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연수기

RAT-HAUS와 스위스 갔다 오기

정안군 2006. 8. 2. 11:32

아침에 대구 강 선생님을 조장으로 한 여행 계획서를 단장에게 낸다.   결국 이번 주말 여행은 3팀으로 나누어 가게 되었다.   조 선생님은 이쪽저쪽 기웃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주말에 남아 있기로 했단다.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오전만 연수 일정으로 잡혀있고 오후는 각 팀별로 주말 계획이 시작된다.   단장을 포함한 주류는 함부르크로 가고 박 선생님 자형이 인솔하는 팀은 고슬라, 우리는 스위스 융프라흐가 목표인데 오늘 저녁 9시 49분 기차라서 여유가 있다.


오늘 견학은 RAT-HAUS 공사 현장이란다.   Rathaus가 구청이라서 구청 공사장인가 했더니 이번의 RAT-HAUS의 RAT는 영어로 쥐를 뜻한단다.   그러면 쥐의 집이 되는 셈인데 이 건물은 어떻게 쥐와 관련이 되는 것일까?   가 보면 알겠지.


맞았다.   가서 건물에 대한 소개를 받아보니 왜 쥐의 집인지 알겠더라고.


이 건물 외관은 철갑쥐의 모습을 흉내 내어 외곽을 휘어진 철강재로 하고 거기서 강재를 늘어뜨려 건물 하중을 견디도록 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완성된 조감도를 보니 실감이 나는데 사실 쥐보다는 두더지에 가까운 모습이다.   발상이 신선한데.

 

<RAT-HAUS 팜프렛에 나오는 건물 조감도 - 사진 솜씨가 없어서 좀..>


독일은 기초 공학이 강하기도 유명한 곳인데 나치 시절 이 막강한 공학을 바탕으로 많은 살인 기계를 만들어 내었었다.

전 후 이에 대한 반성으로 공과대학에서도 교육과정에 일반적인 공학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자연 과학에 대한 학문을 의무적으로 배우도록 하여 인간의 모습을 지닌 공학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


사실 건축 설계만 하더라도 철갑쥐와 같은 발상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나 철학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니 우리나라 건축물의 수준이 낮은 것도 이런 대학의 학문 접근 방법의 차이가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든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나도 사회 현상에 대한 무지 때문에 부끄러워서 사회 과학에 대한 많은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세상을 배워가고자 노력하지만 내 구미에 맞는 책만 골라 읽는 일이 많으니 지적 편중도 심한 편이다.   역시 음식도 그렇지만 지적 편식도 문제가 있다.


골조 공사를 끝내고 내부 공사를 하고 있는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건물 공사야 일단 외부 골조 역학 계산과 골조 공사를 끝내면 실내 공사는 별 것이 없다.


현장 소장은 안전 관리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가면서 설명을 했는데 자기가 지시하면 현장 노동자들은 이를 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간혹 안전모를 쓰지 않는 등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는 노동자가 발견이 되면 즉시 해고한단다.   내려 와서 건물 외곽을 돌면서 설명을 듣고 다시 현장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우릴 발견한 몇몇의 노동자들이 위에서 소리를 내며 좋아한다.   아마 환영한다고 하는 듯 했는데 그 중 한사람이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있었다.   소장은 좀 뒤에 떨어져서 오느냐고 이를 보지 못했는데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이 웃으면서 저 사람은 안전모를 쓰고 있지 않다고 하니까 이를 본 소장이 반색을 하면서 저 사람을 지금 즉시 해고할 것이란다.


아니 해고당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이 사람을 소장에게 일러바친 꼴이 된 사람은 더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 사람은 통역 정 선생에게 자기는 그냥 농담으로 한 것이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말해달라고 해서 정 선생이 그 소장에게 말하니 그 소장 왈 이것은 우리 규칙이니 지켜야 된단다.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규칙과 인정.   무엇이 나라와 조직을 끌어가는 것인지 새삼 우리나라의 인정 문화가 생각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그 놈 자르고 싶어도 그 놈의 정 때문에 자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고의 변화기에 살고 있어서 사회는 공정한 규칙을 요구하지만 이제까지 살아 온 사람들은 아직도 관례라는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또 자기는 여전히 관례라는 틀에 매여 살면서도 남의 관례는 인정을 못하고 있고.


