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섬서 2014 여행

거친 땅, 거친 역사 섬서성을 찾아서 - 지단 志丹 140521(하) 보안(保安) 혁명 구지

정안군 2014. 6. 20. 22:33

류지단 기념관을 떠납니다.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그리고 퍽이나 허전한 류지단 기념관을 나와서, 보안 혁명 구지를 향해 걷습니다.

류지단 기념관 주변 숲 그늘에는 류지단이 벌린 일들을 기념하거나 기억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없고, 청춘사업을 하기 위해 온 중국 청춘남녀들만 몇 쌍이 있네요.

이들과 비슷한 그 나이에 류지단은 대의(?)를 위해 한 몸을 바쳤지만, 이 시대 비슷한 연배의 중국 청년들은 종족 번식(?)이라는 더 본래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서로의 짝 찾기에 더 열심입니다.




기념관 오다가 지나친 혁명 구지는 절벽을 따라서 만들어진 동굴 집 형태이던데, 그 주변에는 그냥 버려진 동굴 집도 많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하는 동굴 집이라지만, 이제 시절이 바뀐 것이지요.

이제는 이 동네 사람들도 동굴 집에서 나와 콘크리트 집에서 산다는 거.

그나저나 점심을 먹어야 할 텐데, 마땅한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혁명 구지 입구 건너에 어제 연안에서 먹었던 천운 산채면 가게가 있습니다.

아마도 체인점인 듯하더군요.

다양한 메뉴가 있는 걸 알기에 면이 아니라도 다른 것을 골라 먹으려고 들어갔더니 마침 정전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반찬을 밥에 올려 먹는 덮밥과 산채면만 된다는군요.

반찬을 둘러보니 가지 수는 많지만, 내 입에 맞을 만한 음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밥은 포기하고 어제 일단 먹었던 산채면으로 갑니다.

어제 혼나면서 배웠던 주문 방식대로 하니 여긴 별 문제 없네요.

하긴 거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북적댔지만, 여기는 나 말고 손님이 없으니 배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지만요.

어제는 조금 큰 것을 시켜서 다 먹느냐 힘이 들어서, 오늘은 작은 것으로 합니다.

그게 내 양에는 딱이더군요.


보안 혁명 구지, 이곳도 공짜입니다.


국수 한 그릇 해치우고는 바로 앞에 있는 혁명 구지를 보기로 합니다.





절벽을 따라 동굴 집이 있고, 홍군 지도부는 그 집 하나하나에 들어가서 살았기 때문에 공간은 길지만 넓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 머문 기간을 보니 대략 육 개월 정도 이곳에서 지냈네요.

여기서 이들은 연안으로 이동을 했지요.

비록 여기서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이 시기는 이들에게 무지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절 에드가 스노가 찾아 와서 인터뷰도 했고요.

그래서 비적이 아니라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것과 모택동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서양 세계에 알려졌지요.

또 이 기간에 장학량이 장개석을 구금한 서안사변도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기도 하지요.

사안사변의 결과로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면서, 홍군은 팔로군으로 개편이 되고 당당하게 연안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유명한 태항산을 경계로 이들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지요.

우리가 중학교 때 중국 공산당들은 무기를 주면 7할은 빼돌리고 3할만 가지고 전투 흉내만 냈다고 배운 적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과는 많이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박정희 시절 그걸 교육이라고 배웠으니, 나중에 ‘중국의 붉은 별’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게 되지요.

‘우상과 이성’이라는 책도 마찬가지고요.

아무튼 지단 자체도 도시 규모가 작고 보잘 것 없는 동네이지만, 이곳 혁명 구지도 옹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참 가난한 동네였던 것 같네요.




아무튼 제일 먼저 모택동 거주지를 가봅니다.






동굴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모택동이 쓰던 것인지 아닌 지는 확인이 안 되지만 아무튼 그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게끔 전시를 해 놓았습니다.

의자와 책상도 있고 모택동이 잠을 잤던 침대도 있네요.

모택동이 살던 호남성은 그냥 침대이지만, 이곳은 우리나라 온돌처럼 바닥이 뜨끈하게 데울 수 있는 구조인데, 이런 것이 모택동은 질색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냥 구들을 데우지 않은 상태로 사용했다고 하지요?

처음은 이상하겠지만 자꾸 사용해보면 뜨끈하게 지지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될 텐데 그것도 싫었던 모양이지요?








바로 옆은 경비실입니다.

모택동을 지키던 병사들이 사용하던 방이지요.

