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여행기/미얀마 태국 2012 여행

러브 인 미얀마 9 - '쫑갈레이' 센터 방문

정안군 2012. 2. 7. 09:48

 

1 월 10 일 화요일

 

대전의 한 교회가 이곳에 단기 선교를 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단기 선교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그 말보다는 그냥 문화체험이나 문화 공유란 말을 쓰면 어떨까 생각한다.

 

남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는 것인데, 요즘 우리나라 교회에서 실행하는 단교 선교는 그 나라를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미개한 부족이나 민족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몰이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단기 선교와 선교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행태에 많은 문제점은 무엇일까?

 

이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돈이다.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우는 사정이 이 동네라고 다르지 않더라고.

 

물론 정말 돈을 떠나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교사들도 있기는 하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고아원 사역을 하던 한 선교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그런 분들은 정말 소수이다.

 

솔직히 말하면 단기 선교는 해외여행과 봉사에 대한 갈증(?)이 잘 결합된 문화 행위가 아닐까?

 

한마디로 말하면 선교는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건 그렇고.

 

오늘 일정을 같이 할 팀은 어제 이곳에 도착해서 시즌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가 그 시즌 호텔로 가서 만나기로 한다.

 

 

시즌 호텔은 공항에서 걸어 10여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공항에 늦게 도착하면 이 호텔로 오면 좋겠다.

 

겉보기에는 꽤 큰 규모인데, 로비에 들어서니 좀 허름한 티가 난다.

 

 

많은 사람들이 로비와 호텔 현관에 있었는데, 이 팀들이 우리와 함께 할 팀 같았다.

 

 

막간을 이용하여 장모님 서비스 사진.

 

잠시 후 이곳 선교사가 트럭을 2대 몰고 등장하여, 이 팀들에 우리를 소개한다.

 

그리고는 바로 트럭 짐칸에 적당히 승차하여 ‘쫑갈레이’라는 곳으로 향한다.

 

이 ‘쫑갈레이’는 수도 양곤의 변두리 군의 면단위라고 보면 된다. 

 

 

 

양곤 공항에서 1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시골길로 들어서면 나타나는 시골 동네인데 이곳 선교사가 지역 센터로 지어 놓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잠시 준비 모임이 있고 각자 맡은 임무에 따라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크게 보면 한의사를 포함한 한방 봉사. 

 

 

또 미용 봉사.

 

미용 봉사는 이발과 염색 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 현지 병원 소속 간호사 2명이 나와 진료를 하고 또 전직 우리나라 의사인 선교사 부부가 와서 치료와 처방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 청년들의 유치원 봉사가 있고 여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적당한 장소에서 떠들며 놀기이다.

 

당연히 우리 부부와 장모님은 떠들며 놀기의 임무가 주어졌다.

 

원래 세상이라는 것이 바쁜 사람은 바쁘고 이렇게 할 일 없는 사람들은 빈둥거리며 노는 사회라는 거.

 

주변의 모습은 참 정겨운 그림이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몰고 다니며 먹이를 구해주는 모습.

 

참 오랜만에 본다. 

 

 

 

거위가 특유의 꽥꽥 소리를 내며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수탉들은 덩치는 작지만 수탉 특유의 거만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일들이 이곳 지역민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여기 환자들은 만성 질환자라서 침 몇 방에 해결될 병이 아니고, 머리야 동네에 한두 명씩은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유치원 봉사는 아이들에게 바람만 잔뜩 집어넣고 가는 격이라서 나중에 이런 화려한 보조 도구가 없는 현지 유치원 교사들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

 

사실 현지인보다는 봉사 팀에게 오는 효과겠지만.

 

이런 오지(?)에서 열심히 봉사하면서 느끼는 뿌듯함이 있겠고, 뭐 등등.

 

사실 전에 내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조금 들여다보면서 그 내용에 대해 시큰둥해진 면이 있다.

