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여행기/미얀마 2013 여행

미얀마 남캄 무세 라시오 여행 20121220

정안군 2014. 4. 21. 17:29

낯선 곳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방은 썰렁하고 공기는 차가웠지만 다행히 집사람이 추울 것이라고 준비해 온 전기 담요 덕에 따뜻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지만 이렇듯 꼼꼼하게 챙기는 집사람의 지혜가 놀랍군요.

 

화장실 물의 꼭지 위치가 반대로 잘못 되어 있어서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줄 알고 밤에는 닦지도 못했는데 아침에 보니 잘 나오기는 나오더군요.

수도 꼭지 방향은 세계 공통이 아닌가요?


어쨌든 이렇게 좀 허술하면 뭐든 안 될 거라고 간단히 생각할까요?

 

아무튼 그래서 아침에서야 따뜻한 물로 대충이나마 닦을 수 있었어요.

 

밖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고, 추운 날씨 속에서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나 가끔씩 오가는 한산한 거리 모습입니다.

날씨는 우중충한 게 참 더럽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때는 동남아 지역에 한파가 몰려와서 베트남에는 눈까지 내렸을 때였습니다.

원래 겨울에는 추운 지역이기도 한데 한파까지 겹쳐 훨씬 추웠던거죠.

 

사라와는 아침 8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제 사라와 뭔가 소통이 잘 안 되었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

같이 시장 구경 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TT



이곳이 우리가 잔 게스트 하우스입니다.



무슨 은행 지점 바로 옆입니다.

그나마 영어 글씨가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지요.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우리끼리 시장 앞에 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습니다.

나는 꽈배기와 차 한 잔, 후배는 쌀국수와 차를 먹었는데, 1,500짯이랍니다.

중국 시골 물가와 비교를 해보니 거의 비슷하네요.


그건 그렇고 약속 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지났는데도 사라는 안 오더군요.

이 동네까지 와서 바람 맞는 것은 아닌지, 재수 없는 생각인줄 알지만 이런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쩐데요? TT


이 글을 쓰고 나서 잠시 후 우리의 낭 사라가 등장을 했습니다.

아이패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계속 메모를 했거든요.


우리의 짐작대로 너무 피곤해서 그만 늦잠을 자버렸답니다.

 

그래서 오전 일과는 우리끼리 시장 구경을 하면서 지내고, 사라는 집에서 더 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올 때 혼자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함께 왔더군요.


아마도 우리를 선보러 오신 것은 아닌가 해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인사도 드리고, 말도 최대한 살랑살랑 모드로 했습니다. ㅎㅎ

 


이렇게 불안을 떨치고는 일정을 시작합니다.


아무튼 오후의 일정을 잡고 사라는 집으로 가고, 우린 시장 구경에 나섭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날이 따뜻해지네요.

 

시장은 생각보다 큽니다.


안에서 맛있게 보이는 국수도 한 그릇 더 먹고 이것 저것 구경을 다니는데, 우리는 중국인이 됩니다.


모든 상인이 우리에게 중국말로 말을 거는군요.

사실 공산품은 중국제이고, 농산물이나 미얀마산이라서 별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세상은 맛있다' 운남 편에서 나온 털난 두부가 재미있었습니다.

곰팡이가 활짝 핀 두부가.

이거 정말 먹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낭 사라가 정말 유명 인사인 것을 새삼스래 알게 됩니다.

DVD파는 곳에서 낭 사라 앨범을 달라고 하니 정말 꺼내 줍니다.

낭 사라는 밴드의 싱어이기도 한데, 개인 앨범을 세개나 내 놓았답니다.

대단한 사라...


게스트 하우스로 와서 사라의 앨범을 보는데 정말 박력있더군요.

저 싱어가 사라입니다.

 

오후 일정이 시작됩니다.


오후 일정은 사라가 또 사정이 있어서 늦게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후에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완전 감동이었네요.

 

사라가 제일 먼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닥터 고든이라는 미국 선교사가 열정을 다해 섬긴 곳으로 병원, 학교, 교회가 있는 선교 센터였습니다.


남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거기 도착해서 우선 가본 곳은 고든 부부와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든 묘지입니다.


보통은 찾는 이가 없이 한적한 곳인가 봅니다.

문은 잠겨 있는데, 근처 가게 주인이 열쇠를 가지고 있더군요.

 

잠겨 있던 묘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여러 무덤 앞에 서니 여러가지로 진한 감동이 몰려 왔습니다.



고든의 무덤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신약 성경 고린도 전서 13장의 내용이 묘지명이었습니다.



오른쪽은 고든 부인의 묘입니다.

고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갔더군요.

 

그리고 고든 부부 묘 사이에는 센터 안에 있는 연못에서 익사했다는 고든 부부의 9살 난 아들의 묘도 있어서 마음이 짠합니다.

낯선 땅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을 때 부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바로 옆 작은 무덤입니다.



 

찾는 이가 별로 없는지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더군요.


