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외곽에 있는 유스호스텔은 겉으로는 상당히 허름했어요.
그리고 왜 그때는 유스호스텔만 고집했는지.
한 명당 3300엔이니 혼자였더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겠죠.
그런데 우린 세 명이면 만 엔정도가 됩니다.
그 돈이면 다른 곳을 알아 봤어도 좋으련만.
그때는 그게 최선인줄 알았어요.
아무튼 주인에게 안내 받아 들어간 방은 4인실.
이인용 이층 침대가 두 개 놓인 허름한 방이었어요.
허름하지만 나름 깨끗한.
그런데 화장실을 가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해 놓을 수가 있는지.
반짝반짝 빛나는 변기는 정말 눈이 부실 정도였어요.
미안해서 사용하기도 민망한.
지금까지도 그 유스호스텔 화장실보다 더 인상에 남은 곳이 없을 정도로 청결함에서는 최고였습니다.
주인에게 자전거 세 대를 빌려 시내 구경에 나섭니다.
하루 한 대 1000엔인가 아무튼 우리 감각에 싸지 않았어요.
시내에 나가려 하니 주인이 뭐라 합니다.
‘마뿌’가 필요하지 않으냐 하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비싼 돈에 괜히 우물쭈물 했더니 후리라고.
그리고 보여 주는데 그 ‘마뿌’는 ‘map’이었어요.
지자체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지도.
영어 맵이 일본에서 마뿌가 되었습니다.
하기는 두 강 사이에 끼인 삼각주에 건설된 도시라서 완전 평면입니다.
자전거 타기에는 최고인 동네죠.
그런데 문제는 더운 날씨였습니다.
엄청나게 더웠습니다.
아마 지금도 우리 아이들도 그 도시하면 더웠던 생각만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아담한 시내를 지납니다.
곳곳에 우리 어릴 적 보았던 일본식 주택이 여러 곳에 보였습니다.
누구누구 고택 아니면 탄생지.
카메라 건전지가 다 되어 카메라 가게를 찾아 가서는 기껏 한 말이 밧떼리 아웃.
‘건전지가 다 되었으니 새 것을 다오’
이 말을 할 줄 몰라서리.
그래도 주인이 알아 듣고 같은 종류의 건전지를 내 주더군요.
가격은 일본 아니랄까 봐 무지 비쌌어요.
나중에 일본어 잘 하는 사람이 말해 주더군요.
오나지 고토오 구다사이(같은 것을 주세요)
이 정도 말은 알았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머리가 돌지 않았나 봅니다.
첫 목표는 쇼인(松陰)신사였습니다.
일본은 널린 게 절과 신사이지만 이 쇼인 신사는 나름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막부 말 나중에 일본을 주름잡는 인간들이 이 신사의 주인공과 깊은 관계가 있거든요.
이 쇼인 신사의 주인공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현 수상 아베가 제일 존경한다는 친구입니다.
막부 말 요시다 쇼인은 동네에서 좀 괜찮아 보이는 젊은 친구들을 촌숙이라는 곳에 모아 교육을 시킵니다.
그 중 한 놈이 이토 히로부미.
교육 내용은 ‘존왕양이’
그러니까 왕을 존중하고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자는.
그러다 영국에게 덤벼다가 대포로 몇 방 얻어맞고는 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지만 왕 존중은 그대로.
그런데 그 왕은 나라 문을 절대로 열어 서는 안 된다는 인간
뭔가 이치에 맞지 않지만 이들은 그런 건 상관없이 지들이 하고 싶은 대로 지껄이는 이른바 아무 말 대잔치 주인공들.
요즘 출산주도 성장인지 뭔지 멋대로 지껄이는 어느 당의 무리들과 같지 않을까 싶어요.
이게 비극인 것이 이 아무 말 대잔치 주인공들이 일본을 주무르게 된다는.
당시 일본 왕은 교토 한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는 존재였고 실력자는 쇼군이었는데, 쇼군에게서 권력을 빼았아 왕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왕은 너무 신성한 존재여서 정치에는 관여하게 하면 안 되니 정치는 우리가 하자는 게 이들의 속마음이었죠.
