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는 꽤 오래 된 동네입니다.
그 중 지금은 한물간 동네, 충주 성내동 구 도심에 자리 잡은 충주 관아 공원 이야기입니다.
관아 공원은 충청감영터에 만들어진 제법 예쁜 공원인데, 이름에서처럼 조선말 개축한 이래로 살아 남은 몇 동의 관청 건물이 남아 있어 관아 공원이라고 불립니다.
이런 역사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시간은 흐른다는 것입니다.
흥망성쇠.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그러니까 철 좋을 때 실컷 노시길.
지난 간 것의 속절 없음이여.
모든 것이 속절 없죠.
요즘 이걸 가장 잘 실감하실 분이 푸른집에 사시는 우리 공주마마가 아닐까 싶은데.
지난 삼년 동안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쏘아대며 서슬 퍼렇던 레이디가카도 4월 13일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덧없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벌써 니끼게 되겠지만 갈수록 더 해 갈테니 지금이 그나마 좋을 때일지도.
아마도 세상 사람에게도 서슬 퍼렇던 시절은 금방 잊히고 이젠 소금에 전 배추처럼 축 처진 모습만 기억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뭇 노인네들은 지금의 실정은 모두 잊고 공주가 애처롭고 불쌍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마치 지 아빠처럼.
아빠 엄마가 일찍 총 맞아 죽고, 지금은 저렇게 혼자서리...
그러던지 말던지 시간이 더 가면 불쌍하다고 느끼는 노인네들도 없어질테고 다 부질 없는 소리가 되겠죠.
아무튼 지 애비처럼 백성들을 잡을 줄만 알았던 공주마마도 이제는 좋은 시절이 얼마 안 남았네요.
이제 기울 일만 남았습니다.
반달에서 그믐달로 바뀌어 가겠네요.
달 기우는 것처럼 그것도 하루 하루가 다르게.
아무튼 충주에서 잘 나가던 동네 성내동은 1년 후 레이디가카의 모습을 미리 보는 모습입니다.
잘 나가던 시절은 온데 간데 없고 지금은 그저 쇠락한 모습만.
가구 골목만 변하지 않고 남아 있네요.
가끔씩 오래 된 점포들이 보이긴 합니다.
이발소, 다방, 보리밭.
그러나 내가 처음 충주에 온 80년 대 초까지만해도 성내동은 아주 잘 나가던 동네였습니다.
충주의 최고 번화가였죠.
길 잃어 버릴까 함부로 나가질 못했다니까요.
한 일주일 동안은요.
성내동은 말 그대로 성안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이 있었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충주에는 충주 읍성이 있었습니다.
그 읍성 안쪽이 지금 충주시 성내동입니다.
옛날에 성이 있고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 있었죠.
충주는 충청도의 머릿 글자를 이룬 유서 깊은 목사의 고장이었습니다.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의 머릿글을 따서 나왔죠.
충주는 지금으로 말하면 도청 소재지 쯤 되었답니다.
이런 유서깊은 마을 충주, 그 도청 소재지에 있던 도청 건물이 바로 충주 감영입니다.
충주읍을 둘러 싼 성벽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허물어졌고, 그 중심에 있던 감영도 거의 원형을 잃고 훼손되었다가 요즘 들어 남은 건물을 새 단장하고 잘 꾸며 놓았습니다.
전국 읍성이 같은 신세여서 일본놈들이 우리나라에 아주 못 된 짓을 했다고 생각했더니, 일본 친구들 그 시절 자기 나라에도 그렇게 했더군요.
모든 성은 폐기하고 성터엔 관공서나 학교를 짓고.
우리나라에만 유별나게 한 짓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 시절은 중국이나 우리나 일본이나 서양 것을 숭배하고 자기 것은 모두 쓰레기로 여기던 시절이니, 뭐 옛 것이 아까웠겠습니까?
충주 관아 공원의 모습입니다.
제법 걸어 보고 싶은 곳이지요?
감영 터 한쪽에는 신유사옥 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를 기리는 헌장비도 서 있습니다.
경상도와 경계를 이루는 연풍에는 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몇 분이 이 충주 감영으로 끌려 와 문초를 받고는 지금 충주 우체국 자리쯤에서 처형을 당했다고 하네요.
사실 충주 금처에는 천주교 성지가 제법 있지요.
그 중 유명한 곳이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유명한 제천 배론 성지입니다.
어느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달라지겠지만 자기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내 놓은 분들을 생각하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생각할 점이 많습니다.
건물 들 유래를 보면 조선 말기 안동 김씨 세도가 시기, 잠깐 권력의 정점에 섰던 풍양 조씨의 일족일 듯한 목사 조병로가 남산 청룡사에서 절의 일부 건물을 뜯어 와 세운 건물도 남아 있습니다.
이 목사 조병로가 충주 감영을 새로 꾸민 사람입니다.
충주 감영 터는 그다지 넓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향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공간입니다.
반기문 꿈자람 길
감영터가 있는 관아 공원은 충주의 골목길 탐방인 반기문 꿈자람 길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에서 다뤘던 충주 골목 탐방길을 반기문 꿈자람 길이라고 이름한 모양이더군요.
현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충북 음성 사람이지만 충주로 이주해서 이 근처 교현초등학교와 충주 중고등학교를 나왔으니, 이 근처를 많이 걸었겠죠.
그래서 그렇게 이름 지은듯.
요즘 너무 반기문의 이름을 건 것들이 많이 생겨 신선한 감이 없지만, 반기문 꿈자락길은 한 번 걸어 볼 만 합니다.
골목마다 민초들의 삶이 녹아 들은 곳이죠.
사실 유적은 스토리가 있어야 사는 법인데, 꿈자락길은 이런 스토리가 적습니다.
적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도 적고.
이런 곳은 여러 분이 스토리를 만들어도 좋죠.
우리 어릴 적 놀았던 골목을 생각하면서 걸어도 좋고요.
충주 감영터였던 관아 공원.
충주에 오시면 한 번 들려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지요.
그리고 꿈자락길을 따라 걸으면서 읍성의 흔적도 느껴 보시길.
지금은 땅 속이나 근처 집 돌담의 일부가 되었을 성 돌도 찾아 보시고.
그리고 지나간 것에 대하여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뱀발
관아 공원 앞으로는 성내동 우체국이 있습니다.
이 우체국을 정면으로 하면 오른쪽에 복서울식당, 흔히 해장국집으로 부르는 유서 깊은 식당이 있습니다.
이 집은 한 동안 충주에서 맛으로 날렸던 추억의 명소입니다.
곱던 주인집 아줌마도 파파 할머니가 된 것은 처음 갔을 때 값이 500원이었던 것 만큼이나 세월이 유수 같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메뉴가 많이 늘었지만, 이 집의 대표 음식은 선지 해장국이고 값은 6,000원입니다.
500원이 6,000원이 된 세월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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