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추울 것이라고 준비해 온 전기 담요 덕에 따뜻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지만 이렇듯 꼼꼼하게 챙기는 집사람의 지혜가 놀랍군요.
화장실 물의 꼭지 위치가 반대로 잘못 되어 있어서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줄 알았더니 잘 나오기는 나오네요.
왜 방이 허술하면 이렇게 간단히 뭐든 안 될 거라고 생각할까요?
아무튼 그래서 아침에서야 따뜻한 물로 대충이나마 닦을 수 있었어요.
밖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고 추운 날씨 속에서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나 오가는 한산한 거리 모습입니다.
날씨 참 더럽군요.
사라와는 아침 8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제 사라와 소통이 잘 안 되었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
같이 시장 구경 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TT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우리끼리 시장 앞에 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습니다.
나는 꽈배기와 차 한 잔, 후배는 쌀국수와 차를 먹었는데, 1500짯이랍니다.
중국 시골 물가와 비교를 해보니 거의 비슷하네요.
그건 그렇고 약속 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지났는데, 안 오는군요.
이 동네까지 와서 바람 맞는 것은 아닌지, 재수 없는 생각인줄 알지만 이런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쩐데요? TT
이 글을 쓰고 나서 잠시 후 우리의 낭 사라가 등장을 했습니다.
생각대로 너무 피곤해서 그만 늦잠을 자버렸다는군요.
그래서 오전 일과는 우리끼리 시장 구경을 하면서 지내고, 사라는 집에서 더 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올 때 혼자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함께 왔더군요.
아마도 우리를 선보러 오신 것은 아닌가 해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인사도 드리고 말도 최대한 살랑살랑 모드로 했습니다. ㅎㅎ
아무튼 그 다음 오후의 일정을 잡고 사라는 집으로 가고, 우린 시장 구경에 나섭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날이 따뜻해지네요.
시장은 생각보다 큽니다.
안에서 맛있게 보이는 국수도 한 그릇 더 먹고 이것 저것 구경을 다니는데, 우리는 중국인이 됩니다.
모든 상인이 우리에게 중국말로 말을 거는군요.
사실 공산품은 중국제이고, 농산물이나 미얀마산이라서 별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세상은 맛있다 운남 편에서 나온 털난 두부가 재미있었습니다.
곰팡이가 활짝 핀 두부지요.
여기서 낭 사라가 정말 유명 인사인 것을 새삼스래 알게 됩니다.
DVD파는 곳에서 낭 사라 것을 달라고 하니 정말 꺼내 줍니다.
랑 사라는 밴드의 싱어이기도 한데, 개인 앨범을 세개나 내 놓았답니다.
대단한 사라...
오후 일정은 사라가 또 사정이 있어서 늦게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후에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완전 감동이었네요.
사라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닥터 고든이라는 미국 선교사가 열정을 다해 섬긴 곳으로 병원, 학교, 교회가 있는 센터 시설이었습니다.
우선 가본 곳은 고든 부부와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든 묘지입니다.
보통은 찾는 이가 없이 한적한 곳인가 봅니다.
문은 잠겨 있는데, 근처 가게 주인이 열쇠를 가지고 있더군요.
잠겨 있던 묘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여러 무덤 앞에 서니 여러가지로 진한 감동이 몰려 왔습니다.
고든 부부 묘 사이에는 바로 옆 연못에서 익사했다는 고든 부부의 9살난 아들의 묘도 있어서 마음이 뭉클하더군요.
이 선교 센터의 주인공이었던 분은 고돈 시그레이브, 그 고든은 할아버지 때부터 양곤에서 산 선교사의 후손으로, 그 자신 양곤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의사가 되어 이곳 남깜에 병원과 교회와 같은 선교 시설을 세웠다 하네요.
이차 세계대전 중 전쟁의 소용돌이에 회말리기도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이렇게 훌륭하게 유지되던 센터는 60년대 네윈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바뀐답니다.
소수민족과 깊은 관게를 맺고 있고 지역 사람들의 신망이 높아사 정권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던 고돈이 소천하자 그가 운영하던 병원이나 학교 시설은 모두 국유화되었고, 나머지 선교사들은 추방이 됩니다.
이때 이곳에 있던 모든 외국인도 떠나게 되었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몸을 이곳에 묻은 고돈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 뒤 이 시설들은 나라의 재정으로 운영이 되었다던데, 이 어려운 나라에서 나오는 돈이 오죽했겠어요?
무세가 아닌 이 시골에 병원을 세운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전에는 이곳이 이 지역의 중심지였답니다.
그러다가 무세가 교통 요지가 되면서 중심지가 되었고 이곳은 그냥 시골 마을로 남게 된 것이죠.
아무튼 이때부터 사라의 파워가 시작됩니다.
강에서 주워 온 돌로 만들었다는 여러 건물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요.
우선 병원에 가서 자기 엄마가 일한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직원들과 원장을 소개받고, 더 엄청난 것은 카친 교회에서 교사들이 우리를 위해 캐롤을 불러주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교회에 왠 교사냐고요?
교회 바로 옆에 학교가 있는데, 교회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행사에 학생들이 참여한 것이랍니다.
물론 교사 중이나 학생 가운데 종교가 다른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 미얀마에서 우무런 문제가 아니라더군요.
갑자기 들어온 우리 불청객을 위해 교사들이 늘어서서 우리를 위해 캐롤을 불러 주다니.
정말 감동해서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거기다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카친 식 식사를 준비했다고 먹고 가라고 했지만 이미 사라의 초대를 받은지라 그냥 먹는 시늉만 했는데, 맛이 없어서 먹지 않는 줄 알고 교장 선생님이 꽤 미안해 하더군요.
