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태국여행기/미얀마 2014 여행

[치앙라이] 미얀마 국경 마을 따찔렉을 갑니다. 후

정안군 2014. 11. 2. 00:26


밖에 대기하고 있던 픽업 트럭 두대에 나눠 타고 라후 마을을 향해 떠납니다.

길 사정은 대로에서 벗어나서 골목 같이 좁은 소로로 들어서니 미얀마다워지기 시작하네요.

인도가 제대로 구분이 안 된 것은 길 사정이 좋은 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여기는 좀 더 심합니다.

햇살이 뜨거워 걸어다닐 수가 없는 동남아 사정 상 인도는 사실 필요가 없는 존재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걸어야 할 일도 있을텐데.

발밑을 잘 안보고 다니다가는 발모가지가 남아나질 않을 동네가 이 동남아 나라들이지요.

언젠가 인도네시아에서는 나도 맨홀에 빠진 적도 있었네요.

중국인 거리에서 한자가 없는 간판 구경에 몰두 했다가.

정말 어디라도 부러질 일이었지만 다행이 찰과상을 입는 정도로 그친 일이 있고 나서는 무척 신경을 쓰고 있지요.

오늘은 차를 타고 이동해서 걸을 일은 없지만 갓길이 워낙 좁으니 어떠다 마주치는 보행자에게 무척이나 미안하더군요.

그래도 시내에서는 양반이었습니다.

비포장이라도 사정이 좀 나은 동네를 벗어나자 우리나라 옛날 비포장 길을 달리던 때가 생각나게 하는 그런 길로 들어섭니다.

다행히 에어컨이 잘 돌아가 창문을 열을 일은 없어서 먼지 먹을 일은 없었습니다.

길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지다가 한 마을 어귀에서 차가 멈춤니다.

차를 바꿔 타야한다는군요.

우리가 타고 온 차도 에어컨이 잘 돌아가는 토요타 픽업 트럭인데, 왜 차를 바꿔 타야 할까요?

궁금해서 물어보니 여기서부터는 라후족 지역방위군이 활동하는 곳이라 낯설은 차량이 들어가면 총 맞을 일이 생긴다네요.

반군과 정부군, 어쩌고 하던 미얀마 사정이 여기서 알게 되는군요.

하지만.

어매.

총 맞을 일이 있다고라.

 

우리가 타고 갈 차량은 이 지역 책임자 차량인데, 짐칸에는 소총으로 무장한 방위군 3명이 동승을 합니다.

뭔가 좀 살벌한 분위기 같지만 이 방위군 차림새를 보면 무슨 쌍팔년도 국방군같은 분위기라서 웃음이 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소총을 소지하고 있지만 언제적 제품인지, 정말 나가기는 할까 궁금할 정도였어요.

한 친구는 공산국가쪽에서 사용하던 구형 AK소총에 다른 친구는 칼빈총으로 무장을 했는데, 무슨 병정 놀이를 하는 것 같더군요.

아무튼 차량을 갈아타고 다시 출발하는데, 잠시 후 제대로 된 산길로 접어 듭니다.

역시 라후족은 산꼭대기에 살아야 어울리는 민족이지요.

좁은 산길.

간신히 차량 한 대가 지날 좁은 길인데, 비탈이 보통 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오토바이나 차량 통행이 없어 교행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계속 클락션을 울리면서 가더군요.

큰 돌이 박힌 개울을 건너기도 하고 험한 산길을 넘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변 모습은 미얀마가 아니라 우리나라 강원도나 충북 산간 동네를 다닐 때 같아서 정겹기는 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길을 우리가 가는 라후족 마을 사람들이 뚫었다네요.

그것도 기계 도움없이 사람의 힘만으로.

와, 완전 개미 역사입니다.

대단한 일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면 나라는 왜 있는 걸까요?

미얀마라는 국가.

 

아무튼 이렇게 한참을 올라 갑니다.

사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길이 워낙 험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드디어 마을이 나옵니다.

이런.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이상이었습니다.

마을 환경이.

10여년 전 태국에서 라후족 마을을 찾아갈 때 보았던 그 때 모습을 하고 있더군요.

지금은 태국 산족 마을도 이런 환경은 없습니다.




 

돼지와 닭이 집 아래에 있고, 대나무와 나무 잎으로 만든 그런 집이 몇 군데 서있는 작은 동네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이름은 '후어'

'허'하고 한숨이 나옵니다.

 

마을은 분지 형태로 제법 넓은 평지에 자리를 잡아서 주위에는 온통 산이지만, 논이 마을 건너에 있더군요.

