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여행기/미얀마 2004 여행

보통 사람들의 애환이 있는 인레 호수

정안군 2005. 6. 22. 09:54


<인레 호수 마을의 주민들 - 왼쪽부터 야망목사님, 딸 사쿠라, 할아버지 부부, 우리 부부, 할아버지 손녀>


호수의 아침은 상쾌했다.   그러나 수상 호텔이라서 활동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한다(30달러)   기다리고 있던 배를 타고 이른바 호수 투어에 나서는데.   우리만 특별한 곳을 가나 했더니 전체적으로는 다른 투어객들과 코스는 거의 같았다.

 

야망 목사님이 담당하는 이곳은 신자들이 사는 마을이 호수가에 넓게 흩어져 있어서 주일이 되어도 한꺼번에 모일 수가 없단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 정도 돌아가면서 중심되는 가정을 방문해서 그 근처의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형태로 진형된단다.

 

호텔 근처에 신자가 있다길래 가보기로 한다.   호텔을 돌아 호수가 쪽으로 가니 땅과 가깝지만 여전히 물 위에 있는 집이 하나 있다.   건기에는 물이 빠져서 땅위의 집이 되지만 우기에는 물위에 집이 되는 형태인 것 같다.   대나무와 갈대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집인데 3층집이다.   1층은 배 대는 곳, 2층은 창고, 3층이 주거지인 형태인데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 부부가 완벽한 영어를 쓴다.   깨엔족이라 해서 잘 몰랐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 유명한 카렌족이란다.   카렌족을 이곳에서는 그렇게 부른단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하급 공무원으로 이곳에서 지내다가 정착한 사람인데 미얀마어는 잘 하지 못하고 카렌어와 영어를 잘 한다고 한다.   미얀마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할머니는 영어에 대해 더 적극적인데 젊어서는 영어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가끔 잘못 알아 듣는 영어 단어가 나오면 스펠링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곤 했다.   ^^;;   어휴 땀나라.   ^^    노환인지 질병 때문인지 시력을 잃어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단다.  

 

그 딸은 일본 점령시기에 태어낳는데 일본 장교가 '사쿠라'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나 ?   그러니까 이 카렌 할아버지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식민지시절에는 친일 부역에 6.25 때에는 빨갱이 부역까지 한 셈이 된다.   영국이 식민지에 적용한 이른바 '나누어서 통치한다' 전략인 것인데 소수 민족을 자기들 수족으로 이용해 먹고 그냥 뛰어버려 독립 후 이것이 미얀마 소수민족과 정부와 갈등 관계를 형성한 이유도 된다고 한다.   식민지 후유증이 꽤 오래 가는 셈이다.

 

간혹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일본 식민지가 될 바에는 영국 식민지가 되는 것이 좋았겠다.   그렇게 되었다면 영어라도 제대로 배웠을텐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주 간혹(^^)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등에서 땀이 난다.   만일 우리가 영국 식민지가 되었었더라면 아마도 영국 아저씨들은 중국 아저씨들을 불러서 우리들을 탄압했든지 평안도에서 군인을 모집해서 경상도로 보내고 경상도 아저씨들을 전라도로 보낸다든지 교묘하게 지역 감정을 일으켜 우리를 통치했을 것이다.   그러면 해방이 되었다 해도 그 후유증이 엄청났을텐데 그래도 영국 식민지가 나았는지 생각은 해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집사람이 검정색 치마 한벌을 산다.   아마 도와 주고 싶은데 직접 돈을 주기는 그렇고 하니 사는 것 같고 나중에 물어보니 그랬단다.   배려해주는 마음씨가 너무 고마웠다.   'Don't forget me'라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선다.   '잊지 않을께요.   할머니'   우리를 배웅하는 사쿠라에게 한마디 보탠다.   "사요나라 사쿠라"   그러고보니 사쿠라도 할머니로 나이도 60살이 넘었겠네요...

 


<점핑 캣 - 뛰는 순간을 잡기가 쉽지 않은 듯.   일본 사람이 그 순간을 포착해서 찍은 사진이 멀리 기둥에 걸려있다.   점프하는 고양이라.   사실 별 것은 아닌데 ^^>

 

여기 저기 돌아다닌다.   금박을 입힌 돌이 있는 사원과 점프하는 고양이로 유명한 사원 그 앞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도 먹고.   담배를 만드는 공장, 실크 옷을 만드는 곳 그리고 대장간 여러 군데를 거치니 점점 지루해지고 피곤해진다.  

