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내리더니 더위가 한 풀 꺾였군요.
역시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권력도 더위도 진실이라고 믿는 것도.
그래도 영원해야 되는 가치 같은 것들도 있는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무시되는 기분.
요즘 공직자 청문회가 열리고 있네요.
'윗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
이런 가치는 우리나라에서 영원했으면 좋겠는데 지금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보입니다.
괜히 날 더운데 더 덥게 만드네요.
그래도 언젠가는 좋아 지겠지요?
이런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2010년 8월 2일 월요일
오늘은 梵淨山에 올라가기로 한 날.
이름부터 그렇지만 뭔가 신비로운 감이 드는 산이다.
중국 사람들도 이 산에서 뭔가 신비로움을 느껴 많이들 오는 모양.
언젠가 태국 북부와 라오스를 묶어 여행하면서 관심을 끌었던 것이 소수민족의 삶이었다.
그 소수민족 그들의 고향인 雲南이 가고 싶었고 결국 다음 해 雲南을 다녀왔다.
그 때는 우리나라에 알려진 이 지역에 대한 여행 정보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지구를 걷는 법’ 일명 ‘지구를 헤매는 법’이라는 일본 여행 책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 때 구입한 것은 여러 권의 중국 편 책 중에서 ‘雲南, 四川, 貴州와 소수민족’이라는 제목의 책 이었다.
그 때 벌써 일본은 중국의 각지를 나누어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이 나왔던 것.
그 책 덕분에 雲南과 四川을 헤매지 않고 잘 다녀왔는데 남은 지역이 貴州였고.
貴州는 요즘 들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지만 그 때는 교통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 중국 사람에게도 그랬지만 한국 사람들은 거의 못 가는 것으로 알던 지역이었다.
그 중에서 梵淨山은 오지 중에 오지로 알려져 있어서 그 책에서도 銅仁 소개란에 간단하게 나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범상치가 않아 언젠가 가고 싶다고 생각이 들던 곳.
그곳을 오늘 간다.
역시 꿈은 ★ 이루어진다. ㅎㅎ
집사람이야 그런 세세한 이유는 알 수가 없으니 관심도 적고 또 몸이 좋지 않아 못 간다고 해서 혼자 떠난다.
떠나기 전 집사람과 아침을 같이 먹어주는 것으로 하루 종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혼자 있을 미안함은 대신하고 먹을 거리를 찾아 호텔 근처를 배회하는데.
등장하는 강원도 산 올챙이 국수.
먹는 방법도 우리랑 비슷하다.
하지만 이 음식은 추억으로 먹는 것이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서 패스. ㅎ
나는 이 올챙이 국수에 대한 추억이 없는 쌀 곡창 지대가 고향이다.
호텔 건물 맨 아래 층에 있는 국수집에 가서 선택을 해본다.
그런데 맛이 정말 쉣이었다.
조금 먹다가 말았는데 국수 가락을 뭘로 만들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무슨 어묵 재료로 만든 맛인데..
집사람을 호텔에 남겨 두고 나 혼자만의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서 호텔에서 나선다.
마음은 설레지만 한 곳에는 좀 미안함도.
7시 20분 梵靜山에 가는 첫 차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간다.
표를 사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갔더니 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시간이 좀 남아 화장실에 가니 5 마오를 받는데 그 안은 오랜만에 만난 니하오 화장실이었다.
차비는 8.5, 화장실은 5 마오.
대도시에서는 구경도 못 했던 5 마오 지폐가 시골에서는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거.
좀 추한 이야기 같지만, 니하오 화장실 그 속에 있던 아저씨를 윗입으로는 정답게 대화를 하면서, 아랫입으로는 오케스트라 화음을 내더라고.
끙...
푸드득..
뿌직...
아직도 이런 스타일이 남아 있어서 반갑기까지.
그건 그렇고
야~~~
정말 신기하다.
이렇게 시골의 버스도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출발을 하다니.
그래도 터미널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꾸역꾸역 도중에 사람이 타서 만석이 되어 가기는 했다.
차는 아주 고물이지만 그래도 문은 자동문.
그런데 이 차는 자동문이 자동이 안 되면 어떻게 되나 보여주려고 만든 차 같았다.
자동 장치가 고장난 자동문이라.
상상이 가는가?
길은 錦江 상류를 따라 가고 주변은 시골 풍경이니 눈이 아주 부드럽다.
