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7

북한은 지금 - 방콕 포스트 기사에서

정안군 2017. 7. 27. 13:53

 

오늘은 한국 전쟁이 끝난지 6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다음은 AP 통신 기사를 방콕 포스트에서 옮긴 내용인데, 북한이 왜 그리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는지 알게 해 줍니다.

현재 북한 상황의 이해를 위해 전문을 그대로 번역해 올립니다.

 

전쟁 후 65년, 죽음의 유산은 남았다.

 

폭발물 처리반은 산산조각났던 나라 도처에서 불발탄 찾기를 계속한다.

 

한국전쟁 시의 불발탄을 찾아 왔던 10년 동안 정일현(Jong Il-hyun) 대좌는 폭발로 5명의 동료를 잃었다.

그는 동료가 죽기 전 건네 준 라이터를 가지고 다닌다.

또한 폭발물 처리 작업의 실패로 생긴 왼쪽 빰의 흉터도 있다.

 

종전 후 64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아직도 수 많은 폭탄과 폭발물을 내 놓고 있다.

실질적으로 그것들 대부분은 미국제이지만, 정 대좌는 미국 편에서 싸운 십여 국가들의 폭탄도 계속 나타날 것이라 말한다.

 

"전문가들은 불발탄 모두를 처리하는데 10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지만 나는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 대좌는 지난 2월 북한에서 두번 째로 큰 함흥 교외, 녹이 슬었지만 아직 치명적인 박격포탄을 발굴하는 건설 현장에서 말했다.

 

지난 10월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370개 이상이 발견되었다.

 

정 대좌에 의하면 그의 폭발물 처리반은 북한 각 도에 하나 씩으로 9개 반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처리반 단독으로 지난 해 폭탄, 지뢰와 대포탄을 포함해 2,900여 개의 잔존 푹발물을 처리했다.

 

올해 그들은 이미 1,200여 개를 처리했다고 말한다.

 

운좋게도 지난 몇 년 동안 단지 가벼운 부상만 입었다.

 

그러나 정 대좌는 지난 5월, 11살난 아이가 폭탄을 가지고 놀다가 터져 손가락 일곱개를 잃었다고 말한다.

 

북한은 아직도 중대한 전쟁의 폭발물 유산을 처리하고 있는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아시아에서만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일본도 치워야만 하는 수 많은 불발탄을 가지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으로 끝난 한국 전쟁은 가장 잔혹했던 전쟁 중의 하나이다.

 

실질적으로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들은 심각하게 파괴되었고 수 백만의 시민들이 미국의 융단 폭격으로 죽었다.

 

북한에 떨어진 폭탄의 양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떨어진 양과 대략 같다.

 

북한은 역사상 제일 심한 폭격을 당한 나라로는 캄보디아에 이어 두 번째일 것이다.

 

북한은 폭탄이 평양에만 400,000발, 대략 같은 시기 평양 거주자 당 한 발 정도의 비율로 투하되었고 수도에는 단지 2동의 현대 건축물만 남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전쟁 중 한국에 32,500폭의 네이팜탄을 포함하여 모두 635,000 톤의 폭탄을 투하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은 북한 지역이었다.

 

북한 인구의 12 - 15%가 전쟁 중에 죽었다.

 

콜롬비아 대학교의 역사학자 찰스 암스토롱은 북한에서의 융단폭격은 미국의 관점에서 전환점 같은 것이었고 베트남 전쟁 중에 더 어마한 버젼의 사용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오늘 날까지 북한 정부와 북한 언론은 그 당시 미군의 폭격을 전쟁 범죄로 보며 미래의 공격에 대비한 수단으로 북한 주민을 상시 동원하는것 뿐만 아니라 핵무길의 개발에 대한 정당한 근거로 삼고 있다"라고 말한다.

 

암스트롱은 함흥 지역과 흥남 부두는 공업지대였고 아시아에서 제일 큰 질소 비료 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미군 폭격기에 의해 집중적으로 폭격을 당했다고 말한다.

 

질소 비료는 폭발물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미국 공군은 1950년 12월 그 지역을 완전히 파괴했다.

 

뒤에 재건된 비료 공장은 현재까지도 가동되고 있으며 함흥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폭발물 처리반은 불발탄이 발견이 되면 요청에 응해 발굴하기 전에 현장을 체크하고 사람들 특별히 어린이에게 위험에 대해 교육한다.

 

흥남 남부 지역을 담당하는 정 대좌의 처리반에는 9명의 대원이 있다.

 

남한과의 경계를 이루는 강원도에서 가장 큰 반은 15명이다.

 

지난 3월 평양에서 함흥을 거쳐 북동쪽 항구 도시인 청진에 이르는 철도 근처에서 관계 수로 작업을 하던 농부에 의해 한 폭탄이 발견되었다.

 

"이 철로는 전쟁 중에도 있었기 때문에 목표물이었습니다" 포항 집단 농장 제 4 작업반장 염학철씨가 말했다.

 

그는 폭탄이 발견된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처리반이 폭탄을 제거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우리는 그 지역에서 벗어나야만 했어요. 처리반이 그 자리에서 폭탄을 날려 버렸습니다"

 

그는 옥수수밭 사이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좁은 수로 지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깊이 3 m 구덩이가 생겼습니다"

 

몇 몇 폭탄들은 비숙련된 눈으로는 잘 식별되지 않는다.

 

정 대좌는 놀랄만큼 다양한 폭탄들을 접해 왔는데, 특별히 그 가운데 하나로 작은 파편들을 넓은 지역에 퍼뜨리기 위해 날개 모양의 부착물을 사용한 butterfly bomb(나비탄)에 대해 설명했다.

 

이 폭탄은 원래 2차 세계대전 중 나찌에 의해 개발되었다.

 

미국이 그 설계를 수정했고 이를 북한에서 사용했다.

 

정 대좌는 오래 된 폭탄은 녹이 뇌관을 침식하면서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폭발할 수 있어서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내 딸 세대도 이 문제로 고통을 당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는 온 세계가 이 사실을 알기 원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