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21 살이

오래된 식당

정안군 2021. 11. 6. 16:42



1981년 9월 14일.
충주와 긴 인연을 시작한 날입니다.
그때는 이렇게 오랜 세월을 충주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생각을 못했죠.
발령을 받아 온 곳인데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던 동네라서 탈출에 성공한 주말은 행복했고, 못 한 주일은 삼식이 신세로 하숙집 아줌마의 눈치를 듬뿍 받는 처지였어요.
그러니 점심은 나가서 사먹어도 좋으련만 월급쟁이는 되었지만 받자마자 주머니는 텅텅 빈 신세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딱한 세월이었습니다.
가끔 충주를 탈출해 친구들이 있던 대전에서 신나게 놀고 돌아올 때면 또 한 주를 어떻게 보내나 무거운 발걸음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녁은 안 먹었고 늦은 시간이니 어디서 저녁을 해결해야만 했는데 그때 먹었던 특별 음식이 내장탕이었습니다.
가격은 700원.
이것이 안 될 때에는 우체국 옆에 있었던 해장국.
그 해장국을 팔던 식당이 지금까지 이어오는 복서울식당.
해장국 한 그릇 가격은 500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저런 해장국을 팔지만 그때는 선지해장국 뿐이었어요.
첫 맛은 꽤 괜찮지만 다 먹고나면 뒷끝이 텁텁하게 남아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근처에 만만한 식당도 없고 식당 근처에 내가 다니던 교회가 있어서 자주 가곤 했었네요.
그러다 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지역 상권이 신시가지 쪽으로 옮겨 가면서 갈 일이 거의 없어졌어요.
그게 벌써 30년이 넘은 듯 합니다.

오늘은 뭘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복서울식당을 가 보기로 합니다.
식당이 있는 지역 이름이 성내동이니 옛날에는 성안 마을이고 바로 앞에는 옛날 관아가 있던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외곽이 신시가지로 바뀌면서 중심지는 구 도심 지역으로 변하면서 지금은 주변이 쇄락한 분위기가 짙습니다.
들어가 봅니다.
주인 아줌마가 계시네요.
너무 늙고 마스크를 써서 옛날 그 주인이가 아닌가 긴가민가 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그 목소리는 옛날과 변하지 않아 그 옛날 주인임을 알 수 있었어요.
주인 아줌마 얼굴을 보니 세월이 많이 가긴 갔군요.
선지해장국을 주문합니다.
500원이었던 가격이 지금은 8,000원이 되었습니다.
그때 500원은 싸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 가격은 싸다는 감이 없네요.
그만큼 세월이 가고 많은 게 바뀌었겠죠.
나온 해장국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으니 아 이 맛이었지 그런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사람의 입맛이란 참 놀랍네요.
다 먹고 나니 옛날 느꼈던 뒷맛도 같습니다.
처음은 괜찮지만 뒷맛이 텁텁하게 남는 것.
다시 올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내 젊은 날 한 때를 보냈던 곳이 이렇게 남아 있으니 기분은 참 좋습니다.
주인 아줌마는 지금은 건강하셔서 영업을 하시지만 꽤 나이를 드셔서 언제까지 이어갈까 그런 생각이 들더이다.
아쉽게도 식당 뒤를 잇는 휴계자는 없는 듯 합니다.
식당은 손님이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식당을 열심히 하셨다고 문대통령에게 국민포장을 받으셨네요.
내가 좋아하는 대통령이 주신 상이라서 이 식당과 주인 아주머니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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