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동 2011 여행

21-1.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르리 없건마는 1

정안군 2011. 9. 30. 09:48

 

8월 9일 화요일

 

泰山雖高是亦山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登登不已有何難

오르고 오르면 오르지 못할 까닭이 없건마는

 

世人不肯勞身力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只道山高不可攀

뫼만 높다 하더라.

 

어느 시절의 교과서에 나왔었지요?

 

이 양사언(楊士彦)의 시조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아무튼 이 시조을 통해 중국 명산 중의 명산이요, 천하를 통일한 천자가 되면 이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행하곤 했다는 그 태산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나도 이 산에 오르려고 합니다.

 

 

내가 잔 숙소에서 태산가는 길은 대묘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가면 되는 데, 안개가 엄청나게 짙게 끼어 있었습니다.

 

6시가 좀 안 되어 숙소를 나왔죠.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오르는 것이 무더위를 피하는 것이라서.

 

일단 태산쪽으로 가다가 아침을 해결하려고 했고요.

 

 

대묘의 긴 성벽길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이 근처 사는 사람들이 자기가 키운 채소나 과일을 가져다가 파는 아침시장인 듯 보였죠.

 

그 근처에 밀가루 꽈배기(油條)와 콩국물(豆乳)을 파는 곳이 있어서 이것으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좀 부실한 듯 하지만 다른 것이 없으니 별 수가 없었어요.

 

 

 

대묘를 끼고 돌면 후문인지 무슨 문이 나오고 거기서 북쪽으로 태산가는 길이 연결이 됩니다.

 

 

 

태산의 첫 관문인 대종방(岱宗坊)은 대묘에서 걸어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요.

 

아침운동 삼아 걷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살빼기 작전에 들어간 아가씨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었죠.

 

안개가 자욱하고 습도가 높으니 아침부터 땀이 쏟아지더군요.

 

오늘 만만치 않은 날씨에, 만만치 않은 산에 도전장을 낸 것이 아닌가 싶네요.

 

 

어쨌든 이제 돌계단이 시작됩니다.

 

 

양 옆으로는 잡화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이어졌고요.

 

여기는 닭도 있군요.

 

물론 닭소리도 들리고요.

 

웬 닭소리냐고라?

 

티벳에서는 닭과 돼지를 통 못 보았거든요.

 

하긴 티벳은 중국이 아니니까 비교는 좀 그러네요.

 

위에 약수터가 있는지 물통을 지고 내려오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띕니다.

 

역시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들이군요.

 

통 새벽잠이 없으니.

 

 

일천문(一天門)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어쩜 이렇게 온 산을 돌길로 만들 수가 있을까요?

 

뭐 이 산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중국인들의 ‘돌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군요.

 

곧 공자님이 태산 등반을 하였다는 것을 표시한 '공자등림처(孔子登臨處)'에 이릅니다.

 

여기는 옛날부터 한가락 했던 시인이나 화가는 물론이고 동쪽의 나라에 사는 나도 오르니, 수많은 사람들이 오른 유명한 산인 것이야 틀림없지만, 그들의 이름은 간 곳 없고 공자님만 기억이 되는 가 봅니다.

 

 

이곳의 좌우의 비석에는 '제일산(第一山)'과 '등고필자(登高必自)'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네요.

 

등고필자라.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중용(中庸)의 '登高必自卑'에서 나온 말이라죠?

 

태산을 오르는 것도 또한 세상의 많은 일을 완성할 때도 모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데에 있다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후~~~

 

오늘 한자 공부 많이 하게 생겼네요.

 

 

 

홍문을 지나면 만선루(萬仙樓)라는 건물이 떡하니 나를 가로막습니다.

 

돈을 내지 않고 여기까지는 잘 왔는데 여기부터는 도리가 없군요.

 

 

매표소에서 표를 한 장 삽니다.

 

127원이라니.

 

우와! 비싸네요.

 

이래서 오늘은 이 입장권 말고는 태산에 한 푼도 더 안 바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면 길 가로 멋지게 글을 새긴 돌들이 등장을 합니다.

 

여기는 세계자연문화유산 지질공원인데 이렇게 돌들을 학대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잘 쓰면 예술이고 못 쓰면 자연 파괴가 되나요?

 

여기서 다시 20분쯤을 걸어가니 두모궁(斗母宮)이라는 도교사원이 나옵니다.

 

 

두모궁은 옛날에는 '용천관(龍泉觀)'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여기에는 팔이 여덟 개 달린 두모낭랑(斗母娘娘)이 모셔져 있데요.

 

두모는 북두칠성의 어머니라고 하는군요.

 

오늘 많이 배우기는 하는데 어디다가 써먹을 일은 없어 보이네요.

 

 

두모궁 안에는 크고 작은 향과 검게 그을린 향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몇 몇 가족 참배객은 중국인 특유의 향을 피우며 참배를 하고 있습니다.

 

안개가 짙게 낀 곳에서 향을 피우니 조금 괴기스런 분위기가 감돕니다.

 

두모궁 앞에 오래된 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데 이 나무는 600년 된 느티나무라는군요.

 

다시 계단을 오릅니다.

 

이쯤에서 입장권을 확인하는 노인네가 있습니다.

 

실용적인 중국인답게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물을 파는 것을 함께 하더군요.

 

하긴 놀면 뭐하겠습니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되겠지요.

 

돌계단은 상당히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발도 아프고.

 

 

중천문이 2.1 km 남았다는 안내석을 지납니다.

 

산을 오를수록 안개가 짙어져 가는군요.

 

이러다가 비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안개가 짙은 날은 몹시 더운 날이라는 것을 기억해 봅니다.

 

뭐가 되었든 좋은 조건은 아니군요.

 

이처럼 삼복더위에 산을 오르려면 더위는 각오해야 되겠지요.

 

 

수렴동(水簾洞)을 지납니다.

 

우리나라 설악산에도 있는데.

 

어디가 원조일까요?

 

이름으로 말하면 이 동네가 원조일지는 몰라도, 경치로 하면 태산의 수렴동은 정말 깜이 안 됩니다.

 

 

큰 비석을 등에 진 거북이을 지납니다.

 

힘이 드는지 청춘남녀가 그 거북이를 의지해 쉬고 있네요.

 

돈이 없는 청춘남녀, 그래도 둘이 함께 있어 즐겁겠지요?

 

 

안개에 묻힌 문들을 몇 개 지납니다.

 

얼마나 짙은지 바로 앞에 가야만 형태가 분간이 될 정도군요.

 

 

회마령(廻馬嶺)을 지납니다.

 

여기서 타고 온 말을 되돌렸나요?

 

 

그러다가 문뜩 발밑을 보니 해발 700m라고 쓰여 있는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많이 올라 왔군요.

 

여기부터는 경사도 몹시 심합니다.

 

 

‘소원을 말해봐’라고 외칠 것 같은 나무가 온갖 소원을 적은 붉은 천을 몸에 달고 있습니다.

 

멋있네요.

 

 

 

남녀가 사랑을 맹세하면서 걸었을 자물쇠 뭉치도 상당합니다.

 

이 동네 자물쇠 장사는 재미가 쏠쏠하겠는데요.

 

한 도교 사당을 지나면

 

 

바로 해발 800m 글씨가 나옵니다.

 

이제 여기서 중간 목적지인 중천문(中天門)이 멀지 않습니다.

 

 

중천문의 벽이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