 

정말 뭐라고 말하기 힘든 그런 것인데, 아직도 명쾌하게 이거다 하는 것이 정의되지 않는.

 

이 일행 중에는 나와 같이 빈둥거리기 임무에 속한 분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특유의 족보 캐기를 해보니 나와 동갑네였다.

 

사실 나보다 한 살이 많지만 나는 7살에 학교를 가서 나보다 한 살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대학에 재수하여 들어가면서 제자리를 찾기는 했지만.

 

그래서 동갑네인데 이 분이 아주 재미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유대감이 생겼고 또 집사람과 같이 일하는 분의 남편과 동네 친구라고.

 

이렇게 걸면 걸린다는.

 

이 동네야 현대화가 아니고 근대화된 통신 수단도 없으니 소문으로 알려지기 마련이라서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방문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는데 환자로 오는 사람들을 보니 거의 중환자 수준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사람에게 침 몇 방을 놓아 주는데 그래도 이게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하기 보다는 뭔가 좋은 것이 있겠지 하는 희망으로 오는 것 같았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나라 온 교회가 힘을 합해 병원을 지어주고 의사를 파견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적어도 부정적인 부분이 많았던 초기 미국 선교사들도 그 정도는 했다고.

 

우리는 학교나 병원을 지어 주기보다는 각자 사람을 모아 자기 영역을 구축하기 바쁘다.

 

선교지에 처음 갔을 때에는 나도 이런 외형적인 모습을 보고 감격스러워 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무 감각도 없이 그냥 덤덤하기만 하다는.

 

빈둥거리며 노는데 점심을 먹으란다.

 

해서 유치원으로 쓰는 이층으로 올라가니 지붕이 함석이라서 열기가 대단하다.

 

열대지방 건물의 지붕이 양철이라.

 

양철과 슬레이트와 가격차를 물어보니 2배가량 된단다.

 

그렇다면 양철지붕이 가장 싼 재료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전통 방식인 야자나무 잎으로 엮으면 시원하고 좋지만 우리나라 초가처럼 일단 매년 갈아줘야 하니 귀찮다는 거.

 

그러니 양철 지붕이 대세인가 보다.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가 갑자기 생각나네.

 

이 녹이 슨 양철 지붕은 색깔이 붉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기가 막히게 멋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감각으로 느껴질 정도로.

 

허나 가까이에서 보면 gm~~

 

오늘 점심에 나온 음식은 주 메뉴가 쌀국수.

 

국물은 생선을 푹 고아서 만든 것이란다.

 

맛은 그럭저럭.

 

닭고기도 나왔는데 이 둘레를 돌아다니는 닭들의 모습을 보면 이디 살이 붙어있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먹을 것은 있더라는 거.

 

수박으로 디저트.

 

요즘은 햇살이 강해 수박이 참 달다. 

 

 

 

식사를 마친 후 뭔가 마를 닮기도 하고 무를 닮기도 한 뿌리채소를 더 먹고 바나나를 얻어먹기도 했는데, 오후 시간은 꽤 지루했다.

 

날은 덥고 갈 데도 없고.

 

다행히 날이 더워서 환자 손님들이 줄어들어 2시에 모두 철수하기로 한다.

 

오늘 이 팀들도 벌써 이곳이 3번째라는데 여러 번 온 사람들은 확실히 그 감동이 적다.

 

물론 처음오는 사람이야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 가는 것이고.

 

트럭 뒤에 낑겨 오다보니 오는 거, 가는 거 모두 쉽지 않다.

 

자리가 좁아 공간이 거의 없으니 발도 저리고 엉덩이도 아프고.

 

심마는 친구와 이야기하느냐 3일 연속 2시 넘어 잤다더니 이 와중에도 그냥 골아 떨어졌다.

 

참 한동대학교에 유학중인 쌩뛔와 만났다.

 

벌써 25살이라고.

