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하 2014 여행

새로운 경험, 새로운 땅 영하 회족 자치구 은천(銀川)을 찾아서 140526(하) 서하왕릉

정안군 2014. 7. 6. 21:37

맛배기 기념관을 나와 안내판을 따라 서하왕릉으로 향합니다.

 

 

 

뭘 알려 주려고 하는지 알송달송한 안내판을 몇 개 지나면서 서하왕국 시절 만들었다는 문자를 보니, 글자 배우려면 힘이 꽤 들었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서양인 기준으로 배우기 힘든 말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라고 하지요.

그래도 한국어와 일본어는 글자 배우기는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한글과 일본 히라카나는 쉽게 쓰거나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국어는 읽기, 쓰기, 말하기 모두 어렵습니다.

특히 중국 문자는 소리 글자가 아니고 뜻 글자라서 그 많은 글자를 외워야 하는데, 이건 중국 사람들 자신도 어려워 하지요.

 

그런데 그 어렵다는 한자보다 서하 문자가 더 복잡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아마도 서하 사람들은 그 당시 중국 사람들보다 머리가 좋았던지, 아님 나름대로 쉽게 배우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중국 주변 나라들은 모두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았군요.

'나랏말쌈이 뒹귁과 달라'

 

서하 문자가 배우기 쉬웠든 어려웠든 한글을 보면 참 대단한 글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한국말은 어렵다고 쳐도 일단 한글 쓰고 읽기는 참 쉽죠 잉.

 

 

멀리 서하왕릉이 보입니다.

뒤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산이 하란산인가 봅니다.

산의 색채 콘트라스트가 참 멋있게 다가옵니다.

 

서하왕릉은 여러 개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 공개 되고 있는 왕릉은 이원호가 묻혀 있는 3호 능이라네요.

탕구트족이었던 서하 주류층은 이원호가 황제를 칭하던 시기가 가장 번영을 구가했던 시기라고 합니다.

당제국이 쇠퇴하던 시기에 나라를 일으키고 한 때 당을 이은 송나라와의 젙투에서도 승리하여 강자의 면모를 자랑하던 서하제국은 더 막강했던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고 하지요.

 

명나라 시대에는 명의 변방으로 있던 이곳은 청의 영역으로 들어 오면서 제국의 중앙부에 위치하게 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 나면서 폐허로 남았다고 합니다.

현대 중국이 성립하고 먹고 살만해지면서 이곳도 정비하곤 해서 이나마 유지되는 모양인데, 사실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발굴된 것들은 박물관에 진열이 되었고, 능 주변의 구조물들은 간신히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다만 흙벽돌을 쌓아 만든 듯한 왕릉는 모진 풍파에 깍이고 파여 나갔다고 해도 그 웅장함은 아직도 남아 서하의 영광을 지금까지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길 보면서 압록강 강 건너 있다는 장군총이 떠오릅디다.

여기나 거기나 못난 후손들때문에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있는 모습이요.

 

그래도 우리가 좀 나은가요?

중국 정부에서 동북공정이니 뭐니 하면서 자기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장군총은 우리 조상의 것이라고 말이라도 해 주는 후손이라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 서하를 세웠던 탕구트족은 어디로 녹아 들어가서 흔적을 남기지도 못했을까요?

 

역시 후손이 잘 되어야 조상이 덕을 보지요.

 

분위기는 정변의 통만성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나라 이름이 거기는 대하(大夏)였고 여기는 서하(西夏)였으니 여름 '하(夏)'는 우리나라 '한(韓)'처럼 이 지역을 나타내는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변두리 역사라서 주목 받지 못한 덕에 의문점이 참 많습니다만 알아내기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궐대(闕臺)라는 구조물입니다.

 

 

 

월성(月城) 구조물입니다.

 

 

내성(內城)

 

 

남문(南門)

 

 

헌전(獻展)

 

 

묘도(墓道)

 

 

 

능탑(陵塔)

 

 

 

 

 

북문(北門)

 

 

능탑의 모습이 아이스크림 위 부분 같은 모양이기도 하고.

