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2013 여행

디엔 비엔 푸, 역사의 현장에 발을 딛다.

정안군 2013. 5. 2. 22:56

이동 거리 : 103 km

이동 시간 : 5시간


어김없이 밤이면 천둥과 번개 그리고 정전.

오늘도 어제처럼 그래도 버스를 탈시간 5시쯤에는 개었으면 좋으련만, 억수로 쏟아 붇던 비는 조금 누그러지긴 하였지만 여전히 그칠 줄을 몰랐다.

5시 40분까지 기다려보지만 별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차로 향하는데 그래도 좀 누그러진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고.

비가 내린 덕인지 다행히 승객은 라오스 남녀 2명만 있었다.

자리는 널찍하게 가게 생겼다.

6시가 되니 그래도 대충 자리가 찬다.

우리 부부와 치카상 그리고 홀란드 남녀, 무슨 용무인지 모를 젊은 처자 2명과 젊은 청춘 남녀 2명, 장사꾼으로 보이는 사람 그렇게 10명과 운전기사가 오늘 차량의 주인공들이었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는 가운데 6시가 되니 정확하게 출발하여 C등급 정도의 포장상태를 보이는 아스팔트 길을 달려 베트남 디엔 비엔 푸로.

 

 

길이 험하고 엉망이라서 고생을 했다던 이야기를 인터넷으로 본지라 걱정을 했는데.

이는 정말 기우였다.

라오스를 정말 물로 본 것이다.

포장이 안 되어있었더라면 갈 수도 없을 것만 같은 험한 고갯길을 우리 버스는 잘도 달리더라고.

무앙 마이라는 곳에서 기사가 아침을 먹느냐 잠시 휴식을 하는데 이 빗속에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책 한 권만 달랑 들고 가는 동네에서 껌 좀 씹는 듯한 소년도 있었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재잘거리며 같이 가는 예쁜 아가씨 여학생들의 모습도 보인다.

여기까지 올 때 1,000m 정도의 고개를 하나 넘었는데, 무앙 마이를 지나자 또 한참을 올라간다.

이 고개를 넘으면 국경인가 했더니 1,300m대에 이르는 산 정상이 경계였다.

양국에서 합의를 한 듯 국경에서 한 2 km 정도 서로 떨어져 출입국 관리소가 위치해 있어서 우선 라오스에서 출국 심사를 마치면, 다시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서 베트남 입국 심사를 받게 되는데 심사라고 해봐야 여권만 디 밀면 얼굴 확인도 없이 그냥 도장을 찍어준다.





다만 베트남 입국 시 입국 심사장 간부가 한참을 베트남에 대한 안내를 유창한(외운 듯한) 영어로 한 다음 돈을 환전할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해주겠다나?

그래봐야 한 사람도 그 치에게 환전한 사람이 없었다.

홀란드 남녀에게 환전 안 하냐고 물으니 돈이 한 푼도 없단다.

짜식, 서양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흰소리나 하고 있어, 그것도 간부 같은데.

1,300m 고지에다가 비가 내리고 있어 체감온도는 10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반팔, 반바지를 입은 용감한 청춘인 나는 좀 떨었는데, 옛날 그 차림에 구채구 장호에서 개떨 듯 떤 생각이 나더군.

 

옛날에는 베트남 국경에서 디엔 비엔 푸까지 포장이라서 길이 좋았고 나머지는 비포장이어서 고생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 사정이 바뀌었다.

베트남 내의 도로는 엉망이 되었고 새로 포장한 라오스는 포장 상태가 좋으니.

그래도 국경에서 디엔 비엔 푸까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도착을 한다.

도시에 들어오기 전 넓은 들판은 벼가 익어가고 있어서 마치 우리나라 초가을 속을 달리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가 많은 것은 여기가 베트남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고.

 

이렇게 너무 쉽게 베트남 디엔 비엔 푸에 도착을 하는데.

