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투표소는 사람이 많아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머리를 좀 썼습니다.
장모님을 투표장으로 모시고 싶은데 오래 서 계시지 못하니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안 가신다고 할까 봐요.
관외 투표를 이용해 보기로 합니다.
그러니까 충주를 벗어나 투표를 하면 오래 기다려도 되지 않을 것 같다라고요.
투표하러 가시지 않겠다는 장모님에게 바람이나 쐬며 점심을 먹고 오자고 하고는 일단 함께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괴산읍 근처 괴강 매운탕집으로.
가면서 공작을 했습니다.
평소에 안철수에 대해 호감을 갖고 계신 듯 칭찬을 많이 해서 쉽게 밭갈이가 될 듯 보였어요.
그래서 안철수는 철수를 했고 또 한 사람은 대통령 되면 청와대에서 굿을 할 사람이다.
그러니 그런 것 감안해서 찍으시라고.
그러면 뭐 우리가 생각하는 후보를 찍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쉽게 한 표를 얻나 했습니다.
아무튼 점심을 잘 드시고 함께 괴산면 감물초등학교로 갔습니다.
괴산군도 세가 작으니 변두리 면소재지는 오죽하겠습니까?
사전투표장인데 사람 구경하기 힘듭니다.
일단 사람이 많이 없는 곳으로 잘 찾아오긴 했죠.
여기가 감물면 사전투표장입니다.
면 단위라고 해도 대도시 아파트 한 동 인구나 될까요?
관계자 말고는 별로 사람이 없습니다.
관내도 사람이 없으니 관외야 말할 것도 없죠.
아무튼 절차에 따라 투표를 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대선 투표는 거의 10년 만이네요.
저번에는 방콕에서 했으니.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지역 주소가 쓰인 봉투에 투표용지를 넣고 투표함에 넣어야 하는데 장모님이 투표용지만 집어넣으셨다네요.
아내가 곁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그냥 고집대로 하시다가 그만.
선거위원장과 관계자 분이 이 상황에 대해 상의를 하신 다음 빈 봉투도 투표함에 넣는 것으로 일단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아내가 장모님의 투표용지를 보게 됩니다.
분명 하나를 찍기로 했는데 엥 다른 번호 같았다네요.
이게 뭔 소리여?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는데.
"다른 번호 찍으셨어요?"
"........."
"맞아요?"
"........."
이거 완전 김이 ㅠ
바로 확인 사살하는 말 한마디.
"마누라가 무당이라도 사내만 잘 났으면 되지 뭐"
찍었네.
찍었어.
엉뚱한 놈에게 찍었어 ㅠ
그런데 분위기를 파악하셨는지 이런 말로 마무리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제껏 내가 찍은 사람 중에 당선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아!
그런 깊은 뜻이.....
이런 장면에서 울어야 되나요 웃어야 되나요.
참으로 웃픈 하루입니다.
그러면서 전국에서 이런 일이 나만 겪는 일은 아닐 듯한 기분이...
왜 태국이 나이 70살이 넘으면 투표권을 박탈하는지 알 것 같은...
하긴 젊은 사람 중에도 천치가 그득해서 신천치를 환호하니 나이 탓만 할 것 아니네요.
"내가 찍은 사람 중에 당선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왠지 이 말은 이번에도 맞을 것 같아 위로가 조금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