거의 다 가서 吊橋가 나오는데 허름한 것이 어디서 많이 본 것이다.
일본 여행 가이드북 梵淨山 소개 사진에 나온 다리인데 다리로서의 임무는 벌써 끝냈더라고.
그만큼 책이 나오고 시간도 지났지만 그 동안 중국의 발전 속도는 엄청났던 거.
그 옆에는 훌륭한 콘크리트 다리가 새로 놓였다.
물론 운치야 없지만.
터미널을 나와 1시간여를 달리니 완전 공사판인 梵靜山 입구에 도착한다.
마치 피난민 촌처럼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입구.
아마 삭도를 만들어 놓고 돈 벌 분위기를 띄우려고 많은 노력을 하기는 하나 본데 아직 진행형인 듯 하다.
다리 아래쪽으로 이렇게 좋은 그림이 있어서 어수선한 분위기는 좀 상쇄되는 느낌.
거창한 범정산 문이 왠지 촌 티가 나기는 하지만 옆 건물과 그 앞 난민촌 스타일의 가게들이 정리가 되면 곧 좋아질 듯 하기는 하다.
관리 사무실인 듯하고 그 너머 높은 산이 오늘 목표인 줄 알았더니 그것은 아니더라는.
혹시 삭도를 탈 때 왕복권 할인제도가 있는지 궁금해서 내 앞에서 표를 사는 아저씨를 살펴보니 그런 거 없다.
그냥 한 방향 90원.
일단 입장료 문표 50원, 셔틀버스표 20원만 구입.
흔들리던 마음이 굳어진다.
왕복 할인 제도가 있으면 좀 고려해보려고 했는데 돈 아까워서라도 걸어 올라가기로.
날씨도 지대가 높아서인지 그냥 견딜 만 한 것 같고.
그런데 내 앞에서 표를 사는 아저씨는 옷차림을 보면 경제력이 있어 보이질 않는데 무려 일인당 160원이나 하는 표 묶음을 겁도 없이 사더라고.
그것도 한 식구들인지 10명 분 1,600원을 턱 내놓던데..
돈 아까워서 걸어 올라가려던 내가 기가 죽더라는.
참 알 수 없는 중국이다.
좀 안 쪽으로 가면 셔틀버스 정류장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운행한다니 이곳에 올 사람은 참고할 사항.
이 차는 거의 필수이다.
괜히 돈 아낀다고 걸으면 무시 힘들겠더라는.
설사 나처럼 걸어서 올라 가겠다고 마음을 먹더라도 이 차는 타야 된다.
셔틀 버스 옆에 써 놓은 '기적 발현'이라는 글씨가 이 산을 오르는 의미인 듯.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주장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기적 발현'이라는 문귀가 오늘의 중국을 말해준다.
공산주의는 이미 박제화되었고 돈이 종교이자 가치가 된 사회.
이 버스를 타고 10여분을 달리면 삭도 정류장에서 일단 서고 돈 좀 쓴 사람들은 여기서 하차.
나머지 돈 없는 거지들만 태우고는 30여 m 정도 더 가서 선다.
거기가 종점이다.
나와 청년 몇이서 종점에서 같이 내렸는데 이 청년들이 나와 같이 걸어서 올라가나 했더니 그냥 길 옆 계곡에서 놀 모양이다.
바로 앞에 숲 속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데 확실하지가 않아서 이 청년들에게 영어로 이 길이 정상 가는 길이냐고 물어보니 맞는다고.
이렇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만나면 참 반갑기까지 하다.
잘 보니 계단 옆에 零步라고 걸어서 가는 계단 원점 표시를 해 놓았다.
이것을 보니 정상까지 8,000보라는 계단이 실감나더라고.
일단 계단 초입은 경사가 완만하고 계곡을 옆에 두고 걷는 길이라서 기분이 좋다.
허나 산은 산이고 계단은 계단이다.
바로 심한 경사로 이어지고 거기에다 2000m가 넘는 산이니.
급경사 길을 오르니 일단 능선 상에 선다.
쓰레기통과 벤치.
여기서 일단 휴식.
중간 중간 나오는 휴게소들은 올 4월까지인가 삭도가 없을 때에는 장사가 그나마 되었을 텐데 지금은 마치 유령의 집 같다.
2,000보...
