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토요일
요즘은 보통 일어나는 시간이 6시였어요.
그 시간이 되면 탱이님 핸드폰 알람도 울리고.
그러면 조금 잠자리에서 빈둥거리다 7시 쯤 일어나곤 했지요.
이날도 일어날 시간인데 밖이 어두워 웬일인가 했더니 비가 내리고 있다더군요.
비라~~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니 건물 너머로 풀밭이 보였고, 넓은 길에는 몇몇의 티벳 사람이 특유의 전통 복을 입고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중충하고 뭔가 다른 세상의 풍경 같았지요.
날이 그래서 그런지 어제까지 괜찮았던 palette님이 머리가 몹시 아프답니다.
여기서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서녕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선언을 합니다.
날도 우중충한데 그런 말까지 나오니 분위기가 더욱 좋지 않네요.
여기는 작은 동네라서 서녕까지 가는 차편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오늘은 그냥 옥수(玉樹)로 가자고 일단 설득을 합니다.
물론 비도 오고 하니 자전거는 안 되고 차편으로요.
일단 아침을 먹기로 합니다.
어제 잔 숙소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그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의 계단이었다는.
정말 4,000m는 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그러나 저러나 저녁 식사를 한 곳은 이상하게 아침 문 여는 시간이 늦군요.
해서 오늘도 다른 집으로 갑니다.
여기도 회족 식당입니다.
회족 사람들이 부지런한 것인지 매일 아침 식사는 회족 식당에서 하게 되네요.
여기서도 분탕을 시키는데 분탕보다는 먼저 먹은 콜라가 아침 대용입니다.
이 놈이 문제의 분탕인데 기름 둥둥, 양고기 듬뿍.
먹긴 먹었는데 분탕 맛은 기억이 안 나고 콜라 맛만 생각이 나니 아무래도 콜라 맛이 강하긴 강한 모양이지요?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마치고는 옥수까지 가는 차량을 수소문합니다.
그런데 수소문할 것도 없이 소형 승합차가 옥수로 가는 것이 있더군요.
유수(流水) 방식이라고 손님이 다 차면 가는 모양인데 마침 우리가 탄 차는 손님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지는 며느리도 모르고 시어미도 모른다는.
그런데 자전거를 분해해서 뒤에 실었더니 바로 차량이 옥수 방향으로 가기에 웬일인가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 되돌아 왔고 그 때부터 그 승합차는 온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 잡듯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립니다.
주유소도 들리고 동네 뒤쪽으로도 가봅니다.
동네 뒤쪽은 앞과 다르게 지진 피해인지 아니면 도시재개발 사업의 일환인지 곧 철거 예정의 집들이 많이 있더군요.
도시재개발보다는 옥수 지진 피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렇게 비오는 우중충한 날씨에 몇 명을 더 태울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가득 채우는군요.
역시 대단한 중국의 운전기사들입니다.
2시간여를 시내에서 방황을 하다가 드디어 옥수 방면으로 갑니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리는데 지나가는 양 옆으로는 사행천이라고 구불구불 흐르는 하천과 풀밭이 있네요.
날만 좋았으면 좋은 경치일 뻔 했습니다.
이미 자리는 다 채운 것 같은데 그래도 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더 태우는군요.
가면서 무료하니까 별 것이 궁금해집니다.
티벳 남자들이 쓰고 있는 카우보이모자는 카우보이들이 먼저 썼을까 아님 티벳 사람들이 먼저 썼을까요.
그리고 이들을 잘 보면 어딘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과 분위기가 비슷해 보입니다.
물론 같은 몽골리언이라서 분위기가 비슷할 수도 있지만 대자연에서 구속받지 않고 살던 환경이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 한족으로 보이는 승용차 운전사와 시비가 붙으면 이 땅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판명이 납니다.
물론 한족 운전기사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티벳 우리 운전기사가 뭐라 하면 비굴할 정도로 바로 꼬리를 내리더군요.
한 한족 기사는 산소 호흡기를 코에 대고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고지대인 것을 느끼겠더라고요.
