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볼거리

[치앙라이] 하늘 아래 첫 동네 도이창 반 마이 파타나 2

정안군 2014. 12. 12. 09:57


산 정상을 잇는듯한 도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면 도이창 마을이 나옵니다.

그 전에 벌써 도로는 삼박자를 갖춰 우리를 신나게 하네요.

비포장은 기본이고 옵션으로 좌우 커브와 굴곡.

오토바이와 트럭 만이 다닐 뿐 승용차는 얼씬 댈 수 없는 도로입니다.

저번에 갔던 미얀마 라후 마을 가는 길이 엄청나다고 했더니, 아직 태국에도 그런 도로가 있습디다.

하지만 그쪽과 다른 것은 다니는 차량이 더 많고 주변의 주택 사정이 훨씬 좋다는 점입니다.

 

조그만 학교가 있는 도이창 마을을 빠져 나와 사륜구동이라야 올라 갈 수 있는 오르막 거기에 낭떠러지 비슷한 내리막을 힘들게 내려 가면서 천천히 나가는데.

다행히 에어컨은 나와 먼지는 마시지 않아도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가다가 밖을 보랍니다.

경치 구경을 하라는 이야기인가 했더니, 길가에서 먼지를 홀랑 뒤집어 쓰고 있는 나무가 대상이었습니다.

오, 커피네요.

나무 허리와 가지에 커피콩을 다닥다닥 달고 있는 커피 나무.

이놈들이 먼지를 홀랑 뒤집어 쓰고 있습디다.

 

도이창 마을에서 위나이 집까지는 산 능선을 따라 7km 정도 가야 한다고 했는데, 체감 거리는 70km는 되는 것 같더군요.

한참을 그렇게 갑니다.

그러더니 한 언덕을 오르는데.

 

그 정상을 넘으니 짠하고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반 마이 파타나 .

오늘 우리가 목표로 삼은 동네입니다.

전형적인 아카 마을이지만 많이 현대화되어 집들의 모습도 꽤 깔끔합니다.

 

내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아카족 마을은 다른 산족에 비해 깔끔합니다.

다른 산족 마을에 가면 돼지 우리가 집 바로 아래에 있어서 자연 친화적으로 음식물 싸이클을 돌리곤 하는데, 아카족은 거의(라고 쓰고 절대) 돼지를 집 아래 키우는 법이 없더군요.

돼지에게는 돼지에게 알맞는 장소와 집을.

이게 아카족의 생활 방식처럼 보입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 마을은 돼지를 키우지 않는답니다.

친환경 커피를 수확하기 위해서라네요.

 

문화적인 차이를 제 삼자 입장에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이게 나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개 바로 아래가 위나이 집입니다.

우리 도착을 알고 위나이 아버지와 엄마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아카어로 우리들을 열렬하게 환영을 해 주더군요.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에서 그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겠습디다.

그리고 모처럼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난 두 꼬마는 두 사람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습니다.

 

하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들을 멀리 떠나 보냈으니.

안타까운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마을은 산 기슭에 자리했는데, 언덕을 파서 평평하게 만들어 집을 진 집터말고는 변변한 평지조차 없습니다.

지금은 커피 농사를 지어 수입원을 삼겠지만, 그 전에는 무엇으로 먹고 살았을까요?

이런 환경이니 돈을 만들기 위해 양귀비를 재배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겠죠?

여기는 골든 트라이앵글 지대로 전에는 양귀비 산지였는데, 왕실 프로젝트에 의해 커피 재배로 방향을 바꿨죠.

 

집으로 들어 오라고 해서 들어가 봅니다.

방안은 컴컴해서 뭔가를 구별하기도 힘들더군요.

 

이 산사람들 생활이 그랬듯 변변한 가구는 고물 냉장고와 TV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도 성능이 의심스러울 정도지만요.

 

그러면서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 간 이 분들 선조들과 이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강인한 생명력이랄까요?

 

그런데 사실 그런 감정이 든 것은 위나이 아버지를 보고 든 생각이 아니라 위나이 어머니의 모습에서였어요.

언젠가 루암밋 마을에서 라후 꼬마들하고 같이 지낼 때 그 꼬마를 보기 위해 산꼭대기에서 맨발로 몇 시간을 걸어서 내려온 할머니들의 발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었는데, 위나이 어머니 발이 그렇더군요.

거친 발은 둘째치고 발톱 부근의 살이 뭔가에 닿아 닳아서 맨들맨들합디다.

이런 강인한 여자들의 힘으로 거친 환경을 이겨낸 것이지요.

 

산족 남자들은 사실 별로 일을 않합니다.

지금이 한창 바쁜 시기인데도 위나이 아버지는 꿍야인지 뭔지 입안이 핏빛으로 물드는 것만 열심히 씹어 대더군요.

그런데 이건 내 선입견일 수 있어요.

워낙 산족 남자들은 놀고 먹어서.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수도 있겠죠?

 

위나이 아버지 어머니와 우리는 서로 말이 안 통해 멀끄러미 서로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커피 농장에 가자더군요.

그렇죠.

사실 우리가 커피 농장을 보러 왔으니.






동네를 횡단하여 언덕을 올랐는데, 거기서부터는 여기까지 온 길은 너무나 훌륭했던 길이 등장합니다.

경운기도 다니라면 힘들 길을 우리 트럭이 갑니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왜 이런 시 귀절이 생각났는지.