어제까지 잤던 무앙 쿠아에서도 그랬지만 이 동네는 그 상태가 더 심했다.



길거리에서 영어가 도대체 한 마디도 통하지 않는 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이 급해 무슨 용무인지 우리에게 달려드는 청년들에게 ‘토일렛’이 어디냐고 하니.

“......................................................................”

다음 사람도.

“......................................................................”

이런 급한 용무의 말은 미리 알고 왔어야 될 우리 책임도 크지만 간단한 영어 단어 하나도 통하지 않는 이 동네, 정말 우리가 제대로 오긴 온 것 같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런 감정.

정말 말이 안 통하는 동네에 뚝 떨어진 그런 기분이 바로 이거였다.

 

베트남 입국 심사장 간부가 유창하게 설명한 바에 의하면,

이곳에 오는 외국인 거의 모두는 사파에 가니까 사파에 가는 버스 시간을 알려 주었는데, 아침 6시 30분과 오후 5시 30분 이렇게 두 대가 있다고 했다.




버스 시간표를 보니 아마도 라오까이(LAO CAI)를 가는 버스가 도중 사파에서 서는 모양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문자가 중간에 있어서 자세한 것은 버스표 파는 사람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될 것 같다.

 

루앙남타에서부터 우리와 동행한 치카상이 이제 우리가 작별을 할 시간이란다.

어디서 묵을 예정이냐고 하니 가지고 온 정보에 철저히 의존을 하는 일본인답게 복사해 온 곳에서 안내하는 중급 호텔에서 하루 묵고 간단다.

여기서 내일 비행기로 하노이로 간 다음, 거기서 호치민까지 다시 비행기를 타고 가서 귀국을 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 중급 호텔에 같이 가 본다고 했다.

이렇게 한참을 동행한 사람을 길거리에서 헤어지게 할 수는 없어서.

중간에 환전을 좀 하는데, ATM에서 돈을 찾으려니 최대 금액이 2,000,000동이란다.

엄청난 액수 같지만 우리 돈으로 하면 10 만 원 정도.

뭐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ATM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아야지 어떡해.

 

치카상이 가려고 한 호텔은 시장을 끼고 돌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중간에 게스트하우스들이 많이 보였다.

그 중 집사람이 가장 반가워 할 무료 인터넷 와이파이를 내건 곳도 여럿 있었고.

호텔에 가보니 조식 포함 US 달러로 25란다.

인터넷 된다는 이야기도 없고 그다지 시설도 좋아 보이지 않아 그곳에서 치카상과 작별을 한다.

누가 더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며칠 잘 같이 왔는데.

오늘 다시 이렇게 이별을 한다.

 

우리는 밤중에 뭔가가 펼쳐질 분위기의 작은 길로 들어서 보는데.

무옹 딴(MOUNG THANH) 야시 그 바로 입구에 응옥 민(NGOG MINH) 게스트하우스를 들어가 보는데, 넓고 큰 방에 에어컨이 딸려 있는 방이 20만동이라고.




이 동네도 무앙, 멍 이런 소리와 비슷한 무옹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을 보니 타이족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일단 콜하고 들어가 보니 정말 좋다.

괜히 무앙 쿠아 그 거지같은 방에서 이틀이나 묵었지 싶을 정도.

비싸게 준 것인지 알 수는 없어도 우리 돈 만원에 이런 방이라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다.

또 주인은 얼마나 친절한지.

이상하게 인터넷과 와이파이가 연결이 잘 안 된다고 하니 즉시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부르더니 조치를 시켜 주더라고.

이런 화끈함이 베트남이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로 만들었나 싶다.

 

점심은 베트남에 온 기념으로 쌀국수를 3만동에 한 그릇을 시켜 먹는데, 그래도 이 집은 영어를 토막식이라도 하는 딸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이 동네에서 밥 얻어먹기 쉽지 않게 생겼다.