또 비가 오는 중에 비를 맞으며 자전거로 라사를 향해 가는 중국 청년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대단합니다.
처음으로 오체투지를 하며 라사를 향하여 가는 티벳 사람 일행을 봅니다.
여기는 분명히 티벳 사람들의 땅이 분명하기는 하네요.
비가 오고 습하니 차안에는 온갖 냄새가 풍깁니다.
지나가는 동네에서는 양 노린내 비슷한 냄새가 풍기고 차 안은 담배 쩐 내와 쉰 냄새가 풍깁니다.
이런 중에 미세스 티벳이 등장하는군요.
모녀가 같이 탔는데 이제까지 본 여자들 중 가장 세련된 것 같습니다.
챙이 넓은 모자에 마스크를 썼네요.
자외선 때문에 볼에 핏발이 서는 것을 막으려고 썼나 봅니다.
사진이나 실제 인물들을 보면 그런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자 어른들은 그런 자국이 없는데 어린이나 여자들이 많을 것을 보면 피부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그 모녀는 얼굴이 희더군요.
하지만 손톱 밑의 때는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손톱 밑의 때라..
그건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딸도 금 이를 해 넣었네요.
옛날 우리처럼 금 이는 이 동네에서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하기는 아무나 금 이를 해 넣을 수 있겠습니까?
진진향(珍秦鄕)까지는 계속 비가 내립니다.
그러고 보니 참 이상하군요.
꼭 차편으로 이동하기로 하면 비가 오네요.
아무래도 우리를 돕는 손길이 있나 봅니다.
아무튼 그러다가 큰 고개를 넘으니 날이 갭니다.
그나저나 여기부터는 정말 많이도 떨어집니다.
이제까지는 긴 오르막이 있어도 내리막은 그다지 길지가 않았는데 이제야 제대로 떨어지나 봅니다.
길 확장하는 공사는 정말 산을 크게 끼고 도는군요.
헌데 고개를 거의 다 내려오자 날씨는 급변합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군요.
오늘 자전거로 이동하지 않기로 한 것이 너무 잘한 결정이죠?
라이닝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더니 잠시 휴식입니다.
이제 나무가 있는 동네로 다시 돌아 왔네요.
3,000m대로 진입을 한 것 같지요?
이제 옥수(玉樹)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옥수에 다가가면서 주변 분위기가 험악해집니다.
지진이 일어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복구는 거의 안 되었네요.
임시 막사만 줄줄이 서있습니다.
도로는 비포장에 진흙탕이라서 엉망이고요.
정말 난장판 도로에 난장판 동네입니다.
왜 여기를 왔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탱이님은 뜻한 바가 있어서 왔겠지만 같이 온 우리들은 정말 난감합니다.
원래 여기서 이틀 정도 쉬면서 일을 보기로 했는데 하루 정도 지내기도 벅찰 듯합니다.
어쨌든 왔으니 내려야 되겠지요?
소형 승합차들이 정류장으로 사용하는 곳은 진흙탕입니다.
간신히 마른 땅을 골라서 짐을 내려놓고는 주위를 둘러보는데 정말 한숨만 나옵니다.
우리야 그냥 거쳐 가는 사람이니 뭐 잠시만 불편하면 되겠지만 이 땅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까요?
그래도 사람 목숨이라는 것이 정말 모진 것이라서 이 와중에도 삶의 현장은 계속됩니다.
우리가 도착한 옥수는 옥수장족자치주의 주도입니다.
사실 지구인들의 머리속이나 심지어 중국인의 머리 속에도 거의 기억되지 않는 작은 소도시였지요.
그러나 4월 14일 이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은 옥수라는 이름은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중국 당국의 보도에 의하면 2,187명의 조난자를 낸 것으로 되어 있지만 희생자 수는 더 많을 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티벳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의 통계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어쨌든 우리는 게사르 동상이 청승맞게 서있는 광장을 가로질러 빈관을 찾아 갑니다.
또 비가 오는군요.