분지 가운데로는 냇가가 흘러 사람이 살기에는 환경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하지만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라니.

동네에는 어른 여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군복을 입은 성인 남자들의 모습만 보이네요.

그 이유야 뻔하지요.

산족들 대부분은 여자들은 온갖 잡일을 다하고, 남자들은 단지 마을을 지키는 일만 담당하니.

군복입은 남자들은 반 정도만 소총으로 무장을 했던데, 그나저나 이런 동네에 누가 뭘 빼앗겠다고 올 사람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


 

아무튼 아이들은 우리 외지인들이 신기한 모양인데,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수줍어서 모두들 내뺍니다.

마을에는 전선이 없는 것을 보니 전기도 안 들어 오고 손바닥만한 태양열 전지를 설치한 것 가지고 뭔가를 쓰나 봅니다.

학교는 어떻게 다닐까 궁금했는데, 이 동네 아이들은 그런 것에서 해방된 아이들이랍니다.

학교도 없고 학교에 다니지도 않아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군요.




오두막 같은 건물이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게 예배당이고 그 예배당 목사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라후어와 미얀마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양곤 주변의 학교도 형편 없었지만, 그래도 그곳은 양반이었습니다.

 

사실 오늘은 오두막 같은 예배당을 대신해 제대로 지어 줄 후원자가 나타나서 사정을 살피러 온 것인데, 지어 줄 건물이 예배당이라기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

 

그래도 전기라도 들어와야 컴퓨터나 TV를 설치 해서 시청각 교육을 할 수 있을 텐데.

선교사는 농 반 진담 반으로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지 찾아 봐서 다음에 올 때 가지고 오라던데, 도대체 뭐가 꼭 있어야 할지 뭐가 필요한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많이 고민을 해 봐야 되겠더군요.

도대체 뭐를 선물해야 할까요?

그냥 살도록 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지요.

 

동네 사정이 뻔해 그냥 내려가려 해도 준비를 해 놓은 것이 있다고 먹고 가랍니다.

제일 번듯한 집에 들어 가서 자리를 잡는데, 집이야 뻔하지만 내온 상은 수제품이라서 참 좋더군요.

드디어 식사가 나옵니다.

밥에 그것도 쌀밥에 닭고기 요리와 생선국이 달랑 나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에게 더 내 줄 음식이 나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위해 돼지를 잡을리는 없으니 만만한 게 닭.

그러나 동남아 닭이야 날씬한 다이어트 닭이라서 먹을만한 부위도 없는지라.

정말 그런 닭이 나왔습니다.

조그만해서 도대체 먹을 살이 없는.

게다가 알뜰하게 닭발과 닭대가리까지 함께 등장을 했네요.

우리가 왔을 때 교회 목사는 대접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던데, 나온 생선국은 그 물고기로 만든 것 같았습니다.

딱 나오자마자 비린내가 내서 숫깔도 안 댔는데, 먹어 본 사람이 맛있다네요.

생각보다.

한 숫깔을 떠보니 맞네요.

비린내는 나지 않고 생선 담백한 맛이 나긴 납니다.

그리고는 다른 맛은 필요없는 맹탕.

햐, 이 물고기로 우리나라 매운탕을 끊였으면 괜찮았겠다.

하지만 그건 망상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니 물병에 물이 담겨 나옵니다.

딱 보니 이 동네 가운데 흐르는 냇물이더군요.

그렇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적응이 잘 되었겠지만, 우리에게는 잘못하면 쥐약이겠더군요.

물 마시기는 것은 생략합니다.

그래도 언젠가 생돼지 고기 비린내가 물씬 풍기던 라후 마을에서 밥 먹을 때보다는 많이 나았습니다.

적어도 그런 비린내는 없었으니.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때 밥 먹다가 옆에 누워 계신 털 벗은 돼지님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 돼지는 잔치를 위해 돌아가시고는 그 몸을 내 옆에 두고 계셨답니다.

그 때 그 비린내란.

지금도 생생하네요.

 


동네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를 받고 다시 따찔렉으로 귀환합니다.

올 때 갈 때 호위 병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이동하는 것은 모양은 그럴싸 했는지는 몰라도 차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몸이 엄청나게 힘이 들더군요.

그 마을에 다시 방문할 일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번 방문은 시간 여행에 나섰던 것 같은 느낌이 듭디다.

우리나라 어느 시절이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그리고 이들은 하필 그곳에서 멈춰 그런 운명을 맞았을까요?

좀 더 이동하여 태국 땅으로 넘어 갔더라면 어땠을까나?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그런 생활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