점심을 먹고는 시내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

 

디엔 비엔 푸는 정말 의미 있는 도시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질서를 자기 의지대로 두려던 그 때까지의 강대국들에게 대항하여 여러 나라에서 항쟁이 벌어졌는데, 그 가운데 이곳에서 벌어진 디엔 비엔 푸 전투는 피압박민족이었던 베트남 민중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려던 프랑스군을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낸 역사적인 도시가 바로 이 디엔 비엔 푸이다.

꼭 한 번은 와보고 싶었던 그 도시에 지금 바로 내가 서있다니.

좀 감격스럽기도 하지만 길거리를 다녀 보면 사람들 모습은 그저 다른 동남아시아와 별 다른 것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래도 이런 역사를 가진 베트남이 나는 부럽다.

물론 엄청난 인명 피해와 물질적 정신적 고통이야 말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 그 덕에 후손들이 당당하게 머리를 들고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또 우리 남한은 이들의 해방 전쟁의 방해꾼으로 등장하여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으니.

지금은 나이 든 사람 정도야 기억하겠지만 여기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일본에게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우리나라를 보면 참 여러 가지로 찹찹하기만 하다.

어쨌든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의 고장 디엔 비엔 푸에 내가 와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호텔로 갈 때 높은 언덕에 서있는 동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전적비일 것이다.

며칠 이곳에서 묵으면서 여기저기 불러 보고 싶은데 어쩔지 모르겠다.

북부 베트남이 워낙 여행자들에게 악명이 높은 곳이라서.

 

거리를 거니는데, 많이 보이는 것이 길거리 이발사들이다.



다른 것은 그렇게 깔끔해 보이지 않았는데 거울만은 아주 잘 닦아 놓았더라고.

정류장 옆으로 서있는 하노이 행 대형 버스는 거의 다 우리나라 중고 버스였다.

멀리 마산에서 시집온 버스도 있었다.



이 동네 아가씨들이 많이 한국으로 시집을 왔는데, 우리 한국에서는 버스가 많이 시집을 왔나 보다.

그래도 대접을 잘 받는 것을 보니 좋아 보이기도 하는데, 가끔씩 중국제 버스도 보이는 것을 보니 계속 시집을 오게 될지는 아무래도 힘이 들어 보인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4거리에 오래된 교량이 보인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된 노인 교량이다.




딱 보아도 오래 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 옆에는 디엔 비엔 푸 전적비로 보이는 것이 서있는데 모두 베트남어라서 무슨 소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영어로 써 놓기도 그렇고 한자로 써 놓기도 그렇고 더더구나 프랑스어로 써 놓을 수도 없어서 그랬나?

그러고 보니 정말 대단한 나라다.

한 때 큰소리치던 아니 지금도 큰소리치는 나라와 당당하게 맞서서 싸우고 지지 않았으니.



한 가족이 와서는 할아버지에게 뭔가 설명을 듣는데 아마도 디엔 비엔 푸의 자랑스러운 조상들이야기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게 뭐지?

일제 강점기 식민지 군인이었던 딸이 대통령이 되어서 북쪽 대를 이은 철부지와 철부지 놀이나 하고 있으니.






주인 잘못 만난 탱크와 총알 자국이 선명한 비행기 프로펠러는 지금 무엇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을까?

이렇게 주인 잘못 만나면 남의 나라에서 개 고생한다?

 

중심 도로를 따라 숙소로 돌아오는데 그 거리는 옛날 중심도로였던 모양이다.

이런 저런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꽤 괜찮은 동네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 무렵에 서는 장구경은 더욱 흥미가 있었고.

모처럼 싸고 맛있는 거 많고 오고 싶었던 그런 곳에 오게 되었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그쳤던 비는 저녁 무렵 다시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 멀리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니 길거리는 가게 앞을 단속하고 또 얼른 집으로 돌아가려는 오토바이 행렬로 갑자기 복잡해졌는데.

덩달아 우리도 발걸음이 바빠져서 숙소로 돌아오고는 그대로 그만 하루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제대로 저녁을 못 먹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