여기까지 40분이 걸렸는데 여기서부터 경사가 더욱 심해진다. TT
역시 높은 산은 높은 산이다.
올라가는 사람은 없다.
가끔 내려오는 사람들만 만날 뿐.
이 더운 날 이 산을 걸어서 올라오는 사람을 보니 존경심이 드나보다. ㅎㅎ
만나는 사람마다 뭐라 하는데 표정을 보면 존경심인지 미친놈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 겹쳐서 나온다.
가끔 안내판이 있지만 얼마가 남은 것인지는 표시가 없는데 그래도 일본어 안내는 되어 있더라는.
아마 일본 가이드북에 나와 있어 불교 쪽에 관심이 있는 일본 사람들은 방문이 잦았는지도 모르겠다.
휴게소에 표시된 몇 보 휴게소가 진행 거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거리표시다.
그나마 있으니 다행인가?
4500보 휴게소는 완전 폐허로 변했고 물이나 간단한 과자만 있는 것이 괴곡 산장 분위기이다.
나 같은 독종이나 걸어서 올라갈 텐데 사정이 이러하니 곧 문을 닫는 것이 정한 수순 같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좀 완만해지는데 그렇다고 힘이 안 드는 것은 아니고.
정말 땀이 분수처럼 나온다.
가끔씩 만나는 하늘을 나는 삭도 차를 보면 내가 왜 이 짓을 하나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산은 이렇게 직접 올라야 제 맛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하늘 아래 태산이지 별 수 있나?
멀리 삭도 종점이 보인다.
하지만 힘이 많이 빠져서 빤히 보이는 그곳까지도 쉽지가 않더라는.
그리고 안개 속으로 신비의 봉우리라는 금정이 보인다.
그리고는 안개가 덮어버리고.
오르막 계단이 끝나고 그 자리에 돌계단을 놓았던 이들이 흔적을.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일단 삭도 종점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는데 여기서부터는 이 사람들이나 나나 별 차이가 없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
마지막이라도 돈 쓴 놈이나 안 쓴 나나 똑같아야지.
4500보 휴게소까지만 해도 날씨가 참 좋았는데 산 정상부에 오니 안개가 산을 휘감아 시계가 좋질 못하다.
역시 높은 산에 올라갈 때에는 오전에 뭐든 끝내야 한다.
오후가 되면 구름이 올라와서 좋은 그림은 얻기가 어렵다.
하지만 구름과 산봉우리가 노는 모습도 멋있으니 나름대로 괜찮은 면도 있고.
그래도 사진은 역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찍어야 폼 나는데 오늘 그런 사진을 얻기는 틀린 것 같다.
그나마 정상부 조금 못 미쳐 휴게소에서 사진을 찍는데 2장을 찍고 나니 사진이 더 찍히질 않는다.
왜 그러나 했더니 배터리가 거의 방전되었던 거.
옛날 대청봉의 악몽이 떠올랐다.
8월 한 여름에 큰 아들하고 힘들게 대청봉에 올랐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어 인증 사진을 못 찍었던 사건.
그래서 우리 큰 아들 초등학교 4학년 때 대청봉에 오른 인증 샷이 없다.
이때부터 사진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카메라를 한참을 두었다가 찍으면 몇 장은 찍을 수가 있었으니.
일단 정상부 광장에 도착하니 이 쪽 저 쪽 분위기가 안개와의 조화이다.
일단 정상부 지도를.
워낙 높아서 멋은 있지만 하늘색이 칙칙하니 사진이 살 질 않는다.
일단 금정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라는데 옛날 여관 자리였던 곳에는 절이 대규모 확장인지 신축 공사인지를 벌려 놓았는데 이놈만 없었더라면 정말 분위기가 훨씬 좋을 뻔했다.
일단 蘑菇石이라는 버석 모양 바위 쪽으로 올라서서 梵靜山의 상징인 新金頂과 반대쪽 봉우리 老金頂을 바라본다.
우선 新金頂이다.
버섯 바위 蘑菇石이다.
그 옆의 바위들도 모양이 심상치가 않았더라는.
老金頂은 안개에 휩쌓여 정상의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질 않는다.
뭔 부끄러움을.
노인네가 부끄러움을 더 타는가?
야~~~
봉우리도 봉우리지만 어떻게 저런 봉우리를 올라갈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길을 만들었을까?
대단한 중국이다.
