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인생을 살다보면 세상 여러곳에서 고수를 만난다는 뜻이다.
이는 유흥준님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써먹은 말인데, 오늘은 정말 이 말을 실감할 고수를 한 분 만났다.
보이차를 알기 위해서 아카족 마을에서 3년 동안 함께 기거를 했고, 이를 통해 그들을 사귀고 그들에게 믿음을 주면서 그들이 만들어 내는 차를 직접 거두워서 이를 자기가 의도한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그런 분이다.
물론 의도가 선하고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분을 어제 저녁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우연히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일 차를 압축하고 가야 하는데 원하면 같이 갈 수 있다는 제의를 받는다.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수 없는 우리는 그렇게 하마 하고 약속을 하고는 오늘 그 분이 기거한 마을 사람이 가꾼 그 동네를 방문하는데.
방문한 곳은 오래된 차나무로 유명한 남나산이었다.
보이차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명한 곳인데, 나는 오늘 그 사실조차 처음 알았다.
경홍에서 맹해쪽으로 가다가 반파채(半坡寨 BANPAZHAI) 마을쪽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그 최종 목적지는 천년 묵었다는 차나무가 있는 곳이다.
요즘 차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은 임창(臨滄) 빙도(冰島 BINGDAO)산인데, 이 분은 워낙 수량이 적어서 그다지 세력을 펼치지 못하는 모양이고, 그 다음이 노반장(老班章 LAOBANZHANG)산인데 이 노반장이 위치한 지역은 남나산 지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포랑산 기슭이라고 한다.
이 노반장 산 차에는 가격과 맛에서 조금 못 미치지만 다음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 반파채인데 오늘 그곳을 가보는 것이다.
이 반파채도 남나산에 속하는 지역이다.
옛날 개그 콘서트에서 강성범이가 이런 말을 했든가?
"우리 엔벤에서는 차나무가 천년은 묵어야 제법 대접을 받습네다."
반파채는 정말 천년을 묵어야 제대로 대접을 받아서 정말로 이런 대사가 생각나는 그런 동네였는데, 그것 말고도 차에 대한 많은 사실을 이 고수분을 통하여 알게 된다.
이 천년 묵은 차나무가 있는 곳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 듯, 좁기는 하지만 콘크리트 포장이 잘 되어 있었는데 그냥 혼자서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대충 가는 길은 이렇다.
경홍에서 맹해가는 길을 따라서 한참을 가다가 콘크리트 포장길로 바꿔 타고 한참을 오른다.
그러다가 일단 치앙라이 란나 스타일 지붕이 보이는 동네에 있는 농구장 겸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는.
이런 길을 제법 간다.
길은 산중턱으로 이어져 있어서 크게 힘든 곳은 없고, 산냄새가 물씬 나곤해서 참으로 걷기에 기분 좋은 곳이었다.
조금만 길을 따라 가면 제법 굵어 보이는 차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작고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거뜬히 백년 이상은 된 것이란다.
이런 굵기의 차나무는 정말 흔해서, 고차수(古茶樹) 마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
고차수라고 하면 뭔가 어려운 말 같지만 그냥 말하면 오래된 차나무란 뜻이다.
가던 도중에는 공룡이 활동하던 시기에 등장했을 법한 나무도 있었다.
가까이에 서서 얼마나 굵은지 사진에 담으려고 해도 도저히 담을 수가 없을 정도로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이더라는.
이미 새 순은 일 차로 땄고, 이제 두 번째 순이 나오기 시작했단다.
당연히 첫 번째 순이 맛도 좋고 모든 것이 좋다고.
차꽃도 이미 피었다고 지고는 이렇게 열매가 맺혔는데, 이 열매를 붓두껍에 넣어서 가져다가 우리나라에 한 번 심어 보고 싶었지만, 옛날 목화솜 씨를 가져간 문익점의 방법을 이미 알고 있을 중국이 그냥 쉽게 넘어 가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한다.
중국아들이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나?
드디어 등장한 랭킹 2위 800년 묵은 차나무 되시겠다.