여전히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가 있기는 있는 것인지.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이 반성해 본다.


일단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는 함부르크와 고슬라로 떠나는 팀들이 각자 출발했다.   목적지만 알 뿐이지 어디를 가는 것인지 어디서 자는 것인지 누구도 모른 채.


모든 것이 그렇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여행은 실제 가서 벌어지는 일보다는 미리 준비하고 돌아와서 반추하는 것이 진짜 재미이다.   내가 알아보고 준비했던 그런 것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질 때 때로는 생각보다 더 좋고 어떤 때는 못하기도 하지만.   하긴 아무 계획도 없이 갔다가 횡재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단체 여행의 경우는 거의 그럴 확률이 없다.


숙소에서 뒹굴 거리다 생각해보니 준비 안 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융프라흐는 지대가 높아서 긴 팔에 좀 두꺼운 옷이 필요할 텐데 그런 옷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난다.

 

시내 유로파 센터 근처 옷가게에 가서 둘러보니 남자 옷은 맞는 것이 없다.   할 수 없이 여자 옷을 산다.   다시 숙소에 돌아와 나들이 준비를 한다.   스위스는 물가가 무척 비싸다고 해서 오늘 밤참과 내일 아침 식사용으로 김밥을 싸고 달걀도 삶고 바나나도 미리 사두었다.   시간에 맞춰 쵸 역에 나가니 한국 여자 대학생 두 명이 있었다.   상당히 피곤해 보여서 물어보니 오늘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단다.   오늘 밤 기차로 파리에 가서 바로 출국하는데 돈이 달랑달랑해서 그랬단다.    이런 여행이 아니라 극기 훈련을 하고 다니고 있다.   도대체 그렇게 배가 고파서 뭐가 눈에 들어올까?   나중 베를린하면 떠오르는 것은 배고픔 아닐지.   어떻게 하나.  역시 우리는 인정의 한국인들 아닌가?   가지고 있던 달걀과 맥주를 건네주면서 혹시 한국에 돌아가 인터넷에 여행기를 쓰거든 꼭 우리 이야기를 써 달라고 했다. *^^*


서유럽의 기차역은 개방형이다.   기차 타러 들어올 때도 표 검사하는 곳도 없고 자기가 알아서 시간에 맞춰 홈에 들어오면 알아서 타는 것이다.   대신 안내가 잘 되어 있고 시간이 정확하서 기차 타는데 실수할 일은 거의 없다.


드디어 기차가 왔다.   겉 색깔은 시꺼멓게 생긴 놈이 별 멋은 없는데 일단 객차 번호를 확인해서 타고 보니 침대가 아니고 의자 칸이다.

순간 당황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번 기차역 안내소에서 표를 살 때 비싸다느니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괜찮다고 그냥 끄덕거리기만 했는데 아마 안내원이 침대는 비싸다고 의자 칸(물론 다른 말일 테지만)을 추천한 것을 동의한 셈인가보다.

<기차 소개 팜프렛 - 기차 몸체가 보인다>

<좌석 - 보기는 그럴듯 한데 에어컨이 너무 세서 몹씨 추웠다> 

<기차 회사가 다니는 노선인가 본데 붉은 색이 우리가 탄 노선>


미안해서 두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냥 가잖다.   이 때는 솔직히 나도 의자에 앉아보니 꽤 괜찮아 보여서 앉아서 날밤을 보내야 된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지 못했다.


에어컨 성능은 엄청나서 미리 산 긴 옷을 입고도 추웠고 또 왜 그리 목은 아픈지.   옆 노인네는 목에다 끼는 목 베개를 하고 모포를 덮고 잘도 자고 있는데 왜 그리 부럽던지.