사실 맛도 없었어요. TT
미얀마 선생님들에게도 한류는 대단하더군요.
처음 보는 한국 사람인지라 그야말로 엄청난 환대를 받았습니다.
노래 반주를 해준 선생님은 피부 색이 정말 까만 허니라는 여자분인데,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았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집안 내력을 전해줍니다.
부계는 스코틀랜드, 모계는 인도라는데, 이 선생님에게서 검정색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부계인 흰색은 어디가고 모계의 색인 검정 바탕이 된 것을 보면.
그래도 눈망울을 보면 너무나 착해보이는 선생님입니다.
파부 색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렇게 말은 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하긴 하네요.
그리고 사라의 은사들도 많이 만났는데, 사실 그 동네는 사라의 마을에서 멀지 않은데다 사라의 모교가 있는 곳이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의 지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만난 전직 교장 선생님은 우리를 소개받자마자
"아, 영화 배우 같은 한국인"
놀랐네요.
어제 이민국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이 이렇게 빨리 퍼지다니. ㅎㅎ
교회와 학교를 구경하고 본격적으로 사라의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친인척으로 넘칩니다.
정말 사촌과 사촌의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실 엄마 형제가 14명이고 아버지는 7명.
그리고 그 자식들이 거의 이 동네에 사니 자기도 사촌과 조카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헛갈릴 때가 있답니다.
집으로 가다가 두 할머니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 일부러 우리를 주겠다고 자몽을 따서 기여히 손에 들려 주더군요.
정말 정이 넘치는 샨 사람입니다.
이 샨 사람에게 미얀마 사람이냐고 물으면 반드시 샨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샨에 대한 프라이드가 매우 강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참 정이 많네요.
정말 이 할머니들의 정이 듬북 든 모습에 감동이 절로 오더군요.
영국 식민지 시절 만들었고 2차 대전 중에 일본 비행기가 내려 앉기도 했다는 비행장도 구경을 해보고, 그 옆에 있는 사라의 고모가 운영한다는 학교에 들려서 학샐들이 우리를 위해 블러준 캐롤을 듣습니다.
그 아이들은 고등학생들인데 밥 먹다 말고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려고 모였다 합니다.
사라 덕분에 정말 엄청난 대접을 이곳에서 받습니다.
여기서 여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 선생님 이름이 다윗이랍다.
그래서 내가 당신 아들 이름이 솔로몬이냐고 물으니
자기는 미혼이라면서 엄청나게 당황을 하더군요.
하여튼 미얀마 사람들 엄청나게 순진합니다. ㅎ
그리고는 어두워졌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밝았더라면 사라 친구나 친척들과 인사하느냐 오늘 하루도 모자랄 뻔했으니까요.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침례교회 옆으로 해서 사라의 집에 가니 사라의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조카가 있었습니다.
사라 부모님께는 과자, 커피 그리고 축구를 좋아 한다는 조카에게는 축구공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사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선교사 헬퍼로 만나서 결혼을 했고,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간호사로 근무했다네요.
가정 형편을 보니 그다지 부유한 편도 그렇다고 어려운 편도 아닌 뭐 그럭저럭 사는 정도 갔았습니다.
오빠의 아내인 새언니가 방콕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가정부가 아닌가 싶더군요.
그집에서 우리가 대접 받은 것은 신선로였습니다.
우리나라 신선로와 똑같이 생겼는데, 안에 돼지 족발과 닭고기만 들어 있는 것이 다르더군요.
여기에 오빠가 재배했다는 채소를 넣어 먹는데, 밭에서 막 가져온 채소는 싱싱하다 못해 탱글탱긍해서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정말 부른 배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실컷 먹었습니다.
사라가 더 먹으라고 바나나를 가져와서 날 줄일 셈이냐고 말까지 할 정도로. ㅎㅎ
그리고 보면 사라는 센스쟁이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보이거나 화제에 올렸던 것을 모두 내왔더군요.
미얀마에도 이런 센스쟁이가 있었습니다.
샨 티로 입가심을 하고는 주일날 특송을 위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합창하고는 사라 사촌의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 왔습니다.
오늘 오후는 정말 너무 많은 사람의 환대를 받았네요.
무엇보다도 학교 기독교 신자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노래 선물을 해주고, 우리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내놓자, 불교 신자 선생님들이 기독교 신자가 국적에 관계없이 소통하는 것을 너무 부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뭔가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또 카친 교회 학생들의 점심 식사를 위해 사라 고모와 다른 두 은퇴 선생님이 주머니 돈을 클렀다고 하다군요.
선생님과 제자들의 사랑이 살아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우리도 교회와 학교에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100달러 신권을 내 놓았는데, 선생님들은 그런 돈은 처음 보는 듯 싶었습니다.
서로 돌려 보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정겹던지.
아무튼 오늘은 대단한 사라였습니다.
여러가지로 탐나네요.
그리고 정말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나라가 미얀마라는 것, 맞습니다.
인테넷 사정이 좋지 않아 사진은 다음으로 넘깁니다. 죄송.TT
'미얀마 태국여행기 > 미얀마 2013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캄 무세 라시오 여행 20131220(3) (0) | 2013.12.27 |
---|---|
남캄 무세 라시오 여행 20131220(2) (0) | 2013.12.27 |
남캄 무세 라시오 여행 20131219 (0) | 2013.12.27 |
남캄 무세 라시오 여행 20131218 (0) | 2013.12.27 |
이제 양곤을 떠납니다. (0) | 2013.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