이 나무를 보면 이 나무가 어렸을 때 키가 자라지 못하도록 관리가 되어 있단다.
이런 것을 보면 그 시절부터 차나무를 관리하면서 찻잎을 채취했을 증거가 된다고.
옛날 어느 시절인가 이런 나무들을 따라서 아카족은 원양 부근에서 이쪽으로 이동하였단다.
하니족이 아카족인데, 하니족은 중국 정부에서 이들을 부르는 것이고 중국에 사는 이들도 자신들을 아카족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바로 옆에 서서 비교적 어린(?) 고차수에서 찻잎을 따는 아가씨.
물어보니 태족이란다.
아직 어리던데 힘든 일을 하는 것을 보니 좀 마음이 짠했다.
사실 보이차 가격이 엄청나다고 해도 이렇게 직접 입을 따는 아가씨들에게 돌아갈 돈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폼을 잡는 이유는 선전 목적에 있단다.
사실 이렇게 오래된 나무에서 채취하는 찻잎은 그 양이 얼마 안 되어 직접 방문하는 사람을 빼고는 돌아갈 몫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많은 찻집에서 고차수 어쩌고 하면서 파는 것은 뼌하다는 이야기이다.
모두 가짜라는 것.
곳곳에 이런 물이 있었는데, 먹을 수 있어 보여도 직접 생수로 먹지는 않는다고.
받아다가 찻물로 쓰기는 해도.
드디어 이 동네 차 대왕님이 계신 곳에 도착을 했다.
이 분이 되시겠다.
앞에 계신 분은 우리를 안내해준 이 동네 고수분(여기서 말하는 고수는 오래된 나무가 아니고 대가란 뜻이니 정확히 이해하시도록)
그 뒤는 사모님.
그리고 그 뒤가 1000년 묵은 차나무.
이 동네 차나무 대장님이시다.
모양새는 랭킹 2위 분에 비해 좀 그랬는데, 이 동네에서는 모양보다는 나이가 장원이라서.
이곳에는 가끔씩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고는 성의를 받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카족 아주머니.
우리를 안내한 분과 같은 동네에 사셔서 돈은 받지 않았는데,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공짜로 먹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아주머니에게는 남편분의 조상님들이 이 천년 묵은 차나무를 물려 주셨단다.
올 해 이 천년 묵은 대왕 차나무에서 찻잎 새순을 2 kg 수확하였다고.
얼마를 받았냐고 물으니 1 kg에 중국돈 2만원,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4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다.
우와~~~
그런데 그게 2 Kg이니 그 양이 정말 얼마 안 된다는 거.
조금 더 이렇게 나이 드신 차나무에서 찻잎을 조금 더 얻어 보려고 흙을 북돋아주다가는 이 대왕 차나무를 돌아 가시게 할 수도 있어서 건드리지 않는다고.
마치 황금알을 낳은 닭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져서 800년 된 차나무를 죽게 만든 일도 있었단다.
이 분이 우리에게 맛을 보여 준 찻잎이다.
올해 수확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녹차 맛이었다.
물론 가격이 엄청난 몇 백년씩 묵은 나무에서 채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십년된 차나무에서 올해 채취한 것이라고.
맛은 우리가 흔히 녹차라고 부르는 그런 맛인데, 내가 알던 메주 덩어리 스타일의 보이차는 숙차라고 부르는, 그러니까 얼마동안 숙성시킨 것으로 이 동네 사람들은 좀처럼 그런 형태의 차를 먹지 않는단다.
여기서는 이토록 흔하고 흔한 차나무이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나 중국 본토에서 이런 차를 즐기는 사람들 수만 생각해도 웬만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차례도 안 올만 하겠다.
그런데도 보이차로 수입되는 차의 양이 엄청나다고 하니 그 소속이 어디일까?
우리나라 영광 조기처럼 다른 곳에 잡히더라도 그 동네에서 가공을 하면 영광 조기가 되는 원리가 아닐까?
