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계획된 우리 주말여행을 시작한다. 버스가 우선 우리팀을 태우고 베를린공과대학 옆에 있는 호텔에서 기계과 팀을 태운다. 기계과 팀이 묵고 있는 호텔은 상당히 허름한데다 당연히 우리와 같은 주방 시설이 없어서 식사 문제가 상당히 힘들단다. 그래서 저번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우리 팀은 그저 그랬는데 기계과 팀은 좀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나? 호텔에서 몰래 라면을 끓여먹다가 몇 번 호텔 종업원들에게 주의를 받았다한다. 우리 숙소는 시내 중심가에서 좀 멀어서 이동하는데 힘들지만 그래도 기계과 팀보다는 여러 가지로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유럽 방향의 기차 출발지인 리히텐베르크(Lichtenberg)역까지는 거의 시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길이다. 다른 곳은 주로 지하철을 이용해 다니지만 이곳은 100번 버스가 지나가는 코스라서 낯익은데 동베를린 지역을 지나서 한참을 간다. 길이 막힌 것도 아닌데 소요 시간을 뭔가 착각했는지 역까지 동승한 여행사 직원이 버스 기사를 독촉하는데 기차역 위를 건너는 다리위에서 한 기차가 떠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 기차가 우리를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데려다 줄 기차였던 것 같았는데 실제 역에 가보니 그랬다.
기차는 날라 가고…….
여행사 직원이 급히 일정 조정을 하는 듯하다. 다른 사람들은 준비해 온 점심 겸 저녁 도시락을 근처 공터에서 먹기 시작하는데 영 컨디션이 좋질 않다.
결국 오늘 밤 기차로 바르샤바로 간 다음 아침에 도착하면 낮에 바르샤바를 구경하고 다시 밤 기차로 체코 프라하로 간 다음 낮 동안 프라하를 관광하고 일요일 저녁 기차로 베를린에 돌아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완전히 극기 훈련 코스이다. 도시의 밤 구경은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반이다.
도시를 방문해서 밤 풍경을 보지 않고 밤 기차로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점찍는 것 말고는 거의 의미가 없다. 게다가 지금의 몸 상태로 밤 기차를 타고 이틀씩이나 이동하는 것은 거의 자살 수준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같이 있던 최 선생에게 의견을 물어본다.
“내가 지금 너무 힘이 든데 단장에게 여행 그만두고 숙소에서 쉬야 되겠다고 말해야 되겠어.”
“단장이 뭐라 안할까요?
“글쎄. 일단 말이나 해보니 뭐”
단장은 일정이 바뀌어서 당황한 모습으로 기계과 단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장님. 저 몸이 너무 안 좋아 이번 여행은 그만두고 숙소에서 쉬어야 되겠습니다.”
“뭐? 너 지금 뭐라는 소리야?”
“코 속도 헐어서 엉망이고 보시다시피 입도 부르틀 정도로 몸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 여행 그만 두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너 이 XX. 지금 불난데 부채질하는 거야?”
왜 욕을 하나? 그래도 나의 장점이 나이 많은 사람과 의견이 달라 싸움을 할 때도 말조심하는 것. 험한 말 나왔다가 나이도 어린놈이 이런 식으로 말 방향이 바뀌면 우리나라는 정말 감당이 안 되는 나라이니.
“나라 돈으로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내 돈 내어 여행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 극기 훈련하는 것도 아닌데 몸이 이런 상태에서 밤 기차를 두 번 씩이나 타는 것은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단체에서 개인이 혼자 행동하는 것이 어디 있어. 대를 위해서는 소가 희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옆에 있던 비슷한 논조로 기계과 단장도 한마디 거든다.
“나는 못 가겠습니다.”
“이 XX가 보자보자 하니까.”
한참 옥신각신하는데 옆에 있던 박 선생님 자형이 단장에게 말한다.
“너무 아픈 것 같으니 일단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재우겠습니다. 오늘 하루 쉬면 몸이 좀 회복될 테니 내일 프라하로 직접 갈 수 있도록 하지요. 그러면 일요일 새벽에 팀이 프라하에 도착하니까 만나서 프라하를 구경하고 같이 돌아 올 수 있을 것입니다.”
단장은 좋다 싫다 말을 안 한다.
이 분은 부인과 같이 한달 휴가를 내어 우리와 같이 다니면서 도움을 주곤 했는데 이것이 단장에게는 꽤 거슬렸던 모양이다.
박 선생님 자형이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한다.
맥없이 차 시간을 기다리는 일행을 떠나 주차장으로 가서 일단 차를 탄다. 벤츠인데 차가 좋다고 하니 벤츠는 벤츠인데 경유 승용차란다. 아무래도 경유 승용차가 여러 가지로 비용이 덜 드는 모양인데 엉겁결에 일이 이상하게 되었다.
