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립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립니다.
그것도 제법 많이 오네요.
싸다고 호텔 방을 덜꺽 잡는 것이 아닌데, 길가 방이라서 밤새 소음에 시달렸습니다.
길가 방은 시끄럽다는 상식에 가까운 사실을 깜박한 것이 참 웃기네요.
아무튼 비가 옵니다.
이런 거칠고 황량한 땅에도 비는 오는군요.
어디로 갈까 고민을 좀 했는데, 집사람에게 소환 명령이 왔습니다.
중국 여행을 3주 정도 예정했었는데, 보름 정도로 마치고 돌아오라고.
원 계획은 은천으로 가서 그 근처 구경을 한 다음 서안으로.
거기서 팔로군 흔적과 서안사변의 현장인 화청지를 보고 청도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일정을 줄이기로 했으니 서안은 생략하기로 합니다.
서안은 기차로 지나가기만 했고 내린 적은 없는데, 왠지 많이 들린 것 같고 또 언젠가 갈 수 있는 곳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영하 회족자치구 은천(銀川)은 살기 좋은 도시라고 소문이 났고, 또 주요 동선에서 벗어나 있어 이번에 가지 않으면 갈 기회가 없을 것 같습디다.
해서 이번에는 은천에서 여행을 마치는 것으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은천을 한 방에 가면 재미가 없으니 중간에 나타나는 정변(定邊)이라는 도시에 가 봐서 거기가 괜찮으면 하루를 구경하고 가기로 생각하고 일단 정변 가는 버스를 탑니다.
정변 가는 버스는 8시가 첫차인데, 정각에 버스는 출발을 하더군요.
그러나 하면 뭘 해요?
시내를 빠져나가서 외곽에 도착하자 버스를 세워놓고 장시간 대기에 들어갑니다.
마침 정변에서 은천 가는 버스가 지나가던데, 은천에 갈 사람들은 바로 그것으로 갈아타라고 하네요.
몇 명이 옮겨 타고 나도 망설이다가 그 버스는 가버렸고, 내가 탄 버스는 한 없이 기다립니다.
아마도 중국 인민들이 길가에서 서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버스 회사에서 배려를 하나보지요?
여기서 죽치다가 다음 버스가 오면 그 때 비로소 출발을 하니 차가 보이지 않아 인민들이 불안해 할 이유를 줄여 주는 것이지요.
이런 배려가 있지 않을가요?
아무튼 40여분 정도를 기다리다 출발을 하는데, 여기서 정변까지의 길은 이제까지 달렸던 길 가운데 최악입니다.
좁고 길포장 상태도 엉망이고, 아마 섬서성 지역에서 이 구간이 제일 열악한 지역이 아닐까 싶더군요.
차량 통행도 별로 없습니다.
길옆으로 스치는 모습은 아직도 이 동네 사람들은 토굴집에서 대개 살고 있고, 소나 나귀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 홍군이 이 동네 들어 왔을 때나 형편이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이는군요.
비는 줄기차게 내립니다.
가끔씩 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산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네요.
아마도 비가 일 년에 어쩌다 몇 차례 오니까 그러지 않을 까 싶습니다.
중간에 노부부가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비를 내는 것을 보니 5원을 내더군요.
할아버지는 먼저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내리지 않는 것을 보니 부부는 아닌가요?
아무튼 이 할머니는 5원 어치가 아닌 10원 어치를 타고 갔던 모양입니다.
차장이 뭐라 하니 이 할머니 다시 대꾸.
아마 이런 내용 같습니다.
“5원을 내고 뭔 10원 어치를 타고 그래요?”
“늘 5원 내고 다녔어.”
“5원 더 내던지 아님 내리세요.”
“내려 줘”
아마도 집에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 될 것 같던데, 이렇게 내리면 이 할머니는 얼마를 더 걸어야 될까요?
생각 같아서는 내가 5원을 내 주고 싶던데, 그냥 지나치고 맙니다.
중국사람 일은 중국 사람들에게 맡기자고요.
황토고원 가운데를 한참 달리는데, 옆을 보니 이 지역이 엄청나게 높나보더군요.
그러다가 한참을 내려갑니다.
그리고 평지.
처음 정변(靖邊)에 왔을 때 느꼈던 그런 분위기인데, 이쪽이 훨씬 넓습니다.
오기에서 정변(定邊)까지 버스비는 37원이니, 3시간 70분을 달릴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거의 들어맞았습니다.
기다린 시간이 40분 정도이고 3시간을 넘게 왔으니 대충 맞는 것 같습디다.
정변 도시 입구인 남터미널에서 대부분 승객이 내리고, 버스는 외곽으로 빠져 한참을 더 갑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정변(定邊) 터미널.
이건 다른 정변(靖邊) 터미널보다 더 황량한 곳에 위치해 있더군요.
근처에 호텔 몇 개 말고는 암것도 없었습니다.
이렇담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어졌습니다.
바로 은천으로 가기로 합니다.
터미널 안에 가서 은천 행 고속버스 표를 삽니다.
40원이더군요.
터미널 안 버스 시간표를 사진에 담고 과자 하나를 사고 점심을 대신 하기로 합니다.
벌써 12시가 지났으니 은천에 가면 때가 퍽 늦어질 것 같더군요.
정변에서 은천 가는 버스는 참 많이 있습니다.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그냥 손님이 차면 가는데, 별로 기다리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은천에 향합니다.
시내를 빠져 나와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만리장성이 보이네요.
거의 무너져 내리고 흔적만 남은 그런 장성의 모습입니다.
사막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식물의 모습이 보이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황량한 지역이네요.
왜 이 지역에 장성이 있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다 장성은 오른쪽에서 이어집니다.
염지로 나가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염지는 섬서성이 아니라 영하 회족 자치구의 도시이니 섬서성과는 이별이군요.
물론 은천에서 청도로 돌아갈 때 다시 섬서성을 지나겠지만 그때는 밤이니 섬서성의 모습은 당분한 끝입니다.
사실 비슷한 황토색 색깔과 모택동으로 이어지는 홍군 메들리는 좀 식상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오고 싶은 생각도 별로 들지 않고요.
하지만 한 번은 보고 싶었던 지역이니 후회는 없습니다.
그 나름대로 매력 있는 모습을 많이 담고 있었으니까요.
확실히 섬서성 북부 즉 섬북은 거친 땅과 거친 역사를 지닌 그런 땅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도 역시 사람은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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