애드거 스노는 그 많은 현상금이 붙은 사람이 사는 집 앞에 경비병 한 사람만 서서 지키고 있다고 썼습니다.

모택동도 슬슬 동네로 나가 노인네들과 사이좋게 담배를 같이 피우곤 했다고 하고요.


모택동의 절친으로 열려진 장문천의 숙소는 모택동 숙소 바로 옆에 있습니다.







장문천은 절친이기도 했고 모택동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여기도 다른 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택동 동굴 집 바로 앞에는 주은래가 사용했다는 조그만 주택이 있네요.

안의 모습은 모택동 동굴 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베트남의 호지명도 상당히 검소한 생활을 했지만, 이곳 홍군 지도부의 생활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물론 보급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풍요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홍군 지도부의 머리 속에는 혁명이라는 생각만 자리를 잡고 있었겠지요?

정말? 훗~~






기요실이라는 방에는 무전기가 있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서 명령을 하달하는 원시 시대는 아니었죠.

전화 같은 통신 시설도 보이는군요.








공산당하면 회의죠, 그래서 이렇게 회의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만 다른 방과 별 다르지는 않습니다.




동굴 집 앞에는 진열실이 있습니다.

마당의 아카시아는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1936년 12월 12일.

장학량과 양호성은 독려차 서안에 와서 화청지에 머물던 장개석을 감금하고 공산당과 협력해서 일본과 싸우라고 이른바 병간(?)이라는 것을 하지요.

이것이 서안사변.

내용이야 잘 아실테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아무튼 위 사진이 장학량과 양호성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날짜를 한 번 보세요.

훗날 전대갈이 쿠데타를 일으키던 날과 똑같네요.

전대갈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이른바 12월 12일이 쿠데타 데이라는 것을.




여기 안에 전시된 내용들은 새삼스러운 것은 없었어요.

결론적으로 류지단 만세...



좀 허름하고 인적하나 없는 곳인데, 확장할 계획이 있는 듯하네요.

아닌게 아니라 요즘 잘 나가는 중국 실정에 비해 이 곳 전시실은 너무 허름합니다.



사진과 게시물들은 그저 그랬는데, 다만 그 당시 보안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한 장 걸려 있어서 새롭습니다.


아무튼 연안부터 홍군 릴레이를 펼치니 이제 이런 사진이나 자료는 좀 지겹습니다.


피로도 많이 쌓여서 걷는 것도 힘이 들었고요.

대충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마침 노점에 개구리참외가 보이더군요.

옛날 그 맛일까 궁금해서 하나 사고, 또 멀리 청도에서 온 체리를 삽니다.

체리는 1 kg에 25원이었는데, ‘이’할 때 ‘알’을 일로 알아듣고 20원을 주었더니 5원을 더 내라더군요.

뭔 소리여?

내가 5원을 받아야지 하다가 생각하니 알은 일이 아니고 이.

아직도 숫자가 헛갈리네요.

그래서 그냥 20원 어치만 달라고 해서 삽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도 많이 수입되어 흔하니 싸겠지 생각했는데 돌아 와서 보니 상당히 비싸더군요.

중국에서 많이 먹을 껄 쬐금 후회를 하기도 했지요.

개구리참외는 맹탕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과일이 너무 당도가 높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맛도 옛날 개구리참외도 아니고 그냥 멜론인데, 달지도 않으니 그냥 배 채우기 용으로 임무를 마칩니다.


오후에 좀 쉬다가 그냥 자기는 허전해서 조그만 야시장을 찾아 갔더니 별다른 것은 없고 ‘한국식’ 두부구이가 있네요.

별다른 것은 아니고, 그냥 기름에 두부를 구운 것입니다.

여기에 고춧가루도 좀 뿌리고 후추도 좀 뿌린.

먹어보니 맛이 꽤 괜찮습디다.

주인에게 내가 바로 한국인아라고 하니 뭔가 벙뜬 표정이더군요.

이상한 짓하다가 다른 사람 눈에 띤 그런 경우일까요?

걱정 마셈..

‘한국식’이건 아니건 일단 맛은 좋다네.

이 사람아...


오늘의 지출


호텔 아침 식사 15원

시내 버스비 2회 2원

지단 버스비 28원

호텔비 158원

점심 산채면 13원

과일 참외 9원, 체리 20원 29원

한국식 두부 6원


오늘은 호텔비는 좀 비쌌지만 다른 것에 들어간 돈이 없으니,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살림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