라 가게 된다.

대단한 것이 처음 호텔 생활을 할 때나 지금 아파트 호텔에서 지낼 때나 하루도 숙소에서 종일 지낸 적이 없어 어딘가를 다녔다.

그렇다고 그렇게 무리하게 다닌 것도 아닌데.

투르키에 다른 곳에서도 그렇고 특히 이즈미르 생활도 너무 마음에 들어 이래저래 떠나기가 아쉽다만 늘 하는 말대로 나그네는 길에서 머물지 않으니 다음을 기약하며 가야겠지.

오늘은 시내 교회 나들이를 다니기로 한다.

오늘 가는 교회들은 거의 항시 열지 않고 시간제한이 있는데 그것이 오후 3시에 개방이라서 시간을 맞추기가 좀 어려웠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뤄 둘 수는 없는 일이고 해서 연속되는 나들이에 몸이 피곤했지만 거룩한(?) 마음으로 나섰다.

오늘 일정은 Agia Fotini 정교회, St. John 가톨릭 교회, St, Polycarp 가톨릭 교회 그리고 Santa Maria 가톨릭 교회로 정했다.

St. Vukolos 정교회는 거리도 멀고 성인 칭호가 붙은 Vukolos라는 분이 누군지 잘 알지 못해 오늘 일정에서 뺐지만 이 땅에서 정교회가 받은 어려움을 생각하면 엄청난 교회라는 것은 인정을 하고 싶다.

 

우선 간 곳은 Agia Fotini 정교회.

지도에는 Aya Fotini Rum Ortodoks Kilisesi라고 나오는 그리스 정교회이다.

예배당 모습이 크지도 않고 아담한 것이 참 예뻤다.

 

구글맵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한다고 되어 있어 그렇게 알고 갔는데 그게 아니고 오전 9시부터 개방을 하여 오후 1시까지 그리고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개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구글맵에 나온 목요일 스케줄대로 개방이 되니 가보고 싶은 사람은 참고하실 것.

우리가 간 시간은 오후 2시 40분 정도였는데 개방을 안 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대문을 잠가 놓은 것이 아니고 교회 본당 문만 잠겨 있어서 정원은 구경할 수가 있었다.

이 교회도 이 지역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시련을 담고 있는 듯했다.

구글맵에 소개된 사연을 보면 처음에는 네덜란드 개신교 예배당으로 출발을 하여 그리스와의 독립 전쟁 시에 시련을 겪고 그 후에 그리스 정교회 측에서 사용을 하고 있는 듯하다.

왜 네덜란드 개신교 측에서 교회를 내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무슨 사연이 있겠지.

 

대문에서 본당까지 이어지는 정원은 길지는 않았지만 차분한 것이 제법 예뻤다.

돌담이 양쪽에 있어 제법 고풍스럽기도 했고.

 

정원에는 나무 그늘 아래 묘들이 가득했다.

이런 모습은 이슬람 자미에서는 많이 보았는데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생소한 것이라 다른 나라의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네덜란드 신교도일까 아니면 그리스 정교회 사제들일까?

궁금한 것은 많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그저 보고만 지나갈 뿐.

하긴 모르면 어떠랴.

오후 5시에 와서 안을 좀 볼까 하다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 성화 생각에 그냥 접고 말았다.

하긴 그 성상이나 성화 문제는 간단한 게 아니다.

이 문제가 결국 가톨릭과 정교회의 분열로 이어지기까지 하니.

아무래도 개신교는 가톨릭 계열이라서 성화에 좀 익숙하지는 않다.

성화에 거부감이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런 영향을 받았을 테고.

 

멀지 않은 곳에 St. John 가톨릭 교회가 있다.

성이라는 표현보다는 사도라는 표현을 써서 사도 요한 교회라고 부르겠다.

여기는 주일날은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지 않고 평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개방을 하는 곳이다.

개방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이렇듯 철문과 쇠창살로 굳게 닫혀 있어서 안의 모습조차 보기 힘든 곳이다.

이곳의 교회 현실이 어떤지 잘 말해 주는 듯하다.

3시가 지나도 문이 안 열리기에 이거 영 꽝인가 했더니 5분 정도 지나서 문이 열렸다.

닫는 것은 정시지만 여는 것은 정시가 아닌 모양이다.

 

건물이 대개 돔 형식이라서 예배당을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여기도 그냥 DOM이다.

단아한 모습이 제법 아름답다.

독수리와 함께 복음서를 품에 안고 서 있는 사도 요한 동상이 예배당 앞에 자리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12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야고보의 형제이며 전통적으로 요한복음과 서신 그리고 계시록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분이다.

셀추크에 있는 사도 요한 교회에 그의 묘가 있다.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요한복음 21장 24절)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고 전했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을 기리며.

2014년 7월 5일 이탈리아 이세르니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상에 복을 내리시다.

 

복사들의 상이었나요?

누군가의 증오에 의해 목이 달아나기도 하고 또 어깨 부분부터 파손이 된 채로 놓여 있는 모습이 정말 처절했다.

이런 것이 광신의 모습이다.

모든 종교의 근본은 사랑이며 평화이거늘.

누구를 탓하기도 그런 것이 기독교가 이슬람에게 또 이슬람이 기독교에게 이런 행위를 한 것의 역사가 꽤 깊다.

무엇으로 인한 것이든 세상의 모든 증오와 갈등은 사라질 지어다.

 

여기도 글자를 누군가가 일부러 지웠는지 그런 모습이 상에 남아 있었다.

이래서 개방 이외의 시간은 마치 성처럼 단단하게 채우고 닫고 그랬군요.

 

이 땅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님 부디 이 땅에서 증오는 사라지고 평화가 정착되게 하소서.

 

본당 안의 모습은 단아했고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와도 모습이 비슷했다.

은은한 찬트가 본당 안에 흐르고 있었다.

그래 예배당은 이래야지.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 성화 앞에서 묵상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인간은 이런 모습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비잔티움 교회의 양식대로 돔 지붕 아래 제단을 두었다.

화려하지만 지나침 없고 경건하지만 억눌리는 감이 없는 곳이다.

 

여기가 사도 요한 교회라서 그런지 요한의 이름을 딴 교황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요한 23세.

제2차 바티칸 공회를 소집하여 가톨릭 교회에 대변혁을 일으켰고 세계 평화, 빈부 격차, 노동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후에 성인의 반열에 오르신 분이다.

 

이 분은 요한 바오르 2세.

폴란드 출신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나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다.

이 분도 성인의 반열에 오르셨다.

 

예배당 뒤쪽 모습.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이런 예배당에서 드리는 미사에 꼭 참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