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7

[치앙라이] 좋든 싫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 들었네요.

정안군 2017. 9. 6. 11:08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한 두세달 전인가, 저 세상 사람 되었어. 전립선암으로 고생했었나봐"

 

친구의 회신이었습니다.

'저 세상 사람'

 

그랬구나.

그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벌써 알 소식을 인제 접하니, 내가 먼 곳에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 날이었습니다.

 

팔월 중순이나 이월 중순이면 교원 정기 인사가 있습니다.

그곳과의 연은 이제 마쳤지만, 그 인연의 마지막 끄나풀을 새삼 확인해 보고 싶은 때이기도 합니다.

누가 어디에서 이디로.

또 누가 어느 자리에서 어느 자리로.

이런 단순한 문구에 나도 몇 차례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옮기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사 내용을 보면서, 이제는 아는 후배의 이름 뒤에 교장이라는 직책이 붙는 시절의 변화도 확인합니다.

마지막 자리에 올라 갔을 때는 내려 올 때가 머지 않았다는 것인데, 막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그걸 느낄까요?

다, 부질없는 것인데.

 

올해도 습관처럼 이제는 내 일이 아니고 남 일인 그 인사 내용을 살펴 봅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내가 살던 도에서 최고로 큰 학교 교장이었던 H씨의 이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밀어낸 사람은 있는데, 정작 밀려난 사람은 다른 학교로 이동한 것도 아니고 퇴직자 명단에도 없더군요.

그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교감이 교장 직무대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담 그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었든데, 그 일이 뭘까?

인터넷에서 아무리 찾아 봐도 그의 흔적은 5월까지이고 그 뒤는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같이 근무했던 친구에게 물었던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한 두세달 전인가, 저 세상 사람 되었어. 전립선암으로 고생했었나봐"

 

H씨는 내가 처음 학교를 옮겼을 때, 그 학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전 해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있었던 좋지 않은 일을 내가 뒤집어 쓰고 원하지 않았던 학교로 보내져 심기가 좋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그 학교는 젊은 선생님들이 대부분이고 분위기가 좋아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H씨는 그 때도 몸이 좋지 않아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 했지만, 워낙 그 학생들이 수업에는 관심이 없어 그런 건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 분위기였어요.

그 와중에도 H씨는 승진 점수를 받으러 더 시골 학교로 가면서 헤어집니다.

그리고는 다시 만나는 곳이 내가 처음 발령을 받는 학교였습니다.

다시 그 학교에서 돌아가 10년을 근무하고는, 또 다른 학교로 잠시 옮겼다가 그 학교로 돌아 가게 되는데, 당시 H씨는 돌아 갈 학교의 교감이었습니다.

그렇게 연이 이어지고 H씨는 청주로 전근 갔다가 잠시 헤어지는데, 다시 또 만나게 됩니다.

H씨가 교장으로 오게 되었어요.

평교사 시절에 같이 근무한 사람과 이렇게 만나면 별로 좋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그 사람 병아리 시절에 뭘 했는지 잘 알고 있는 터라 영 말발이 먹히지 않죠.

예수도 그래서 자기 고향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한 게 아닙니까?

'그 친구, 어려서 뭘 했는지 내가 다 알어'

이런 분위기가 되니.

 

H씨와의 관계는 크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직원회 때나 보는 정도였으니, 좋고 나쁠 것도 없었지요.

나도 그 때 이미 교포교사(교감 포기 교사)였드니 잘 보이려고 애쓸 일도 없었구요.

 

그런데 내 인생에 커다란 결심을 하게 되는 일을 H씨와 겪게 됩니다.

 

봄방학 주는 날이었나 봐요.

그런 날은 보통 학교는 오전 수업 후, 종업식을 하고 학생들은 귀가를 하게 되니 교사들도 일찍 나가곤 했어요.

나도 일찍 나가 산책을 하였던 가, 아무튼 학교에서 일찍 나갔드랬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오후 교장이던 H씨가 학교를 순회했다더군요.