남캄에서 고든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한 때 이 선교 센터의 주인공이었던 고든 시그레이브.

 

이 고든은 할아버지 때부터 양곤에서 산 선교사의 후손으로, 그 자신 양곤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의사가 되어 1920년 대 이곳에 병원과 학교 그리고 교회와 같은 시설을 세웠다 하네요.


그 뒤 이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잘 운영이 되었는데, 훌륭하게 유지되던 센터는 60년대 미얀마의 독재자 네윈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바뀐답니다.


소수 민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또 이 지역 사람들의 신망이 높아서 네윈 정권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던 고든은 네윈 정권에 의해 국가 반역죄로 체포가 되어 곤경을 겪다가 얼마 후 소천하자 그가 운영하던 병원이나 학교 시설은 모두 국유화되었고, 나머지 선교사들은 추방이 됩니다.


이때 이곳에 있던 모든 외국인도 떠나게 되었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랑하는 땅 이곳에 묻힌 고든은 이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 뒤 이 시설들은 나라의 재정으로 운영이 되었다던데, 이 어려운 나라에서 나오는 돈이 오죽했겠어요?



고든 재단에서 일하던 사람들 명단입니다.



지붕이 양철 지붕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면, 오즈의 마법사나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의 무대가 될 것도 같은 건물들인데 영...


아무튼 이때부터 사라의 파워가 시작됩니다.

 

고든이 남캄 앞에 있는 강에서 주워 온 돌로 만들었다는 여러 건물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요.


우선 병원에 가서 자기 엄마가 일한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이 때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원장을 소개받았습니다.

 


병원장실 안에 걸린 고든의 모습입니다.


그 옆에는 더 늙었을 때 사진이 있었는데 그 때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넘어 갔어요.


아무튼 모든 시설이 그냥 봐도 관리 상태가 영 좋지 않았습니다.

 

무세가 아닌 이 남캄이라는 시골에 병원을 세운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전에는 이곳이 이 지역의 중심지였답니다.


그러다가 무세가 교통 요지가 되면서 중심지가 되었고, 이곳은 그냥 시골 마을로 남게 된 것이죠.


 

이 건물은 고든이 세운 교회 예배당이랍니다.

바로 옆에 고든 아들이 익사한 연못이 있는데, 마음이 아파서 사진에 담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더 엄청난 것은 센터 안에 있는 카친족 교회에서 교사들이 우리를 위해 캐롤을 불러주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진 가운데 목도리를 두르신 분이 교장 선생님입니다.

 

교회에 왠 교사들이냐고요?


교회 바로 옆에는 학교가 있는데, 교회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행사에 학생들이 참여한 것이랍니다.

물론 교사 중이나 학생 가운데 종교가 다른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 미얀마에서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더군요.

 

갑자기 들어온 우리 불청객을 위해 교사들이 늘어서서 우리를 위해 캐롤을 불러 주다니.

정말 감동해서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거기다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카친족 식의 식사를 준비했다고 먹고 가라고 했지만 이미 사라의 초대를 받은지라 그냥 먹는 시늉만 했는데, 맛이 없어서 먹지 않는 줄 알고 교장 선생님이 꽤 미안해 하더군요.

 

사실 맛도 없었어요. TT

아무튼 이 시골에 있는 미얀마 선생님들에게도 한류는 대단하더군요.

실물로는 처음 보는 한국 사람인지라 그야말로 엄청난 환대를 받았습니다.

물론 TV에서는 많이 보았겠지요.


한국 드라마가 미얀마 TV에서는 대세니...ㅎ

 

노래 반주를 해준 선생님은 피부 색이 정말 까만 허니라는 여자분인데,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았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집안 내력을 전해 줍디다.

 

부계는 스코틀랜드이고 모계는 인도라는데, 이 선생님에게서 검정색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부계인 흰색은 어디가고, 모계의 색인 검정 바탕이 된 것을 보면.

그래도 눈망울을 보면 너무나 착해 보이는 선생님입니다.

피부 색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렇게 말은 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하긴 하네요.

 

그리고 여기에서 사라의 은사들도 많이 만났는데, 사실 그 동네는 사라의 마을에서 멀지 않은데다 사라의 모교가 있는 곳이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의 지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만난 전직 교장 선생님은 우리를 소개를 받자 마자

"아, 영화 배우 같은 한국인"

놀랐네요.

어제 이민국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이 이렇게 빨리 퍼지다니. ㅎㅎ

이민국 책임자가 같이 간 후배를 마치 영화 배우 같다고 말했었는데, 그게 벌써 온 동네에 퍼진 모양입니다.

 

아무튼 교회와 학교를 구경하고 본격적으로 사라의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친인척으로 넘칩니다.

정말 사촌과 사촌의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실 엄마 형제가 14명이고 아버지는 7명이랍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거의 이 동네에 사니 자기도 사촌과 조카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헛갈릴 때가 있답니다.

