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월요일
여행 떠난 지 일주일이 되었고, 이제 일주일이 남았다.
그러니까 반이 지난 셈인데, 반이 지나면 남은 시간의 빠르기는 앞보다 훨씬 빠르다는.
내가 다니는 교회는 성결교단에 속한다.
지난 가을, 우리 교단의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임원진들이 동생의 소개로 미얀마의 한 마을을 방문하여 수도 시설을 놓아주고 학교 개축을 해주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갔단다.
거기서 자료용으로 찍어온 사진이 모두 훼손이 되었다 하여 오늘 오전에는 그 학교를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돌아오기로 한다.
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구글 지도에서 확인을 해보면 양곤 국제 공항을 끼고 가다가 왼쪽 길로 접어들어 가서 나오는 마을에 있다.
이 마을은 양곤 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택시를 잡아타고 시골로 한참을 달리니 동네 이장네가 나온다.
마을로 가는 길은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포장은 다 되어 있었는데, 지난 번 선거 공약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정치가들은 강이 없는 마을에 다리를 놓아 준다고 공약을 하지 않던가.
선거 때 한 이야기를 뭐 지금 와서 지키라고 하냐고, 선거 때 무슨 말은 못하냐고 우리나라 큰 집에 사시는 분이 당당하게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에라 이~~~
그래도 이 동네는 그 공약이나마 실행이 되었으니 좀 나은가?
이장네 집 앞의 가게이다.
없는 것이 훨씬 많은 분위기.
이장네 마당의 우물이고.
여기도 펌프는 이제 자동 모터의 힘에 의해 뒤로 밀렸나 보다.
마침 이장은 출타중이라서 부인이 우리를 맞았는데, 차도 주고 커피도 주고 과자도 내주고 대접이 융숭하다.
벽에는 부부가 같이 찍은 사진들이 많이 걸렸는데 이들이 생활에 여유가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도 저번 여전도회 임원들이 왔을 때 이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많은 물건을 내주고 갔다한다.
사실 이집은 이 동네 기준으로 하면 어지간히 사는 집인데, 우리 눈으로 보면 원시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그래서 임원들이 좀 오버를 하셨고.
어쨌든 융숭한 대접은 아마도 그 영향이 아닌가 하는데.
잠시 후 이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을 한다.
오토바이는 양곤 시내에서는 타지를 못하는데, 이렇게 외곽쪽에서는 괜찮은 모양.
나중에 시내로 들어가다 보니, 어느 경계선에 오토바이는 들어 와서는 안 된다는 간판이 있더라고.
사실 시내는 매연이 심한데 오토바이까지 더했더라면 엄청날 뻔했다.
그건 그렇다고 하고.
이 이장은 군인 출신이고 부인은 교사 출신이란다.
교사라고 해봐야 월급 5만짯 정도로 엄청난 박봉이다.
이장은 별정직 공무원 대우로 월급은 얼마 안 되지만, 마을의 대소사는 모두 허가권을 가지고 있어서 그 수입이 짭짤한 모양이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는 중류에 속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동생의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이장 부부 칭찬하기가 한참 이어졌다.
잘 생겼다는 둥, 부인이 미인이라는 둥.
하기사 그런 부분이 좀 있어서 말을 하면서도 낯이 뜨거워지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 이장은 조금 깬 사람이라서 외부에서 자금을 유치해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데 기여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어떤 마을은 상당히 폐쇄적이어서 고아원을 지어준다고 해도 얼씬도 못하게 한단다.
이장의 안내로 학교로 향한다.
아직도 동네 안길은 포장되지 않은 길이 많아서 건기인 지금은 괜찮지만, 우기 때면 장화 없이는 못 사는 동네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한쪽에 있는바나나는 꽃을 피워 바나나 열매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길을 따라 한참을 간다.
학교 앞은 구멍가게가 많았다.
세계 공통점일 수도 있는 불량식품이 넘쳐나는 학교 앞 풍경이 여기도 있었다.
학교는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정말 시설이 한심스러웠다.
이 동네 군인 아저씨들은 자기 먹고 사느냐고 아주 나라 살림을 거덜 냈나 보다.
그래도 여기는 나은 정도라고 하니 시골은 과연 어떨까?
쉬는 시간인지 작은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노느냐 정신이 없다.
겉 모습은 그래도 좀 나은데.
앗~~~
깜딱이야..
이게 교실이란다.
나는 처음에 창고인줄 알았다는.
정말이다.
이렇게 안에는 어린이들이 가득하다.
교실 안은 들여다보니 이게 교실인가 하는 정도,
천장은 비가 새서 내려앉았고, 곰팡이가 피었던 얼룩이 선명했다.