이즈음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경사가 너무 심한 돌길을 걸어서인지 골반 엉치뼈 쪽에 무리가 온 것 같았다.
사실 처음에는 내려가는 것도 걸어서 내려가려고 했었는데 돈 몇 푼 아끼자고 몸을 축내는 것이 더 바보라는 생각이.
해서 내려가는 것은 삭도차를 이용하기로.
그렇다면 그 만큼 정상에서의 시간을 벌었으니 포기하려던 신금정쪽을 올라가보고 하산하는 하는 쪽으로 정리를 한다.
사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힘이 달려서 그만 두려고 했었는데 뚱뚱이 아저씨가 내려 와서는 4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자기 친구에게 자랑하는 소리를 듣고(야~~~ 내가 이런 소리를 알아듣다니) 산에 미쳤던 인간이 이 정도도 못가면 되겠나 싶어서 무거운 다리를 다시 놀렸다.
팔과 다리 모두를 이용해야만 하는 세미클라이밍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안전장치를 잘 해놓아서 그다지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고 이렇게 다리 힘이 빠졌을 때에는 차라리 손힘을 이용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서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가 있었다.
머털도사가 사는 동네인 듯한 분위기의 봉우리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 불당이다.
사실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좀 낫기는 하지만 광장에서 보는 경치와 그다지 다르지 않고 안개가 많이 끼어 시계가 제한이 되어 있어서 환상적인 구경거리는 못 되었다.
우선 갈라진 두 봉우리를 연결하는 하늘 다리 天橋.
위에서 광장을 내려다 보면 높이가 실감이 난다.
높기는 높다.
이런 계단은 순한 곳..
더 엄청난 곳이 아래에 있었다는 거.
老金頂은 안개에 휩싸여 보였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저기를 올라 갈 수가 있다는 말이지.
사실 날씨나 주변 인물이 여행의 큰 변수이기는 하다.
정상에서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동북대학에서 온 친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한국인인줄 알고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찍어주었는데 동북 출신이라고 하니 괜히 더 반갑다.
이쪽 남방계 중국인보다는 동북쪽 중국인이 우리와 많이 닮았을 것 같아서.
애네들도 더 살갑게 대하는데 나하고 같은 마음인가?
이제 내려가기로 한다.
다시 梵靜山에 올 일은 없을 것 같아 뒤를 돌아보면서 내려오는데 여기까지 버텨준 사진기가 고맙다.
2시 경 삭도 차표를 사는데 아직도 내려가는 사람보다는 올라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인지 나 혼자 한 칸을 차지하게 된다.
요금은 90원..
참 다시 생각을 해봐도 중국 사정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올라 올 때 3시간이 넘게 걸려 올라온 길을 25분에 걸쳐서 내려간다.
가끔씩 아래쪽으로 내가 힘들게 올랐던 길들이 보이고.
梵靜山 구경하는데 일등 공신인 내 발 사진을 한 방 찍는 것으로 오늘 사진은 마무리.
내려와서 다시 셔틀버스 그리고 주차장에서 江口 행 버스를 타고 江口로 돌아온다.
갈 때는 한 시간이나 걸리더니 올 때는 40여분 만에 도착한다.
나도 독하기는 하다.
입구에서 물 한 병을 산 것 말고 산 속에서는 돈 한 푼도 안 썼으니.
점심도 산에 오를 때 2개, 정상에서 2개 씩 모두 4개로 때웠다.
모두 어제 저녁 때 5원 주고 사놓은 것.
내려와서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광천수를 사서 한 병 들이키니 갈증도 모두 끝~~~
오는 도중 길 산들을 보니 梵靜山의 구성 돌이었던 점판암으로 이루어 진 것들이 많이 보인다.
금정처럼 봉우리가 솟은 것도 하나 보이고.
참~~~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중국에는 없는 것이 뭐야.
호텔에 도착해서 얼굴과 팔을 보니 아주 푹 익었다.
그래도 만족도는 최고다.
또 나보다 먼저 걸어서 오르고 여행기를 남긴 '바람과 산'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 분 덕에 나도 당일치기로 걸어서 오를 생각을 했다.
저녁을 좀 넉넉하게 먹고는 호텔 아래층 발 마시지 집에서 58원 주고 90분 짜리 마사지를 받았다.
주는 팁도 거절하고 확실한 서비스..
중국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겠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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