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여행기/미얀마 2013 여행

미얀마 남캄 무세 라시오 여행 20131222

정안군 2014. 4. 21. 17:31

도대체가 추웠습니다.

 

어제 뜨뜻한 물로 기분좋게 목욕을 하고는 런닝과 팬티 바람에 차가운 침대 속으로 들어 갔는데, 얼마 안 있어서 몸이 사정없이 떨렸습니다.

 

제 몸이 특허를 내다시피한 오한이 찾아 온 것인데요, 이럴 때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하는데 전기 매트는 집사람이 사라와 다른 방에서 자서 제 차지가 아니니 도대체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옷을 껴입는 것 밖에는 없었어요.

 

정신없이 옷을 껴입고는 조금 있으니 몸이 안정이 되면서 어느샌가 잠이 들었더군요.

도대체가 이 동네는 안 추운 곳이 없어요...

중국 운남과 가까워서 그런지 모든 게 비슷합니다.


호텔이라도 비싸면 난방이라도 확실히 해 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고.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제공한다고 해서 가보니 이상한 음식 몇 가지와 그나마 토스트가 있어서 토스트로 아침을 먹는데 온통 문이란 문은 다 열려 있어서 왜 그리 추운지.

이 동네 사람들은 추위에 견디는 힘이 우리보다 강한 모양입디다.

 

 

무세 교회의 주일 예배에 참석을 합니다.


아침을 대충 먹고 우리가 특송을 할 교회로 갑니다.

교회 이름은 무세 샨 침례교회인데, 우선 교회 앞 집사님 댁에 우리 짐을 맡기고 교회로 가보니 교회 규모가 제법 되더군요.

여기도 남깜 침례교회처럼 예배당의 형태가 십자가형이네요.




  

9시에 예배가 시작됩니다.

어제 만났던 신학대학 학장 Sai Tin Hla 목사와 원로 목사 그리고 직분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이 강대상 위에 앉아 있는데 날이 추우니 빵모자 쓰신 분들까지 게시고 복장이 매우 자유스럽습니다. ^^

 

알아 듣지는 못하지만, 낯익은 찬송가도 나오고 드디어 우리 특송 순서입니다.

역시 우리 집사람의 목소리가 환상적이네요.

 

1절부터 3명이 한 사람씩 돌아 가면서 노래를 했는데 우리 집사람이 노래를 시작하자, 앉아 있던 신자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눈동자가 훨씬 더 커지는 것을 느끼겠더군요. ^^

 

설교는 알아 듣던지 말던지 똑 같은 반응이니 그냥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이고 그러면 시간은 가는 거지요.

외국에서 말이 안 통하는 예배를 한두번 참석해 보나요? ㅎㅎ

 

예배가 끝나자 엄청난 악수 세례와 인사 소개가 이어집니다.

일일이 우리를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는 역시 대단한 사라. ㅎㅎ

 

모든 인사를 마치고는 교회 문을 나서는데 웬 걸인이 동냥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라가 뭐라 해서 잘 들어 보니 '렙로시'라는군요.

렙노시(leprosy) 바로 문둥병입니다.

말이 너무 험악해서 나병이라고 했다가 요즘은 한센씨 병으로 불리는.

 

손가락 마디가 다 문드러졌더군요.

나자로인가요?

성경에 나오는 문둥이 거지가?

 

그 나자로는 천국에 갔으니 이분도 지금은 이렇게 고통과 멸시를 받지만 나중에 천국에 가시라고 빌어 드립니다.

 

교회 집사님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차와 과자를 대접 받았는데 거기서 이 교회 목사님을 통해 남캄 마을의 엄청난 기독교 집안 내력을 알고 정말 '깜닥' 놀랐습니다.

 

이 동네 샨 교회의 중심 인물은 모두 남캄 마을 출신이었습니다.

선교사가 일찍 복음의 씨를 뿌렸으니 당연한 결과일까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이 성경 귀절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교회에서 다음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립니다.

얼마만에 듣는 교회 종소리인지.

 

9시는 미얀마어 예배이고, 11시는 샨족 언어 예배라는군요.

원래는 우리가 신자가 훨씬 많이 모이는 11시 예배에 참석해서 특송을 하려고 했다가 오늘 무세를 떠난다고 해서 9시 예배를 참석했지요.

 

샨족 예배에서 특송을 했더라면 사라가 더 기가 살았을텐데 좀 아쉽습니다.

 

남감에서 출발했다는 승용차를 기다리다 남는 시간에 바로 옆에 있는 시장 구경에 나섭니다.

별스런 것은 없지만 이것저것 챙겨주는 사라가 어쩜 그리 예쁜지.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쉬움이 별로 남지 않은(?) 무세를 떠납니다.

무세는 먼지로 가득찬 회색 도시였습니다.