 

한국에서 일 년을 지냈는데 한국말 솜씨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동대는 모두 영어로 강의를 한다는데, 아마도 한국어를 쓸 기회가 없어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영어만 잘해가지고는 경쟁력이 없으니 한국어를 잘 배워두라고 했다.

 

확실히 언어는 경쟁력이니까.

 

쌩뛔는 이 선교 팀을 보낸 교회에서 후원을 해준다고.

 

이 아이의 손에는 한국 대학생답게(?)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었다.

 

이런 아이들의 비극은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미얀마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거.

 

스마트폰을 다시 손에서 놓아야 하니.

 

그리고 괜찮은 직장에 괜찮은 보수를 보장하는 곳을 구하기가 힘드니 그냥 한국에 머무르려고 하지만 외국인에게 더욱 더 동남아시아인에게 한국이 호락호락한 나라인가?

 

어쨌든 현지 선교사가 거점으로 삼은 퍼깐 선교 센터로 돌아와서 다시 빈둥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짬을 이용해서 태권도 사범님은 아이들 가르치기에 분주하고.

 

 

모두들 피곤한지 잠에 빠지고 나는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이렇게 오후 시간을 보낸다는. 

 

 

뷔페로 나온 저녁을 먹고는 이 선교 센터 아이들이 펼치는 문화 공연에 참가한다.

 

미얀마에는 36개의 소수 민족이 있는데, 그중에는 한 주를 구성한 소수 민족도 있는가 하면 몇몇 수에 불과한 소수 민족도 있다.

 

여기는 16개 소수 민족의 아이들이 있다하는데 그 중 숫자가 많은 민족의 아이들이 그들의 고유 의상을 입고 나와 공연(?)을 펼쳤다. 

 

 

맨 처음은 당당한 소수 민족인 카친족.

 

이들은 전체 민족이 기독교화되어 이 미얀마 기독교계에서 엄청난 파워를 자랑한다고.

 

 

그 다음은 카렌(깨엔)족.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 식민자들의 손발이 되어 일하다가 해방이 되어 된서리를 맞는 민족인데, 요즘까지 정부와 많은 갈등이 있다. 

 

 

친족의 대나무 춤.

 

꿍꿍짝.

 

미국 프로농구(NBA) 경기장에서 나오는 리듬이다.

 

아이들이라서 서툴러서 발목이 많이 걸렸다.

 

 

라후족.

 

‘어보우자’ 인사말의 주인공.

 

모를 심고하는 모습의 춤. 

 

 

그 다음은 라왕.

 

 

 

그 다음은 연합팀이 나와서 공연하면서 민속 공연은 끝. 

 

 

 

민속 무용은 끝나고 그 다음은 허접 팀이 나와 블레이크 댄스 공연.

 

너무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우리 반 B-Boy 활동을 하는 친구 생각이 났다.

 

이 친구를 여기에 보내면 대단하고 열광적인 호응이 있을 텐데 하는.

 

또 수준도 많이 올려 줄 테고. 

 

 

마지막은 태권도 공연이 있었는데, 이것은 정말 수준급이었다.

 

공연을 하고 다녀도 괜찮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 태권도 팀은 이렇게 버젓한 모양을 갖추기 까지 사연도 많다.

 

이것으로 오늘 공연은 끝.

 

마지막으로 이들 전체와 악수 인사를 하는데 특별히 인연이 있는 라후족 아이들에게는 ‘어보우자’라는 인사말을 건네고 눈이 동그래진다.

 

어떻게 자기네 말을 알까 하는.

 

또 다른 라후 아이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 말 외에는 드세요 하는 ‘자자’라는 말 두 말 외에는 아는 말이 없으니.

 

그래도 이 말이라도 아는 것은 보름을 치앙라이 코끼리 마을에서 라후 어린이와 지낸 소득이란다.

 

흐~~~

 

모든 행사를 마친 뒤 밖에 차가 대기하고 있어서 대전 팀과는 인사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다.

 

엄청나게 피곤한 하루였다.

 

사실 한 일도 별로 없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