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연수기

포츠담가기

정안군 2006. 8. 1. 11:43

<포츠담 상수시 궁전 정원>

 

오늘은 관광 모드이다.   견학이나 관광이나 몸뚱이를 굴려 이곳저곳 가는 것은 똑같은데 관광 모드로 접어들면 몸이 덜 피곤해지니 역시 모든 것은 마음 문제인가 보다.  ㅎㅎ

행선지는 우리나라 식민지 지배 시대와 해방 전후에 지대한 영향을 준 포츠담선언이 있었던 바로 그 포츠담이다.


카이로 회담, 그리고 포츠담과 얄타 회담은 순서가 어떻게 되는가, 또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아직도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 문제에 등장하는 단골 주제이지만 그 진실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어쨌든 한 나라의 운명이 몇몇 힘 센 나라의 손에 결정되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포츠담은 S1으로 반제(Wansee)까지 간 다음 반제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는 것으로 한다.   반제에서 제(See)는 영어 sea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단어 같은데 영어가 바다를 뜻하는 것에 비해 독일어 제는 호수를 뜻하나 보다.   뭐 물이 짠지 아닌지 그 차이만 빼면 물이 있는 넓은 곳이란 의미는 같아질 테니.

평일이라서 유람선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실내에도 의자가 있지만 역시 햇볕이 좀 따갑긴 해도 지붕이 제격이다.   지붕에도 의자를 놓아서 앉아 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우리 충주도 충주호가 있어서 뱃놀이가 행해지지만 뱃놀이는 역시 기분전환하기에 좋은 것.

오리와 고니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는데 이들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다.


유람선 1시간에 선착장에 도착해서 이번엔 버스로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장소로 이동한다.  시가지는 예스런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데 길은 좁은 이차선.  웬만하면 도시 자체를 건들이지 않고 그 모습을 간직하려는 유럽인의 정서가 잘 보인다.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장소는 호엔촐레른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빌헬름 왕자가 살던 체칠리엔호프 궁이다.


카이로 선언에 이어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부였던 트루먼, 처칠(총선에서 패배해 7월 28일부터는 애틀리), 스탈린은 이 곳 포츠담에 모여  협정에 참여하게 되는데 중국은 포츠담회담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장개석 총통이 트루먼대통령의 통고를 받아 그에 동의함으로서 26일 3국 연명으로 이 선언이 발표되었지만, 소련이 8월8일 대일선전포고를 선언한 후 , 이 선언에 다시 참가함으로서 최종적으로는 미, 영, 소, 중의 선언의 형태가 되었다.  


이 선언은 일본에게 바로 통보가 되지만 일본이 미적거리며 반대(정확한 외교적 표현은 묵인)하면서 원자폭탄 세례를 받고는 항복하는 순서가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바로 신탁통치 문제였다.


중국의 장개석 총통과 소련의 스탈린은 카이로와 포츠담 협정 때 일본 패망 후 그 식민지인 조선민족의 즉시 독립을 제안했으나 영국의 처칠은 수많은 식민지를 거들인 제국의 지도자이라서 당연히 식민지 백성들인 조선인의 자치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선인을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 인민 수준으로 간주해서 적어도 30년 동안은 신탁통치를 하고 난 뒤에 자주 독립을 허용하자고 하였는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대부분이 신탁통치는 소련이 제안한 것으로 미국은 우리의 은인으로 알고 있다.


물론 피압박민족이던 중국은 조선 쪽 처지를 잘 이해하였고 소련은 자체 식민지가 없어서  당시 아시아에 필리핀이라는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나 인도라는 식민지가 있는 영국하고는 생각하는 방향은 달랐을 것이다.   허나 신탁통치는 없거나 최소한에 그치자는 안은 중국과 소련이 제시한 것이었는데 해방 후 수구 언론들은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다고 나서면서 민심을 오도했고 우리나라 정국을 결정적으로 분열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그 영향으로 신탁통치하면 소련이 주장한 것으로 다들 알고 있으니.

 

그 다음은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전쟁과 분단.   아직도 이 분단은 남북뿐만 아니라 남쪽에서도 좌우를 가르는 수단으로써 잘 활용되고 있다.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S. O. B 좃중똥,    Fucking U. S. A.


