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먹거리

[치앙라이] 민물 조개의 추억

정안군 2014. 11. 6. 16:03


날마다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집사람을 따라 반두 아침시장에 갑니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포터, 즉 짐꾼 역할입니다.

단순 짐꾼 역할이지만 소소한 구경거리가 있고 가끔씩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등장해서 신기하기도 하곤 때로는 나를 옛날로 이끌기도 합니다.

요즘은 신기하지도 않지만 시장에서 민물 새우를 보았을 때도 그렇고, 민물 게나 새끼 붕어를 보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전 깜딱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민물 조개의 등장입니다.

 

나에게는 민물 새우, 게, 붕어에 대한 추억도 많긴 하지만 민물 조개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내 고향은 금강 줄기인데 부여 근처에서는 백마강으로 부르는 강이 정겹게 흐르는 고도 부여입니다.

부여.

많은 친구들, 친척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도 정겨운 것은 산축에도 못드는 구릉 사이로 넓게 펼쳐진 평야지대와 그 사이로 흐르는 샛강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던 모습입니다.

골골마다 많은 전설이 남아 있고 망도의 한이 남아 어딘가 살짝 애달픈 구석도 있었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그런 것은 우리가 알 바가 아니었습니다.

겨울은 백마강 낙화암 시퍼런 강물 위로 얼은 얼음 위에서 썰매 타기 바빴고, 봄이 무르익으면 철이른 멱감으러 백마강으로 부지런히 가곤 했습니다.

특별히 보리가 익어가는 시절이 되면 백마강에는 살오른 강 조개가 넘쳐나 이 조개를 잡으러 어지간히 들락거렸죠.

허름한 옷가지는 강가 모래밭에 벗어 놓고서 그냥 맨몸으로 강에 뛰어 들어 조개를 잡았는데, 역시 화약장사가 많이 남는 법.

얉은 곳의 조개는 잘아 아무 쓸작머리가 없어서, 강 가운데로 조심스래 들어가 가슴 깊이 정도 강물에서 조개를 잡았습니다.

일단 발로 모래를 문지르고 다니다 보면 조개가 느껴지는데, 그 때는 자맥질로 물속에 들어가 조개를 건져 나곤 했답니다.

백마강은 내 주변 친구 그리고 동생이니 형들을 많이도 데려갔습니다.

강바닥이 고르지 못해 물놀이나 심심풀이 조개잡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많이도 죽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반 친구였던 군수집 아들의 형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때 정신없이 울던 내 친구 엄마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이렇게 위험한 곳이니 어른들은 절대로 백마강에는 가지 말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해도 그게 지켜지리라고 믿는 부모님도 안 계셨을 테고, 아이들도 당연히 듣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물에서 놀고 신나게 놀고 오지만 안 간 척하고, 부모님들은 알았어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곤 했지요.

 

이 민물 조개가 그 증거입니다.

열심히 잡은 조개는 윗도리에 싸서 집에 가져 갔는데, 그게 어디서 나온 것인지 잘 아실 엄마도 아무 말 없이 풋마늘잎을 넣어 조갯국을 끓이셨고, 아버지도 별 말씀없이 맛있게 드시곤 했답니다.

이렇게 흔하디 흔하던 그 조개.

 

어렸을 때 그 조개는 우리 동네말고 어디나 있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강 하구에서만 잡힌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부여 백마강의 조개도 더 이상 잡히지 않을 때였습니다.

각종 오염과 하구언 공사로 백마강 조개는 그 때 이미 전설이 된 것이지요.

그 흔하던 민물 게, 우리 동네 말로 '그이'는 다시 살아나 열성 팬들의 사랑을 받는 모양인데, 민물 조개는 다시 살아날 기미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섬진강 제첩이 아직도 유명세를 타지만, 우리 동네 민물 조개는 그 섬진강 제첩에 비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크기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고.

맛은 비슷할까나? ㅎ

지금은 안 보이니 이렇게 큰 소리치네요. ㅎ

 


그 추억의 민물 조개가 지금 살고 있는 반두 마을 아침 시장에 등장을 했더라구요.

물론 생김새는 조금 다릅니다.

색깔은 좀 더 검고, 흰색 무늬가 많이 크더군요.

맛은 어떨지.

킬로 당 25밧이랍니다.

일 킬로를 사서 집사람이 국을 끓였습니다.

그리고는 맛을 보는데.

 

흐..

 

바로 그 맛이더이다.

내 어렸을 때 엄마가 풋마늘잎을 넣어 끓였던 조갯국.

내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담그셔서 자주 먹었지만 무슨 맛인지 기억조차도 없었는데, 몇년 전 부여 근처 한 절에서 만들어 파는 외할머니표 쩜장을 먹었을 때 그 맛이 생각나는 것을 보고 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던 맛에 대한 기억에 놀랐었는데, 조갯국을 먹으면서 그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이 맛이구나.

그 맛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는 솔직히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고향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맛이지요.

 

지금은 연로하셔서 아무 맛도 못 느끼고 요리도 하시지 못하는 우리 엄마.

다행히 어려서 까다로운 내 입맛에 맞춰 음식을 해 주던 엄마 대신, 지금은 집사람이 그 솜씨를 이어가 내 입맛을 맞춰 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반두 시장에 등장한 조개가 옛 생각과 옛 입맛을 생각나게 했네요.

이러한 소소한 재미가 태국 생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