얼마나 나라 재정이 열악하면 이렇게 생겼어도 교실을 다시 지을 돈이 없다니 참 한심하기도 하다.
우리 교단 여전도회에서 만들어 주었다는 펌프 시설이다.
식수는 아니고 허드랫물로 사용하는 듯.
학교 화장실이다.
화장실보다는 변소라는 우리 옛스런 이름이 더 잘 어울릴 듯.
식수 통이 이렇게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 동네 지하수 사정은 만만치가 않은 듯 보인다.
나중에 알아보니 지하수는 석회석이 많이 섞여서 식수로는 거의 사용할 수 없을 수준이란다.
그렇군..
여기는 옆 건물인데, 지붕이 양철 지붕이다.
소나기 내리면 수업하기 힘들텐데.
거기에다 햇빛이 비치면 얼마나 더울까?
큰 애들은 신나게 놀고 여기에 못 끼는 아이들은 그저 부러울 뿐이다.
학교 건물 안을 들여다보니 우리 어려서도 학교 환경이 열악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적은 없었는데, 아마 육이오가 끝나고 바로 뒤의 모습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교실 수 부족으로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 수업을 한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어려서의 모습과 같다.
우리는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에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정부는 당연히 돈도 없었지만 갑자기 들어나는 어린이 수를 감당하지 못했다.
교실은 그 유명한 콩나물 교실에 그것도 모자라서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 수업을 했다.
사실 그 시절 미얀마 그 때 이름 버마는 부국이었고,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빈국이었다.
한 때는 이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무상 원조 쌀을 보내 주었단다.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시절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독립할 때, 이광요 수상이 지금은 어렵지만 10년 안에 싱가포르를 버마 수준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했을까.
이런 버마를 군바리 아자씨들이 그 동안 말아 자셨다.
썩을 놈들.
아마 스위스 계좌나 싱가포르 계좌에 입금된 군인 아자씨들 돈만 몰수해도 이 나라 사람들 팔자가 피지 않을까?
요즘 한참 미얀마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가서 민주화 과정 어쩌고 이야기를 해서 뉴스를 탄 적이 있는데 스위스가 비밀 계좌로 입금하는 은행 사업에 차질이 생겨 그 역할을 물려받은 곳이 싱가포르라는 말이 잇다.
그러니까 세계 검은 돈의 은신처로 싱가포르가 새롭게 각광을 받나 보다.
우리나라 현 정권 실세들의 자녀들이 이 싱가포르로 이민을 가고 회사를 옮기고 한다는 소식도 나오는데, 이들도 그 검은 돈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인 듯싶고.
현 미얀마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간 것은 이런 것에 관련되지 않았을까 나 혼자 추측을 해본다.
언젠가 딴쉐인지 군사 정권 수반인지가 싱가포르에 가서 원조를 요청했단다.
그러니까 싱가포르 수상이 우리나라에 입금된 미얀마 사람들 돈만 해도 그 원조액의 수십 배가 된다나 어쩐다나 그렇게 이야기해서 미얀마 수반인지가 무안을 당했다고.
무안을 당했다고 하지만 자기도 그랬을 테니 부하들을 잡아서 닦달로 못했을 거다.
어쨌든 여전도회의 지원으로 교실을 말끔히 개축하기로 했으니 참 좋은 일을 하는 셈이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 교회들이 벌이는 해외 선교는 예배당 짓는 것에 열심인데, 우리나라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예배당은 일요일 예배 때 한번만 사용하게 되는 시설이다.
차라리 학교를 지어주고 일요일에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일요 학교를 열어 활용하면 훨씬 좋을 것이다.
이런 예배당 지어주기 붐은 옛날 부자들이 이생에서의 공덕을 쌓기 위해 불당을 짓던 풍습이 기독교로 옮겨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활동할 때 그들이 지어주었던 것은 예배당이 아니고 병원이나 학교였다.
이런 점은 우리도 배워야 되지 않을까?
이러한 면에서 동생이 제안하고 여전도회가 후원하는 사업은 꽤 모범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교실 개선 사업을 생각하면서 한국에서 요즘 많은 고민 속에 있는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그 이에게 이 일을 맡기면 일석 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 같은 데, 글쎄 모두 내 마음 같을까?
학교와 교실의 환경은 엉망이어도 그 속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웃음은 정말 환했다.
사진기를 내밀자 서로 자기를 찍어 달라고 해서 찍고 보여주면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는.
교실 환경이 바뀌면 예쁜 교실 속에서 수업 받는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선생님들과 마을 이장들의 인사를 받으며 돌아온다.
마침 학교 옆에는 절 신축 공사가 열심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런 모습은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와 절을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물론 종교와 국가는 분리를 해야 하나 잘 생각을 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절은 번쩍, 학교는 히쭈구리.
이거 뭔가 불공평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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