요시다 쇼인이 이런 소리를 해 댈 때 그때는 막부 쇼군이 그래도 힘이 좀 남아 있을 때라서 건방진 소리를 해댄 요시다 쇼인은 처형이 됩니다.
아무튼 이 쇼인의 제자들이 막부 말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일본을 주름잡게 되지요.
지금도 그들의 영향력이 이모저모로 막강하니 이 떨거지들의 스승이 대단한 대접을 받게 된 셈.
쇼인 신사는 다행히 무료.
워낙 뜨거운 날씨여서 관람객들은 많지 않았어요.
신사 구경은 설렁설렁.
경내 한 구석에는 쇼카손주쿠(松下村塾)가 있었어요.
우리말로 옮기면 ‘소나무 아래 서당’이 되겠네요.
건물은 조그마했는데, 안에는 못 들어가게 했어요.
들어가래도 싫다 이 인간들아.
그래도 안을 궁극해서 살짝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공부(?)했다는 인간들이 죽 걸려 있었습니다.
일찍 죽어 우리나라와 악연을 맺지 않은 인간도 있고 오래 오래 살아 우리나라와 악연을 맺은 인간들은 가슴에 훈장을 잔뜩 달고 있는 모습의 사진들이 있었어요.
깍 침이래도 뱉어 주고 싶지만 일단 참기.
근처에 이토 히로부미 옛집이 있다고 나와 있어서 갈까 말까 하다가 그런 인간 집을 가 봐서 뭐하니 싶어 생략.
점심때가 되어 적당한 곳을 찾아 봐도 당최 알 수 없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한적한 곳을 찾아봅니다.
처음 도시락을 사러 편의점에 가서는 계산하기 전에 렌지에 넣어 가격표를 새까맣게 그을려 계산할 때 미안했던 적도 있었네요.
어디가 좋을까?
지도에서 찾아보니 기쿠가하마(菊ヶ浜)라는 해변이 있었어요.
가보니 조용한 해수욕장이었는데, 해수욕객은 한 명도 없는.
소나무 그늘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데, 다른 곳보다는 낫지만 덥기는 매 한가지.
조금 쉬다가 너무 더워 숙소로 철수합니다.
비싸게 빌린 자전거를 일찍 반납하는 게 좀 아쉽지만 더위 먹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죠.
숙소는 세진 않지만 에어컨이 있어 그나마 괜찮네요.
작지만 목욕탕이 있었어요.
더운 여름철에 뜨거운 욕조에 어떻게 들어가나 했더니 해 보니 좋더군요.
아이들은 싫다고 해서 혼자 들어갔는데, 독일 청년이 미리 안에 있어 잠시 국제 회담을 해 봅니다.
그런데 영어는 생각이 안 나고 왜 일본어만 생각났을까요?
저녁 무렵에 나 혼자 하기 성터에 가 봅니다.
성은 안에 있던 건물들은 다 없어졌고 그냥 해자와 성 흔적만 남아 있더군요.
한창 잘 나가다가 이런 시골구석까지 올 수 밖에 없었던 이곳 다이묘(大名)였던 모리 가문의 슬픔이 남아 있는 듯 하더이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주노라.
이런 풍경에 어울리는 노래라면 어떨까요.
성 아래 마을 풍경입니다.
이래서 하기를 작은 교토라고 하나 봐요.
쇼인신사입니다.
별 볼일도 없더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네요.
하여간 일본놈들 돈으로 뭔 짓하는 건 알아 줘야.
쇼인이 젊은이들을 가르쳤다는 서당.
엄청나게 작았어요.
종자가 작아서 그랬나요?
서당에서 공부했다는 인간들.
일찍 죽은 놈도 있고 오래 살아 우리에게 못된 짓도 많이 한 놈도 있고.
이토 이로부미도 보입니다.
SOB들
한적하기 그지없었던 기쿠가하마 해수욕장.
하기 성터입니다.
한 때 모리 가문의 본거지였던 곳이죠.
이 집구석 떨거지들도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못된 짓을 많이 많이 했어요.
뱀발) 사진은 모두 구글 지도에서 아무말 없이 가져 온 것이니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마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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