 

길은 차량이 한대 간신히 다닐 길인데, 바퀴 흔적이 너무 깊어 그 자리를 피해 다니는데, 오른쪽 옆으로는 그냥 절벽입니다.

절벽이라.

 

그런데 그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도 커피 나무는 있더군요.

저기는 어떻게 내려가서 딸까?

 

무섭기는 하지만 날마다 커피를 실어 나랐을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야 하고는 못내 견디기는 합니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가 비탈길을 내려 서니 거기가 커피 농장이네요.

 

잠깐씩 쉬기도 하고 점심을 먹기도 하는 허름한 농막이 있고 주변은 온통 커피 나무입니다.

색깔도 다양하더군요.

빨갛게 된 것이 익은 것인 줄 알았더니, 검붉은 게 다 익은 것이랍니다.

그런데 노란 놈도 있었어요.

그 놈들도 땄더군요.

 

이왕 왔으니 커피 수확 체험을 해 보라고 한 나무를 지정해 줍니다.

사실 따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습니다.

커피 나무 키가 작아 목을 쳐들 필요도 없구요.

그런데 이런 작업을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것도 매일하라고 하면 어떨까요.

 

내가 해 준들 얼마를 따겠어요?

그래도 한 나무는 책임지고 다 따려고 대들었는데.

 

집사람은 가지 속에 숨어 있던 벌에게 쏘이고.

나는 물리기만 하면 진물이 나면서 퉁퉁 붓는 벌레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하루가 지난 지금 집사람은 고만고만한데, 나는 왼쪽 다리가 뚱뚱 부었습니다.

간바지를 입고 갔어야 했는데, 커피 따기 체험은 생각을 안 하고 있다가 크게 한 방 당했습니다.

 

이제까지 이런 증세를 몇 번 겪었는데, 거의 일주일은 되야 간신히 회복이 되더군요.

이번도 그럴꺼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아프기는 되게 아프네요.

 

아무튼 사연만 남긴 커피 따기 체험은 짧게 마치고 농막에서 사람들이 돌아 오기를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위나이 어머니와 위나이가 자루에 뭔가를 가득 담아서 돌아 오네요.

아마도 까마득한 비탈 아래에서 거둬 드린 농산물인 듯 했는데, 그렇더군요.

메론만한 오이에 호박 더듬이 그리고 단호박 해서 몇 자루를 가지고 와서는 정리를 합니다.

오랜만에 온 딸에게 들려 보내려고 그랬나 봐요.

 

그 시간에 커피나 따지?

 

어떻게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커피 콩은 어짜피 사람이 없어 다 따지 못한다는군요.

그랬습니다.

 

우리 주변에 깔려 있는 커피 나무에서 그 많은 커피콩을 다 따야 하는데, 제대로 하려면 사단 병력은 있어야 될 듯 했어요.

아마도 전체 양의 30 %도 안 되게 수확하는 것 같았습니다.

 

커피 콩을 따는 게 전부 사람 손인데, 이 산꼭대기에 무슨 사람이 있겠어요.

그리고 집집마다 모두 수확을 해야 하니 사람을 살 수도 없겠고.

 

싼 가격이든 어쨌든 따서 담기만 하면 돈인데, 그 돈을 손이 부족해서 그냥 땅으로 떨구니 참.

 

아무튼 별다방이나 콩다방의 대 규모 수확 콩은 어떤지 몰라도 품격있게 마시는 커피는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친 것들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오늘 내가 딴 커피콩도 누군가가 어디선가 폼나게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되겠죠?

생각이 많아집니다.

 

또 한가지.

집사람이 총기있게 내놓은 방안이 그만 꿈으로 끝납니다.

총각무 씨를 여기에다 심어 그게 수확이 되면 돈 되는 사업으로 키워 주고 싶다던 생각이었는데.

여기 와 보니 그럴만한 땅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둘러 봐도 무를 심을만한 평지가 없었던게죠.

 

다시 위나이 집으로 돌아와 대충 마무리를 합니다.

우리가 매쑤아이를 거쳐서 온 것을 알고는 치앙라이쪽에서 오는 빠른 길이 있다고 알려 주네요.

그쪽은 치고 올라오는 거리가 짧으니 경사가 심힐 듯 한데, 도이 앙캉에서 한번 되게 당한 우리 차가 과연 올라 올 수 있을까 의심이 됩니다.

그래도 다음에는 한 번 해 봐야 되겠어요.

오는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니.

 

꼬마들과 작별이 아쉬운 꼬마들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져 온 길을 다시 돌아 옵니다.

도이창 창고 앞에서 우리 차로 갈아 타는데, 꼬마들 아빠가 애들을 하나씩 따로 따로 불러 돈을 주더군요.

큰 애는 천 밧이나 받았다고 입이 함박만해지고.

작은 애는 20밧을 받았는데도 좋다고 헤헤.

 

아빠도 떨어져서 지내는 딸들이 애뜻하겠죠?

역시 어쨌든 아빠는 아빠네요.

 

오늘 하루 너무 신났던 꼬마 둘은 피곤하지도 않은지 오는 내내 재잘재잘.

나도 이런 손녀들이 있었음 좋겠다.

 

하는 마음이 쬐끔 들었던 하루였습니다.

 

아무튼 커피 농장에 다녀 와 보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무슨 생각일지.

 

글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