 

그런데 여기저기 방문하다가 티크로 나무 배를 만드는 곳을 들린다.   이곳 호수를 누비는 티크제의 소형선박은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 정도 한단다.   야망 목사님은 이것이 있으면 이곳 신자들을 더 잘 방문할 수 있어서 목회에 도움이 되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양곤의 선교사는 무엇이든 요구하는 것을 절대로 응하지 말라고 하셨었다.   힘이 들지만 이곳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이룰 수 있게 해주어야 된다고.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 개미들이 큰 먹이를 물고 어렵게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개미들이 너무 불쌍해서 그 먹이를 개미집 입구에 옮겨 준 적이 있는데 이 먹이를 놓친 개미들이 어리둥절하던 것이 머리에 떠오른다.   무엇이 개미를 돕는 것인가 ?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확답을 안 하고 열심히 기도해 주겠노라 말만 한다.   조금은 마음에 걸리기도 하지만.

 

그 앞에 신자집이 있다고 방문해 보자고 한다.   어색해진 마음을 돌릴 겸 가보기로 한다.   여기도 3대가 사는데 가장인 남자는 눈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은세공 기술자란다.   가게에서 주문한 상품을 만들어 주고 돈을 받는 모양인데 한눈에 보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애가 아파서 방에 누워있었는데 병명도 모르고 병원도 못간단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 몸도 못가누고 있는 애들 보니 안되었는데 그 애 부모가 애를 위해서 기도를 해달란다.   너무 안 된 마음에 머리에 손을 언고 간절하게 기도를 해주었다.  

 

아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이 아실테니 이 아이를 치료해 주시면 좋을텐데.   나오면서 3000짯 정도를 주면서 아이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라고 했다.   너무 고마워하면서 바나나 한다발을 싸준다.   너무 순박한 사람들인데 이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스쳐가지만 이곳을 터전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애써 무시한다.   

 

약한 샤워 물줄기처럼 내리는 비를 뚫고 냥쉐로 돌아와 이름이 어딘가 낯익은 골드스타(금성) 호텔에 들어간다.   야망 목사님은 자기 집으로 우리를 저녁 초대를 하고.   이 때 마차를 보내줄테니 그것을 타고 오란다.   

 

시간이 남아 여기 저기 다니다가 한국 사람에게 잘 알려진 아쿠아리스 인 게스트 하우스가 있길래 혹시 한국 사람이 있을까 하고 기웃거리다 보니 한 부부가 나오는데 한국 사람이었다.

 

그 아쿠아리스 앞의 찻집에서 긴 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처음보는 사람들이지만 그저 한국 사람인 것만으로도 반가우니 원.  

 

이 부부도 강문근선생님의 여행기를 참고로 다닌다고 한다.   하여튼 여행기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니 어쨌든 쓰고 볼 일이다.(그래서 제가 쓰고 있구요 ^^)   같이 야망 목사님집에 가자고 하니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승낙을 한다.   약속 시간이 된 듯해서 호텔에 가보니 벌써 마차가 와있었다.   마부와 4명이 어두어진 거리를 마차를 타고 한참을 간다.   집은 전형적인 미얀마 시골양식(^^)인데 전등이 희미해 방안이 어두컴컴했다.   준비된 주 음식은 닭백숙.   정말 꿀맛이다.   토종닭이 바로 요것이여 하고 닭들이 증명해 주는 듯(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닭백숙 생각을 하면 침이 흐른다 ^^)

 

한 꼬마가 있는데 부모가 헤어지면서 갈 곳이 없어서 데리고 있단다.   이삭이라는 아이인데 잘 키워주고 싶단다.   참 마음씨가 곱다.   같이 간 부부가 목사님에게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목사가 되었는가 질문을 하니 이어서 영어 문답이 길게 이루어진다.  

 

나오면서 식사를 준비한 사모님께 고맙다고 얼마를 드렸다.   너무 많이 주지 말라고 했는데 너무 많이 준듯도 하지만 이것이 갈등의 요인이다.   이들에게는 많다고는 하지만 우리 돈 가치로 하면 정말 낯이 간지러울 정도니.   어디다가 기준을 두어야 하는지 원 !!!

 

 

돌아오는 마차길은 어둠에 쌓여서 어디로 갔다가 어디로 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내일 양곤으로 돌아가는데 만난 부부는 내일 호수 투어를 한단다.   다시 만날지 안만날지 모르니 미리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또 긴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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