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1998

[일본여행] 집으로

정안군 2018. 9. 10. 23:41

오늘은 후쿠오카 일정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시모노세키로 가야만 합니다.

이번 일본 여행 일정이 짧아 좀 아쉽기는 했지만 경험을 해 보니 일본은 비싸도 너무 비싼 나라라서 돈 없는 사람이 오래 머물 기는 감당하기 어렵더군요.

 

어제는 크게 돋았으니 오늘은 짧게 일정을 잡습니다.

한국 부산으로 가는 배는 오후 늦게 있어 시모노세키에 천천히 가도 되니 오전 시간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은 많은 사람들이 다녔던 코스를 잡아 봅니다.

우선 구시다(櫛田) 신사

 

 

역사 시간에 배운 일제 강점기 시대의 신사 참배 영향으로 신사에는 웬만하면 가보고 싶진 않으나 사실 일본 문화를 알려면 신사와 절을 빼 놓을 수가 없지요.

신사는 우리나라 서낭당이 더 규격화되고 더 폼 나게 된 형태입니다.

우리 서낭당이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의 누명(?)을 쓰고 거의 사라졌지만 일본판 서낭당인 신사는 아직도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그 역할을 가져갔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아무튼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는 역사가 있고 꽤 알려진 나름 명소입니다.

명성황후를 살해할 때 사용된 일본 건달의 칼이 보관되어 있다고도 알려져 있고요.

 

잘 알다시피 명성황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대원군을 앞세워 궁으로 몰려 간 일본 건달들은 경복궁에서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 태우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슬프고도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슬픈 역사입니다.

 

신사 안은 꽤 넓고 건물이나 정원도 꽤 예쁜데 이런 저런 감정으로 예쁘게 봐줄 수는 없었습니다.

가라하후 (からはふ [唐破風])라 일컫는 지붕 양식만 기억에 담습니다.

가라()이란 표현이 있는 것을 보니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듯 보이네요.

백제가 망한 뒤 왜국은 중국과 직거래를 터 문명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때 들어 온 건축 양식인가 봅니다.

우리나라 궁궐 양식도 사실 중국의 당송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옛 것들은 모두 한국에서 건너갔다고 믿는 사람도 많은데, 이건 좀 그렇죠.


 

신사를 나와 위쪽으로 잠시 걸으면 가미카와바타(上川端) 상점가가 나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재래시장도 이런 모습을 많이 하고 있어 신기할 건 없지만 그 당시는 이런 형태를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어 많이 신기했었어요.

양쪽에 가게가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가운데 통로 위에 지붕을 덮어 꾸민 형태죠.

긴 상점가 통로를 지나 나카스가와바타(中洲川端) 지하철역까지 걸어갑니다.

신기해 보이는 것도 많고 맛있어 보이는 것도 많았는데 친절하게 안내된 가격을 보면 쉽게 손이 나오는 금액이 아니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후쿠오카 박물관에 가장 가까운 역인 니시진(西新) 역까지 가서 슬슬 길을 따라 걸으니 아담한 후쿠오카 박물관이 보입니다.

거의 전 세계 박물관이 그러 하듯 월요일은 휴관이니 조심하시구요.

또 공짜가 아니에요.

 

한반도와 오랜 관계가 정리가 잘 되어 있었지만 특별히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좋은 관계보다 좋지 않은 관계가 많았으니.

청동기 시대와 같은 고대 유물은 확실히 우리나라에 비해 양이나 질이 많이 떨어집니다.

하긴 중국 박물관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도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니 남 말 하기는 그러네요.

내가 본 한중일 박물관의 청동기 유물의 양을 예를 들어 보면 이랬어요.

 

중국 산동성 박물관 >>>>>>>>>>>>서울 중앙 박물관 >>>>>후쿠오카 박물관.

 

진열된 것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건 서슬 퍼런 칼.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을 앞 둔 시점, 칸베에가 오다와라(小田原) 성주를 설득해 성 문을 열게 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 때 고마움으로 오다와라 성주가 칸베에에게 주었다는 칼인 듯합니다.

칸베에가 속한 구로다 가문은 나중에 후쿠오카 지방의 영주가 되었는데 언젠가 그 후손들이 칼을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칼의 나라답게 칼은 정말 폼 나더군요.


 

그냥 일상적인 구경을 마치고 다시 지하철로 번화가로 진출을 합니다.

가장 번화가는 텐진(天神) 부근.

최고로 좋은 자리에 니시데츠(西鐵) 후쿠오카 역사가 있네요.

번화가에 역사가 들어 온 것이 아니라 역사 주변이 번화가가 되었겠죠.

화려하긴 한데 역시 도시의 화려함은 밤에 보이죠.

낮에 오니 그냥 그렇습니다.

 

 

특이한 양식으로 유명한 아크로스 후쿠오카 건물을 찾아 가 봅니다.

고구려 장수총 영향을 받았나요?

그렇다고 하긴 좀 그렇고 나라 부근의 전방후원형(前方後圓)형 고분을 모티브로 한 것인지 그런 게 생각납니다.

겉에서 보면 그럴 듯 한데 안은 어떨까요?

천천히 보고 싶은데 남아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서두르게 됩니다."

안 구경은 패스


 

후쿠오카 명소인 스미요시(住吉) 신사가 돌아가는 중간에 있어 들려 보지만, 여기도 그냥 수박 겉핥기로 끝냅니다.

신사가 다 그렇지 뭐.

 

이제 기차를 타고 시모노세키를 향할 시간입니다.

임진왜란의 원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의 성이었던 마이즈루(舞鶴) 공원과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쌓았다는 나고야(名護屋) 성을 못 본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본 성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기까지 했으니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냥 생 고생길 같아서 생략했었죠.

그리고 또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을 했고요.

후쿠오카에 다시 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 때도 가 보질 못했네요.

언젠가 다시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비싸서리.

 

하카다에서 고쿠라로 다시 고쿠라에서 바다 건너 시모노세키로 와서 배를 타고 돌아옵니다.

배 손님은 올 때처럼 거의 다 보따리장수들.

몇몇은 우릴 알아보고 반갑다 며 접근을 하는데, 거의 다 부탁입니다.

면세용 양주나 담배를 사 달란.

돈을 얼마간 준다고.

우리 먹고 살만 해요.

아이들도 있고 또 소위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이라 점잖게 거절한 것이 지금부터 20년 전.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