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21 살이

늦가을 풍경, 창룡사 가는 길

정안군 2021. 11. 9. 20:50

 

 

 

어제부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온도가 뚝 떨어졌다.
겨울비인가 가을비인가?
겨울비라면 화툿장 12 월 패의 광이 아니던가.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과 개구리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뭔가 깊은 뜻이 있다더니만 그래도 겨울잠도 못 들어간 개구리 신세는 되지 말아야지.

아무튼 어느샌가 대설 주의보 같은 한겨울 기상 용어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봄에 비가 내리면 내릴 때마다 온도가 오르고 가을에는 온도가 내려간다더니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추워지면 몸 컨디션이 엉망으로 치닫는 내 몸뚱이는 여기저기에서 비상 신호를 보낸다.
갑자기 오한 증세가 오기도 하고 발이 시리고.
이래서 다 관두고 일찍 따뜻한 남쪽나라로 갔던 것인데.

코로나인지 메로나인지 이 친구는 내 인생 여정에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불러와 올 겨울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고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는 법.
그래도 그 덕에 읽고 싶었던 책과 영화는 원 없이 보고 있다.
책은 가끔씩 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빌리고 영화는 토렌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며칠 전까지 조정래 님의 ‘아리랑’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장편이고 여러 권이라서 뭔가 읽을거리가 마땅하지 않을 때 읽기 좋은 책 중 하나이다.
‘태백산맥’만큼이나 비극적인 현대사라서 읽기는 쉽지 않다.
일제 강점기나 육이오 이후 올바르거나 다른 생각을 갖고 행동했던 사람들이 어떤 고난의 길을 걸었는지 그리고 그 가족들은 또 어떤 고초를 겪는지 생생하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일제 강점기 고통을 당했던 그 사람들이 해방된 조국에서도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제 식민 잔재를 정리하지 못한 아픔이자 슬픔이라서 비극으로 다가와 책을 읽어가면 갈수록 더욱 착잡해진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식민지 청산.
이러면 우울해진다.

오늘처럼 우중충한 날에 이런 책을 읽으면 더욱 우울해지니 이런 날은 다른 책으로 돌려야 한다.
해서 준비된 책이 허영만 화백의 책들이다.
그중 한 권이 ‘허영만과 떠나는 오토캠핑’ 시리즈 가운데 ‘캐나다 로키 트래킹’이다.
캐나다 로키는 내년에 갈 예정이라서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미리 여행을 머릿속에서 즐길 수 있다.
아 좋아.

고등학생 시절 괜한 애창 시였던 푸시킨의 시가 생각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지난 토요일만 해도 창룡사 단풍이 이렇게 좋았는데 이번 비에 모두 져 버렸겠다.
하지만 찬란한 봄이 있기에 슬프지는 않다.
그래 인생은 슬퍼하기엔 너무 짧단다.

'한국 2021 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에 자국을 남기다  (0) 2021.11.28
이 시기에 야구를  (0) 2021.11.20
오래된 식당  (0) 2021.11.06
충주댐이 보이는 풍경  (0) 2021.11.01
다시 가을이 돌아왔어요  (0) 2021.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