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1998

[일본여행] 하기(萩 Hagi)로

정안군 2018. 9. 5. 19:06

옛날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일본말로 무카시바나시(昔話)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 아들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들과 함께 일본 여행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가족 패키지로 싱가포르를 다녀왔고 나 혼자 연수로 독일을 다녀오긴 했지만 본격적인 가족 배낭여행은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게 왜 일본이었나 하면 독일 연수 시절 일본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새삼스럽게 깨닫고 직접 일본이 어떤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일본 산 게임이라든지 만화 이런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일본에 간다고 하니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게 벌써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8년 여름이었습니다.

사실 IMF가 터지던 전 해인 1997년에 겨울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때는 날씨가 험해 배가 뜨질 않아 취소를 했었어요.

배로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 가는 일정이었는데,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왔었죠.

IMF 시절이라 외화가 엄청나게 비쌌지만 독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있던 독일 마르크가 엄청나게 오르는 바람에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어요.

물론 지금 독일은 통화가 마르크가 아니라 유로화를 씁니다.

 

아무튼 6개월 후, 여름에 다시 계획을 세워 출발을 하게 됩니다.

 

일정은 이랬습니다.

충주에서 대전까지는 무궁화호, 대전에서 부산까지 새마을호,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는 페리, 그리고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는 기차, 다시 하기에서 후쿠오카까지 기차로 이동하여 후쿠오카를 둘러 본 다음 후쿠오카에서 시모노세키로 다시 이동하여 역순으로 집에 돌아 오는 것으로 했습니다.

특별히 관심을 둔 곳이 하기였는데, 하기는 지금은 아주 시골 동네에 지나지 않지만 막부말기 일본에서 말하는 풍운아들이 많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입니다.

당시 그 지역은 초슈(長州)라 불리던 번이었는데, 지금의 가고시마인 사츠마(薩摩)와 동맹을 체결하여 권력의 중심이 선 이래 지금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일본 수상은 아베로 이 지역 출신인데, 이 친구는 줄줄이 내려오는 조상들의 덕을 톡톡히 본 경우입니다.

이번에 다시 자민당 총재선에 출사표를 던진 곳이 가고시마이었는데, 거기서 사초동맹 어쩌고 하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 갑디다.

사초동맹이란 초수번과 사츠마번이 동맹을 맺은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아무튼 하기는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도 존경을 받는다는 인물들의 고향인데, 그 중에 한 명(이라 쓰고 놈이라 읽는다)이 이토 히로부미.

잘 알다시피 이토는 우리나라 안중근 열사에 의해 사살당하지만 일본에서는 존경받는 영웅으로 유명합니다.

 

이야기는 다시 여행으로 돌아옵니다.

지금도 유용한 한일공동승차권이라는 통합표를 이용하여 대전에서 부산까지 새마을호,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는 페리, 다시 시모노세키에서 가까운 기타큐슈 시의 고쿠라(小倉)역까지 기차, 이것을 다시 역으로 구입하여 교통편을 해결했습니다.

지금은 새마을호가 아니라 KTX로 변경되어 운영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기차 이용은 신칸센은 안 되고 그 이하에 해당하는 급의 기차만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구요.

 

부산에서 오후에 배를 타고 하룻밤을 보낸 다음 아침에 시모노세키에 도착을 합니다.

그 당시는 IMF의 영향도 있고 해서 승객의 대부분은 이른바 보따리장수였습니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 가는 배는 우리나라 소속은 부관페리, 일본 소속은 관부페리라 하였는데 부산에서 부,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관을 취해 각 나라에 해당하는 단어를 앞 세워 이렇게 불렀습니다.

 

우리가 타고 간 배는 관부페리였는데, 입국 심사장에서 승무원이 입국 카드 기입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주더군요.

사인을 꼭 하라고.

싸인이 아니고 사인.

일본어에 발음은 안 되지만, 경상도 사람들도 발음을 못 하는 걸 생각해서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인 사인하는 게 우습 던지 우리 아이들도 재미있어 했던

올 때는 부관페리를 이용했는데, 도와주는 승무원은 없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시모노세키역으로 이동을 합니다.

안내판에도 잘 나와 있지만 그 동안 배웠던 일본말을 하고 싶어 같은 배에서 나온 한 아저씨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이마 에키에 이쿠토고로데스카?’

지금 역에 가는 중입니까?

나니?’

조금은 신경질나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를 하더이다.

보쿠와 칸코꾸진데스

나는 한국인입니다.

 

그때부터 표정이 풀리고는 완전 나긋나긋 모드.

이 친구가 모든 걸 해결해 주었습니다.

어디 가느냐고 물어서 하기에 간다고 했더니. 좀 의아한 표정.

그 시골을 왜 가느냐 겠지요.

역무원에게 물어 보더니 하기에 한 번에 가는 기차는 없고 중간에 기차를 두 번 갈아타면 된다고.

물론 도착하자마자 바로 연결이 되니 어렵지 않을 거라고.

사실 그랬습니다.

우리 돈으로 6000원이 넘는 금액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아무튼 표를 사가지고 기차를 타러 갑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기차는 세량짜리 전기 기차.

일단 고구시(小串)행입니다.

小串라는 한자가 영 낯설어 옆의 승객에게 물어보니 모른답니다.

지나가던 승무원이 알려 주더군요.

고구시라고 읽는다고.

이런 때 일본어는 쉽지 않습니다.

자는 곶이라 읽고 꼬챙이라는 뜻이군요.

 

승객은 몇 명밖에 없이 고즈넉한 분위기로 모처럼 느끼는 시골 분위기.

고구시에 도착을 하니 바로 옆에 나가토(長門)가는 기차가 있었는데 당랑 한량.

옆으로 옮겨 타자마자 기차는 바로 출발.

나가토까지는 바다를 끼고 달리는 구간이 많아 경치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나가토에 이르니 또 옆에 우리를 기다리는 기차.

이번에는 두량짜리.

마스다(益田)행입니다.

이걸 타고 가다 보면 우리 목적지 다마에(玉前)역이 나오지요.

하기에 간다면서 왜 다마에냐구요?

하기에 숙박하기로 예정된 유스호스텔은 하기역보다 다마에역에서 가까워서요.

다마에역은 하기역 바로 전입니다.

시모노세키역에서 우리를 도와준 아저씨도 하기역에 간다더니 다마에역까지 표를 산다니까 꽤 이상하게 여기더군요.

물론 역무원은 그 둘 사이가 가까운 걸 알고 아무 말 안했지요.

 

거의 세 시간 정도 걸려 다마에역에 도착을 합니다.

다마에역은 일본 청소년 만화에 등장하는 아주 시골 분위기 물신 풍기는 그런 역이었어요.

엄창나게 더운 날씨여서 꽤 땀을 흘리며 제법 먼 거리를 걸어 유스호스텔에 도착을 합니다.


 

하기까지는 시모노세키에서 산인(sanin) 본선을 타고 가게 됩니다.

시모노세키 - 나가토 - 하기.


 

다마에역은 하기역 바로 전 역

 

시골 분위기 정겨운 다마에역.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입니다.


 

이런 기차를 타고 갔죠.


 

하룻밤 유한 하기 유스호스텔.


뱀발) 사진은 모두 구글 지도에서 아무말 없이 가져 온 것이니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마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