해서 자리에 없는 선생님들 모두 체크해서 갔다는 말을 다음 날 출근해서 전해 듣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짧은 군 시절 소대장이 흔히 쓰던 수법이 생각납디다.

하루는 편하게 풀어 놓고, 다음 날 기습적으로 점호해서 걸린 병사들을 혹독하게 다루던 그 수법이.

H씨도 ROTC 출신이었으니 그런 수법을 군에서 체득한지도 모르죠.

 

물론 내가 그냥 나간 것이 보통 관례에 따랐다고는 하지만 잘한 일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게 참 한심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 그 봄방학 주던 날 오후에 나가려는 교사들에게 미리 조퇴나 외출을 달고 나가라고 하면 일어날 수 없는 간단한 문제였거든요.

미리 헛점을 알고 그 점을 노린 행위가 영 못마땅했습니다.

체크 된 사람은 출근하지마자 다 교장실에 가서 혼나고 왔다고,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동료도 가 보라고 했는데 가지 않았어요.

한 시간쯤 뒤, 교감에게 연락이 옵디다.

교장실로 가 보라고.

가 보니 교장과 교감이 앉아 있었어요.

하는 소리가 간부이며 선배 교사가 후배 교사에게 모범을 보여야지 그게 뭐냐고 그러더군요.

이미 화가 나 있던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해 온 것 아니냐?

그리고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했으면 미리 외출이나 조퇴를 달고 나가라 말을 했으면 되는 거 아니냐?

나는 근무 점수도 승진 점수도 다 필요 없는 사람이라 조퇴 얼마든지 달 수 있다.

장감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무엇보다도 내가 화가 났던 것은 이제 정년퇴직이 육개월 남은 선배 평교사에게도 같은 소리를 해댔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내 미래를 본 셈이었죠.

이 때 이 세계에 남아 있어 봐야 앞으로 꽃길은 없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잘못하고도 되래 불평만 한다는 교장 H씨에게 다시 한 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전에 선생님과 같이 근무한 것 때문에 더 속상합니다. 나가 보겠습니다"

 

뒷통수가 뜨거웠지만 뒤를 돌아 보지 않고 돌아 나왔습니다.

불러서 다시 얘기 해 봐야 별 수 없을 것을 알고, 더 이상 말을 안 하더군요.

 

이때 결심합니다.

그만 하자.

앞으로 꽃길은 없다.

 

그리고 그 뒤 또 다른 충격적인 일은 그 결심을 더욱 굳게 하지요.

 

그 일이 있고 일년 쯤 뒤, 명예퇴직 발표가 있던 날.

방학 기간이었는데 일부러 나가 나머지 기간은 모두 연가 처리를 하는 것으로, 학교에의 모든 인연을 끊었습니다.

얼마 전, 팔에 골절상을 입은 어머니 뒷수발에 학교에 나갈 처지도 못 되긴 했었습니다만.

물론 H씨와의 만남도 그 날로 끝이었죠.

 

지금 좋게는 자유인, 나쁘게는 백수가 되었지만, 그 처지를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일찍 그런 결심을 하게 해 준 H씨가 고맙기까지 하니, 그에게도 남은 감정이 남아 있을리도 없구요.

 

단지 나는 이 세상에 아직 남아 있고, 그는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아니 새삼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나보다 삼년 선배이니 이제 60대 초반이었고, 많은 것을 손에 넣었는데 떠날 때 아쉽지 않았을까요?

아님 모든 게 헛되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가 강한 자라 했던가요?

그렇담 내가 남았으니 그보다 강한가요?

아닙니다.

다 부질없죠.

 

젊은 시절의 한 때를 나와 나누었던 사람이 저 세상 멀리로 사라져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요즘 많이 허전함을 느낍니다.

내 주변에서 익숙했던 것이 자꾸 없어진다는 느낌이라 할까요?

 

회자정리.

생자필멸

이 말이 새롭게 다가 오네요..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