전쟁 후 자기 식민지로 돌아간 프랑스는 베트남 인민들의 항쟁에 항복 선언을 하고 물러났고, 영국과 미국은 약소민족들의 독립 기운에 그 아까운 식민지를 포기하고야 만다.




회담장으로 쓰였던 체칠리엔호프 궁은 호텔로 개조되었으나 당시 회담장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물론 짭짤한 입장료 수입과 함께.   이곳은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단다.   처지는 물론 다르지만 이곳의 결정이 양 나라에 영향을 주어서일게다.


포츠담 소개 블로그는

http://blog.naver.com/resttime/60022439652


다음은 프리드리히 황제 베르사유 궁전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상수시 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옆에는 모차르트처럼 음악가를 흉내 낸 옷을 입은 사람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다.   물론 공짜로 보아도 되지만 거기 머무르며 음악을 듣고 가는 사람은 당연한 것처럼 동전이나 지폐를 앞에 놓여있는 바구니에 넣는다.   이 거리 음악가도 당연한 듯 인사를 하지 않는다.   상수시 궁은 이름이서 풍기듯 그 당시의 문화 원조격인 프랑스를 동경해서 프랑스어로 이름을 붙인 것인데.   예술과 학문을 사랑했다는 일명 철인왕(哲人王) 프리드리히 황제가 손수 스케치해 지었다는 것이다.


‘상수시(sans souci)’는 프랑스어로 ‘번민이 없다’는 의미다. 왕은 세상의 모든 번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지성들을 베를린 교외의 상수시 궁으로 불러들여 격조 높은 ‘테이블 대화’를 즐겼단다.   


그 황제 밑에 살던 모든 백성들이 그 가상한 황제의 뜻대로 격조 높은 미(美)와 지성을 풍기면서 살았는지 그렇게 못산 사람들은 비국민이었든가?


상수시 궁 소개 블로그

http://blog.naver.com/resttime/60022461999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 따서 지었다지만 궁전은 그저 그랬고 정원만큼은 나름대로 특색이 있었다.   이제 웬만해서는 눈에 차질 않는다.


길가 조그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이곳도 주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라서 음식 나오는 시간이 한정 없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렸으니 그래도 많이들 적응한 듯 별 말들은 없었다.   계산은 당연히 각자 부담이니 식당 안주인이 일일이 다니면서 계산을 한다. 


자기에게 오면 자기 음식 값을 계산하고 남는 동전은 팁으로 주면 계산 끝인데 처음에는 꽤 어색했지만 이곳은 모두 그렇게 계산한다.


이곳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난 후 우리나라처럼 계산대에 가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로 종업원을 불러 계산서를 가지고 오라고 요구한 다음 가지고 오면 돈을 준다.   그러면 영수증과 잔돈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이 때 동전 몇 개를 팁으로 주는 것.   절차가 좀 번잡하지만 역시 손님은 왕이다.


점심 식사 후 돌아오다가 주말에 박 선생님 자형과 같이 여행할 팀은 도중에 그 집 근처에서 내리고 남은 사람들은 내가 인솔해서 그 목욕장으로 간다.


이번에는 두 번째니까 여유 있게 행동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탕 안에 들어가서 절대로 여기저기 관광 모드로 다니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이번에야 수영 팬티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알몸으로 들어가면 되고.   안 풍경도 구경한 바 있으니 이번에는 훨씬 마음의 여유가 *^^*


밖에 나가 그늘이 있는 노천 휴식장에서 긴 잠 모드에 빠진다.  



나가자고 해서 일어나보니 어느덧 3시간이 지났다.


K. F. C에서 통닭으로 저녁을 대신하는데 왜 그리 짠지...


늦게 숙소로 돌아오는데 한국 여인네들이 있었다.   이곳 교민인데 어떻게 우리가 한국 사람인줄 알았냐고 물으니 말하는 것을 들었단다.   하면서 나보고 한국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나?


숙소에 돌아와 우리 팀에 그 말을 전하니 단장이 하는 말.

“당신은 일본 사람처럼 생겼어”


좋은 말인가 나쁜 말인가?  


순간적으로 판단이 잘 안되었는데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좋은 말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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