이 기차는 취리히까지 가는 것인데 베른을 가려면 바젤에서 갈아타도 되지만 속도가 느려서 중간 바덴바덴에서 갈아타면 바젤에 1시간 정도 빠르게 도착한다.


바덴바덴 도착 시간은 새벽 5시 56분이고 출발은 6시 5분이니 서둘러야 한다.


밤 새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바덴바덴, 바젤에서 각각 기차를 갈아타고 베른에 도착하니 9시 좀 넘은 시간이다.

베른 안내소에 가니 물어보니 이곳에서 인터라켄을 거치는 융프라흐 왕복권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10만원이 넘는 돈 와우!!!


역 매점에 가서 식빵 한쪽을 반으로 나누어 사이에 샐러드를 낀 샌드위치를 물어보니 우리 돈으로 7,000원정도.   살인적인 물가라더니 정말 그렇다.


비싸면 사지 말잖다.   갑자기 베를린에서 본 여자 애들이 생각난다.   우리가 그 짝이 되었으니.  


그래도 우리에게는 기차 안에서 준 물과 김밥 그리고 바나나가 있다.


스위스로 넘어오면서 느껴지는 것은 기차 안이 점점 더 시끄러워 진다는 것.   북부 독일은 차안이 절간 같은데 내려오면서 전점 더 세상 냄새가 더 난다고나 할까?


베른을 벗어나 조금을 달리니 그야말로 그림 같은 스위스 모습이 펼쳐진다.   아무 곳이나 찍어도 그림엽서가 될 것 같은 분위기.    앞자리에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창밖을 가리키며 보란다.   멀리 흰 구름 같은 것이 보였는데 잘 보니 설산이다.   눈으로 덮인 벽 같은 것이 멀리 보인다.   융프라흐란다.   아름다운 스위스를 자랑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얼굴에 가득한데 한국을 물어보니 모른단다.   월드컵?   고개를 살랑살랑.


두 호수 사이라는 뜻을 가진 인터라켄에 도착하니 산악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부터는 표 검사가 철저하다.   가격이 비싸니 그렇겠지만.


우리나라 조선말기에 이들은 기차 철로를 놓고 터널을 뚫었단다.   그 시기에 왜 뚫었을까? 


지금처럼 관광으로 돈 벌 일을 미리 알았던 것일까?   인간의 대단한 힘과 아름다운 자연이 잘 조화된 스위스.


한국 사람도 많이 있다.   그 중에는 독일 도르트문트의 화공과 팀 일원도 있었는데 이들은 각자 유레일패스를 준비해서 주말여행을 다닌단다.   처음부터 각자 여행을 준비했던 것. 


역시 그 놈의 정이 우리들을 이렇게 해 놓았다.   처음 거절하는 것은 매몰차 보이지만 결국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에는 과감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저녁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머무른 시간이 짧아 아쉽기는 하지만 돌아가야 한다.   기차를 탈 시간인데 강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다.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 올라갔더니 숨을 못 쉴 정도가 된다.   여기가 3000 m 가 넘는 고지임을 잊었었다.

 

 

 

<융프라흐 오르는 도중>

 

 

 

<융프라흐 정상>


여러 가지로 아쉽다.   소방울이 딸랑거리는 초원 지대를 널널하게 트래킹하면서 즐기면 얼마나 좋았을까?


배고프고 벅찬 일정이었지만 경치가 워낙 멋있고 공기가 좋아서인지 피곤함이 덜 했다.


인터라켄에서 베른으로 돌아와 기차를 기다린다.   19시 48분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간다.  

침대칸으로 바꿀 수 있냐고 했더니 “No Problem"이란다.   일인당 35,000원 정도를 더 부담하면 된다고.   침대칸에 가서 누우니 정말 살 것 같다.   역시 돈이 좋은 것이여.

<침대칸 - 아침 식사도 다르다 *^^* >

 

자고 일어나면 다시 베를린에 가있을 것이다.   국경을 이렇게 쉽게 넘나드는 유럽.   그 유럽이 너무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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