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통만성으로 갑니다.
안내판이 서있는 곳은 작은 사거리였습니다.
오른쪽 편에 집 한 채 말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 동네.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걷는데, 참 기분이 좋더군요.
보고 싶은 곳에 왔다는 생각과 햇살은 따갑지만 공기는 더없이 상쾌해서 걷는 재미를 주었거든요.
아스팔트로 포장은 잘 되어 있었지만, 왕래하는 차량은 거의 없습니다.
옆으로는 제법 키 큰 나무들이 이어져 오아시스 마을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길가에도 나무 그늘이 이어져서 강한 햇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어디론가 가고 계시더군요.
“니 하오”
뭐라 합니다.
“어?”
하니 또 혼나네요.
말귀 어둡다고.
“차 없이 걸어 가냐고?”
“아, 네”
도시 사람처럼 생겼는데, 차 없이 걸어가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이지요?
할아버지 차림새를 보면 청나라 시절이나 그 전 명나라 시절 옷차림과 달라질 것이 없어 보였어요.
그만큼 여기는 오지라는 거죠.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그 마을이 바로 내가 차타고 오려고 했던 목적지 백성즉(白城則)촌이더군요.
재개발과 재건축 바람에 휩싸인 중국 다른 동네와는 다르게 옛날 그냥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계속 길을 따라서 걸어가고, 지루해지려고 할 때 쯤 입구가 나오네요.
삼거리를 이루는 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입장료를 받는 곳이 나옵니다.
얼마인가 알아보려고 기웃거리는데, 건물 안에 있던 청년이 여기는 입구가 아니니 옆쪽으로 해서 가라더군요.
호!
아직 공짜입니다.
성으로 가는 길은 땡볕이라서 이제는 힘이 드는데, 조그만 내를 건너자 설상가상으로 언덕길로 변합니다.
엄청나게 햇살이 뜨거워 땀이 비 오듯 하더군요.
올라가면서 보니 강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서 동네와 밭들이 이어지네요.
이렇게 물이 있으니 사람이 사는 거주지가 생긴 것이겠지요.
한참을 굽이쳐 오르니 멀리 통만성이 보입니다.
하얀색으로 빛나는 고성(古城)
뭔가 뭉클한 것이 몰려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넓은 땅 한 자락을 차지하고 서있는 옛 성의 흔적.
동북쪽에 있다는 고구려 성이 생각이 나더군요.
드디어 통만성 유지에 섰습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동원이 되어 이 성을 쌓았을거고, 또 언젠가는 전쟁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싸웠을 것이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허허벌판에 단지 제비만이 날라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사람의 영역에서 제비들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네요.
통만성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통만성 설명은 위키에게 맡깁니다.
통만성(http://ko.mythology.wikia.com/wiki/통만성)
통만성(統萬城)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 대하(大夏)국의 수도였다.
407년 건국 후에 유발발은 계속하여 남량(南凉), 후진(後秦)을 침범하며, 대거 영토를 넓혀간다.
하나라는 오르도스 전역을 평정하였으며 , 413년 본래의 흉노 성씨인 혁련씨로 그 성을 바꾸고 통만성(統萬城)을 점거하고 수도로 삼는다.
417년 관중(關中)의 후진이 동진의 유유(劉裕)의 북벌에 의해 멸망당하자, 418년 하나라 군은 남하하여 동진의 후방 수비대를 격파하고 장안 등 관중 지역 여러 성을 점령했다.
하나라의 영역은 관중, 오르도스, 산서 남부에 이르렀고, 토번, 북량을 복속시켜, 화북 서쪽에서 대 세력을 쌓았다.
그해 혁련발발은 제위에 올라 419년 진흥(眞興)이라 개원하고 통만성을 수도로 정한 뒤 귀환했다.
그 의미는 "통일하여 만방을 군림할 것(統一天下,君臨萬邦)"으로 줄여서 통만(統萬)이라 이름을 붙였다.
통만성의 축성은 엄청난 역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축성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질간아리는 매우 잔혹한 인물이었다.
424년 장안에서 반란이 일어나 내란 상태가 되고, 425년 혁련발발이 죽자 하나라의 세력은 급속히 쇠퇴했다.
혁련발발의 아들 혁련창이 2대 대선우가 되었다.
426년 위(魏) 태무제(太武帝) 탁발도의 친정으로 1차 호하 정벌은 시작되었다.
탁발도가 이끄는 본군은 평성에서 황하를 건너 오르도스의 통만성으로 직진했고, 해근, 주기 등이 이끄는 별동대가 포판을 거쳐 장안 방면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는 원래의 공격 계획을 바꾸었다.
그는 3만 기병만을 거느리고 빠른 속도로 통만성에 이르러 유인해서 끌어내 섬멸시키는 작전을 택했다.