사라의 말에 의하면 4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중국과 미얀마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미얀마의 수박이 중국으로 그리고 중국의 공산품이 미얀마로 각각 트럭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이런 엄청난 먼지와 교통 체증이 생겼다고 합니다.

강변으로 우회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던데 그게 완성이 되면 사정이 나아질까요?

 

이제 정말 갈 시간입니다.

 

우리를 제대로 라시오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사명을 띤 아팃과 함께 출발합니다.

사라와는 아쉽지만 이번에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시 만나자고 하긴 했지만,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왔던 길을 이제는 다시 돌아 갑니다.

이번에 우리가 타고 가는 차는 '아스트라'라는 차인데 독일제라는군요.

기사는 사라가 남깜 마을에서 섭외한 샨족 총각인데, 생긴 것은 동네에서 껌이나 씹었을 것 상이지만 운전도 얌전하게 하고 우리를 위해 배려를 많이 해주는 멋쟁이네요.

 

우리와 함께 가는 아팃은 카친족으로 사라와 같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아팃의 뜻이 뚱뚱이랍니다.

좀 놀렸더니 지금은 살을 많이 빼서 아팃이 아니라는군요. ㅎㅎ

센스쟁이 사라가 덧붙이더군요.

그러면 지금은 안 아팃이라고.

한국어에서 부정의 말이 '안'이라고 알려 주었거든요.

.

사라는 영어를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라서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아팃은 영어 말하기가 내 수준이라서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갈 때는 몰랐는데, 우리가 계속 오르막을 갔더군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계속 내리막이겠지요?

 

조금 늦었지만 우리가 갈 때 먹었던 AMY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AMY가 이마이로 발음이 될까요?

 

에이미도 아니고 아미도 아닌 이마이라.

 

식사를 마친 뒤에도 한참을 더 내려가서 평지를 달리니 라시오입니다.

 


 

어제 대학 학장이 예약을 해 놓은 호텔로 오니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호텔을 만난 것 같네요.

 

싱글 35, 더블 45 달러인데, 일단 깨끗하고 방도 넓고 무엇보다도 스텝진이 너무 친절합니다.

호텔 이름은 YA HTAIK 호텔로 한자로는 아태(亞泰빈관입니다.

아시아에서 아, 태국할 때 태.

 

스텝진에게 공항까지 택시로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20분 정도 걸린다네요.

내일 12시에 체크 아웃을 하고 느긋하게 공항에 가도 되겠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밀린 피로를 좀 풀어야 되겠네요.

 

방도 넓고 전기 매트를 깔으니 뜨끈뜨끈한 게 좍 몸이 풀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헤어진 사라의 웃음 소리가 벌써 그립습니다.

 

우연이 필연이 되다.

 

참 사라의 소개가 빠졌네요.

 

사라의 할아버지는 광동 출신 중국 해군이었는데, 세계 2차 대전 중 여러 가지 복잡한 사유로 중국을 떠나 인도에서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고든 시그레이브를 만나 일단 쿠커로 일을 시작한 뒤, 함께 남캄으로 가서 일을 하였다네요.

거기서 정착을 하여 샨 족 여성과 결혼을 해서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모두 놓아 버리고 살다가 아들을 선교사의 운전기사였던 분의 딸과 결혼시키면서 남캄에서의 사라 가계가 시작되었다네요.

 

아버지는 비록 자신의 아버지가 중국인이었지만 샨족 마을에서 중국 문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고, 그 뒤 모든 후손들은 중국인보다는 샨족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살았다 합니다.

 

사라 부모님을 연결시켜준 고든 시그레이브는 양곤에서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그 자신이 선교사로 살다가 그가 사랑하는 미얀마에 뼈를 묻은 분으로, 군사 정권이 수립된 뒤에는 옥고도 치루는 등 정말로 드라마틱한 일생을 사신 분입니다.

 

더 아실 분은 네이버 지식인이나 위키피아를 들어가 보세요.

 

아무튼 사라 가족은 중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샨족으로 살았으니 그러니까 중국말도 당연히 모르겠지요.

 

사라는 이곳 고든 선교사가 운영하다가 국유화된 학교를 다니다가 삥우린에 가서 고등학교를, 그리고 만달레이에서 그 유명한 만달레에 대학을 다녔답니다.

그뒤 필리핀 분교에서 음악을 배웠고, 미얀마 신학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재원인데, 우리랑은 사라가 음악 DVD 3집을 낼 때 도와 준 친구에게 밥을 사주기 위해 무디따에 왔다가 우리 집 사람의 촉에 걸려 만나게 되었죠.

우리는 그때 무디따를 떠나 동생네 있었는데, 심심해서 잠깐 무디따에 놀러 왔던 시간이라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은 없을 겁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의 인연이 없었더라면요.

 

이 우연이 필연이 된 것이네요.

인생살이라는 게 이렇게 우연이 하나하나 쌓여서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줍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