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연수기

동 베를린 지역 유람

정안군 2006. 8. 4. 11:03

오늘은 STERN이라는 베를린 시청 산하로 재개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회사를 방문한다.   이곳은 시가 관리하는 공공주택의 재개발업무를 맡고 있는데 낡은 건물의 실내 리모델링이 주 업무이다.


건물은 독일 특성상 지나칠 정도로 튼튼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런 건물들을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실내만 보다 나은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라서 우리나라처럼 낮은 건물을 다 허물고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서울 특히 강남 같은 낡은 아파트의 재개발은 이권 사업으로 변질된 지 오래여서 정부에서도 규제를 하긴 하지만 언제 경제 활성화라는 이유로 완화될지 모르는 처지이지만 독일은 공공주택이 많고 워낙 인구 분산에 의한 공지가 많아 이런 현상을 피해가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이곳 소장은 여자로 건축기술사이며 건축설계사인데 풍기는 모습에 자신감이 나타나 보였다.   통독 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아직도 여러 가지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 전 교육을 통하여 젊은 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가르치고 또 장래 통일을 대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늘 생각하며 관심을 갖도록 교육했다 한다.


그래서 유물 관리할 때 이런 꿈을 가지고 있었던 젊은이들이 자원 봉사로 나서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아!!! 우리나라도 피상적으로 통일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통일 후 자기가 가진 지식과 기능을 통일일 되었을 때 피폐한 환경의 복구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는 통일에 대해 차근차근 그리고 미리 준비했던 독일에게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도 당연히 나름대로 많이 준비하고 있겠지?   혹시 갑자기 통일이 되었을 때 전쟁 전 북한에 살던 사람들이나 그 자손들이 이 땅은 내 땅이라고 내 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것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는지 알아봐야 되겠다.


친일파 자손들이 자기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땅을 돌려달라고 소송했던 것을 보면 전쟁 전 북한 땅에 대한 소유권 문제도 아마 대책 없이 그냥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심은 게뮈세라는 예멘 음식으로 대신한다.   케밥과 비슷한 형태인데 값도 비교적 싸고 색다른 맛이 있었다.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사는 것도 많은 장점들이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중국집 자장면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것처럼 중국 음식은 우리나라 음식 문화를 다양화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농촌 총각들에게 시집오는 많은 외국 여성들이 가지고 오는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문화가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이 될 것이고 편협한 민족의식을 고치는데도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정말 나와 보면 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잘못된 국가주의에 물들어 있는지.   또 나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패거리 문화라든지 경제관에 의해 사람이나 나라를 판단하는 것.


세계 속의 한국이라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갈 길이 멀다.


다음 시철지 역 보수 현장으로 이동했는데 단장은 박 박사와 함께 볼 일이 있다고 먼저 자리를 뜬다.   장화로 갈아 신고 진땅으로 된 현장으로 이동하려 할 때 나도 일찍 볼 일을 보러 나왔다.

 

단장만 볼 일있는 것은 아니니까.  ㅎㅎ


도저히 개관 시간을 맞출 수 없었던 보데 박물관을 우선 보고(그냥 그랬다) 멀리 보이던 유대교 회당이라는 황금성을 보러 간다.   극심한 박해를 받고 거의 없어져 버린 유대인들인데 그들은 다시 이렇게 살아나서 베를린 복판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건물이 다시 지어 놓았다.


유대인 회당은 어떻게 생겼을까?   불행히도 그들은 지금도 마음이 편한 상태가 못 되어 경비가 삼엄해서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었다.   그 옆에는 전쟁 전 그들의 묘지와 주거지 터에 세운 아주 조그만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가 있었다.


 이들은 과연 이 희생을 통하여 무엇을 배웠는가?


거무튀튀한 색의 금속 물질로 만들어진 무표정의 인간 군상들이 서있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지?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죽음의 세력은 이제 자신들이 죽음의 세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무표정의 군상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결국 이들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통하여 편협한 인종주의의 사악함을 배운 것이 아니라 나치들이 어떻게 박해를 했는지 그 방법을 연구했나 보다.


중세 이후 그들을 박해했던 유럽인들이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의 후원자였고 친구였던 팔레스타인사람들은 격멸의 대상이 되어 버렸으니.


결국 그들은 고난을 통해 원한은 은혜로 갚고 은혜는 원한으로 갚는 것을 배웠는가보다.


그 옆에는 건물이 있어서 무엇인가 하고 들어가 보려 했더니 한 청년이 막는다.

‘프리바트’란다.   영어 private인가 보다.  무슨 건물이냐 했더니 학교라고.

 

"Are you jewish?"

"Yes"

"짜식들"

"What?"

"됐네, 이 사람아 "

 

그래 남 나라 학교와 어린이는 폭격해서 망가트려 놓고 지 놈들은 당하기 싫다는 말이지.


알렉산더 광장에 있는 TV 송신탑을 찾아가 본다.   그 위가 전망대라니까 뭔가 있을 것 같아서.


한데 오늘은 휴일이란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다.


광장 앞의 등산 장비점에 들려 코펠과 마킬제 등산용 물통을 사서 돌아온다.


최 선생이 뭐라 한다.  혼자만 내뺐다고.  할 말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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