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염에 있는 일본 태국 우호 기념관에서 본 내용.
태국과 일본은 동맹국이 되었고 태국은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는 귀절에 대해 사실 관계를 더 알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찾아 보니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쁠랙 피분송크람이더군요.
자료에 의하면 이 사람에 대한 이력은 이렇습니다.
쁠랙 피분송크람(타이어: แปลก พิบูลสงคราม 1897년 7월 14일 ~ 1964년 6월 11일, 또는 피분 송크람)은 타이의 군사 독재자로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측으로 참전하였다가 패배하자 사임했다.
하지만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25년 동안 정권을 잡다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자 일본으로 도주해 그곳에서 죽었다.
좀 더 그 때 상황에 대해 알아 보니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엄청나게 굳건해 보이는 태국 왕 제도도 별 것 아니었었고, 독재가 얼마나 나라를 망가지게 하는지 알 수 있게 하네요.
그대로 올립니다.
베트남을 점령한 일본군은 버마를 침공하기 위하여 먼저 당시 타이의 총리였던 쁠랙 피분송크람에게 아래와 같은 조건을 요구하였는데, 쁠랙 피분송크람은 이를 수락하였다.
일본군의 무상 주둔
버마를 향한 무상 통행
또한 쁠랙 피분송크람은 위 조건을 수락하면서 동시에, 일본과 아래와 같은 협상을 맺기에 이른다.
타이: 태국의 주권과 독립을 인정받는다.
일본 제국: 위 조건을 담보로 공수동맹을 체결하고, 연합국을 상대로 선전포고 한다.
1897년에 태어난 피분송크람은 1927년에 불과 28살의 나이로 군인이 되어 1931년 32세로 대령이 되었다.
그리고 1932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 라마 7세를 영국으로 쫓아내고 1938년 드디어 자신이 총리에 올라 유럽의 히틀러, 무솔리니와 같은 존재로 독재 정치를 시작했다.
피분송크람은 독재 정치를 하면서 타이에 거주하던 화교들에게 하던 지원을 줄이고 타이식을 강조했고, 나라 이름을 시암에서 타이로 바꾸었고 왕정이 폐지됨과 동시에 공화국이 되었다.
일본군과의 동맹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으로 75만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2달 만에 굴복해 피분 송크람은 일본의 동맹국이 되어 1942년 1월 미국 등 연합국에게 선전포고했다.
피분송크람은 이런 와중에도 정적들을 제거하고 스탈린, 히틀러 등을 본떠 자신을 위대한 지도자로 추켜세우게 했다.
전세가 불리해지고, 미국 육군 항공대의 B-29 폭격기들이 방콕을 폭격하는 와중에 피분송크람에 반대 세력의 압력으로 결국 사임했다.
이에 타이 민족의회는 군사 정권의 통치를 끝내고 왕의 통치로 돌아가기로 결정해 1945년 12월 망명 중이던 라마 8세 아난다 왕이 귀국해 다시 왕으로 즉위했고 왕정이 복귀되었다.
25년간의 군부 독재
1946년 6월 라마 8세는 총기 사고로 사망하고 뒤를 이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왕이 즉위했다. 1947년 11월 사회 혼란을 구실로 삼아 다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푸미폰 아둔야뎃 왕을 몰아내고 피분 송크람이 다시 권력을 잡고 공화제가 부활되었다.
1948년에서 1973년까지의 새로운 군사 독재가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미국의 원조가 타이에 집중되었으나, 미국의 원조는 오히려 부정부패를 낳았으며 그는 미국의 민주화와 민주 정치를 거절했다.
이에 곧 부패한 송크람을 몰아내려는 쿠데타가 많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사임과 말년
1957년 9월 사릿 타나랏의 쿠데타가 성공하자, 송크람과 군부독재 정부요인들은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1964년 일본에서 죽었다.
이차대전 중 일본군의 전투 현황에 대해 알아 보려면 버마전선, 임팔 작전에 대해 검색해 보면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유명했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촤대치가 끌려 갔던 전투가 임팔 전투였었죠.
무타구치 렌야라는 일본군 지휘관의 일본군 말아먹기 신공과 오사카 사단의 살아 남기 신공에 대해 알아 보면 전쟁 가운데 아이러니를 느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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