그것도 억수로.
거의 무너져 내린 건물 사이로 한 건물이 그대로 서있는데 그것이 오늘의 우리 숙소입니다.
우리 숙소가 있는 대로(?)의 모습입니다.
그 대로에서 호텔로는 입구도 제대로 확보가 안 되어 진탕 속으로 뚫고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발이 푹 빠졌네요.
온갖 시궁창 오물이 한데 섞인 물인데.
우리 숙소 청장대주점(靑藏大酒店)은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그냥 보내질 않는군요.
시설은 몹시 허름한데 요금은 200원이 넘습니다.
그래서 그냥 방 하나만 잡습니다.
방 하나에 세 명이 그냥 쓰려고요.
자전거를 지하 창고에 넣고 방에 가보니 그래도 방은 괜찮네요.
바로 아래층에서 점심을 먹고 탱이님은 약속된 초등학교를 방문한다고 외출을 합니다.
우리는 그 사이 빨래도 하고 오랫동안 물 구경을 못 했던 몸뚱이를 위해 봉사를 합니다.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것이 이토록 고마울 줄은 몰랐네요.
멀리 게사르 동상이 있는 광장이 보입니다.
그 옆은 피난민촌이네요.
나름 중심가였던 모양인데 지금은 이렇습니다.
호텔 밖 바로 길가에는 노점상이 많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palette님을 위해 멜론을 하나 사다가 먹습니다.
500g에 6원이니 꽤 비싸지만 먼 거리를 이동했을 놈을 생각하니 뭐 그 정도야.
그리고 오랜만에 먹는 과일입니다.
허나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골기 직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신선한 과일을 먹으니 꿀맛이었네요.
그러고 있는데 탱이님이 귀환을 합니다.
동행이 있다더군요.
티벳 어린이가 다니는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랍니다.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고 또 오늘 저녁 칭커를 한답니다.
그래서 계획도 없이 나들이를 하네요.
사실 이 동네 온 이유는 탱이님 개인 소원이 있어서였습니다.
작년 옥수 지진이 났을 때 옥수현장에게 편지를 보냈답니다.
고아가 된 초등학생 10명을 소개해주면 그들에게 학용품비를 지원하겠노라고.
그리고 옥수현장에게서 답장이 왔고 탱이님은 학용품비를 보냈답니다.
그리고 그 지원받은 어린이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했고 이렇게 직접 방문을 한 것이랍니다.
어쨌든 우리들은 교장선생님이 타고온 산타나 승용차를 타고는 한참을 나갑니다.
우리가 옥수 들어오던 방향이더군요.
아마도 현장 기사들이나 인부들 또 관계 감독들을 위한 식당인 듯합니다.
가건물 형태인데 이 동네 전통 훠커를 하는 집이라는군요.
음식이 나온 것을 보니 우리나라 신선로 같았습니다.
그 안에 많이 들어 있더군요.
돼지고기 양고기 쇠고기 그리고 각종 채소들.
국물도 꽤 맛있고 내용물도 그랬습니다.
모두들 술을 하지 않아 자리는 그냥 밥만 먹고 끝냈는데 탱이님은 교장선생님의 환대는 반가웠지만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그다지 만족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는군요.
동네도 우중충하고 분위기도 그래서 오늘 하루만 자고 내일은 뜨기로 합니다.
서녕에서 출발할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옥수에 드디어 오기는 왔지만 그리던 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이 모두 합해 3개월이고, 그 기간에 복구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9월이 되면 눈도 내리고 고개는 얼어붙어 차량 통행도 어렵게 되니 복구는 엄두를 못내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서녕에서 옥수로 올 때 그 많던 트럭들이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지금은 견딜 만하답니다.
처음 지진이 나고 식량도 다 떨어지고 고립되었을 때에는 정말 힘들었노라고 교장선생님이 말하더군요.
동네는 엉성하고 난장판이었지만 4,000m대에서 3,000m대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모처럼 숙소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자게 되어 이 날은 정말 편안한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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