새들이 돌아가며 온통 자기네 집을 만들어 놓아서 더 이상한 모습으로 변했네요.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여성분은 고급 카메라로 구도를 잡아 가면서 여기저기 사진에 담는 것이 프로의 냄새를 풍깁니다.

덕분에 나도 그 여자가 잡은 구도를 훔쳐 보면서 몇 장 찍어 보지만, 역시 그래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입디다.

 

개방이 된 곳은 이 3호 왕릉뿐인 듯 싶었습니다.

안내판에는 1, 2호와 4호 이렇게 다른 왕릉도 표시가 되어 있지만, 길도 없고 또 있다한들 땡볕에 그걸 보겠다고 가기는 너무 미친 짓 같습니다.

 

버스 시간이 여기 오면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라서 땡볕을 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던데, 어떤 계절에 오면 덜 덥 구경할 수 있을까요.

해가 기우는 시간에 와도 참 좋을 것 같지만 차를 대절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겠고요.

 

입구로 돌아갈 때는 다시 전동차를 탑니다.

 

주자장으로 가니 12시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버스는 각각 1시와 2시에 있습니다.

 

두시간 좀 안 되게 구경을 한 셈이네요.

내가 빨리 끝냈듯 나와 같이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 오는데, 나와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가 나에게 반갑게 말을 걸어 오던데 뭔 소리인제 알 수가 없더군요.

나중에 보니 박물관 어디서 내리냐는 질문이었어요.

이 정도는 중국어 수업에서 배운 것인데, 실제로 말을 들으면 도대체 뭔 소리인지 알 수 없으니.

 

신월광장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내려서 종루로 진출합니다.

 

전에 좋게 보았던 진취덕에서 밥을 먹고 싶었거든요.

 

전취덕이라.

 

점심과 저녁 시간 중간쯤 되는 어중간한 시간이라서 손님은 나 혼자여서인디 우리나라 닭곰탕 같은 요리를 시키니 얼마 안 되어 나옵니다.

먹어보니 거의 환상에 가깝습디다.

 

 

아마도 한국 음식 맛과 비슷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등장 인물은 내용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아저씨, 이렇게 공지 했으니 너무 쳐다 보니 마세요.

 

 

 

허겁지겁 먹다가 주변을 보니 이 식당이 역사가 깊다는 것을 자랑하듯 여러 장식물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모택동 글씨도 보이던데, 그 양반도 여기 와서 뭘 먹은 적이 있는 것인지.

 

식당 바로 앞은 영원이라는 공원입니다.

건물들은 옛날 모습을 하고 있지만 콘크리트 제품으로 흥취는 떨어집니다.

그러나 나무도 있고 여유가 있으니 이런 공간이 얼마나 부러운지.

 

호텔로 돌아 와서 하루 더 있겠다고 하고 다시 정산을 하는데, 보증금 포함해서 200원을 더 내라더군요.

 

그래서 첫날 200원, 둘째날 200원을 냈으니 160원이 내 돈 아니냐.

 

이 돈에서 오늘 거 120원을 내는 것으로 하자.

이런 내용으로 실랑이를 하는데, 참 힘듭디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우리 층을 청소하는 아줌마가 카운터에 앉아 있는 종업원보다 눈치가 빨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종업원에게 설명을 해 주니 그제서야 오케이.

 

실컷 실랑이를 하고 또 오늘 땡볕에 지쳐서 일과는 이걸로 마감합니다.

저녁 식사는 호텔에 올 때 사온 속 없는 찐빵과 맥주 한 병으로 땡치고요.

 

나머지 시간은 일본 NHK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을 보는 것으로.

 

어휴, 힘드네요.

 

오늘의 지출

 

신월광장 버스비                          1원

서하왕릉 왕복 버스비 8원X2회 =  16원

입장료                                       60원

종루 버스비                                1원

전취덕 점심 닭고기탕 20원 밥 2원 22원

호텔                                        120원

진빵                                           1원

맥주                                           4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