자형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단다. 몸이 아파서 못 갔다는 사람에게 왜 그리 욕을 하며 난리를 떠는지.
자형과 그 부인은 60년대에 우리나라를 떠나서 독일에 왔는데 그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한다.
단장은 여행사와 모종의 관계가 걸렸는가보다. 사실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되어야 하는 논리는 나도 종종 학생들에게 써먹던 것 아닌가?
어쨌든 남들은 떠나고 나는 남았다. 이미 지불한 여행비는 좀 아까웠지만 건강 생각하면 그다지 손해는 아닌 것 같고.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어 독일 집을 방문하는 기회가 생겼다. 집은 베를린 남쪽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단층 연립 주택이었다. 안은 복 이층 구조로 거실과 방 몇 개로 구성되어 있는 아담한 형태. 집에는 둘째 아들 김 베다 군이 있었다. 베다군은 베를린공과대학에서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처럼 한 과에서 전공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들이 섞여 있어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경제학에 컴퓨터 공학 거기에다 상거래라니 문과와 이과 계열이 나누어져 공부하는 우리네와는 학문을 접근하는 방법이 상당히 차이가 있는 듯.
한국어는 말을 잘 못해도 들을 수는 있고 쓸 수는 없어도 읽는 것은 가능하단다. 말을 천천히 쉬운 말을 골라 하니 대화에 큰 문제는 없었다.
원래 한국어를 못했는데 유학 온 한국 학생들과 만나면서 한국말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단다. 형은 독일여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문화 차가 있어서 처음은 힘들어했다고 한다. 큰 형 결혼식 때도 축하금이 문제가 되었었는데 신부는 왜 자기들 것인데 신랑 부모가 챙기느냐고 항의해서 그것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웠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것을 보면서 자기는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독일인이지만 부모가 한국계이니 한국 정서를 벗어나긴 어려웠을 터이고 그렇다고 한국 여자와 결혼하면 사회 생활하면서 몸에 밴 독일 정서가 여자가 가진 한국의 독특한 정서를 견디어내기 힘들 것이다.
그러한 내용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주니 더 많이 생각을 해봐야 되겠단다.
코가 헌데 바르는 약을 주어서 바르면서 병원에서 하루 입원하면서 쉬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자형은 웃으면서 그런 소리 말란다. 독일 병원 하루 입원비가 50만원 정도에다가 한 번 들어가면 나오고 싶어도 의사가 OK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한단다. 그리고 지금은 주말이라서 의사 보기도 힘들고. 의료비가 그렇게 비싸냐고 하니 보험료를 내지 않은 외국인이라 그렇단다. 독일 사람은 의료비가 무료이고.
자연스럽게 독일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독일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여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입을 4등분해서 그 일은 주택비(보통 주택은 공공임대 주택이란다) 그리고 일은 보험료 또 일은 생활비 그리고 나머지 일은 휴가비란다. 일년에 60일이 유급 휴가인데 보통 유월에서 팔월만 날이 좋고 나머지 기간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씨라서 휴가를 가지 않으면 미친다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여행하는 나라가 독일이라더니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북유럽은 유럽 날씨의 쓰레기장이라고 할 만큼 온갖 비구름은 다 몰려 궂은 날 투성이고 보면.
그건 그렇고 요즘 들어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한국 사람들 돈 쓰는 것을 보면 좀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미리 연락을 해 숙소를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경우 좀 허름하지만 요금이 싸고 깨끗한 숙소를 소개해주면 도착해서 표정이 험해 진단다. 그리고는 다른 호텔을 알아봐서 그리로 옮겨 난처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한국 사람들을 잘 안 만나려고 한단다. 뭔가 자신들과 달라져 버린 것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저녁은 모처럼 외식한다고 해서 나갔는데 통닭집이었다. 독일 아니랄까 엄청난 크기의 닭을 통째로 튀겨 놓은 것인데 한 마리 먹기가 너무 벅찼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못 보게 되어 섭섭한 것도 있지만 좋은 사람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왜 나를 데리고 왔냐고 물으니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야기를 해준다. 크리스천으로서(자형은 천주교인) 곤경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으면 돕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나는 어려서 주일학교 시절 연극을 하곤 했던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극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직접 경험한다. 당연히 나는 강도만난 사람인데 그럼 누가 오늘 사건에서 강도였는가?
집에 돌아와 자형이 직접 만들었다는 나무 2층 침대에서 숙면 모드로 간다.
그래 바르샤바는 아니더라도 얼마나 좋은 기억인가? 여행은 기분이 좋아지라고 하는 것이면 나는 지금 좋은 너무나 좋은 꿈나라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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