돌아오다 보니 갈 때 그냥 지나쳤던 랭킹 3위 차나무도 보였다.
이렇게 안개가 휩싸곤 해서 좋은 차가 나오는 모양인데, 이곳보다는 지대가 100m 정도 더 높은 곳에 있는 차가 더 맛도 좋고 더 높은 가격을 받는단다.
여기도 1600m 정도되는 고지대인데, 1700m 대에서 나오는 차가 가장 맛이 좋다는 것이다.
사실 이곳보다는 노반장이라는 곳의 차가 더 유명한 모양인데, 정말 그곳에서 고차수 첫잎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단다.
돈도 돈이지만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리.
이 동네 차나무들도 한 때 참 어려운 시기를 견디어 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때는 차 마시는 문화가 퇴폐적이라 해서 홍위병들의 제거 대상이 되어 많이 베어지기도 하고, 또 한 때는 고무나무보다 수입이 더 적다해서 베어지기도 했단다.
이렇게 살아 남은 차나무들은 그러니까 무용지물, 별 볼일없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제까지 살아 남은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한 때 괄시받던 이런 차나무들이 보물 나무가 되었다.
고차수 구경을 마치고 우리가 방문한 곳은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해 주신 분들이 살던 아카족 마을 죽림이라는 곳이다.
죽림이란 대 죽에 수풀 림이니 대나무가 우거진 마을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나 보다.
이런 집에서 4년을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경홍에 내려와 살고 있고, 이집은 마을 공회당처럼 쓰이고 있다고.
이 마을은 지금도 차나무에 비료나 제초제를 절대로 쓰지 않아서 높은 가격으로 차값을 받는데, 이렇게 주민들을 설득하고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게 해 사람이 바로 오늘 우리를 안내해 준 그 분이시다.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이 이 분을 많이 신뢰한다고 한다.
그럼 다른 곳 차나무 사정을 어떨까?
대규모로 재배하는 재배종의 경우는 첫 순은 몰라도 두번째 우수 때쯤 따는 차들은 농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단다.
참 비극적인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통 먹을 보이차는 대략 이런 놈들이라는 사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농약에 푹 잠긴 보이차를 명약으로 알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보이차를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먹지 않는 것이 좋겠지.
동네 곳곳에 차 건조장이 보이는데, 차로 인해 소득이 오르면서 주택이나 생활 환경도 많이 좋아지고 있단다.
이 찻잎이 고차수에서 올 해 채취한 것인데, 이렇게 일단 덖은 것을 말린 다음 압축을 해서 육개월 정도 숙성시켜 상품으로 내보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분들이 살고 계신 집에 가서 제대로 차들을 맛보기 시작했는데 물 배를 얼마나 채웠는지 배가 올챙이배로 바뀔까봐 걱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 귀한 것까지 선물로 받았다.
차나무의 첫 순이 나올 때 따서 말린 것과 양관장 보이차를 받았는데, 양관장은 이분이 아카족 마을에 살 때 친하게 지내던 양씨네 차나무 밭에서 채취한 것이라서 양관장이라고, 자기가 취급하는 보이차를 이분은 이렇게 부른단다.
관장은 동네 회관을 맡고 있어서 관장이라는 직명을 붙인 것이고. ^^
올해 해발 1700m 대 고차수에서 채취해서 압축한 것이다.
무게는 이렇게 압축한 것은 모두 357g이라고.
왜 357g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군요.
아, 이분만 모르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압축하는 차 공장에서도 그 이유를 모른단다.
그냥 옛날부터 내려온 관습이라고만 말한다고.
거기에다 운남 고유 악기까지 주셨는데, 참 이런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까?
그분이 대답하기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신 갚으라 하신다.
네. 그러지요.^^
덤으로 차밭에서 미끌어져 팔꿈치 관절 부근 뼈가 부러진 집사람도 귀한 경험을 선물로 받았다.
우기철에는 차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행히 심하지 않아 그냥 두면 3 - 4주 후에 아물거라는 경홍 서쌍반납 주병원 의사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한 시름을 덜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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