답사기를 조회해보니 좋은 글이 있더군요.
이것도 참조하시길.
http://kimzzz.com.ne.kr/htry/htb4.htm
아무튼 중국을 꽤 괴롭히던 흉노(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싫어합니다만)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의 도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은 농경민족의 땅이라기보다는 유목민족의 땅이었죠.
이들이 한 번씩 꿈틀할 때마다 세계사에 큰 흔적을 남기던 유목민들.
한 바퀴를 돌아보면서 사진에 담습니다.
구멍이 뻥 뚫린, 이제는 제비들의 집이 된 성곽은 참 인상적이더군요.
나 말고 승용차를 타고 구경 온 가족이 있었습니다.
웬만하면 정변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고 싶지만, 공간이 없으니.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던데, 내가 한국인이라서 중국말을 못한다고 하니 깜짝 놀랍니다.
“한국인이래!”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겠습디다.
이런 오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아쉽지만 이제는 돌아갈 시간
간식으로 가져간 과자와 물을 정자에 앉아서 먹고는 이제 되돌아갑니다.
한창 더위가 극성을 부릴 시간이라서, 올 때는 괜찮았지만 갈 때는 너무 힘이 들더군요.
가는 방법도 잘 알 수가 없었고요.
아무튼 큰 길로 나와 고민을 합니다.
내가 온 길로는 하루에 버스가 몇 대 안다니는 것 같으니, 딴생각님이 걸어 들어왔던 오심기 가는 길과 만나는 곳으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길은 오르막이고 햇살이 너무 뜨거워 걸어갈 수가 없더군요.
히치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차가 오더군요.
“나 정변까지 가려고 하는데 태워 줄 수 있어?”
“정변?”
“정변 가려면 반대 방행으로 가야 되야. 이리로는 내몽고 가는 거여”
이 길이 아닌가?
다시 오던 길을 따라 가는데, 한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서더군요.
“너 어디 가는데?”
“나 정변”
“저 사거리까지 좀 태워다고”
타라더군요.
해서 한참을 달리니 백성즉촌에 도착을 하고 자기는 집이 여기니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랍니다.
정변 가는 차는 2시에 있다면서.
차가 있기는 하고만.
잠깐 걸어 사거리에 도착을 하지만, 뜨거운 햇빛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중국집들은 처마가 아주 짧아 도대체 그늘이라고는 만들어내질 않지요.
그 땡볕에 칭기즈 칸 후예들이 탔을 조랑말이 서있더군요.
주인이 누군지, 말못하는 짐승이라도 좀 그늘에 놓으면 안 되남.
아무튼 그 시각이 오후 1시.
차가 2시이면, 무려 한 시간을 땡볕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데 좀 걱정이 되더군요.
그것도 올지 안 올지 확실하지도 않고.
그런데 마침 빵차가 한 대 옵니다.
손을 들었더니 서더군요.
“나 정변까지 가는데 좀 태워줄래?”
쿨하게 타랍니다.
역시 여기는 중국이 아닙니다.
심하게 말하면 돈에 환장한 한족들의 땅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을 여행하지만, 한족의 땅이 아닌 다른 땅만 여행을 하고 있지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여기 들리고 저기 들리면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왔던 길을 그냥 내달려 시내까지 오네요.
어디서 내려주면 되냐고 해서 시내 중심가 아무데다 내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더군요.
차비 이야기는 전혀 안 합니다.
이제부터 어디 가는 것은 갈 때만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오는 것은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되니.
이제 짜투리 시간입니다.
배가 엄청나게 고팠습니다.
하지만 먼저 나를 내려 준 곳은 좀 변두리라서 시내 중심가로 이동을 해야 했어요.
택시를 타도 되지만 시내버스를 타보기로 하는데.
승무원은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느냐 돈도 안 받더군요.
이래서 운전 중에 핸드폰을 하지 말라고 하는 모양인데, 기사만 그럴 것이 아니라 승무원에게도 그렇게 시켜야 되겠더군요.
아무튼 시내 중심가에서 내립니다.
정변은 현급 도시인데, 내가 사는 충주시보다도 더 크고 화려합니다.
일단 근처 시장에서 과일 몇 개를 사먹고는, 중심가에서 보아둔 사천 요리 식당으로 가서 회과육을 시켜서 먹네요.
맛이요?
아침에 만두 몇 개에 죽 먹고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니 뭘 먹으면 맛이 없겠어요?
첫 미션 통만성 갔다 오기는 이렇듯 멋지게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 너무 멋진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짜라니...
오늘 쓴 돈
호텔비 90원 * 이틀 = 180원
택시기사 팁 10원
아침 만두, 죽 4원
백성즉촌 차비 13원
점심(회과육) 28원
꼬치 2원 * 2개 = 4원
수박 잘라 놓은 것 3원
과자+물 8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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