 

집으로 가다가 두 할머니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 일부러 우리를 주겠다고 자몽을 따서 기어히 손에 들려 주더군요.

정말 정이 넘치는 샨 사람입니다.

참 사라는 샨족입니다.


이 샨 사람에게 미얀마 사람이냐고 물으면 반드시 샨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샨에 대한 프라이드가 매우 강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참 정이 많네요.

정말 이 할머니들의 정이 듬북 든 모습에 감동이 절로 오더군요.





이 센터 안에서 제일 신식 건물로 예배당입니다.

여기는 2차 대전 중 격전지였던지라 큰 폭탄이 종 대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어요.

이런 모습이 여기서는 흔하더군요.


이 안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물이었습니다.

그 놈의 지붕만 어떻게 하면 훨씬 더 아름다울 텐데 하면서.



이곳은 영국 식민지 시절 만들었고, 2차 대전 중에 일본 비행기가 내려 앉기도 했다는 비행장 터입니다.

지금은 그냥 공터로만.


여기는 기숙 학교입니다.


비행장 바로 옆에 있는 사라의 고모가 운영한다는 학교에 들려서 학생들이 우리를 위해 블러준 캐롤을 듣습니다.

 


이 아이들은 고등학생들인데, 밥 먹다 말고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려고 모였다 합니다.

사라 덕분에 정말 엄청난 대접을 이곳에서 받네요.

 

여기서 여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 선생님 이름이 다윗이랍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 아들 이름이 솔로몬이냐고 물으니

자기는 미혼이라면서 엄청나게 당황을 하더군요.

하여튼 미얀마 사람들 엄청나게 순진합니다. ㅎ  



그리고는 어두워졌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밝았더라면 사라 친구나 친척들과 인사하느냐 오늘 하루도 모자랄 뻔했으니까요.


 

드디어 최종 목적지 사라의 집에 도착을 합니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침례 교회 옆으로 해서 사라의 집에 가니 사라의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조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라 부모님께는 과자, 커피 그리고 축구를 좋아 한다는 조카에게는 축구공을 선물로 주었죠.

 

사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선교사 헬퍼로 만나서 결혼을 했고,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간호사로 근무했다네요.

가정 형편을 보니 그다지 부유한 편도 그렇다고 어려운 편도 아닌 뭐 그럭저럭 사는 정도 같았습니다.

오빠의 아내인 새언니가 방콕에서 일을 한다던데, 아무래도 가정부가 아닌가 싶더군요.

 

그 집에서 우리가 대접 받은 것은 신선로였습니다.

우리나라 신선로와 똑같이 생겼는데, 그 안에 돼지 족발과 닭고기만 들어 있는 것이 다르더군요.

여기에 오빠가 재배했다는 채소를 넣어 먹는데, 밭에서 막 가져온 채소는 싱싱하다 못해 탱글탱글해서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정말 부른 배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실컷 먹었습니다.

사라가 더 먹으라고 바나나를 가져와서 날 줄일 셈이냐고 말까지 할 정도로. ㅎㅎ

 

그리고 보면 사라는 센스쟁이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보이거나 화제에 올렸던 것을 모두 내왔더군요.

바나나도 시장에선가 이 동네 바나나가 맛있게 생겼다고 지나가는 말투로 한 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준비를 한 것이지요.

 

미얀마에도 이런 센스쟁이가 있었습니다.

 

이곳 샨 주에서 난다는 녹차로 입가심을 하고는 이 동네 교회에서 주일 날에 부를 특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합창해 봅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노래하는 것만 해도 많이 좋아할 거랍니다.

TV에서 듣던 한국말을 직접 듣는 것이니.


모든 순서를 마치고 근처에 사는 사라 사촌의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는 정말 너무 많은 사람의 환대를 받았네요.

무엇보다도 학교 기독교 신자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노래 선물을 해 주어 우리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내놓자, 불교 신자 선생님들이 기독교 신자가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 소통하는 것을 너무 부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뭔가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역시 소통이라는 것은 참 좋을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사실 이 학교 기독교 신자 선생님들과 불교 신자 선생님들이 이렇게 다른 종교 행사에 스스럼 없이 서로 어울리는 것이 더 보기 좋았어요.

 

또 카친 교회 학생들에게 준 오늘 점심 식사를 위해, 사라 고모와 다른 은퇴 선생님 두 분이 주머니 돈을 끌렀다고 하다군요.


선생님과 제자들의 사랑이 살아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습니다.

 

우리도 교회와 학교에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어서 100달러 신권을 내 놓았는데, 선생님들은 그런 돈은 처음 보는 듯 싶었습니다.

서로 돌려 보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정겹던지.

 

아무튼 오늘은 대단한 남캄이었습니다.

고돈이라는 선교사도 알게 되어 기뻤고 또 대단한 사라를 알게 되었으니.


아무튼 여러가지로 탐나는 인재더군요.

 

그리고 정말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나라가 미얀마라는 것,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